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반이다

(총 맞은 그날 이후, 기-4)

by 뷰리플기러기

암 선고를 받았다는 사실을 여동생 말고 아직 가족들에게 말하지 않았다. 사실 진단을 받고 오늘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떤 일이든 처음 겪는 상황은 대처가 어렵다. 치료받아야 할 병원을 알아보는 것? 내가 걸린 병과 관련된 인터넷 탐색?


일단은 주말이니 내 걱정과 계획도 조금 쉬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20년 월급쟁이라는 직업병 때문일까. 현실 부정일지도 모른다. 사실은 할 수 있는 것도 아직은 없고.


진단일 다음날, 일요일.

나: "경주 갈래?"

여동생: "그래~"


심란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왜 하필 경주 불국사가 생각났을까.

점심 즈음 경주에 도착하는 KTX를 끊었다. 불국사는 경주역에 내려서 버스로 한 시간 거리.

4월 초의 경주는 그야말로 벚꽃 천지다.


내가 마지막으로 간 경주는 친구들과 황사 가득한 날 자전거 여행을 했던 봄의 계절이었고, 석가탑을 해체해 놨던 시기였고, 올라오는 차 안에서 복면가왕 음악대장의 "일상으로의 초대"를 들으며 7연승의 기쁨을 느꼈던 해였다.

가족들과 간 경주는 지금 고3인 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 무렵인가, 그때도 가족끼리 즉흥으로 떠난, 벚꽃이 만개한 계절이었다. 비가 와도 아름다운 날이었다.


불국사로 향하는 버스 창문은 그야말로 액자였다. 연이어 찍히는 풍경은 왕릉과 푸른 논밭과 이름 모를 박물관 어디에서든 벚꽃이 흩날리는 사진 전시의 연속이었다.

불국사 입구에서 내려 점심을 먹었다. 산채비빔밥과 된장찌개가 완벽했다. 초입은 온통 벚나무 천지다. 기억 속의 황홀한 그 장소, 이 기억이 봄날의 발걸음을 이곳으로 향하게 한다.


다보탑과 석가탑의 아름다움과 조화를 느끼며 대웅전으로 들어섰다. 삼배를 올렸다. 나는 보통 삼배를 할 때 소원을 빌지 않는다. 부처님 법을 알게 된 것을 감사드린다며 그분 앞에서 대인인 척을 할 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몸이 아프니 구복 신앙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부처님께 비나이다 비나이다를 연신 되뇌었다. 대웅전을 나와서는 좋은 말은 다 가져다 적은, 연등 하나를 올렸다. 석가탄신일이 얼마 남지 않아 대웅전 사방으로 세상 사람들의 온갖 소원이 걸려있다.


내려오는 길에 불국사 안에 있는 찻집을 들렀다. 세작차를 마시며 잠시 숨을 골랐다. 차를 마시고 있는데, 옆에 계신 분들의 대화가 들렸다.

"어머, 나 대웅전 안에 가방 놓고 왔네. 루이비통인데…."

"아이쿠, 빨리 가봐"

얘기를 듣는 뒤에서 동생이랑 둘이 빵 터졌다.

"루이비통 있으려나", "있을 것 같은데…."

한 십여 분 뒤, 그 여자분이 루이비통 가방을 들고 환하게 웃으며 일행분들에게 다가오신다.

역시 우리나라 좋은 나라, 아니면 부처님의 자비인가.



불국사를 나와 황리단길에서 내려 좀 걷기로 했다. 거대한 왕릉 사이로 노을이 내려앉는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경주는 언제 와도 고즈넉하고 차분한 느낌이다. 많은 사람이 있어도 그런 느낌이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도 걷는 동안 갈 방향이 정해지거니 신호등이 바뀌려고 하는 여러 순간에 내 걸음이 빨라졌다. 그때마다 동생이 한 마디씩 한다.


"언니, 뛰지 마, 건강하게 살려면 앞으로 양반처럼 산다 생각해.

급해도 천천히, 릴랙스 하면서."

그래, 맞다. 앞으로 내 삶의 속도는 줄어들어야 한다. 양반의 걸음처럼. 슬기로운 투병생활을 위한 의사 양반의 처방이다.


황리단길에 있는 족욕 카페에서 족욕하며 차를 마시고 고단한 두 다리를 풀어줬다. 가마를 타고 다닐 다리를 혹사시켰으니 이 정도는 나에게 베풀어줘야겠다.

급하게 당일 번개로 출발한 여행이라 올라가는 KTX는 거의 만석이었다. 각자 다른 열차로 갈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수시로 새로고침 하며 특실 한자리, 일반실 한자리 포획에 성공했다.


"언니가 환자니깐 특실에서 편하게 가"

그렇구나. 나는 환자다.

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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