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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프라사운드

08. 군무원 7급

by 함문평

서부전선 땅굴 시추부대서 전역한 최 대위는 예비역 대위 최재림 신분으로 군무원 시험공부를 하였다. 서부전선 땅굴 시추부대 근무 시 정보 사령관 표창받은 인연으로 정보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근무했다. 정보 사령관이 정보사령부 인사처장에게 지시하여 예비역 대위 최재림을 정보 군무원 7급으로 채용하라고 지시해서 최재림은 199X 년 6월에 전역을 하고 7월 중순 정보사령부 인사과장 면담을 했다.

“과장님, 대위에서 소령도 진급 못한 놈이 군무원을 해서 뭐 합니까?”

“무슨 소리야? 사령관 지시로 최 대위가 서부전선 땅굴 시추부대서 정말로 창의적인 생각으로 근무해 정보사령부가 북한의 지하 핵실험을 미국이 위성사진으로 찍고 금창리 사찰까지 해도 허탕을 친 것을 조기에 탐지했는데, 그 공을 사령관님은 진급이나 훈장으로 최 대위에게 보상이 가야 마땅한데, 장기 복무자가 아니라 진급도 시킬 수 없었고 공개적으로 하면 안 된다는 햇볕정책으로 간 대위에 대한 조치를 아무것도 못 한 것이 아쉬워 사령관님이 자네를 정보 군무원 만들려는 뜻을 감사하게 받아들여야지?”

“예, 사령관님 뜻은 고맙지만 이제 전역했으니 민간인 신분으로 편하게 살고 싶습니다.”

“무슨 소리야? 사령관님 지시로 최 대위가 서부전선 땅굴시추부대에서 창의적으로 열심히 근무했는데, 단지 장기 근무자가 아니라고 표창도 밀리고 진급은 기회도 없이 전역한 것이 아까워서 정보사령부에서 군무원으로 채용해 정보 경험을 살려 근무하게 하려는 것인데, 사령관님 뜻을 저버리는 거야?”

“예, 사령관님 뜻은 고맙습니다만 사령관님이 제 인생 전부를 책임져 주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야 그렇지, 사령관님은 최 대위를 군무원 만드는 것만 해주시는 거고 그다음은 최 대위 인생 최 대위 스스로가 책임이지?”

“그러니까 저는 비록 짧은 기간이나마 대위까지 근무한 경험으로 더 이상 군대나 군무원 생활은 싫습니다. 사회에서 힘이 들게 돈 벌더라도 어느 정도 벌고 제가 식당을 하거나 청과상의 가게 하나 내서 청과물 상회를 하더라도 개인 사업을 하지 조직의 일원으로 조직의 이익과 목표를 위해 희생하는 기계 부품 같은 인생을 그만 살고 싶습니다.”

“예비역 대위 최재림, 너 정말 고집이 세구나! 남들은 군무원 7급 못해서 난리인데, 노량진 가봐 9급 행정직, 경찰직, 군무원 등등 줄져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거야 알지요?”

“정보 사령관이 7급 그것도 정보 직위서 근무한 사람 아니면 풀 수 없는 시험문제 출제하게 하고 응시하라고 하는데도 거부하는 최재림 마음을 모르겠다.

평양감사도 자기가 싫으면 할 수 없는 노릇 나는 사령관님에게 면담했으나 본인이 고사한다고 보고하마. 잘 가라.”

“충성! 안녕히 계십시오. 과장님!”

예비역 대위 최재림은 전역 후 건설 현장에서 일용직 근로자로 일도 해봤고, 방문 판매회사 다단계 판매회사의 일도 해봤다. 전역하면서 받은 퇴직금 1천만 원과 자신이 적금으로 모은 돈 1천만 원 모두 2,000만 원을 전역 후 1년 동안 다 까먹었다. 송충이는 솔잎만 먹어야 하나? 그런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200X 년 새로운 각오로 군무원 시험에 응시했다. 7급 군무원 전역 당시 특채로 정보사령부에서 응시하라고 할 때는 안 한다고 하고 이제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군무원 시험공부에 임했다.

인사과장 말을 듣지 않은 것이 후회되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지나간 버스에 손 흔들어봐야 소용이 없고 엎어진 물 다시 담을 수 없는 것이다. 지금 후회한 들 무슨 소용 있으랴? 사회에서 돈 한 푼 벌어보겠다고 막노동 공사판을 전전하며 모은 돈으로 책사 공부해 서울대 들어간 그 사람이 얼마나 고생이 뼈저리게 느껴졌으면 공부가 제일 쉽다는 말 하겠는가?

