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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이 강민철

02. 사랑

by 함문평

1979 년 10월 26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란 놈이 박정희 대통령의 가슴에 총을 쏘더니 남조선이 민주화되기 전에 전두환 일당이 12·12 거사를 ‘백일집 잔치’라는 암호명으로 반란을 일으켜 군부통치의 시대를 만들어 남조선은 자유민주주의의 희망이 없는 것으로 판단되어 의거 월북했습니다. 나를 따라서 부산에서 대만으로 대만에서 중국으로 중국에서 평양으로 정말 어려운 장정을 영문도 모르고 따라나선 내 아내 이병희는 입북 초기 사상 검증을 받다가 사망했습니다.

죽기 전 아내가 저승에 가서도 만나지 말자고 하더군요. 내에게는 정말 미안합니다.

죽은 아내, 이병희에게 정말 나는 죄인입니다.

남조선의 전두환 대통령은 광주에서 민간인 대량학살을 기반으로 정권을 탈취했기 때문에 남한 민중들의 저항감이 큽니다.

전투원 여러분이 전두환 대통령만 처단한다면 남조선에서 민중들의 열화 같은 환영 군중대회가 열릴 것입니다.


다음 화면을 봅시다.

(1980년 5월, 광주 공수부대원들에게 무차별 매를 맞는 시민)

이 사진처럼 남조선은 매일 데모 없는 날이 없습니다. 그런 만큼 전두환 대통령의 통치자로 인기는 없습니다. 국내에서 인기가 없는 통치자들의 인기 만회 방법은 해외 순방입니다.

골치 아픈 국내 정치에서 잠깐 눈을 돌려 해외 정상들과 만나는 것이 뉴스에 보도되면 우매한 민중들은 그런 뉴스에 매혹되는 것입니다.

국민들에게 인기는 없으나 9시 뉴스에 땡!

소리와 함께 첫 화면이 대머리 해골 같은 모습이 등장하고 그날 전두환 대통령이 어디를 방문하고 무슨 말을 했는지가 뉴스 첫머리를 장식하였다.


남조선 인민들은 9시 뉴스 시간에 일부러 오락 프로로 채널을 돌리는 민중들이 늘어났습니다.

다음 화면을 봅시다.

(TV오락채널을 보고 있는 남조선 사람들)

얼마나 전두환 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대머리 얼굴이 보기 싫었으면 9시 TV 뉴스 시간에 아예 이런 오락 방송을 찾아가며 보겠습니까?

대통령 경호실장 장세동, 외무부 장관 이범석, 국가 안전 기획부장 노신영 등이 서남아시아 순방 계획을 만들어 전두환 대통령의 인기를 높이기 위한 작전을 기획했습니다. 방문국 가는 버마, 인도, 호주, 뉴질랜드, 스리랑카, 브루나이 등입니다. 처음 계획은 인도, 호주, 뉴질랜드 3개국 순방이었으나 장세동 경호실장이 버마 사회주의 통치체제와 국가평의회 같은 기구는 남북이 대치한 우리가 본받을 점이 있다고 말해 전두환이 순방에 버마를 추가시켰습니다.

민주주의를 해도 서구식 민주주의를 그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식 민주주의를 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전두환 대통령도 한국은 민주화되는 것을 국가가 방치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였다.

과거 박정희 대통령이 1972년 유신헌법을 반포하면서 국회의원의 1/3을 국민들 투표가 아닌 지명에 의해 국회의원을 만들어 야당인 신민당은 여당인 민주공화당과 ‘유정회’라는 여당 2 중대 국회의원까지 2 : 1의 힘겨운 싸움을 했다.

장세동 경호실장이 전두환 대통령에게 각하도 네 윈 통치스타일을 배우실 필요가 있다고 건의했다.

버마는 영국식민지였다.

한국이 일본제국주의 통치하에서 해방된 1948년 영국으로부터 버마가 독립했다.

네 윈은 점성술을 철저히 믿었다.

네윈이 버마공화국으로 새 출발 선언을 한 것은 1948년 1월 4일 새벽 4시 20 분이었다.

