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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파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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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오 Feb 12. 2020

조용한 전쟁터, 루브르 박물관과 퐁피두 센터

눈을 감을 줄 몰라서 꿈을 꾸는 거다

https://youtu.be/sCIGBXNaNX8


한 달 만에 글을 쓴다. 시계의 날짜가 모두 바뀌고 자기소개를 해야 할 때 조금 더 민망하겠다 생각을 한 다음 얼마 안 남은 희망을 납작해진 치약처럼 짜내 이를 닦고서 가장 밝아 민망한 하늘 아래에 누워 늦은 잠을 잤다. 삼일 못 갈 마음도 못 먹었는데 눈을 뜨면 뭔가를 꼭 선언해야 할 것만 같아 가만히 누워만 있었다. 날이 덜 차가운 듯 밤이 조금 짧아진 듯 지겨운 비가 드물어진 듯도 했다.


꿈에서는 재촉받은 일을 끝없이 했다. 마음에 꼭 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서 달라는 것을 보니 쓰임이 있나 보다 싶었다. 작은 마음을 큰 것처럼 설명해 놓으면 몇 년은 핑계를 하며 보내야 한다. 작은 것들은 그냥 그날그날의 당신에게나 들려주면 좋을 것을..


내게 활이 없었다면 나는 네 밥을 지어주고 바닥을 쓸고 닦는 일을 하고 저녁이 오면 편안한 베개에 기대어 TV를 보며 웃거나 적당히 화를 내며 게임을 하고 살 수 있겠지. 누가 두고 간 쓸데없는 활 하나 때문에 나는 그만 죽을 길에 나선다. 키는 이곳이라 더욱 작고 팔은 못 끊은 쌀도 쉬이 못 안아 드는데.


2년이나 지나 수분도 다 말라버린 재료로 요리를 하는 것은 정말로 고역이다. 라면처럼 내어 놓으면 ‘엉망이다. 미안해.’ 사과 한마디면 될 것을. 쓸데없이 시간을 끌다 보면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떤 타이밍에 멋쩍게 웃으며 실패를 선언해야 할지 모든 것들이 불명확해진다. 그래도 그간 다른 일도 못하고서 이런 것에만 매달렸으니 대충 접시에 담아 말없는 한 끼라도 나눠야 하겠지. 밥은 함께 먹는 것은 삶 그 자체를 함께 하는 것. 삶의 수준 그 아찔한 곡선을 함께 타는 것. 식구가 진짜 가족이다. 안타깝게도 너는 나의 식구가 되었구나. 그래 체하진 말고. 다 먹고 나면 우리 다시 소박한 장을 보러 나가자.



끝이 없을 것 같이 이어지던 대중교통의 파업이 마침내 끝이 났다. 파업이 끝이 나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중국을 그리고 대륙의 반대편에 있는 이곳 파리까지 덮쳤다. 여러모로 우리가 겪는 파리에서의 첫 번째 겨울은 기억에 선명한 흔적을 남길 거 같다.


사람들이 많은 곳은 가기가 힘들었고 그 덕에 집에 앉아 미련 때문에 마무리를 안 하고 있던 지난 영화를 마무리했다. 수 백번을 봐서 핸드폰을 들지 않고선 처음에서부터 끝까지 다 보기도 힘든 그 영화에서 버전의 번호를 떼고 왜 지었는지도 가물가물한 타이틀로 파일 명을 고치곤 컴퓨터를 닫았다. 그리고 몇 날 며칠은 게임만 했다. 무언가 민망해서 무언가 뾰로통해서..
 

지난주에는 지난 4개월 간의 어학 수업을 정리하는 레벨 테스트가 있었다. 책 한 권이 끝이 났다. 뜻은 둘째치고 말의 모양조차 잡히지 않아 사전도 못 찾아보곤 하던 시절을 지나서 책 한 권에 실린 그 많은 단어들이 낯설지 않게 되었다는 게 그냥 매일 밥을 지어먹고 장을 보고 트후띠네뜨를 타고 정신없이 달리고 기절하고 그랬는데 어느덧 이곳의 여러 것들에 익숙함을 넘어 편안함을 느끼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시험이 끝난 다음 날 가벼운 마음으로 사람이 많아 몇 번인가 포기를 했던 퐁피두센터를 갔다. 왠지 이름도 지겨운 목요일의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줄도 안 서고 입장을 했다. 건물의 외벽을 따라 5층까지 오르는 에스컬레이터를 타며 모처럼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아래에 햇볕을 받아 빛나는 파리의 지붕들을 감탄하며 바라보았다.



공간은 무척이나 넓었고 방과 방, 그리고 그 사이사이의 복도들에까지 가득히 작품들이 걸려 있어 한 층을 둘러보는 일만에 우린 지쳐버렸다. 하지만 그렇게 지칠 만큼 신이 나서 벽들을 따라 발자국을 찍고 다녔다.


‘어릴 때 이곳에 왔다면 난 분명 화가가 되고 싶었을 거야.’


지난주 밀린 영화 작업을 거의 마무리했을 때 이른 해방감을 즐기러 갔다가 마음만 무거워져 돌아왔던 루브르와는 또 다른 무거움이 걸음마다 어깨를 누른 것은 사실이다. 생각 밖의 생각, 생각을 뒤집는 생각, 생각의 틈을 파고드는 생각, 생각 아닌 생각들이 서로를 도우며 시대를 그려 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 각자는 자신의 감옥 안에서 자신이 기꺼이 마주한 벽을 깨려 지독한 싸움을 했을 터.


