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도생

(총 맞은 그 날 이후, 기-3)

by 뷰리플기러기

일주일이 흘러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가는 날이다. 검사 때처럼 혼자 갈 생각이었는데, 뜻밖에 직장 친구 두 명이 차를 가지고 동행해주었다. ‘걱정하지 마, 암 아니야. 진료 끝나고 맛있는 거나 먹자!’라며 소원 같은 주문을 말해준다.


“오른쪽은 음성인데, 왼쪽은 암입니다.”

묵직한 말씀 뒤에 반응할 말을 찾지 못했다.

“자세한 건 MRI를 찍어봐야 알 수 있지만, 초기는 아닙니다. 그렇다고 심각하게 미리 걱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초기가 아니란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지, 심각하게 걱정하지 말라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지, 모호하다.

다른 검사들을 그 병원에서 이어나갈지, 상급병원을 알아봐야 할지 많은 생각과 함께 병원을 나왔다. 나서는 발걸음은 종종대는데, 생각은 선고를 받은 그 방에 오래도록 머물러있다. 세 친구의 당혹감은 긴 침묵으로 새어 나왔다. 몇 분이 지났을까, 몇 시간이 지났을까.

“배고프다.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뭐 먹지?”

예상치 못한 비보 뒤에 나온 것은 실의의 눈물이 아니었다. 살고자 먹을 것을 탐색하는 원초적인 허기였다. 나의 생존본능인지 그 암이란 녀석의 생존본능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날의 메뉴 선택권은 나에게 주어졌다. 예전 같으면 입이 호강하는 단짠단짠의 음식을 골랐을 텐데 이제는 몸이 호강할 음식이 먼저 떠오른다. 삼십 분 거리의 쌈밥집으로 이동했다. 4인 테이블에 빈틈없이 놓인 제철 반찬들과 푸릇한 쌈 채소들, 적절하게 식욕을 돋우는 붉은 색의 제육볶음까지 12첩 반상을 능가했다. 암 선고를 받은 충격은 배고픔에 잠시 힘을 잃었다.


숟가락을 뜨려는 찰나, 먹을 의욕이 없어 보이던 친구 한 명이 입을 뗀다.

“나 사실…. 고백할 거 있어. 너 혹시라도 암이라고 진단받고 충격으로 밥맛없다고 하면 점심 거르게 될까 봐 아침 잔뜩 먹고 왔어….”

그 친구가 숟가락을 들지 못한 것은 내 아픔 때문이 아니었다. 본인의 배가 불러서였다니. 이 타이밍에 순수한 자백 같은 고백은 웬 말인가. 그 순간, 왜 그리 웃음이 나던지.

“우리 나이에 당 떨어지는 것도 암 만큼이나 무섭지. 잘했네, 잘했어, 역시. 내 친구 현명해.”

속에서는 시커먼 암세포가 웅크리고 있다는데 겉으론 티를 안 내려고 하는 친구의 관대함에 셋 다 웃음이 터졌다.


이 당당한 고백과 분위기에 동기부여가 되었는지 다른 친구도 갑자기 과거사 하나를 커밍아웃한다.

“나 남편이랑 연애할 때 저 옆 굴밥집에서 밥 먹고 우리 아들 생겼잖아. 그 밥만 안 먹었어도 지금 누구랑 살고 있을지 모를 일이네. 하하”

서로의 굵직한 대소사를 함께하며 해치운 수백 그릇 굴밥의 시간이 무색하다. 이제 와 뜬금없이 초등학생 아들 녀석을 잉태한 순간의 고백이라니. 이것은 또 무슨 시의적절치 않은 고해성사란 말인가.

“뭔 소리야, 그때 아들 안 생겼으면 사십 대 노처녀다, 하하”

깐족거리는 맞대응으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나의 암밍아웃보다 쇼킹한 친구들의 고백이다.


“너 지금 앞이 캄캄할 텐데, 이런 시답지 않은 얘기나 하고 우리가 정말 미안하다.”

“야, 같이 심각해지고 울어주는 것보다 훨씬 낫다. 내친김에 숨겨둔 거 빨리 다 털어놔.”

진심이었다. 위로의 말을 나누며 함께 심각해지는 것보다는 어떤 상황이 닥칠지 몰라 본인의 배를 채우고 오는 행동, 공기의 무게감 따위 상관없이 내 지르는 친구의 수다가 더 위안이 되었다. 그 웃는 시간만큼은 앞으로 닥칠 공격으로부터 내 몸의 빗장을 채워주었다. 어제와 다름없는 일상을 사는 느낌이 들어 위로되었다. 오늘 새롭게 맞이하게 된 암 투병, 시간이 좀 걸려도 풀어낼 숙제로 받아들인다. 어차피 각자 풀어내야 할 삶 아닌가.


벚꽃 찬란한 4월 5일이었다.

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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