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에 하나

(총 맞은 그날 이후, 기-2)

by 뷰리플기러기

마흔여섯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면….


마흔여섯 해를 살았지만, 남들보다 바쁘고 하고 싶은 것들을 많이 하며 살았다고 생각했기에 내 인생은 남들의 인생에 1.5를 곱해줄 수 있겠다 생각했다. 그 생각이 위안이 되는지 아쉬움과 미련이 크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남겨질 아들, 엄마, 동생들이 나를 그리워하겠지. 잠깐이겠지만, 그것이 짧은 슬픔으로 다가왔다. 아직 엄마와 아들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일단 미루고 있다.


그 후 결과를 기다리는 일주일 동안 나의 모습은 정체성이 없다. 인생을 삼 개월 남긴 사람이 되었다가 삼십 년을 남긴 사람이 되었다가 한다. 법륜스님의 불교대학을 다니며 공부한 것이 꽤 도움이 되었다. 내일 죽는다면 오늘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도반들과 나누는 자리가 있었다. 우리 과정의 네다섯 명은 오늘도 어제처럼 여여하게 보내며 가족들과 맛있는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며 감사의 마음을 표현한다는 것이 주였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인생 마지막을 하루를 남기든, 한 달을 남기든 삼십 년을 남기든 어제처럼, 오늘처럼 보내는 것이 답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중 한 도반이 어떤 만화 캐릭터처럼 “저 퇴근합니다 아니고 저 이승 떠납니다~. 안녕히 계세요~!” 쾌활하게 인사하겠다고 했던 것이 생각나 웃음이 났다. 어느샌가 나 역시 그런 말을 되새기고 있었다.


일주일의 일과가 꽤 단순해졌다. 출근하고 주어진 일을 하고, 친구와 수다를 떨고, 퇴근하고, 고3 아이를 픽업해 주는 단순한 일과였다. 나를 찾는 번개 모임이나 저녁 자리는 일단은 사양이다. 자주 퉁퉁거리게 되는 엄마에게도 부드러운 태도가 새어 나오는 일주일이었다. 업무를 하며 갈등이나 타인을 이해 못 하는 상황에서도 여유가 생겼다. 그게 뭔 대수라고. 일주일 사이 나의 가장 많은 마음을 차지하는 생각이었다. 그동안 왜 그렇게 종종대며 번잡하게 살았나. 내 가슴에 총은 의사 선생님이 아니라 내가 쏘았던 것일까.


3월의 마지막 일주일은 벚꽃이 만개한 시기였다. 늘 항상 먼 곳으로 벚꽃 구경을 하러 갔었다. 이번에는 동네 천변으로 5분 거리에 사는 동생과 함께 벚꽃 산책을 위해 자주 나섰다.

“뭐가 제일 하고 싶어?”

동생이 물었다. 생각해보면 그동안 하고 싶은 것은 하면서 살아서 그렇게 아쉬운 것이 없다. 다만 이제부터 글을 본격적으로 써보자 다짐했는데 15년째 다짐만 하고 있다. 작년에 한두 편씩 쓰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제일 아쉽다. 혼자 보내야 하는 시간이 많아진다면 글을 쓰는 본격적인 시간이 될까.


내 시간 소비의 우선순위는 어떻게 바뀔지.

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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