전 세계 어느 나라가 독립 선포에 일정을 정했으면 9시, 10 시에 공식 행사를 하면 되는 것을 새벽 4시 20분 기상천외한 시간에 독립선포 행사를 한 것을 보면 정말 점성술에 푹 빠진 사람이었다. 독립 초기에 공산당의 무장봉기와 군대의 반란 소수 민족의 자치권 요구 데모가 많았다. 우누 정권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고조되었을 때 네윈이 1962년 3월 2일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네윈 통치 시대가 열렸다.

군사 쿠데타 직후 네윈은 자신을 의장으로 하는 16 명의 고위 간부로 구성된 혁명평의회를 구성하여 전권을 행사했다.

이것은 박정희 대통령 서거 이후 최규하 대통령 시절에 군대의 장군들을 뽑아 ‘국가보위비상대책상임위원회’라는 기구를 만들었는데 네윈의 혁명평의회와 유사했다.

네윈은 집권 초기에 군을 동원해서 사회 전체를 장악했다. 상명하복에 길들여진 군인들을 중앙 및 지방의 행정기관에 배치시켰다. 국영기업체에도 퇴역 군인들을 전진배치시켰다.

집권당인 사회주의 계획당도 군인 출신이 절반 이상 차지했다.

사회주의 계획당은 국민들을 조직화하여 네윈의 26 년간 권력을 튼튼하게 만들었다.

네윈이 1980 년에 대통령직을 내놓고 국가평의회 의장직만 유지해도 버마는 네윈의 영향력이 줄어들지 않았다.


남조선의 전두환의 추종자들이 몇 년 후 전두환이 대통령직을 내놓아도 버마의 네윈처럼 영향력이 줄어들지 않기를 바라고, 그런 대비를 이번 버마 방문을 통해 확인하고자 했다.

여기 모인 3 명의 전투원 동무들은 남조선 전두환 일당이 버마에 도착했을 때 일순간에 처단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버마를 거쳐 인도에 방문하고 인도와 남조선이 가깝게 되는 날엔 우리 북조선은 비동맹 국가의 외교에 치명타를 입게 됩니다. 인도는 비동맹 제3 세계의 리더국가입니다. 이번 세 동무들의 버마에서 임무수행은 북조선 외교가 지속 성공하느냐 남조선에 밀리느냐의 중대한 분수령이 될 것입니다.

꼭 성공하고 모두 영웅 칭호를 받기를 바라며 오늘 사상 교육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3 명의 특수 임무 전투원은 윤노빈 박사의 열강에 박수를 쳤다.


1983 년 9월 30일 이범석 외무부 장관이 뉴욕에 왔다. 9월 1일 KAL 007 편이 소련의 미사일 공격에 의해 사할린 섬 상공에서 격추되었다. 승무원과 승객 269 명을 태운 민간 항공기가 피격되어 태평양에 수장되었다.

소련의 영공을 침범한 것은 사실이나 민간 항공기임을 알면서도 격추시킨 것에 전 세계가 소련의 행위를 야만적이라고 규탄했다.

한국 유엔 대표부 공무원들은 UN과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등에서 소련을 규탄하고 한국의 지지를 호소하느라 밤낮없이 일했다. 그런 직원을 격려하기 위해 전두환 대통령에게 금일봉을 받아 한국에서 뉴욕으로 출국했다. 한국은 국민들이 총궐기 규탄대회를 하였지만 소련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유는 분명히 영공 침해였기에 자국 방어 목적으로 미사일을 발사했다고 했다.

한편 출처 불명의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미국 CIA가 첩보 수집 센서를 새로 개발했는데, 소련의 탐지 능력을 알아보기 위해 몰래 한국 민항기에 앞바퀴 접는 부위에 부착시켰고, 비행 프로그램을 조작해 민항기 항로를 약간 이탈시켰는데 소련의 K.G.B가 그 첩보를 소련으로 먼저 타전해서 대한항공 007기 격추가 이루어진 것이라고 했다.