최재림도 8월의 뜨거운 태양 아래 목수 10명이 일하는 곳에 혼자 5층에서 일하면서 잡부로 나간 그에게 1층에 있는 합판 50장을 5층으로 올려 달라고 해서 올려주고 나니 옆에 있는 목수가 못이 없다. 1층 못 박스에서 3인치 못 3kg을 올려 달라고 했다. 그것이 끝나니 다른 목수가 상승각 50개와 졸대 30개를 올려달라고 했다. 하루 종일 그렇게 일해주고받은 일당은 9만 원이었다. 거기서 인력 사무실서 10% 공제하고 81,000 원을 받고 집으로 오면 정말 몸이 파김치가 된 기분이다.

중위, 대위 시절 군대 상관들이 장기 신청하라고 했을 때 장기를 했거나 전역한 다음 달에 군무원 특채 시험 원서를 내라고 할 때 내고 특채가 되었더라면 이 막노동 안 해도 먹고사는데 이상이 없었을 것을 고집을 부려 개고생 하면서 산다. 하지만 어차피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그때 그가 장기 신청을 했더라면 진급해서 비무장 지대 순찰하다 북조선이 설치한 발목지뢰에 다친 소령이 그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상상을 하면서 오늘의 최재림을 스스로 합리화시켰다.

200X 년 7급 군무원 공채 시험 일정에 맞추어 시험공부를 했다. 시험공부 1년 하면서 최재림은 나름의 칼을 갈고 공부했다. 노량진 공무원 시험 준비 학원이 즐비한 곳에 가면 일종의 장기 수험 고시생들이 있다. 그들은 공부를 위한 공부를 하는 사람이다.

그는 생각만 하는 공부, 즉 공부를 위한 공부를 하는 사람은 습관적으로 자기는 돈 한 푼 벌어보지 못하고 부모 형제가 보내주는 돈으로 노량진 고시원 월 입주비 37만 원 내고 아침 점심 저녁 돈 아끼느라고 컵밥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양치질하고, 스마트 폰으로 음악 들어가면서 시간 되면 공부하고, 밤 10시가 되면 고시원 좁은 침대에서 쪽잠을 자고 새벽 4시 되면 기상해서 또 공부하고 그런 생활을 3년, 3년, 길게는 10년 이상 한 사람들을 최재림은 공부를 위해 공부하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최재림은 7급 군무원 시험에 딱 1년 공부 1회 응시에 합격을 하였다.

노량진 공무원 시험 준비생들이 모두 놀랐다. 노량진에서 하루아침에 최재림은 스타가 되었다. 교육 방송에서 명문대 합격한 학생, 수능시험 만점 받은 학생을 공부의 신이라고 줄여서 ‘공신’이라는 다큐 프로도 있었지만, 그는 노량진 공무원 시험 준비생들에게 ‘공신(공무원 시험의 신)’이 되었다.

주변의 39세, 37세, 34세 된 장기 수험생들이 최재림을 찾아왔다.

“최재림 씨, 7급 군무원 시험 합격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어떻게 하면 딱 1년 공부해서 시험에 합격할 수 있어요?”

“글쎄요, 운이 좋다고 봐야지요?”

“운도 운이지만 최 씨 나름의 공부의 비결이 있다면 말해주세요.”

“공부에 비결이 어디 있습니까? 그냥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어요. 합격할 정도로.”

“그 합격할 정도가 어느 정도입니까?”

“그야, 9급 행정직, 7급 행정직, 경찰직, 교육직, 군무원직 다 다르죠? 자기가 목표한 그 직종에 합격할 정도 되려면 각과목 몇 점은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합격할 정도가 되겠지요.”

“그래도 최재림 씨는 뭔가 나름 공부 비결이 있을 것 같은데, 말씀해 보세요.”

“글쎄요, 이게 비결이 되는지는 모르지만 저는 솔직히 군대서 장기 복무하라는 것을 거절하고 제대하였고, 제대 직후에는 정보 군무원 특채한다고 원서 내라고 하는 것도 거부하고 살았어요. 군대 퇴직금 1천만 원과 제가 모아둔 돈 1천만 원 도합 2천만 원을 1년에 다 날리고 공사판 막노동을 하면서 공사판 막노동이 내가 앞으로 인생 50년 갈 길이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지요. 그리고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합격했습니다.”

