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마음 하얀 마음 8
잊지 못할 영어 선생님
국어와 수학은 1반부터 8반까지 누구에게도 안 밀렸는데 영어가 발목을 잡았다. 제목이 잊지 못할 영어 선생님이라고 제목만 믿고 훌륭한 선생님 이야기로 넘겨짚으면 큰일 납니다.
그 시절은 지금처럼 일타 강사가 있기는 해도 벌이가 억억 소리 나게 버는 사람이 드물었다. 공통수학은 이길동 성문종합영어는 최사정 국어는 박종호 오민섭 등이 종로통 학원가에서 이름을 날렸다.
특히 최사정은 깡패학교 중동고를 나오고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했으나 외무고시 두 번 떨어지고 학원 영어 강사가 되었고 흑석동 고등학교 나의 영어 선생은 최사정과 중동고 고려대 정외과 동기라 요즘 말로 절친이었다. 최사정에게 영어를 배우면 친구인 우리 윤기권 선생 출제 유사성이 있을까 해서 배웠는데 꽝이었다.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는데 나쁜 영어 선생은 중학 영어 선생 C였다. C선생은 학교 영어 선생이면서 집에서는 과외를 했다. 그에게 과외를 받는 학생은 어쩌다 맞을 일이 있어도 약하게 맞았다. 그에 비하면 지금까지도 내가 소식을 주고받는 사회 선생님은 잘 사는 집 학생이나 못 사는 집 학생이나 매의 강도 소리가 균등했다. 그래서 우리 학생들은 별명을 매의 평등이라고 애칭을 불렀다. 매의 평등은 수학 귄 선생님과 두 분뿐이었다.
첫 수업 시간에 숙제가 첫 단원 단어 20개를 알려주고 시험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냥 20개 부르고 한 개 당 10대씩 맞았다.
첫 시간에 한글과 영어 차이점 알파벳 있지만 그건 글자고 발음과 다르다 뭐 그런 기초를 알려주지 않아서 향찰식 영어를 구사했다.
하이 하면 high로 써야 하는데 난 hai로 썼다. 궁하면 good로 써야 하는데 gud로 썼다. 내가 중1영어 선생이라면 이런 학생에게 한글은 소리가 곧 글자지만 영어는 달라서 괴로워도 책에 나은 대로 외워 한마디만 했으면 첫 시험 20개 중에 3개 맞고 17개 틀려 170대를 맞았다.
S중학교는 검도부가 전국체전 수없이 우승한 학교라 선생님들 회초리는 죽도 망가진 대나무라 엄청 아팠다.
다리에 멍이 들어 학교에 오신다는 할아버지를 제가 공부 안 해 그런 것이라고 겨우 말렸다.
더 심한 것은 숙제가 영어로 일기 쓰기였다.
아니 한글 일기도 방학 내내 처박아두다 개학 직전에 몰아 쓰는데 여름방학 일기를 중1이 쓰면 얼마나 쓸까 했는데 영어 잘하는 학생은 썼다.
나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과정에 대한 예비 학습 없이 입학을 했는데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영어 수학은 이미 1학년 과정 절반은 선행학습을 하고 입학한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니 선행학습한 친구들과 없이 입학한 학생들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그 영어 선생님은 나중에 대학 교수가 되었는데 난 하나도 존경 안 했다.
이제는 영어 콤플렉스에서 벗어났다.
잘하는 영어는 아니지만 군대서 매년 실시하는 을지훈련에 연합심리전사령부가 꾸려지고 캠프험프리에서 한국군 장교와 미군 장교가 각 섹션별로 브리핑할 때 서툰 영어지만 발표를 했고 미군 파트너에게 손짓발짓 섞어가면서 영어로 그들의 궁금증을 해소시켰다.
영어 일어 중국어 외국어 공부는 부담이 되지만 일단 단어를 많이 알아야 한다. 불이야 할 때는 Fire 한 단어만 소리 질러도 불이라고 전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