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롱면허증
오랜 군대 생활을 하고 사회에 나오니 정말 처음에는 적응이 안 되었다. 21년 3개월을 운전병이 군용차 운전해 주고, 자가용은 아내가 운전을 했다. 이유는 내가 운전하면 자기가 불안하다고 하고, 딸과 아들을 어떻게 세뇌시켰는지 엄마가 운전하면 편하게 차에서 잘 수 있는데, 아빠가 운전하면 잠이 안 온다고 했다.
원래가 남과 싸움, 경쟁을 싫어했다. 그래서 그렇게 21년 3개 월을 보내고 전역 후 처음 아내 몰래 차 키를 가지고 자가용 운전을 했다. 지하 주차장에서 나와 서울 시내를 나름 아는 길, 대방천로와 여의도를 한 바퀴 돌고 아파트로 들어왔다. 주차를 하다가 지하주차장 그 넓은 곳에서 후진으로 기둥을 받았다. 크산티페에게 주급 얼마를 받는 용돈이라 차 수리비 감당이 안되어 바로 보고했다. 저~ 난데, 지하주차장으로 좀 올래?
왜?
와는 일본 놈을 왜라고 부르고, 주차하다 기둥을 후진으로 받았거든!
뭐야?
바로 핸드폰을 끈 크산티페는 지하주차장으로 오더니 학부모 회의 10시니 대신 참석해? 하고 차를 몰고 카센터로 갔다.
난 학부모 회의에 갔다. 30명 아들반 학부모 회의에 28명이 엄마고 남자는 어떤 할아버지와 나 딱 2명이었다. 안녕하세요? 함종우 아빠 함문평입니다 했더니, 아 예 저는 김종욱 할아비입니다. 아들놈과 며느리가 이혼하고, 아들이 제주도로 돈 벌러 가서 하는 수 없이 할아버지, 할머니가 키운다고 했다.
담임 선생님이 들어오시고, 애들 졸업 사진과 앨범 가격을 3개 업체 견적을 보여주고 부모님들이 토의해서 결정하라고 했다. 말펀지 있는 엄마들 이야기를 듣고 괜히 남자가 야당 할 수 없어 그 노인과 나는 눈치껏 투표했다.
크산티페는 카센터에서 뒤 범퍼 통으로 갈아 30만 원 깨졌다고 주급 10만 원을 2만 원으로 줄였다. 할 말이 없었고, 내 잘못이라 받아들였다. 다시는 차키 만지지 마?라는 말에 알았어했지만, 대답은 대답이고 호기심 발동하면 하는 것이 INTP라고 지구인 중 3.3%의 아주 특이한 족속이라고 딸이 알려주었는데, 정말 그런가 보다.
이번에도 주급 2만 깎인 거 더 깎여도 2만이겠지 하고 아내가 자는 틈을 이용 차를 몰고 나갔다. 잘 여의도를 돌고 가산동 동사무소 지나 아파트로 들어오는데, 차단기 올라가는 동안 브레이크로 정치한다는 것이 가속페달을 밟았다. 차단기가 박살 났다. 지금은 웬만한 단지는 자동인식으로 차단기가 올라가는데, 그 시절은 경비실서 버튼을 눌러야 올라가던 시절에 그런 사고를 냈다. 아마도 경비실서 연락을 했는지 크산티페가 씩씩거리고 나타났다. 바로 경비실에 죄송하다고 말하고 차단기 업체에 전화해서 수리 공사를 했다.
2만 원 주급이 5천 원 주급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