“예, 잘 알았습니다.”

찾아왔던 노량진 장기 수험생 공무원 준비생들과의 대화는 그 정도에서 마쳤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잘 된 사람이 잘 된 이야기를 오래 하면 타산지석으로 삼아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잘난 척한다고 비웃는 사람도 많다는 것을 간 복균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공무원 시험 장기 수험생들에게는 그런 깊은 말을 안 한 것이다. 어차피 장기 수험생들은 내년에도 도 시험을 볼 것이고 떨어지면 또 술 한 잔 마시고 속상해하고 며칠 후 마음잡고 다시 공부한다. 그리고 또 떨어지고 반복을. 그래서 최재림은 주변의 공무원 시험공부 하는 사람들에게는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자기 자신을 철저하게 혹독하게 단련하고 공부하면 꼭 합격할 수밖에 없는 최재림 나름의 한 칼이 있었다. 그 한 칼은 바로 블랙북이었다.

원래 블랙북은 정보장교들이 자신의 보고서가 비밀에 속하는 것이면 제목부터 가장 명칭을 사용하고 보고서를 담은 결재판도 검은색, 그것을 담아 운반하는 가방도 자물쇠가 달린 검은색 가방으로 해서 다른 곳으로 비밀이 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명칭을 블랙 북(Black Book)이라고 명명했다.

최재림의 블랙 북은 검은색 대학 노트였다. 첫 장을 넘기면 나의 다짐이 나온다.

<나의 다짐>

많은 사람들이 공부를 한다. 단지 공부를 위한 공부를 한다. 나 간 복균은 공부할 시간이 별로 없다. 아니 이런 공부 자체가 허영이고 사치다. 나는 군대서 장기 복무 권유를 받았는데 거절했다. 내가 그때 조금만 고개 숙이고 장기 복무했더라면 이 고생 이 순간에 하지 않아도 된다. 또 전역 후 정보사령부에서 정보 군무원 7급을 특채한다고 원서를 내라고 한 것도 거절했다. 이유는 내 인생 내가 살아가야지 정보 사령관이 내 인생 책임져 주지 않는다고 거절했다. 그리고 군대의 퇴직금 1천만 원과 내가 군대생활 동안 모은 돈 1천만 원 모두 2천만 원을 달렸다. 그 뼈저린 후회를 담아 아래와 같이 다짐한다.

1. 나는 7급 군무원 시험 1회 응시하고 1회에 합격한다. 합격 못하면 다시 공사판 막노동으로 돌아간다.

2. 나는 군무원 10명 뽑으면 3등 이내에 합격하고 100명을 뽑으면 20 등 이내에 합격하도록 공부한다.

3. 나는 공부를 하되 7급 군무원을 쳐다보고 공부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7급 군무원 시험 출제하는 4급 서기관 위치에서 공부한다.

그가 7급 군무원으로 합격 후 신임 군무원에 대한 오리엔테이션과 직무 연수가 서울 삼각지의 국방부와 정보학교에서 이루어졌다. 정보학교는 정보장교라서 소위 시절 초급 정보교육을 받기도 했고 대위 때 고급 정보교육도 받았다. 하지만 국방부는 처음이다. 국방부 국방회관에서 접수하고 교육기간 동안 숙소를 국방회관 객실을 배정해 주었다.

모두 정보 직능이라 다들 전직이 정보 병과 예비역 소령도 있었고 예비역 대위는 다수 파고, 예비역 중위 예비역 중사, 그리고 병장으로 제대하고 복학하여 대학교 대학원 석사과정 이수한 자도 더러 있었다.

여기서도 자신이 만든 블랙 북 ‘나의 다짐’을 되새기며 공부했다. 정보 직능 군무원 오리엔테이션 및 직무 교육에서 1 등을 했다. 국방부 장관 표창과 부상으로 국방부 로고가 새겨진 시계를 부상으로 받았다. 200X 년 7월 1일부로 최재림 주사보는 정보본부 정보 분석실의 보직 명령을 받았다.

