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난 고등학교 시절 수포자였다. 수학공식이 암기가 안되었기 때문이다. 영어 문법 또한 마찬가지였다. 국어시험은 수업만 잘 들어도 늘 90점 이상이었는데 영어점수는 별로였고, 수학은 엉망이었고 역사는 최악이었다.
난 암기에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다.
2.
난 155mm 자주포병이었다. 탱크처럼 생긴 포로... 요즘 K9이란 이름으로 수출되는 포의 초기 모델이었다.
포병은 1~2년에 한 번 정도 사단대회를 하는데 여기에는 실기와 필기가 있다. 여기에 출전할 후보를 뽑기 위해 포대에서 자체 시험을 본다. 옛날 동아전과 2배만 한 두께의 책에서 포의 제원, 포탄별 거리 등에 대해서 문제를 낸다. 암기를 못한 나는 당연히 포기를 했다.
그런데 첫 시간에 문제를 틀리니 연병장 양 끝에 있는 축구 골대를 오리걸음으로 돌고 와야 했다. 양평의 파랗던 하늘이 노랗게 변했다.
3.
그렇게 두 번의 시간이 지나니 몸이 죽을 것 같아서 아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에 미친 듯이 책을 외우기 시작했다. 물건에 비유해서 외우기도 하고, 앞글자를 따서 단어를 만들어서 외우고 안되면 그냥 외웠다.
그렇게 하니 차츰차츰 골대를 오리걸음으로 도는 무리에서 벗어나 휴식을 즐길 수 있었다.
4.
그렇게 열심히 하니 사단대회에 출전 멤버로도 선발이 되고, 다행히 양호한 성적을 거둬 포상휴가까지 다녀올 수 있었다.
그때 깨달았다. 난 암기를 못하는 게 아니라 노력을 안 했던 거라고...
5.
제대 후 복학생이 되어 취업 준비를 하는데 갑자기 IMF가 왔다. 취업이 어려운 상황에서 나는 편입을 결심하게 된다.
다행히 편입 때 문과생은 영어를 중심으로 국어 또는 논술을 봤다. 영어 문법을 암기를 하는데 암기요령이 생겨 고등학교 때와는 달리 쉽게 머리에 들어왔다. 공부를 하는 요령도 생겼다.
6.
1년 뒤 나는 나에게는 과분하다고 생각되는 대학의 3학년에 편입을 하게 되었다.
7.
군대 다시 가라면 못 갈 곳이지만, 한 편으로 나에겐 나의 숨은 능력을 알게 해 준 고마운 곳이다.
8.
오랜만의 옛날 사진을 보니... 동기들이 그립다.
암기보다 추억이 더 오래 기억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