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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파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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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오 Jan 06. 2020

파리에서 맞은 2020년 0시 0분 1초

나 또한 분명 찬란한 태양 아래에 있다

https://youtu.be/051kcSSryCA


기다리던 2주간의 방학이 시작되었지만 특별한 일과 없이 조용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2주간의 기간을 이용해서 프랑스의 지방이나 스페인, 스위스 같은 인접국으로 여행을 해볼까 생각도 했었지만 프랑스에서 보내는 첫 번째 연말이니만큼 파리에서 보내고 싶은 마음이 더 커서 따로 여행 계획을 잡진 않았다.


학교를 다니는 동안 저녁시간과 주말의 이틀만 이용해서는 파리의 여러 미술관들과 보고 싶었던 공간들을 모두 둘러보기가 쉽진 않아서 평일에도 쉴 수 있는 방학기간을 무척 기다려 왔다. 하지만 방학이 되고 또 많은 시간이 흘렀어도 가보고 싶던 그 어떤 곳에도 가보지를 못했다.


12월 5일에 시작한 대중교통 파업이 1달째 끝을 모른 채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행동의 반경은 학교마저 쉬다 보니 더욱 좁아졌고, 일어나서 간단한 집안일을 하고 책상에 앉아 엠마는 엠마의 작업을 나도 나의 밀린 영화 작업을 하고 있다. 뜻하지 않게 어느덧 ‘진짜’ 우리의 생활을 하게 된 것.


당연히 잠이 드는 시간도 점점 늦어져서 점심이 훌쩍 넘은 시간에 일어나는 일도 많아졌다. 하지만 때는 크리스마스 이브라 이날만큼은 햇살을 좀 맞고 싶어 오랜만에 알람을 맞추고 제시간에 일어나 트호띠네뜨를 끌고 집을 나섰다.


시내까지 나가기에는 지하철이 파업 중이라 쉽지가 않았고 동네에는 달리 갈 곳이 있지 않아서 와이파이가 되는 이케아에 가서 못다 한 작업들도 하다가 오기로 했다. 덤으로 실내에서 뜨호띠네뜨를 민폐 없이 들고 다닐 수 있게끔 그 녀석들의 가방도 사주기로 했다. 두 지역의 스포츠용품점에 가보았지만 가방이 매진되어 구할 수가 없었는데 이케아 옆에 있는 곳에는 딱 2개의 재고가 남아 있었다.


시청 앞으로 가서 이케아 근처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지만 버스는 역시 쉬이 오지 않았다. 크리스마스를 코 앞에 두고 날씨는 무척이나 화창해서 전기가 없이도 온갖 것들에 걸린 크리스마스 장식들이 맘껏 빛을 반짝이고 있었다. 기분까지 맑아져서 우리는 조금 무리가 되더라도 햇볕도 쐴 겸 이케아까지 트호띠네뜨로 달려보기로 했다.


사람이 없는 한적한 대로를 달리며 정면으로 내리치는 햇살을 맞았다.


찬란한 날이었다.


물론 그곳에는 그 어떤 꿈같은 것들이 없었다. 다만 짙은 현실 같은 색들도 잠시나마 자취를 감추었다. 적당히 눈이 먼 내가 줄이지 못한 가속 위에 아슬하게 누워있었다.


돌이켜보면 무엇 못지않게 찬란한 날들이었다. 특별한 일, 특별하지 못한 일 모두를 덮는 나와 엠마의 모습이 그러했다. 자잘한 일들과 우스개 소리들이 우리 안의 상자를 가득 채울지라도 우리는 분명 찬란한 빛 아래에 있었다.


크리스마스는 이곳에서 명절과 같아서 이케아에는 할머니와 함께 온 아이들이 유독 많았다. 아이들은 할머니 앞에서 형과 싸우고 형은 할머니의 눈치를 보고, 동생은 겁도 없이 덤비다가 한 바퀴 둘러보고 온 아빠에게 혼이 났다. 아이들은 정신없이 공간에 발자국을 찍어대다가 문득 멈춰 엄마를 찾다 울었다.