세월이 지나 200X 년 1월 2일부로 7급 주사보에서 6급 주사로 승진되었다. 승진과 동시에 보직 명령이 국방과학연구소 핵실험 탐지부서로 났다. 이곳은 한국의 지질자원 연구소와 미국의 U. C. L. A 대학 지질연구소와 연계하여 한반도 및 아시아권의 지질 연구와 북한, 중국, 러시아 등의 지하 핵실험 탐지를 하는 곳이다. 인공지진이라고 하는 지하 핵실험을 탐지 추적하는 부서다. 국방과학연구소에서 업무 파악이 끝나자 부서장에게 출장 계획을 올렸다. 부서장은 최 주사를 불렀다.

“출장계획서에 정보사령부 방문하겠다고 했는데, 우리 부서 업무와 무슨 연관이 있는가?”

“예, 제가 군무원이 되기 전 현역 복무 시절 서부전선 땅굴 시추부대에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뭘 모르기도 했고, 어차피 장기 근무자가 아니라고 타성에 젖어 제대하는 날까지 사고만 없이 지내자 그런 맘으로 근무해서 시추공을 통해 수집한 지하 음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정보사령부에 보냈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그 당시 수집 자료에도 차이 나는 날이 더러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 출장에 한 번 확인하고 출장보고서 올리겠습니다.”

화가의 그림도 만큼 보인다고 했든가 정말 정보업무도 아는 만큼 분석이 가능하다. 최 주사가 7급에서 6급으로 승진해서 새로운 보직이 지진과 핵실험 분석업무다 보니 업무 수행을 위해 지질학 박사로부터 지진에 대한 공부도 하고, 자연의 지진과 인공지진 핵실험에 대한 차이를 공부하고 나니 과거 현역 시절 땅굴 시추부대에서 지하의 미상 소리를 수집한 데이터가 새롭게 볼 수 있는 눈을 뜨게 된 것이다. 출장 일자는 8월 첫째 주 월, 화, 수 3일간을 출장을 잡았다. 그렇게 기안해서 국방과학연구소장 명으로 공문이 정보사령부에 도착하게 7월 마지막 주에 보냈다.

최재림을 아껴주던 조필원 정보 사령관은 임기를 마치고 2020 년 4월 정보본부장으로 영전했다. 최 주사가 정보사령부를 방문할 때는 정보 사령관 조필원 소장에서 남동신 소장을 지나 박윤희 소장이 정보 사령관을 하고 있었다. 외부 방문자의 공문 결재는 참모장 전결이었으나 과거 조필원 사령관과 최재림 대위의 인연을 생각해 인사과장 이태우 중령은 정보 사령관에게 공문 결재받았다.

“사령관님, 다음 주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3일간 국방과학연구소 최 주사가 우리 사령부를 방문합니다.”

“외부 방문자의 공문 결재는 참모장 전결사항 아니야?”

“예, 맞습니다. 참모장 전결로 처리하려고 했는데, 공문을 보신 참모장님이 최재림 주사를 알고 과거 조 사령관님이 서부전선 땅굴 탐지부대 방문하신 것을 기억하고 이 공문은 사령관님께 결재받고 손님 오면 사령관님 접견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셔서 사령관님 결재 올린 것입니다.”

“그래? 참모장은 그걸 어떻게 알지?”

“참모장이 그 당시 6사단 정보참모였다고 합니다. 5 군단 후방 검문 초소에서 전방 사단으로 정보사령관 전방 간다고 상황 전파를 했는데, 차량이 군용 지프차가 아닌 서울 번호판 승용차라 중간서 잘못된 보고라고 하고, 아니다 정보사령관은 원래 군용 지프차가 아닌 승용차가 관용차라고 해서 6사단 헌병들과 정보처 근무자들이 애를 먹었다고 하시더군요.”

“허참, 그런 인연이 있구나?”

“예, 그 사건 후에 우리 사령부에도 전방 방문용 1/4톤 지프차 한 대를 다음 해 예산에 반영해 군수에서 수령했습니다.”

“그런데, 조필원 사령관 시절 서부전선 땅굴 시추부대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야?”

“예, 원래 동부나 서부나 땅굴 시추부대는 부대장이 공병 대령이고 땅이 얼면 시추를 할 수 없어 개나리 피면 활동하고 낙엽이 우수수 지면 동면에 들어간다고 ‘개나리 부대’라는 별명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 그래서 그 부대를 쉬운 말로 개나리 부대라고 불렀지?”

