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제2외국어도 다양하다. 1980년에 고교를 졸업한 우리는 이과반 일곱 개 반은 독일어를 문과반 3개 반은 일본어를 배웠다.
일본어 선생님은 여자 선생님이라 우리 이과반도 일본어 신청하고 일본어 신청한 학생끼리 반을 해주세요라고 해도 학교는 안 되었다.
나이 육십이 넘어도 기억되는 것은 주민등록번호, 군번, 자동차 번호, 구구단, 그리고 독일어 성별표시 전치사다.
Der Des Dem Den
Die Der Der Die
Das Des Dem Das
Die Der Den Die
정말 입학하여 첫 독일어 시간에 움라우트와 이거를 설명하신 독일어 선생님이 생각난다.
지금은 독일이 여러분과 멀리 있는 나라지만 30년 후 여러분이 이나라 중추적인 일을 할 때쯤이면 유럽이고 아프리카고 중동 어디든 서울에서 그들을 볼 수 있고 여러분들도 세계로 업무로 돈 벌러 또는 여행을 가는 날이 올 것입니다.
의무감으로 점수를 따기 위한 공부는 얼마 못 간다. 독일어 시험 반평균 30이 나와도 교장 교감에게 나 혼자 혼날 것이니 점수 걱정하지 말고 30년 후에 서울 한복판에서 독일 사람에게 경복궁 광화문 길 안내해 주듯 독일어 공부를 해보라고 하셨다.
정말 그 시절 모든 것이 점수로 계량화되고 학교우열이 평가되는 시기에 참스승이었다.
세월이 흘러 나이 육십이 넘었다 젊은 시절 독일에 특파원, 주재원을 역임한 친구들이 그때 선생님 말씀을 좀 잘 들었을 걸 후회를 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