목표 없이 마음에 드는 감상을 적는 일, 지나가다 보이는 날씨를 찍는 일. 내가 좋아하는 그런 사소함들이 조금은 우스워져서 마음이 울적했다.


https://youtu.be/1BHJqxB85vo


루브르에서 가장 눈이 즐거웠던 작품은 운이 좋아 가까이서 보게 된 모나리자가 아니라 사모트라케의 니케와 밀로의 비너스였다. 2500년쯤 전에 이미 형상은 그렇게 산 꼭대기를 그렸다. 그리고 퐁피두에서 나는 거의 모든 종류의 파괴를 보았다. 그 파괴를 담은 공간조차 징그러울 정도로 마레지구를 어긋 내고 있었다.


무엇이든 만들어야 했던 시기와 무엇이든 부서야 했던 시기를 내가 살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금은 모든 것들이 부서졌지만 다시 만들 것도 다시 만들 이유도 없는 세상의 끝자락 인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신의 자리에서 내려와서 그 어떤 마법이나 그 어떤 영웅적인 향기도 잃어버린 채 사랑을 하기 위해 약을 먹어야 하는 쇠약한 늙음 그 자체가 되었다.


여전히 무엇을 그리거나 무엇을 찢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은 행복할 것이다. ‘이거, 이거 꼭 사 와.’ 쪽지를 꼭 쥐어주던 친절한 사람이 그립다.


그래 장을 다시 보려면 내가 더 굶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신기한 것이 아직 있어 엠마에게 꼭 말을 하고 만다. 말을 하면 그녀는 늘 웃어준다. 나는 동전 마술쯤은 할 줄 아는 것 같아 다행이다. 그래 참말로 다행이다. 지겨운 마음이 되어 지겨운 사람이 되진 않았으니..



파리의 구름은 낮은 지붕들을 덮는 식탁보 같이 펼쳐진 층운이 대부분이다. 바람이 많이 불어 구름은 영사기 위의 필름처럼 무척 빠르게 흘러간다. 파리의 보도에는 개똥이 많다. 소똥만큼 큰 것들도 가득하다. 그 때문인지 파리의 거리는 아침마다 물청소를 한다. 파리의 도로는 신호를 지킬 마음이 안 들 정도로 폭이 좁다. 가장 넓은 도로 또한 왕복 4차선, 6차선이 고작이다. 하지만 그 좁은 도로에도 그 보다 넓은 보도와 자전거 도로가 있다. 파리의 사람들은 담배를 무척 많이 피운다. 길을 걸어가면서 피는 사람들 또한 무척 많다. 지하철에서 지상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에서 벌써 담배에 불을 붙이는 사람들도 있다. 파리의 차들은 무척 다양하다. 단종이 된 차들도 털털 소리를 내면서 굴러간다. 명품이 가득한 거리를 덜덜거리는 차들이 지나쳐 간다. 형광색 조끼를 입고 헬맷을 쓴 자전거들이 줄지어 지나간다. 파리의 집들의 지붕에는 작은 연통들이 가득하다. 멀리서 보면 오래 두어 말라버린 화분들이 가득한 할머니 댁의 옥상들 같다. 파리의 아침은 노을처럼 빨갛다. 파리의 석양은 아침처럼 노랗게 눈이 부신다.


눈을 감을 줄 몰라서 꿈을 꾸는 거다. 아침에 내가 더 지쳐 못 일어나는 것도..


사람들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그릴 수가 없다. 그렇지만 못 그린 날에는 꿈에서 그녀를 돌려 앉히고 신물이 나게 떠들곤 한다. 그렇게 작은 이의 방에는 커다란 활이 줄도 없는 활이 걸려 있다.



내가 좋아하는 FC바르셀로나의 감독이 마침내 바뀌었다. ‘키케 세티엔’ 이름도 생소한 백발의 할아버지다. 선수로는 스페인 국가대표도 했었지만 그렇게 유명한 팀에서 뛰어보진 못했고 감독의 커리어 또한 우승과는 거리가 있는 중 하위권 팀들을 도맡아왔다.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 자신이 꿈꾸는 축구가 분명한 사람이었고 자신의 위치와 자신이 가진 것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용감하게 자신의 이상을 그려 가는 일종의 우직한 예술가였다.


그의 이상과 꼭 닮은 이상을 실현해 나가던 팀이 바로 FC바르셀로나였다. 그에게 바르셀로나는 꿈 그 자체와 같았다. 그는 최근 바르셀로나팀이 정체성을 점점 잃어갈 때도 약팀으로 바르셀로나보다 더 바르셀로나다운 축구를 해나가고 있었다. 나 또한 그즈음 그를 알았고 조용히 그를 응원했다. 그런 그가 동화처럼 바르셀로나팀의 감독 자리를 제의받았을 때 그는 아이처럼 자신을 면담하러 온 바르셀로나 대표들에게 식탁 위에 그릇들을 엎어 놓고 자신이 그리고픈 그림을 새벽이 넘도록 설명했다. 언제나 자신의 길을 찾아서 걸어가는 사람들에게 축복이.


영화를 전공하지 않아서 단편영화를 찍을 때 배우를 구하기도 힘들었다던 어릴 때 본 괴물을 아저씨가 되어서도 놓지 못하던 감독이 해가 17시간이나 늦게 뜨는 곳에서 활짝 웃었다. 그렇게 하고 싶은 게 있어 못 견디는 시대의 이방인들에게도 축복이.


글 이미지 레오


2020.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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