“그 개나리 부대를 겨울철에도 바쁘게 만든 장교가 최재림 대위였습니다. 겨울철 신규로 시추를 할 수는 없지만 이미 시추한 시추공에 뭔가 투하하여 집음 기록을 주마다 회수하여 정보사령부로 제출했거든요.”

“야. 정말 기막힌 아이디어네?”

“예, 그런데, 그 기록에서 특별한 것을 발견 못했고 조필원 사령관 다음 김영철 사령관이 실효성 없다고 사업에서 제외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최재림 대위가 6급 군무원이 되어 과거 자료 다시 검토해 보겠다고 방문하는 것입니다.”

“그래, 그런 문제의식 있는 장교라면 군무원이 되어서도 뭔가 느낌이 오니까 방문하는 것이야. 비서실장에게 말해 내 시간 계획에 반영시켜.”

“예, 시간 계획 반영하겠습니다.”

8월의 뜨거운 날씨에 최 주사는 서초동 정보사령부를 방문했다. 여전히 정문 초병은 청원경찰 같은 복장으로 근무를 서고 있었다. 과거 최재림 대위 시절 정보사령부 방문했을 때도 위병 근무자들은 청원경찰 복장을 하고 있었다. 정문에서 군무원 신분증을 위병조장에게 제출했다.

“최 주사님, 방문 장소는 어디십니까?”

“수집부서요.”

“여기 위병소에 지시된 것은 사령관실로 되었습니다.”

“나는 사령관님 하고는 일면식도 없고 수집부서에 과거 자료나 확인하러 온 것입니다.”

“그럼, 잠시 기다리십시오. 비서실에 확인하고 통과시켜 드리겠습니다.”

“예, 기다리지요.”

위병조장은 비서실장에게 전화를 했다.

“예, 비서실장입니다.”

“충성! 위병조장 장재길 하사입니다. 국방과학연구소 최재림이라는 분이 오셨는데, 위병소 지시 공문은 사령관실로 되어있고 최 주사는 수집부서로 간다고 하는데 어디로 안내해 드립니까?”

“그분 계셔?”

“예, 바로 옆에 있습니다.”

“전화 바꿔봐.”

“예.”

“최 주사님 전화받아보십시오.”

“예, 최 주사입니다.”

“안녕하세요? 비서실장 장동건 소령입니다.

과거 조 사령관님과 최 주사님이 긴밀한 관계를 아시고 사령관님이 접견 후 수집부서로 가라고 해서 사령관님 시간 계획에 반영했으니 일단 비서실로 오십시오.”

“예, 알겠습니다.”

위병조장은 친절하게 사령관실로 안내해 주었다. 비서실서 5분 정도 대기하니 안에서 인터폰으로 손님 모시고 오라고 연락이 왔다. 간 주사는 조심스럽게 정보 사령관 집무실로 들어갔다.

“충성! 최재림 주사입니다.”

“어서 오세요. 반갑습니다. 이리 앉으세요.”

“예.”

“차는 커피, 녹차, 홍차, 인삼차 중에서 무엇으로 하겠소?”

“예, 커피로 주십시오.”

“당번병, 여기 손님은 커피 난 홍차.”

“예, 커피 한잔 홍차 한잔 준비하겠습니다.”

“인사과장에게 최 주사와 전임 조 사령관과의 근무 인연은 보고 받았소.”

“예, 그 당시 인사과장이 이태우 중령인데, 예하 부대장 갔다가 다시 인사과장 한다고 들었습니다.”

“국방과학연구소에서 우리 부대 과거 자료가 필요하다고 온 거요?”

“예, 공문에 올린 대로 제가 서부전선 시추부대 근무할 때는 뭘 모르니까 그냥 데이터를 한 주 한주 모아서 정보사령부 제출만 했는데, 전혀 차이점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제가 지질학 박사들로부터 지진과 인공지진이라고 하는 핵실험을 배우고 나니 과거 땅굴 시추부대서 정보사령부로 보낸 자료를 다시 확인한다면 차이점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잘 왔어요. 정보는 그런 문제의식 있는 사람이 그야말로 정보다운 정보를 수집하는 것입니다. 수집 과장에게 미리 지시했으니 최 주사에게 자료 협조 잘해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사령관님.”

인사를 마치고 간 주사는 사령관 집무실을 나왔다. 비서실장이 수집과 가는 길을 알려주었다. 알려준 대로 본청 현관을 지나 우측으로 철조망을 따라가니 수집부서가 나왔다. 그곳에 도 초병이 있었다. 방문증을 보여주며 수집과 방문한다고 했더니 안내 장교가 나왔다.

