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로 등단하여 인세로 살아가는 사람 아닌 작가, 시인, 예비작가, 예비시인들은 11월이 치열한 달이고, 12월이 여유로운 달이다.
신춘문예 마감이 아주 특이하게 봄에 마감하는 곳 아니고는 11월 말에서 12월 첫 주에 마감이다.
참고로 저는 1982년 3 수해서 대학신입생이 되었기에 고교 동창이 같은 과 3학년에 있어서 공적으로 선배님, 단 둘이 있으면 말을 놓으라는 친구의 말에 더 힘든 대학생활을 했다.
차라리 계속 경어를 쓰면 편한데, 정말 딱 둘이 청주를 피해 서울 흑석동 안동장에서 탕수육에 연태고량주 마시는 날은 취하기 전에는 반말인데, 취하면 선배님 그게 아니고요~했다. 다시 청주로 내려가면 맑은 정신에 선배 대우했고, 그는 정말 부탁인데, 안동장 가면 말 놓으라고 했다.
그 시절은 커닝을 막는다고 우리 3학년 절반을 1학년으로 보내고 1학년 그반 절반이 2학년 교실에서 시험을 봤다. 우리 3학년은 수학 1학년은 한문이었다. 할아버지가 조선의 마지막 훈장이라 한문은 중고등학교 처음부터 끝까지 100점인데, 수학을 다 풀고 일어서는데, 1학년 짝이 한문 4문제 답을 못쓰고 있기에 지우개를 칼로 4등분 나누어 그 4문제 답에 올려주고 나왔다. 후배는 거의 불립문자, 염화시중 수준으로 지우개가 놓인 번호로 답을 써서 600명 중에 한문 100점 3인 중 한 명이 되었다. 선배님, 감사하다고 학교 매점에서 빵과 우유를 대접받았다. 그걸로 끝이었고, 그 후배 이름도 얼굴도 잊고 살았다.
이거 3 수해서 대학 간 주제에 ROTC를 하니 소위 임관한 선배가 고교 동창, 4학년 우리 표현으로 2년 차가 1년 후배, 동기들은 2년 후배 내가 한문 4문제 쩔쩔 메는 것을 지우개로 선배 찬스 보낸 기수앴다.
훈련 다 마치고, 보병학교 마치고, 사단 연대, 대대에 동기 5명이 갔다.
거기서 어디서 맞이 본 얼굴 같은 동기가 나를 대대장실 뒤로 데리고 갔다. 중대부고 나오셨죠? 동기면 중대부고 나왔지? 또는 냬왔니?로 물어야 하는데, 존댓말을 쓰기에 자세히 보니 한문문제 후배임이 떠올랐다.
다 같이 있으면 동기로 말 놓고, 단둘이 했으면 부고 80, 부고 82로 지냈다.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는데, 작가의 12월은 반 백수로 편하게 지내야 하는데, 내란수괴 윤석열 때문에 내일도 여의도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