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10월 8일, 영등포 여자고등학교의 합창단이 부르는 조두남 작곡의 ‘선구자’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전두환 대통령 일행의 서남아시아 및 대양주 6 개국 순방이 시작되었다. 김포공항에서 출국행사가 있었다. 거리에는 태극기와 방문국가인 버마, 인도, 스리랑카, 뉴질랜드, 호주, 브루나이 국기를 흔들며 시민과 학생들이 도로를 가득 메웠다.
전두환 이순자 대통령 내외를 수행하는 공식 수행원만 22 명이었다. 서석준 부총리, 이범석 외무부 장관, 서상철 동자부 장관, 김동휘 상공부 장관, 함병춘 대통령 비서실장, 김재익 청와대 경제수석 비서관, 청와대 경호실 경호원, 청와대 출입 기자단, 정주영 경제인 대표 20여 명이 별도의 민간 협력기구를 구성해 동행하였다. 특별기 보잉 747 기가 꽉 찼다. 길거리 인파들 사이에 ‘4천만이 뭉친 국력 서남아로, 대양주로’ 등의 현수막 피켓이 거리에 출렁거렸다.
전두환 대통령은 비행기가 김포공항을 이륙하고 한국 영공을 완전히 빠져나가자 기내 집무실로 이기백 합동참모본부 의장을 불렀다.
국방부 장관은 국가 원수가 나라를 떠나 있는 동안에 국방에 대한 최고 책임자로 국무총리를 보좌하기 위해 국내에 있고 대신 국방 분야의 수행자는 이기백 합동참모본부 의장이 하게 되었다.
각하, 부르셨습니까?
음, 앉아.
예.
버마의 군사정책과 군사기구는 어떻게 조직되었는지 청와대서 보고 받은 자료를 두고 왔으니, 참고할 사항을 다시 만들어 보고해.
예, 각하께서 참고할 사항이 이미 제가 준비한 서류 짐에서 꺼내기만 하면 됩니다. 버마 도착 즉시 드리겠습니다.
그래, 숙소로 꼭 가져와.
예, 각하!
김포공항을 이륙 후 8시간을 비행한 보잉 747 특별기는 10월 8일 버마 시간으로 오후 4시 30 분에 랑군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는 이계철 주 버마 대사와 버마 정부 외무부 의전 담당 최고 책임자가 영접을 했다. 21발의 예포가 터졌다.
비행기 트랩을 내려와 ‘우산유’ 대통령과 역사적인 한국 버마 정상 간의 만남이다.
공항에서 환영식이 진행되는 동안에 시민과 학생들은 태극기와 버마 국기를 흔들며 랑군 공항에서 영빈관까지 가는 도로 양옆을 가득 채웠다. 대통령과 경호원, 통역요원, 대통령과 이순자 여사의 직접적인 비서들은 영빈관을 숙소로 사용했고, 나머지 서석준 부총리 이범석 외무부장관 기타 수행원들은 ‘인야레이크(Inya Lake) 호텔’이 숙소로 배정되었다.
‘인야레이크 호텔’은 랑군 시내 중심에서 20 분 거리에 공항과 시내의 중간에 위치했다.
호텔 정면에 인야 호수가 보였다.
1983 년 9월 7일, 북한 개성공단 조성으로 다른 곳으로 이전했지만 개성 공단 제1 블록 서쪽 끝은 124 군부대 자리다. 124 군부대에 번호판 평양 216 벤츠 차량이 도착했다. 검은색 안경을 쓴 김정일 지도자 동지와 대남 담당 비서 허담이 함께 왔다. 부대장 강창수가 현관에서 김정일을 영접했다.
충성!
그래, 강창수 잘 있나!
지도자 동지의 염려 덕에 잘 있습니다.
미리 보고 받아 김정일은 진영관, 신기철, 강민철에 대한 신상과 훈련 정도를 알고 있었다.
팀장이 진영관 소좌라고?
예, 그렇습니다, 지도자 동지.
진영관은 영리하고, 신기철은 무쇠팔 무쇠다리야?
예, 그렇습니다.
그럼, 강민철은 어떤가?
사실, 강민철 그놈이 셋 중에 제일 처집니다.