“충성! 최재림 주사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저는 학군 2X 기 김학민 대위입니다.”

“반갑다. 2X 기다.”

“우리 과장님이 학군 19기 문홍근 중령입니다. 아침 회의 때 국방과학연구원에서 학군 출신 군무원 한 분 방문 오는데, 저 보고 일일 안내 장교 맡으라고 했습니다.”

“문홍근 선배가 수집 과장님이야?”

“예, 그렇습니다. 과장님 잘 아세요?”

“그럼 정보장교가 더군다나 학군 출신 문홍근 중령을 모르면 간첩이지. 우리나라 역대 터키에 무관과 무관 보좌관 죄다 육사 출신만 갔었는데, 문 선배가 기록을 깼다는 거 아니야?”

“무슨 기록입니까?”

“정보학교 어학 시험에서 터키어 육사 출신 제치고 만점을 받고 시험문제 오류까지 지적하고 나왔다는 거 아니야?”

“세상에.”

“시험문제 정답이 2개로 써도 할 말이 없는 문제에 정답을 하나만 고르라고 해서 3번에 마킹했지만 1번도 답이 된다고 한 거야.”

“세상에?”

“그래서 시험 출제한 교관이 나중에 무관 보좌관 마치고 돌아오면 문 소령 당신이 터키어 교관해 그랬다는 거야.”

“그렇게 되었습니까?”

“그렇지 무관 보좌관 3년 마치고 귀국 후에 정보학교 교관하면서 중령 진급하고 전방 5사단 정보참모 마치고 정보사령부 간다고 소식 들었는데, 문 소령은 터기 무관 보좌관 하면서 터키로 무기 수출도 많이 했어. 그런 점들이 모두 고려되어 소령에서 중령으로 진급했는데, 오늘 만나게 되는군!”

최 대위의 안내를 받은 최 주사는 수집 과장 문홍은 중령에게 인사를 했다.

“충성! 2X 기 최 주사입니다!”

“어서 와, 반갑다.”

“예, 저도 반갑습니다. 늦었지만 중령 진급 축하드리고 수집 과장 된 것도 축하드립니다.”

“참 세월 빠르다. 개나리 부대 최 대위, 최 대위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세월이 5년이나 흘렀다.”

“그럼요, 선배님은 소령에서 중령 진급해 사단 참모 마치고 정보사령부 다시 근무하시는데요.”

“그래 내가 소령 수집 장교 하면서 터키 무관 보좌관 나가려고 시험도 보고 해서 좀 쉬려고 했는데, 최 대위가 기발한 아이디어로 나를 귀찮게 했지?”

“예, 오늘 다시 한번 귀찮게 해 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얼마든지 귀찮게 해도 좋은데, 국방과학연구소에서 공문으로 정보사령부 괴롭히지는 마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과장님 말씀이 얼마든지 귀찮게 하라 이놈아 하는 걸로 들리는데요?”

“하여튼 최재림, 한국적 정서에 안 맞는 성격은 여전하군?”

“예, 제가 초등학교 때 우리 선생님이 어머니를 학교로 오라고 하시더니, 재림이는 한국 교육제도에 안 맞는 사람입니다. 여력 되시면 캐나다나 싱가포르 같은 나라로 유학을 보내세요. 하더랍니다.”

“그래서 유학 보냈어?”

“아니요. 강원도 촌에서 소 키우고 논 20마지기 농사짓는 집 아들을 유학 보낼 돈이 어디 있습니까?”

“최 대위?”

“예?”

“뭐 하냐?”

“과장님 지시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시는 왜 기다려 손님 안내 장교가 알아서 손님 모시고 왔으면 커피나 녹차도 책임져야지?”

“예, 알겠습니다.”

김 대위는 커피, 녹차, 홍차를 준비해서 수집 3 과장실로 갔다.

“커피, 녹차, 홍차 세 가지입니다. 취향에 맞게 드십시오.”

“최 주사 뭘 로?”

“예, 커피로 하겠습니다.”

“그럼 난 홍차.”

“저는 녹차로 마시겠습니다.”

“김 대위 최 주사 커피 좋아하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어제 결산 때 과장님이 일일 안내 장교 지시하셨기에 전속부관 김학원 중위에게 미리 부탁했습니다.

