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하지만 정말 바보 같은 이유이지
나의 연기 연습 혹은 극작 연습은 뜻밖의 계기로 시작되었다. 어린 시절, 거실과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던 나의 방에는 거실의 텔레비전 소리가 늘 벽을 타고 흘러들어왔다. 나의 아버지는 선생님이셨다. 9시가 되면 꼭 뉴스 앞에 앉으시곤 늘 스포츠 뉴스가 채 끝나기도 전에 나에게 취침을 명령하셨다. 하지만 사춘기의 소년이 그 시간에 잠이 들 리가 있나..
나는 어쩔 수 없이 몸만 침대에 누이고는 거실에서 흘러들어오는 텔레비전 소리를 들었다. 그 시간이면 극장이 흔치 않던 시절 최고의 엔터테인먼트인 각 방송국의 미니시리즈가 하던 시간이었다. 나는 눈을 감고 벽을 타고 들려오는 배우들의 대사에 집중하며 내 나름대로 드라마를 즐겼다. 그런데 벽은 또 벽인지라 그를 거쳐 온 소리들이 늘 정확하지는 않았다. 가끔씩은 밥알을 가득 입에 넣고 말하는 듯 웅웅 거리기만 했고, 소리 자체가 미약하여 상황이 제대로 구별이 안될 때도 많았다. 하지만 난 너무나 심심했기에 그 모호함 들을 기꺼이 나의 상상으로 메우며 끝까지 드라마를 즐겼다.
그러나 드라마는 한 시간이면 끝이 나고 그럼 아버지도 어머니도 더는 텔레비전을 켜 두시지 않는다. 온 집안이 침묵에 빠졌는데 내 눈은 여전히 멀뚱멀뚱. 나는 빈 천장만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뭐라도 들려오면 좋겠는데..
뭐라도 보이면 참 좋겠는데.. 빈천장에다 빈손으로 든 리모컨을 빈손가락으로 누르다가 그래 까짓 껏 내가 한번 만들어보자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하여 나는 흰 천장 위에다 어떤 이야기들의 처음부터를 나 스스로 그려보기 시작했다. 대단한 사랑을 하고 비극적인 이별을 했다. 많이 죽였고 또 나 또한 많이 죽었다.
상상하는 일이 익숙해지자 점점 나의 발명에 나 스스로가 몰입을 하게 되었고 그러던 어느 날은 멈출 수 없을 만큼의 눈물을 흘리다가 지쳐서야 잠이 들었다. 다음 날, 눈물 자국이 깊게 벤 베개를 보면서 나는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더는 내가 못생긴 대구의 평범한 한 중학생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특별했고 아름다웠다. 오늘은 아닐지 몰라도 어젯밤엔 분명히.
나는 곧 창작만큼 몰입하는 일에 중독이 되고 말았다. 근데 이상한 것이 어제와 같은 것을 상상해도 오늘은 도무지 눈물 한 방울이 안 날 때가 있었다. 익숙해진 장면에 나의 뇌가 전혀 자극을 받지 못한 것이었다. 허나 나는 순간의 특별함에 제대로 취해 있었기에 포기할 수가 없었다. 계속되는 메마른 밤들에 나는 강한 오기가 생겼다.
이야기에 조금씩의 변형을 가해 보기도 했고, 사건을 좀 더 앞에서 시작해 보기도 했다. 나의 말들에 집중하기보다는 상대방을 더욱 자주 보았고 그러다 보니 어제 못 봤던 것들이 그의 측면이나 등 뒤 혹은 아주 작은 사소함들이나 숨기려 애쓰는 것들이 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정말이지 그의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 어제는 그의 말이 나의 가슴을 찔렀었다. 하지만 오늘의 나는 그의 말을 이미 예상하고 있다. 그렇다면 내가 못 견디게 슬플 리가 없다. 나는 끈기 있게 그 장면을 붙잡았다. 아, 이별을 말하고 있는 그의 손이 보인다. 반지를 미처 빼지도 못한 그가 손을 잔뜩 오므려 반지를 숨기고 있구나..
나는 매일이 슬펐다. 나는 매일을 울었다.
연기를 왜 하는지 배우를 왜 하고 싶어 했는지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때에 맞춰 대답을 달리 했다. 허나. 사실 나는 우는 게 좋아서 연기를 시작했다. 내가 슬퍼 특별하고 내가 헌신해서 아름다웠던 그 시절 그 밤의 상상 속의 나를 만나고 싶어서 연기를 택했다.
순수하지만 정말 바보 같은 이유이지.
나는 여전히 못난 아마추어 배우이자 아마추어 작가이다.
이제는 분명 다른 이유들도 오염처럼 섞이기는 했겠지만 여전히 그때의 그 바보 같은 이유가 가장 크구나 싶다.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고 억지로 시키거나 기꺼이 권하지도 않았다. 간절하여 스스로 신을 배우던 피박 받던 조선의 민중들처럼 그 시절의 나 또한 순수하게 간절했다. 그런 나를 기억하고 있는 한 나 스스로가 나서서 이 일을 버리거나 부수거나 할 수가 없다.
대단한 성공이 아니라 그저 바라는 것은 뛰고 놀 조그만 이야기 그거 하나이잖아.
그러니 비싼 삶은 어떻게든 갚아가면서 덜 자란 내 안의 아이에게 작은 공하나는 계속 던져주며 살자.
물론 그래도 되는 걸까 싶은 날들이 있다..
내가 울면 어느새 네가 와 나를 달래어 주지
그렇게 너는 너의 상처보다 훨씬 큰 사람이 되었구나
내가 자꾸만 울어도
잘한다고 얘기해줄 수 있는 커다란 너
글 레오.
이미지 영화 '아스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