처지는 놈을 전투원으로 그것도 당야 침투가 아닌 해외 공작에 보내?
그래도, 강창수 부대원 400 명 중에 추리고 추린 인원 3 명이라 문제없습니다.
부대장은 강민철이 처진다고 했는데, 내가 보기엔 강민철 그놈 대위지만 장군 이상으로 생각이 깊은 놈이더군.
아니 지도자 동지께서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내가 여기서 올라온 훈련 소감문 하나하나 다 읽어 봤는데, 강민철 그놈 소감문에 영혼이 살아 있어. 자기가 이 훈련을 왜 하는지, 이 훈련을 했지만 적에게 잡히면 다른 방도가 없나를 걱정하며 소감문 쓴 것에 평양에 있는 내가 읽어도 개성 강창수 부대 위에서 내려 보듯이 썼더군.
예에?
놀라긴, 이 사람 자기 부하 전투원 훈련 소감 건성으로 읽고 나에게 보낸 거야?
그건 아닙니다만, 소감문을 읽고 거기까지 느끼는 지도자 동지는 사람이 아니라 신이십니다.
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에 신은 없다. 오직 수령님만 신 같은 분이시지.
강창수 부대 지하 식당에 김정일 지도자 동지, 수행 대남 비서 허담, 강창수 부대장, 진영관 소좌, 신기철 대위, 강민철 대위 등 6 명이 원탁식탁에 마주했다.
사회자가 마이크를 잡았다.
식사에 앞서 지금부터 남조선 전두환 대통령 제거 작전에 투입할 전투원의 파견 신고식을 하겠습니다.
신고자 진영관, 신기철, 강민철 모두 앞으로 나오기 바랍니다.
차렷, 지도자 동지께 경례!
충성!
충성!
바로.
신고합니다!
강창수 부대 소좌 진영관!
동 대위 신기철!
동 대위 강민철!
이상 3 명은 1983년 9월 7일 부로 남조선 전두환 대통령 제거 임무 수행을 위해 버마 파견을 명 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충성!
충성!
지도자 동지께서 임명장과 지도자 동지 서명이 들어있는 로렉스 금장시계를 하사하시겠습니다.
(임명장)
소 속 : 강창수 부대
군사칭호 : 소좌
군사번호 : 82-0172737
성 명 : 진영관
위 사람을 남조선 미제국주의자 앞잡이 전두환 대통령 제거를 위한 특수임무에 임명함.
1983년 9월 7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김 정 일
(다음) 신기철 이하 내용은 같습니다.
(다음) 강민철 이하 내용은 같습니다.
다음은 임무 수행자의 선서가 있겠습니다. 선서의 선창은 진영관 소좌가 하고 두 대위는 복창을 하겠습니다.
선서!
선서!
우리는!
우리는!
총 폭탄 정신으로 무장하여!
총 폭탄 정신으로 무장하여!
남조선 대머리 전두환 대통령을!
남조선 대머리 전두환 대통령을!
민족의 이름으로!
민족의 이름으로!
처단한다!
처단한다!
우리는 점을 찾아 선을 이어!
우리는 점을 찾아 선을 이어!
조국통일 제단에!
조국통일 제단에!
전두환 목을 따고!
전두환 목을 따고!
통일 성업에!
통일 성업에!
이 한 몸 바친다!
이 한 몸 바친다!
우리의 성공은 수령님께 영광을!
우리의 성공은 수령님께 영광을!
실패하면 자폭한다!
실패하면 자폭한다!
총 폭탄 정신으로 무장하여!
총 폭탄 정신으로 무장하여!
자폭한다!
자폭한다!
선서를 마치고 모두 타원형식탁에 마주 앉았다.
선서하는 동안에 식탁에는 맛있는 음식이 준비되었다.
술도 양주, 소주, 맥주, 고량주, 보드카 등 다양하게 준비되었다.
술을 한잔씩 따르자 김정일 지도자 동지가 건배를 제의했다.
우리 모두 잔을 들고 건배합시다.
진영관, 신기철, 강민철 동지들의 작전 성공을 위하여 건배!
건배!
위하여!
위하여!
오늘 이 자리는 3 명의 전투원을 위한 자리니 마음껏 마시고 밖에 준비된 차량으로 여자 3 명 별도로 모셔왔으니 3 명의 전투원이 일대일로 짝이 되어 이 밤을 보내기 바랍니다.
