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마음 하얀 마음 8

야구하면 한 야구하지

by 함문평

중학교 고등학교에 야구부가 있었다.

지금은 역사문화공원으로 변한 동대문 야구장에 참 많이 갔다.


야구는 실력도 실력이지만 분위기를 타는 경기라 응원도 중요했다.


중학교가 4강에 올라도 고1고2는 동대문 운동장행 고등학교가 4강이면 중1부터 고3까지 총동원이었다.


그러니 4강에 고등학교만 있는 학교와 중고가 같이 있는 학교는 응원전에서 우리가 한수 위였다.


촌에서 강을 사이에 두고 이쪽과 저쪽 동네 돌팔매질을 하도 많이 해서 던지는 것에는 일가견 있었다.


그 시절은 체력장에 고입시험 점수 20점이 배정되었다. 250그램 수류탄 던지기 50미터가 끝인데 그걸 넘겨버린 것이다.


체육선생님이 놀라서 야구투수감이라고 감독에게 데려갔다.


수류탄이 아닌 야구공을 그냥 외야로 던지게 했다. 수류탄보다는 적게 나갔지만 중학교 투수가 던진 것보다 멀리 나갔다.


체육선생님과 야구감독이 가정방문 와서 함 군은 천부적인 투수 재능이 있다고 야구하게 해 주세요 하는 것을 무슨 소리냐 우리 장손은 경기고 거쳐 서울대 가야 한다고 거절하셨다.


던지기 멀리 던지는 나를 S중학교 투수로 만들지 못한 체육 선생님과 야구 감독은 학교에서 나를 만나면 계속 아쉬운 표정을 지으셨다.


3학년 청룡기 서울시 예선이 우리 학교 야구장에서 하게 되었다. 요즘은 야구장이 많지만 1976년은 공공 야구장이 별로 없어서 서울시 예선은 야구장이 있는 중고교를 돌아가면서 하고 4강 이상만 동대문 야구장으로 갔다.


선린중학과 우리 S 중이 예선을 치르는데 우리 7반 교실이 용마산 일제강점기 때 탄약고로 동굴을 판 곳과 이어지는 다리 바로 옆인데 산 넘어 K여중 학생 2명이 산을 넘어왔다. 우리는 수학 권 선생님 설명은 안 듣고 창너머 여학생을 보고 있었다. 선생님이 창밖을 보는 우리들의 눈이 향하는 곳을 보자 여학생을 발견하고 신생님이 수업을 중단하고 그 여학생을 붙들어 교무실로 데려갔다.


경위서를 받아놓고 산 넘어 여학교로 통보하여 그 학교 선생님 한분이 오셔서 여하생을 인솔해 갔다.


학교에 야구부가 있어서인지 우리는 축구보다는 야구의 축소판 찐뽕이라는 것을 주로 했다. 야구처럼 넓은 공간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야구 글러브나 야구 매트 없이 연식 정구공을 손으로 쳐서 날려 보내면 수비수가 공을 잡아 야구처럼 1루로 보내 주자 보다 공이 먼저 도착하면 주자가 아웃이고 주가가 베이스에 먼저 도착하면 사는 것이었다.


지금도 드라마보다 야구를 많이 본다. 프로야구 선수들 모두 알지는 못해도 S, 중고교 출신 특히 박병호가 있는 팀은 무조건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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