만약에 미국이 KAL 007 기 격추에 대해 비난할 경우 소련은 공개하면 미국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비밀문서를 입수한 상태였다.

결국 힘없는 한국의 KAL 007기 승객만 영문도 모르고 태평양에 수장되었다. 이성기 뉴욕 총영사 허남태 참사와 한국 대사관, 영사관 주요 직원들 그리고 국가 안전기획부 뉴욕 파견관 서광선 서기관 등이 회식에 참석했다.

술이라는 것이 처음에 한잔으로 시작하지만 한잔이 두 잔 석 잔 늘어나고 폭탄주를 돌리고 나면 취기에 평소 체면 때문에 하지 못했던 말도 나오는 것이다.

술 취한 이범석 외무부 장관이 한마디 내뱉었다.

경호실장, 장세동이 그 간나새끼들 때문에 내가 버마까지 간다. 원래 이번 외교 순방계획을 내가 계획 건의한 것은 인도, 호주, 뉴질랜드 3 개국이야. 그런데, 육사 나온 간나들이 끼어들어 버마, 스리랑카, 브루나이까지 이거 뭐 외교관계도 불분명한 나라까지 다 넣고, 이게 외교야? 보석 밀수나 쇼핑 관광이야?

장관님, 취하셨습니다.

들어가시지요.

외교부에서 이범석 장관을 수행하던 강철구 서기관이 부축해 회식 장소를 빠져나왔다.

1983년 여름, 7월 마지막 주

진영관 소좌와 강민철 대위, 신기철 대위 일행은 1 주일의 휴가를 얻어 개성 강창수 부대를 떠나 휴가를 즐겼다.

강민철 대위는 강원도 통천이 집이다.

통천 고향집에서는 하룻밤만을 보내고 평양으로 갔다.

강민철은 평양 지하철 승리역에 내렸다.

인민대학습당이 보였다.

청기와지붕 처마 밑 전자벽시계가 오후 6시를 보여주고 있었다.

약속시간 30 분 전이다.

김형직 사범대학 수학교육과를 나오고 동평양 중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는 교원 박은경을 만나기로 했다.

검은색 치마에 하얀 블라우스를 곱게 입은 은경이 계단을 또박또박 걸어 올라왔다.

민철의 가슴은 뛰고 있었다.

박은경과 강민철은 통천에서 인민학교를 함께 다녔다.

그러다 인민학교 4 학년이 되자 은경이 평양으로 이사를 갔다.

이사 후로는 민철은 은경이가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존재가 됐다.

중학교 때, 은경이가 동해안으로 수학여행을 왔다.

수학여행지 통천 총석정에서 은경과 민철은 인민학교 때 헤어지고 4 년 만에 만났다.

그 인연으로 은경과 민철은 연애를 했다.

편지를 주고받았다. 은경은 김형직 사범대학 수학교육과를 마치고 동평양 중학교 수학교원이 되었고, 민철은 해외 특수 임무 수행 전투원이 되었다.

은경 동무!

민철 동무!

둘은 만나자마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포옹을 했다.

인적이 드문 대동강으로 걸어갔다.

버드나무 길게 늘어진 아래 벤치가 있었다.

벤치에서 부둥켜안고 키스를 했다.

은경이 잠시 입을 떼고 민철을 바라보았다.

민철의 맑은 눈동자 속으로 희수가 빨려 들었다.

둘은 벤치에서 내려와 풀밭에 누웠다.

은경의 무릎을 베고 민철이 누웠다.

민철의 팔은 은경 허리를 감았다.

은경이 고개를 숙여 민철의 입에 키스를 했다.

민철의 손은 은경의 귀를 만지고 이어 목덜미를 만졌다.

은경은 블라우스 단추를 풀어 젖혔다.

은경의 젖가슴은 터지기 직전 풍선처럼 탱탱했다.

우리 언제까지 연애만 할 거야?

은경이가 손으로 자신의 젖꼭지를 민철의 입에 물려주며 말했다.

민철은 은경의 젖꼭지를 아프지 않게 입술로 지그시 깨물었다.