비서실에 손님 최 주사 무얼 마시는지 알려달라고,”

“야, 김학민 넌 정보장교 하지 말고 보병 가서 인사과 근무나 해라. 완전 인사 주특기 적격이네?”

“정보장교는 주특기가 없다. 북한군 병종별 주특기 불문하고 육군, 해군, 공군 군별 무기 다 알아야 정보장교라고 과장님이 말씀하시고 이제 저 보고 인사 주특기 하라고 하시면 섭섭합니다.”

“그래, 김학민 대위처럼 닥치는 대로 일하는 장교가 정보 떠나면 정보 병과에 손실이지?”

“감사합니다. 좋게 봐주셔서.”

“그래, 김 대위는 나가 네 일 해.”

“예, 알겠습니다.”

김학민 대위가 나가자 수집 과장 문홍은 중령이 본격적인 대화를 시작했다.

“최 주사, 방문 목적이 서부전선 땅굴 탐지부대에서 정보사령부로 보낸 과거 자료 열람으로 되었는데, 그거 정보 분석에서 이미 정보가치 없다고 ‘D급’ 판정 내려 거의 파기 수준인데 다시 볼 이유 있어?”

“과장님, 솔직히 저는 서부전선 땅굴 탐지부대 시절에는 말이 정보장교지 장기 신청이 안 된 상태라 전역 일자만 달력에 하루하루 X표를 치면서 지냈거든요. 그래서 땅굴 탐지부대 자료를 단순하게 문서 연락 장교 수준으로 일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제가 직책이 국방과학 연구소에서 지진과 인공지진 지하 핵실험을 담당하고 보니 과거 그 자료도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불조심 표어처럼 의심이 가는 곳이 있어서 왔습니다.”

“의심이란?”

“매주 금요일 마감해서 정보사령부에 토요일 제출하고 돌아가 다시 다음 주 토요일부터 금요일 마감하고 제출하고 반복하다 보니 정말로 타성에 젖은 문서 연락 장교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예, 선배님. 지금 생각하면 그때가 후회도 되곤 합니다만 제가 장기 근무자가 아니라 땅굴 시추공에서 소리가 잡혀 봐야 뭐가 정보가치 있겠나? 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예, 미술 평론하는 사람의 글에 아는 만큼 보인다. 그런 말이 있습니다만 정말 제가 7급 주사보에서 6급 주사로 승진하고 보직이 지진과 인공지진이라는 핵실험 추적 분석을 담당하고 보니 전에 그냥 흘려버린 것도 새롭게 보입니다.”

“그래, 그럼 그 많은 자료 이리 가져오면 우리 사무실 사람들 일을 못하니 내가 특수자료 열람 증명서를 만들어 줄 테니 바로 전산실 별관 보존 문서 창고에 들어가서 직접 확인해.”

“감사합니다. 과장님!”

“그 대신 오늘 저녁은 최 주사가 사는 거야?”

“예, 알겠습니다. 과장님과 김 대위 저 3명의 저녁 해결하겠습니다.”

문홍은 과장은 자신의 군번 도장이 찍힌 특수자료 열람 증명서를 발급했다. 정보사령부는 전국에서 자료 요청이 많이 오는 곳이라 그럴 때마다 보존 자료를 이동하다 보면 분실 우려가 있어 대량의 자료를 검토하는 지원자에 대해서는 특수 자료실에 아예 들어가서 일을 볼 수 있게 별도의 출입증을 해주었다. 전산실 옆에 별도의 철조망으로 울타리 친 곳이 특수자료 보관실이었다. 이곳에 출입하는 사람은 일체의 카메라나 스마트 폰 녹음기 등은 물품 보관소에 보관하고 빈 몸으로 들어가서 자료 열람만 하고 복사는 반드시 복사대장에 복사자의 인적사항 자료명과 쪽수를 기재하고 복사했다.

그렇게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3일간을 하고 나니 서부전선 땅굴 탐지부대에서 정보사령부에 보고했던 2년간의 자료를 다 검토하고 간 주사 느낌으로 평소와 다른 감이 오는 것을 복사를 했다. 그것만으로도 출장의 목적 달성은 했다. 일을 다 마치고 마지막에 정보 사령관 박윤희 소장에게 감사의 말씀을 올리기 위해 비서실로 갔다. 박윤희 정보사령관이 말문을 열었다.