조아유 노엘. 그 어떤 것들보다 더 커다란 사람이라는 모양들. 다른 듯하다 같아지는 냄새들.


돌아와 우리는 맛있는 음식을 손수 만들어 먹고, 작은 트리 앞에서 춤을 췄다. 일초에 한 발씩 한 발씩 의미 없이 옮기는 그 모든 발자국을 서로가 느껴가면서.


그리고 또 일주일을 우리는 조용한 우리의 삶으로 결제를 했다. 연말이라 값이 더 비쌀 듯했지만.. 뭐 달리 필요한 것도 없으니까.


안으로는 소란했던 2019년의 마지막을 어떻게 보낼까?


마지막 날 오후까지도 고민을 했다. 이날만큼은 유명한 개선문의 새해맞이 행사를 보러 가자고 엠마에게 말을 건넸고 만약을 대비해서 여러 생각들도 미리 해뒀지만 선뜻 신이 나 움직이질 못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새해맞이 불꽃이라 보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잦은 소란들, 소매치기들, 음주사고, 테러, 무엇보다도 여전히 죽어있는 대중교통들, 그러한 일들로 괜히 새해의 시작을 망치게 되는 건 아닐지 둘이라서 더 걱정이 많았다.


엠마보다 먼저 일어나서 씻기까지 다 해놓고서 여전히 망설이고 있는 나를 보며 엠마는 말없이 외출 준비를 했다. 내가 가고 싶어 하는 것을 잘 알기에.


“모르겠다. 그냥 가자.”


그녀가 화장까지 다 마쳤을 때 난 의미 없는 결심을 했고 그녀는 웃었다.


밖으로 나가 드물게 오는 버스를 기다렸다. 크리스마스에는 가족들이 많이 보였다면 이날은 여러 나이대의 커플들의 모습이 많이 보였다. 어린 커플, 우리 같은 해외에서 온 커플들, 그리고 나이가 지긋하신 커플들 또한 여기저기에서 모여들었다.


이미 가득 찬 버스에 간신히 올라 Porte d’Italie까지 이런저런 어깨에 기대며 갔다. 버스 안의 공기는 사람 무게와 관계없이 천장까지 올라 붙어 있었다.


트호띠네뜨를 달려 1호선과 힘께 유이하게 정상 운영을 하고 있던 14호선에 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설레어하고 있었다.


새로 시작된다는 거짓말. 그 거짓말의 마력에 다른 기꺼이 취하고 있었다.


사람들을 따라 샤틀레 역에서 1호선으로 갈아탔지만 개선문을 둘러싼 대부분의 역들, 뛸르히부터 샤를 드골 에뚜알까지가 새해맞이 행사를 이유로 폐쇄되어 있었다. 할 수 없이 우리는 다시 샤틀레 역으로 돌아가 14호선을 타고 마들렌 역으로 갔다.


콩코흐드 광장은 이미 비워져 있었다. 콩코흐드 광장 너머로 붉은 옷을 입은 에펠탑이 하얀 검을 휘두르고 있었고 둘씩 서너 명씩 짝을 지은 사람들이 끝없이 샹젤리제 거리로 향하고 있었다.


우리는 사람들을 가르며 최대한 갈 수 있는 곳까지 트호띠네뜨로 달렸다. 개선문을 한참 못 간 샹젤리제 거리의 시작 지점부터 이미 거리 모든 곳을 폐쇄하고 짐 검사를 거친 사람들만 입장을 시키고 있었다. 트호띠네뜨와 카메라를 위한 모노포드까지 들고 있어 짐 검사를 통과하지 못할까 걱정이 되었다. 다행히 학생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동양인 커플에게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지 별다른 제지 없이 우리를 안으로 들여보내 주었다.