민철은 꼬마 시절 엄마의 젖을 빠는 아기처럼 오물오물 빨았다.

은경은 민철이 젖을 빨 때, 짜릿한 쾌감을 느꼈다.

이 순간 그대로 시간이 멈추길 바라는 마음이다.

이번 해외 임무수행을 무사히 마치고 나면 통천 부모님께 인사하러 가자.

우리 결혼하겠다고 하면 아버지, 어머니, 여동생 모두 좋아할 거야.

은경이가 동평양 중학교 수학 교원이라고 하면 더 좋아하실 거야.

아버지 어머니는 나를 사범대학에 보내 교원을 하라고 어려서부터 늘 말씀하셨는데, 내가 군대 가서 이렇게 전투원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어.

나 자신도 성격이 조용하게 혼자 사색하거나 책 보는 것이 좋지 육체적으로 활동이 많은 군인은 내 체질이 아니거든.

그럼, 오늘 밤은 우리 집에 가서 내 부모님께 민철 동무와 결혼하겠다고 말하고 승낙받자?

그래, 그렇게 자자. 은경 동무!

민철과 은경은 외화상점에 들러 약간의 고기와 맥주, 소주를 샀다.

보통강 구역에 있는 은경 아파트로 갔다.

박은경의 아버지 박철수는 평양지하철 기관사이다.

어머니 배순선은 동평양 백화점의 계산원이다.

은경의 형제는 딸만 셋이다. 은경이가 막내다.

큰 언니 은정은 청진으로 시집을 갔고, 작은 언니 은영은 군대 복무 중이다.

4군단 고사포 부대에 근무한다.

은경의 아파트는 대동강이 내려다보이는 4 층에 있었다.

초인종을 눌렀다.

어머니가 문을 열었다.

아버지, 어머니 제가 말하던 강민철 동무야.

민철 동무, 우리 아버지, 어머니께 어서 인사드려.

처음 인사드립니다.

강민철입니다.

오느라 수고 많았소.

여보, 뭐 하고 있어. 손님 왔는데 술상 봐야지.

예, 준비하지요.

은경 어머니와 은경은 주방에서 술상을 준비했다.

은경 아버지와 민철은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눴다.

강 동무는 올해 나이가 몇인가?

예, 스물여섯입니다.

군인이라 들었는데, 군사칭호는?

대위입니다.

스물여섯에 대위면 빨리 진급했는데?

아닙니다. 저보다 빠른 동기들도 많이 있고, 저는 중간입니다.

고향은 어딘가?

예, 강원도 통천입니다.

음, 통천이라. 참 좋은 곳이지.

예, 물 맑고 경치 좋고 바닷가라 수산물이 풍부합니다.

대위에서 소좌는 언제 되는가?

예, 이번 해외 작전만 잘 마치고 돌아오면 내년에 승진되리라 봅니다.

대화 중에 술상이 들어왔다.

한잔 올리겠습니다.

그래, 한잔 하세. 자네도 한잔 받게.

아바이 동무는 약주 잘하십니까?

많이는 못하고 소주 한 병이 딱 좋지.

예, 저도 한 병이면 족합니다.

이때 은경 어머니가 뭐 남자들만 기분 내기야, 우리도 한잔하자며 맥주 한 잔씩을 따랐다.

은경 부모님과 은경, 민철 4 명이 술잔을 부딪치며 건배를 외쳤다.

아버지가 건배 제의를 했다.

우리 막내딸 은경과 새로 맞이한 아들 민철 동무를 위해 건배합시다.

위하여!

위하여!

위대하신 김일성 수령님과 친애하는 김정일 동지의 건승을 위해 다시 한번 건배합시다.

위하여!

위하여!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은경 어머니가 민철에게 물었다.

은경에게 들으니 군사칭호가 대위라는데, 한 달 노임이 얼마나 되나요?

예, 그건 군사기밀이라 말씀드릴 수 없고, 일반 노동자나 사회 직장인의 노임의 서너 배는 됩니다. 차관 정도 대우를 받는 것이 전투원입니다. 어머니, 딸 은경 걱정 마십시오.