인민군 합주단의 연주에 맞추어 노래도 불렀다.
여자 3 명 중 첫째 여자는 리명주였다.
진영관 소좌의 짝이 되었다.
리명주는 ‘리설주’의 4 촌 언니다. 리명주는 김일성의 손자 김정의 부인이다.
둘째 여자는 허영숙은 신기철 대위 짝이 되었다.
셋째 여자 윤영미는 강민철의 짝이 되었다.
어느 정도 여흥이 지나고 김정일, 허담, 강창수는 자리를 떠났다.
3 명의 전투원은 각자 자기 짝과 함께 준비된 차량을 타고 서해안 비밀 초대소로 향했다. 강민철은 윤영미의 부축을 받으며 초대소 203 호에 들어갔다. 윤영미가 먼저 샤워를 했다. 민철도 뒤따라 샤워를 했다. 윤영미는 이미 알몸으로 준비하고 있었다. 민철은 은경 얼굴이 떠올랐다. 윤영미 얼굴 위에 은경 얼굴이 겹쳐 보였다. 민철은 영미에게 말했다.
이봐요, 여성 동무!
말씀하세요.
내가 오늘 꼭 영미 동무와 잠자리해야 해?
그럼요.
왜?
당의 지시입니다.
우리는 이미 교육 다 받고 모실 준비 다하고 왔어요.
민철 동무는 이 윤영미 미모가 맘에 안 들어요?
아, 아닙니다. 윤영미 동무 참으로 곱습니다.
그럼, 빨리 나를 안아줘요.
민철이 머뭇거리자 영미가 민철을 안고 누웠다.
영미의 손이 민철의 가운데 중요한 곳으로 간다.
살살 만지자 민철의 그곳이 단단해졌다.
단단해진 그곳을 영미가 입으로 빨았다.
민철이 참을 수 없어 빳빳한 무기로 영미의 방어선을 뚫었다.
영미는 묘한 신음 소리를 낸다. 둘의 몸은 칡넝쿨처럼 엉켰다.
1983 년 9월 9일, 황해도 옹진항
화물선 동건애국호(東建愛國號)는 재일교포 기업인 조선화보 사장 문동건(文東建)이 일본서 구입해 북한에 기증한 것이다.
그래서 배 이름을 김일성 수령이 문동건의 ‘동건’을 따와 ‘동건 애국호’로 명명하였다.
평양의 제일 큰 해운회사 대성해운 총국 소속이었다.
문동건은 이 배를 기증한 공로가 인정되어 김일성 훈장을 받았으며, 금수산 기념궁전의 만찬에도 서너 차례 초청받았다.
동건애국호의 선원은 선장 이 세월을 포함하여 39 명이었다.
이 세월 선장은 해주 선원학교를 1963년 수석으로 졸업한 베테랑 선장이다.
이상일이 기관장이고 갑판장은 주준호였다.
39 명의 공식 선원 외에 3 명 전투원이 몰래 탔다.
진영관 소좌, 강민철 대위, 신기철 대위였다.
3 명은 동건애국호의 선장실 및 기관의 열을 식히기 위해 만든 방열판 반대쪽에 허름한 상자를 쌓고 그 뒤에 숨어 지냈다.
정치사상 교육에서 윤노빈 박사가 말한 대로 미제국주의자들의 꼭두각시 우두머리를 제거하면 남조선 인민들의 대대적인 환영 군중대회가 열릴 것이라는 확신에 찼다.
6일간의 항해 끝에 동건 애국호는 9월 15일 새벽 4시 30 분 랑군항 입구에 도착했다.
동건 애국호가 버마 당국에 제출한 입항 목적은 건설자재 운반이었다.
부두에 정박하면서 건설자재 하역하는 것을 경찰관과 세관 직원이 함께 지켜보고 있었다. 화물하역에 신경을 쓰느라 3 명의 전투원이 소형 보트로 떠나는 것은 아무런 조사나 여권 확인 없이 떠났다.
3 인의 전투원은 북한 대사관에서 나온 황영주 참사의 안내를 받아 랑군 항에서 북한 대사관 참사관 이환귀 집으로 안내되었다.
