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투를 압수당하고

by 함문평

1986년 3월 4일 육군 소위로 광주 보병학교 초등군사반 입교를 했다.


6중대 4 내무반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온 8도 사나이였다.


8명이 교육 마칠 때까지 사이좋게 지내자고 인사를 했다. 저녁 점호를 마치고 친선도모 한다고 화투를 치다가 순찰도는 구대장에게 적발되어 완전군장 보행을 했다.


다음날은 화투가 없어서 그냥 이런저런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는데 동기생 한 명이 러닝에 들어있는 빳빳한 종이를 모두 제출하라고 했다.


그는 서울대학교 미술과 출신이었다. 나는 빳빳한 종이를 칼로 똑같은 크기로 자르고 48장을 만들어 그에게 주었다.


받아 들자마자 볼펜으로 화투 1부터 12월까지 그림을 그렸다.


우리는 그가 그린 흑백 화투로 6월 수료식까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첫날 화투를 압수당한 내무반이라 구대장들도 우리 내무실은 순찰을 건너뛰어서 행복했다.


그렇게 초등군사반을 이수하고 각자의 명령받은 사단에서 복무하고 단기 복무자들은 1988년 6월 30일 전역을 했다.


나는 장기 복무자라 21년 3개월을 근무하고 중령으로 진급했으며 더 할 수 있었으나 나의 하늘로부터 받은 국가의 록이 여기까지였다.


전역을 하고 이력서를 100여 곳 넣었으나 면접을 오라는 곳은 상조회사 한 곳이었다. 상조 한 계좌 가입시키려고 충무로 안덕영이 일하는 여행사에 갔다.


거기서 1986년 구대장에게 화투를 압수당하고 백지에 화투를 그렸던 이 화백을 만났다. 정말 반가워 그날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셋이서 부어라 마셔라를 했다.


이 자리에서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민청학련이라는 만들어진 간첩을 알고 있으나 문민정부를 지나 국민의 정부 시절에 만들어진 간첩 이야기를 들었다.


안덕영은 중위로 전역해서 모 자동차회사 디자인실에서 자동차 디자인을 3년 하고 더 공부를 하기 위해 일본 스꾸바 대학으로 유학을 갔다.


경제적 사정이 어려워서 민족 장학금을 받았다. 민족장학금 처음 만든 것은 조총련이지만 이후 민단에서 기금을 보태 남한 북한 가리지 말고 조선에서 일본으로 유학온 사림 중에 경제적 도움이 필요한 유학생에게 준다고 정관이 변경된 지가 30년이 넘었다.


그런데 그걸 빌미로 안덕영이 동기들이 근무하는 군부대시설을 촬영해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고 간첩을 만들었다.


21세기에 만들어진 간첩 안덕영이 되었고 그를 간첩으로 만든 안모 김 모 백모 또 한 명 총 4명이 간첩 잡은 유공으로 훈장을 받고 소령에서 중령으로 진급했다. 그중 2명은 대령으로 전역해서 연금 고액으로 받으면서 떵떵거리고 산다.

간첩으로 몰린 안덕영은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받았다. 그러면 국가는 간첩 아닌데 간첩죄로 복역한 안덕영에게 국가에서 보상을 하고 간첩 아닌 놈을 간첩 만든 작자들은 훈장 취소 연금 삭탈해야 국가 기강이 바로 서고 새로운 친일파 막는 거 아닌가. 이게 나라야. 그러니 영원히 일본에 사과 못 받는 거 아니냐고요. 지 나라 국가보안법 적용도 바르게 행사 못하는 나라에 국제법이 뭔 소용이 있을까. 안 그렇소. 공감하면 좋아요 눌러주세요.

화투 일명 동양화
이전 05화천주교 선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