그럼, 딸 셋 중에 우리 은경이가 나중에 제일 호강하겠네, 신랑 잘 만나서 노임 많이 받아 호의호식하겠네 하면서 어머니는 은경을 보았다.

은경의 볼이 약간 빨갛게 달아올랐다. 쑥스러워 은경은 주방으로 가서 아버지와 민철을 위해 안주를 더 가져왔다.

안주 더 가져왔으니, 아버지, 민철 동무 더 드세요.

그날 밤은 그렇게 보통강구역 4층 은경의 아파트에 행복한 웃음꽃이 피었다.

어머니가 오래전부터 막내딸 시집갈 때 주려고 준비한 솜이불이 은경이 방에 펼쳤다.

한 땀 한 땀 은경의 어머님이 바느질한 이불이다.

여기가 오늘밤 민철과 은경이 첫 경험 자리다.

민철은 은경이의 하얀 잠옷 그 상태로 들어 올렸다.

작은 방을 한 바퀴 돌았다.

은경은 민철이 빙빙 돌 때, 민철의 목을 꼭 껴안았다.

민철은 이불 위에 은경을 눕혔다.

집에 오기 전에 대동강 강변에서 은경이가 오른쪽 젖꼭지를 물렸기 때문에 집에서는 민철이 왼쪽 젖꼭지에 입술을 댔다.

은경의 가슴은 콩닥콩닥, 쿵- 쿵! 뛰었다.

이미 젖가슴은 부풀 대로 부풀었다.

은경과 민철의 몸이 하나가 되었다.

한참 격정적인 사랑의 행위를 하고 난 후 민철이 은경의 귓불에 키스를 했다.

은경도 민철의 입술 목을 빨았다.

은경이 이번에는 민철을 아래 눕히고 여성 상위 체위를 하였다.

민철이 위에서 할 때와 색다른 감흥이 왔다.

은경은 이 상태를 오래 간직하고 싶었다.

은경의 몸 아래 깊은 곳에서 파르르 떨림이 있었다.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짜릿함이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은경이가 민철을 흔들었다.

민철 동무, 내 귀걸이가 한 짝이...... 없어.

뭐야?

민철은 귀걸이가 발이 있어 달아나고, 날개가 있어 날아가겠어?

이방에 있겠지 하며, 은경을 방 한쪽 구석에 서있게 하고, 이불을 들어 한쪽을 높이 들었다.

베개도 흔들어봤다.

베개에서 귀걸이 한쪽이 부러진 채로 방바닥에 떨어졌다.

오각별 모양에 오각 별 뾰족한 끝 부분에 투명한 보석이 박힌 귀걸이다.

민철은 부러진 오각별 귀걸이를 주머니에 넣었다.

민철 동무, 귀걸이 주세요. 구입한 상점에 가서 붙여달라고 해서 쓰겠어요.

아니, 내가 해외 갔다 귀국할 때, 더 좋은 귀걸이 선물할 게 이건 나를 줘.

그 부러진 귀걸이 어디다 써요?

이건 내 부적이야.

교회 다니는 사람은 십자가를 믿고, 천주교 신자 묵주로 기도하고, 불교 신자 천수경 외우듯 나는 이 ‘오각별 귀걸이 ’ 한쪽이 나를 어떤 위험에서도 지켜주는 부적으로 믿을 것이오.

내 아무리 위험한 일이 닥쳐도 이 귀걸이를 부적 삼아 살아서 돌아올 것이니, 꼭 기다려주기 바라오. 민철의 말은 비장했다.

일주일의 휴가는 꿈결처럼 흘러갔다.

진영관 소좌, 강민철 대위, 신기철 대위는 강창수 부대로 복귀했다.

계획된 훈련 시간표대로 태권도, 총검술, 폭발물 조립, 설치, 해제, 수류탄 투척, 독침주사, 무전기 송수신, 난수표 조립 및 해역 등의 훈련이 반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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