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돌아가시고 아들은 태어나고
할아버지가 손자며느리로 삼고 싶은 안흥농협 강림지점(현재는 강림농협) 창구 아가씨 이빨이 두 개가 본 네가 아닌 것을 빌미로 거절해 한동안 서운해하셨다.
크산티페가 예비 장인 장모와 인사를 왔다. 기뻐서 강림막국수로 예약을 하고 갔다. 장손이 상봉터미널에서 생전 처음 본 사람 짐보따리를 들어준 착한 함 대위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장손이 누가 가르친 것도 아닌데, 공자님 말씀하신 인을 실천한 놈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할아버지가 만주서 아편장사로 번돈 대부분은 김구. 선생과 김일성에게 군자금으로 드리고, 남은 돈으로 금으로 바꾸고, 횡성에서 한우 99마리 사고 산 6 정보 사고, 밭 8000평, 논 20마지기 사고 남은 금이라고 주면서 목걸이를 하든 팔찌를 하든 하라고 한 덩어리 주셨다. 요즘은 골드바로 예쁘게 품질보증서가 첨부되지만 그 시절 금은 진짜인지 불순 섞인 것인지 벤찌로 배를 갈라 확인한 순금 한 덩어리였다. 신길동 금옥당 지금은 재개발로 사라진 금은방에 가서 보이니 주인도 놀라고, 장인 장모 크산티페 모두 놀랐다. 이렇게 순도 높은 금은 처음이란다.
거기서 크산티페는 목걸이로 만들었다. 결혼식 올리고 1년 후 첫딸이 태어났다. 아들이길 바랐는데, 딸이구나? 하셨다. 시실 과학적으로 책임을 묻는다면 나의 정자 X가 먼저 골인한 것이지 크산티페 잘못이 아니지만 서당공부 이외 학교는 문턱도 안 넘은 분이라 조선시대 양반가 며느리 수준으로 다음은 꼭 손주를 안겨드리겠습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다음 잉태한 아기는 아들인지 딸인지도 모르고 유산되었다. 4살 차 동생이 임신되고 출산예정일이 12월 14일인데, 12월 12일 돌아가셨다.
결국, 임신한 여자는 상갓집 가는 것을 금하라는 말이 있지만, 손주며느리가 시조부 장례에 불참할 수 없어 선산에 모시고, 바로 서울로 달려와 성애병원에서 아들이 태어났다.
할아버지 기일과 아들 생일은 잊으래야 잊을 수 없다.
조선 마지막 선비 할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