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마음 하얀 마음 7

부적을 쓰기까지

by 함문평

오래전에 <재경 횡성향우회> 강림면 임원을 한 적이 있다. 횡성한우축제에 초대되어 본부석에 외빈석에서 행사를 하고 부군수님과 서울서 내려간 향우회원들 식사 자리에서 서울에서 내려온 분들 횡성한우 동네서 많이 사드시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대답을 하니 부군수님이 빙그레 웃으시며 원산지 <한우는 횡성한우 쌀은 이천쌀>에 대해 말씀하셨다.

그 시절은 생산지 표시가 엄격하지 않아서인지 횡성에서 키우고 잡은 한우도 횡성한우 반대로 이천에 있는 논에서 자란 벼를 이천서 도정해도 이천쌀 횡성에서 탈곡한 것도 이천 정미소에서 도정하면 이천쌀 되는데 부군수 입장에서 막을 방법이 없다고 하셔서 참석한 우리는 웃으면서 부군수님과 같이 왔는데 설마 이천서 키우고 횡성서 도살한 소 내놓기야 하겠어요 했다.

서울로 와서 횡성한우라고 쓰여있는 곳에 가봤더니 횡성 부군수님과 먹었던 그 고기 무늬와 색깔이 똑같은 것을 찾을 수 없었다.

구로 시장을 자주 이용하는데 예전에는 온통 국산이라고 팔던 것을 중국산이라고 표시하는 것을 보고 상인들이 많이 변했구나 느꼈다.

횡성한우가 다른 지역 한우보다 육질이 좋은 이유를 부군수님이 설명했다. 따뜻한 지역은 소가 자라나는 속도가 빨라서 12개월에서 16개월 정도면 도축할 수 있는 400킬로그램을 넘는데 횡성에서 자라는 소는 더디게 커서 20개월이 넘어야 된다고 했다.


그래서 도살 후 고기의 맛이 다른 지역 쇠고기는 푸석푸석한데 횡성한우는 쫀득함이 있다고 했다. 횡성의 연평균 기온이 전라도나 경상도 소를 대량 기우는 동네보다 낮은 것이 전화위복이 된 셈이었다.


우리들 인생살이도 역경이라면 역경 고생이라면 고생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극복하냐에 따라 전화위복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10년 전에 나는 대퇴부 골절을 당해 시화병원 중환자실에 있었다. 한쪽은 피부머니 한쪽은 오줌주머니를 차고 대변은 간병인이 받아서 처리했다.


이런 추한꼴로 세상을 사느니 죽어버리겠다고 시화병원 8층 복도를 정찰했다. 어디에서 뛰어내릴까 장소를 물색하느라 화장실과 복도를 천천히 돌아다니다 수술을 담당한 김청야 과장을 만났다.


함문평 환자님 거기서 뭐 하는 거예요. 혹시 뛰어내릴 장소 찾는 거면 포기하세요. 나에게 수술받고 뛰어내릴 생각한 환자 10년 전 5년 전에도 있었는데 다들 잘 살고 있으니 함문평 환자도 뼈만 붙으면 정상생활인 될 겁니다라고 했다.


창문을 열면 모든 창이 쇠창살이 또 있어서 뛰어내릴 것을 포기했다. 거기는 수술하는 병원이라 일정기간 지나자 나의 주소지 근처 정형외과로 이송이 되었다.


여기서 물리치료를 받고 걸음걸이 연습하고 고용노동부에서 산재환자 대상 정신과 검사와 상담을 했다.

좌절감에 절어있는 나에게 어린 시절부터 시간의 흐름을 따라 나만의 자서전을 작성했다.


퇴원하여 그동안 쓴 글을 오탈자 수정하고 문맥의 흐름을 춘하추동 변화를 주어 수정한 것을 문학잡지사에 보냈다. 부적이 당선되었다.


병원에서 같은 병실 환자에게 인생 이야기를 들었다. 시골초등학교 전기도 안 들어오고 중학을 가려면 대도시로 나와야 했다. 부모님이 어느 정도 재산이 있어서 서울로 전학을 했다. 서울에서 공부한 그는 대학에 떨어졌고 시골서 공부한 그녀는 대학생이 되었다

3수를 해서 대학 신입생이 되니 그녀는 대학 3학년이고 그가 2학년이 되니 그녀는 졸업반이었다.

속마음은 그녀를 찾아가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고 중매로 결혼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담은 것이 소설 <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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