3인의 전투원은 외교 단지 내의 북한 참사관 숙소에서 평양으로부터 단파 방송으로 송수신되는 지령에 따라 행동했다.
동건 애국호가 랑군 항에 입항한 것을 국가안전기획부 랑군 파견관 박광선 서기관이 서울 국가 안전기획부 본부에 보고했다.
보고를 받은 본부에서는 해외공작국장 김운백 국장이 노신영 안기부장에게 북한 공작선이 버마에 드나드는 만큼 정상외교 노선을 바꾸거나 버마에 순방을 한다면 실내 행사만 참석하고, 옥외 행사는 금할 것을 건의했다.
그러나, 노신영 국가안전기획부장은 청와대에 박광선이 랑군에서 보고한 원문에 충실한 보고가 아닌 완곡한 표현으로 돌려 보고했다.
노신영 국가 안전기획부장은 경호실장 장세동에게 버마에서 이런 보고가 왔는데, 각하께 사실 대로 보고할 수 없어 고민이라고 말하자 장세동 경호실장도 그럼요, 각하가 버마 방문에 얼마나 큰 관심을 가지고 계신데, 재 뿌리는 보고해서 뭣 하겠어요 했다.
노신영 국가 안전기획부장은 버마에 북한 공작선 동건 애국호가 들어왔다가 출항했다.
출입 목적은 건설자재 운반이었고, 대공 업무 상 특이한 점 발견 못했다고 보고했다.
1983 년 10월 7일 새벽 2 시, 강민철 일행은 준비한 폭발물을 휴대하고 아웅산 묘역에 도착했다.
천장이 높았다. 관리사무소장에게 빌린 사다리를 타고 천장으로 올라갔다.
폭발물은 3 개를 설치했다.
제1 폭탄은 원격 무선 조종으로 즉시 터지는 순간 신관으로 장약에 불이 붙고 터지면 폭발력에 의해 크레모아 철심과 쇠구슬이 터지게 설치했다.
제2 폭탄은 제1 폭탄이 터져 진동이나 후폭풍과 열이 발생하면 그 열을 감지해서 터지는 지연신관으로 설치했다. 내용물은 T.N.T 와 콤포지션 혼합물이었다.
제3 폭탄은 모든 사고를 은폐하기 위해 화재를 발생하는 소이탄으로 설치했다.
새벽 작업으로 잠을 못 잔 3 명의 전투원은 10월 7 일 오후는 내내 낮잠을 잤다.
10월 8일은 테러 마지막 준비로 지형정찰과 자신들이 설치한 폭발물이 버마 경찰이나 군인 혹은 한국에서 온 경호원들에 의해 발각되지 않겠는가 하는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숙소를 나왔다. 복장은 진영관 소좌는 버마 전통 복장 론지를 입었고, 강민철 대위나 신기철 대위는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이었다.
아웅산 묘소 주변을 한 바퀴 돌아봤다.
묘소 관리인이나 관광객들 모두 평온한 상태였다. 안심이 되었다. 이상 없음을 확인한 3 명은 버마 랑군 시내 쇼핑을 했다.
원래 전투원들은 임무 수행 후 복귀하는 시간이 촉박해 중량이 나가거나 부피가 큰 선물은 구입하지 않는다. 민철은 은경과의 약속이 떠올랐다. 그날 은경 집에서 은경이와 사랑을 나누다 한쪽을 부러뜨린 ‘오각별 귀걸이’ 생각이 났다. 오각별 모양의 귀걸이가 다행히 랑군 시내 기념품 판매점에 있었다. 오각별에 뾰족한 각 끝에 투명한 모조 보석이 다이아몬드처럼 박혔다. 민철은 귀걸이 3 세트를 구입했다.
진영관 소좌가 물었다. 애인에게 주려면 하나면 되지 왜 3개씩 사느냐 물었더니, 하나는 평양에 있는 은경에게 줄 것이고 2개는 고향 통천에 있는 어머니와 여동생 미정에게 줄 것이라고 했다.