https://youtu.be/SnR_mluI0VM


개선문 앞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했다. 우리는 곳곳에 자리 잡는 사람들을 지나 라보에띠 거리가 샹젤리제 거리와 교차하는 곳까지 가서 자리를 잡았다. 아직은 시간이 있어 개선문 아래에서는 어느 가수의 축하무대가 펼쳐지고 있었다. 가수의 무대가 끝이 나자 개선문 위로 영상쇼가 펼쳐졌다. 파리의 한 해를 담은 애니메이션이 클래식한 노래들과 함께 이어졌고 거리에는 사진을 찍는 사람들과 통화를 하는 사람들,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사람들과 추위를 지우려 서로 꼬옥 껴안고 있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우리도 익히 아는 샹송인 ‘오 샹젤리제’ 가 울려 퍼지자 거리의 모든 사람들이 노래의 후렴 부분을 따라 불렀다.


“오 상젤리제. 오 샹젤리제.”


노래가 흥겨운 합창으로 끝이 나자 본격적으로 카운트다운을 위한 영상이 시작되었고 흥미를 돋우는 작은 폭죽들이 간간히 하늘을 밝혔다.


시계도 확인할 여유도 없이 개선문을 찍고 있는데 개선문 위로 불현듯 9개의 숫자가 떠올랐다. 사람들이 소리를 질렀다. 그리곤 하나씩 밝혀졌다 꺼지는 숫자들.


“세트, 시스, 성끄, 까뜨흐, 트후아, 두, 앙.”


개선문 위에 2020이라는 숫자가 떠오르자 작은 빛가루들이 날아 올라 검은 하늘을 온통 노랗게 물들였다.


“Bonne, Année!”


수없이 들려왔고 우리도 수없이 외쳤다.


새로 시작한다는 거짓말을 나에게 들려주고 그녀에게도 들려주고 이름 모를 여러 머리색의 사람들에게도 들려주었다.


마침내 하얀 불꽃들이 쫓기듯 터져 나오며 커다란 개선문을 완전히 지워버렸다. 명암이 없이 빛나기만 하는 짧은 순간 속에 우리 모두가 있었다.


불꽃이 못 이겨 연기 속으로 숨고 사람들의 탄성은 아쉬움의 어미를 길게 그렸다. 곧 연기가 흩어지고 개선문이 다시 자리 잡자 사람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쳤다.


서둘러 돌아가는 사람들. 플라스틱 통에 숨겨온 샴페인을 꺼내 나눠주는 사람들. 모여서 소리를 지르는 젊은이들. 춤을 추는 사람들.


돌이켜 보면 찬란한 날들이었다. 불꽃이 사라지고 연기가 가득한 거리도 늦은 시간에 겨우 일어나 목이 메게 먹던 빵들도 첫날부터 비가 내린 검게 빛나는 집 앞의 도로 아스팔트도 모두 모두.


나는 작은 나무라 먼 곳까지 보여줄 모습은 없지만 나 또한 가득한 태양 아래에 있다. 작년에 나는 그 어느 방향으로도 조용했고 올해도 나는 아무런 모습도 내보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것은 내가 애초에 아주 작은 아이였기 때문일 터.


하지만 나 또한 분명 찬란한 태양 아래에 있다. 성실하게 우리의 코앞까지 와주는 태양.


우리의 키만 한 공간에는 지금 가장 밝은 낮이 펼쳐져 있다. 그러니 걱정 말고 움직일 수 있는 만큼 갈 수 있는 만큼 움직이고 가 보아야지.


오늘 마트를 가려고 했는데 밤을 새 버려 그만 못 가고 말았다. 우리가 마트를 가기로 했던 그 시간 마트 주차장에서는 공원에서 세 명을 칼로 찔러 한 명을 죽인 누군가가 경찰의 총격에 죽었다.


구름은 언제든 태양을 가린다. 구름은 태양보다는 우리에게 더 가까이 있으니까.


지나고 보면 기적 같은 맑은 날들을 당신의 귀에 일깨워준다.


날이 좋아.


그렇다면 우리는 걷는다. 보이지 않아도 우리는 매일같이 그렇게 걷는다.


글 이미지 레오.


2020.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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