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단칸방에 세 가족이 함께 살던 넉넉하지 않던 시절 부모님은 나에게 EBS과외를 녹화해서 공부하라며 비디오플레이어를 사주었다.
부모님의 기대와 달리 중고등학교 방학 내 나는 친구들과 함께 인디애나 존스, 구니스, 그렘린 등 다른 친구들보다 엄청나게 많은 비디오를 볼 수 있었다. 덕분에 나는 다양한 해외 문화와 크리에이티브를 접할 수 있었다.
2.
불우이웃 돕기 성금 1000원도 부담을 느끼던 살림일 때도 아들이 컴퓨터를 공부하고 싶다니까 내 손을 붙잡고 용산에서 Apple2 컴퓨터를 사주셨다.
나는 그 컴퓨터로 Basci 코딩을 연습하고, 플로피디스크에 1000원에 카피해 온 로드러너, Ultima, ACDC 등 다양한 게임을 즐길 수 있었다. 덕분에 나는 IT 서비스를 만드는 개념의 이해와 개발자와 소통을 상대적으로 용이하게 할 수 있었다.
3.
대학교 시절, 부모님은 그간 운영하던 식당이 체력에 부담이 된다며 영등포에 만화가게를 여셨다.
주말이나 방학이면, 나는 가게 일을 도와야 했다. 철이 덜 들어 다른 친구들은 놀 때 가게 일을 돕는 게 불만이 많았다. 그러나 덕분에 만화가게는 대학동기들의 아지트가 되었고, 나는 웬만한 만화책은 다 보면 기발한 시각과 문화를 접할 수 있었다.
4.
금주 초 어머니가 몸이 안 좋다고 하셔서 대학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다. 검사를 받고 갑작스럽게 심장시술이 필요하다고 하며 마음을 졸이며 대기실에 앉아 있는 동안 생각나던 과거다.
어린 시절 부모님께 불평불만이 많았던 아들이었는데, 돌이켜보니 고마운 것만 한가득이다.
5.
다행히 시술은 잘 마쳤고 병실로 이동하셨다. 부모님의 해주신 것을 아직 100분의 1도 못한 것 같기에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