진영관 소좌는 아내에게 주려고 쌍가락지를 하나 샀다. 신기철 대위는 아내가 지갑을 꼭 사 오라고 했다고 가죽지갑 빨간색 롱 지갑과 반지갑 2 개를 구입했다. 자신들의 임무 수행을 위한 폭발물도 이상이 없고, 선물 쇼핑도 잘해서 편안한 마음으로 외교단지 내 숙소로 돌아왔다.
1983 년 10월 8일, 버마 랑군
쌀쌀했던 서울의 날씨와 달리 버마는 33도의 날씨에 습도 90%였다.
한국의 한여름 후덥지근한 날씨와 비슷했다. 습도가 높아 끈적거렸다. 하늘에서 내려 본 버마의 국토는 아름다웠다. 푸른 숲이 넓게 펼쳐지고, 평야지대의 농토 사이로 농로길이 가로 세로 쭉 나 있었다. 공항에서의 의전행사를 마치고 전두환 대통령 일행은 영빈관 인야 레이크 호텔로 향했다.
1983 년 10월 9일, 아버지 강민철에게 운명의 날이 밝았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모든 것이 일치하였으나 무선 원격조종장치를 어디서 버튼을 누를 것인가가 문제였다.
강민철은 전두환 일당이 정확히 도열한 것을 보고 격발 할 수 있는 슈웨다곤 탑 위에 올라가 한 명이 망을 보고 신호를 하면 아래서 격발을 하자고 했다. 탑 위에 올라가는 것은 강민철 자기가 올라가고 격발장치를 누르는 것은 리더인 진영관 소좌가 하라고 했다. 신기철 대위는 만약을 대비해 자기를 근거리서 엄호 조준하고 있다가 위험한 순간이 되면 사격을 해달라고 했다.
진영관 소좌는 다른 생각이었다.
슈웨다곤 탑은 관광객이 너무 많아 보는 눈이 많아서 안 된다. 그냥 아웅산 묘소 1 킬로미터 전방 도로에서 방문단의 차가 지나가는 것을 확인하고 행사하면 군악대 연주가 시작된다. 그때 누르면 이상 없다고 했다. 강민철은 어차피 계급도 진 소좌가 위고, 성공을 하던 실패를 하던 제일 책임이 무거운 사람이 진영관 소좌라 생각하고 그의 말대로 하기로 했다. 나중에 내가 진급해 소좌가 된다면 나는 부하 전투원의 말이 더 현지 상황에 맞으면 부하의 말을 들어주리라 생각했다. 진영관 소좌는 강민철과의 의견대립을 찜찜해했으나 자기 생각대로 거사가 진행된 면 평양에 보고할 생각에 입가에 미소가 돌았다.
자기의 기묘하고 영활한 작전이고 김일성 훈장 이 수여될 것이다. 민철은 가슴 주머니에 넣은 수첩을 꺼내 은경의 망가진 한쪽 ‘오각별 귀거래 이’를 만지작거렸다. 아무리 위험하고 힘든 일이 있어도 이 오각별 귀걸이가 지켜줄 것이라 믿었다.
10월 9일 아침 공식 수행원들은 10 시를 전후해서 숙소 호텔을 출발해 행사장인 아웅산 묘소로 향했다. 버마 정부가 외교 접대용으로 제공한 벤츠 차량과 미니버스로 떠났다.
위계질서가 엄격한 공직 사회는 어디서나 행사에 의전 서열이 있다. 대통령을 기준으로 좌우, 좌우 반복하면서 대통령과 가까이 있는 사람이 서열이 높고 먼 곳일수록 서열과 직급이 낮은 것이다. 서석준 부총리가 직급이 대통령 다음으로 높아 행사장 전두환 대통령 내외분 자리를 표시한 삼각형을 기준으로 우측 중앙 앞에 서있었다.
아웅산 묘지에 공식 수행원들이 도열한 상태에서 검은색 벤츠에 태극기를 달고 앞뒤로 선도 에스코트와 후미 후방감시 에스코트를 받으면서 이계철 버마 대사가 도착했다.
대사는 내리자마자 서석준 부총리를 향해 각하께서 곧 도착한다 했다. 수행원들은 자신들의 복장을 다시 가다듬었다. 자신의 위치가 의전서열에 맞는지 다시 확인했다.
그때 정열한 군악대의 대열 속에서 진혼곡의 첫 소절과 마지막 소절이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