“그래 3일간의 출장 목적은 달성했소?”

“예, 사령관님 지시하신 덕분에 수집 과장이나 그 과의 김학민 대위 그리고 특수 자료실의 여자 군무원까지 친절하게 도와주어 의심 나는 자료 다 복사했습니다.”

“복사한 자료를 어떻게 이용할 것이오?”

“예, 대덕 연구단지에 한국지질연구소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100 년 동안의 일제 강점기부터 지진 관측 기록을 모두 유지하는 곳인데, 제가 의심 가는 일자를 그곳의 자료와 대조하면 뭔가 가치 있는 정보가 나올 것 같습니다.”

“음, 알았어요. 그러면 그것이 북한이 비공식적으로 국제 사회에 알리지 않고 실시한 비밀 핵 실험 알 수 있다 이거지요?”

“예, 그렇습니다. 아울러 국제 사회에 신고하고 실험한 것도 당일의 지진과 2-3일 후의 여진 등도 찾을 수 있겠습니다.”

“그럼, 우리 정보사령부는 조필원 사령관 떠나고 그 인프라 사운드 사업이 사라졌는데, 재개할 필요가 있다고 보나요?”

“그건 제가 지금 말씀드릴 수 없고 이 자료와 지질연구소의 자료를 비교한 후에 국방과학연구소의 다른 박사님들 의견과 소장님의 의견을 모아 필요성 있으면 공문으로 협조하도록 하겠습니다.”

“알았어요. 잘 가시오.”

“예, 사령관님, 정말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정보사령부에서 자료를 복사해 온 최 주사는 한국자원연구소의 일일 지진파 기록 보존 문서와 자신이 보고한 문건을 대조했다. 조금이라도 지진파의 기록이 남은 날은 O, 아닌 날은 X표를 하면서 정리했다. 특히 북쪽이 진원지로 표시된 날은 별표를 그리고 빨간 펜으로 기록했다.

9.11 테러 이후 조·미관계는 경색되었다. 북한이 미국에 직접적인 테러를 가한 일은 없었지만 부시 대통령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이란, 이라크와 동급으로 ‘악의 축(Axis of evil)'이라고 명명했다.

과거 클린턴 행정부에서 핵 개발 계획과 관련해서 북·미간에 합의를 했던 것에 반해 부시 행정부는 북한의 핵 능력과 관련한 북미 핵합의의 확실한 이행을 요구했다. 미국은 경수로 완공을 위한 핵심부품이 인도되기 전에 국제원자력기구(I. A. E. A)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모든 단계의 검증 조치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완전히 수락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부시 행정부는 미사일 계획에 관한 확인 조치와 미사일 수출 금지를 역설했다. 어떠한 미사일 협약에 있어서도 강력한 검증을 요구했다. 대량 살상 무기의 확산 문제는 물론이고 비무장 지대 내에 배치된 북한의 재래식 무기의 감축도 요구했다.

미국은 자신들의 요구가 북한이 진정성 있게 반응한다면 미국이 북한에 대한 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제재를 해제하겠다고 했다.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의 경수로 사업으로 지원된 중유, 금강산 관광의 수익금, 인도적 차원의 식량지원이 군사용으로 전용되지 않았다는 투명성 검증도 요구했다.

미국은 정보 및 핵 추적 전문가를 한국에 파견했다. 이유는 한국의 국방부, 안전기획부, 외교부 등의 고위 관리들에게 용산 미군기지 지하 벙커 정보 분석실에 초청하여 북한의 핵 시설과 위성사진 분석 결과를 브리핑했다. 영변의 원자로와 냉각탑은 물론이고 구룡강 옆의 모래사장에 넓은 운동장처럼 둥글게 표시된 고폭 실험 흔적을 보여주었다. 고폭 실험이 실제 핵무기를 연구하고 완성체로 결합하기 직전에 실시하는 실험임을 암시했다.

김정일은 김일성의 유훈 통치를 3년 동안하고 어느 날부터인가 ‘강성대국’을 들고 나왔다. 핵과 미사일 개발을 신속히 하기 위해 김정일의 현지 지도 많아졌다. 대미 협상의 우월적 지위를 확보하려고 하다 보니 핵 개발과 장거리 미사일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주요 외화획득 장소인 이란 등 중동지역에서 미사일 수출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기술력을 과시할 필요가 있었다. 또한 미국과 일본이 하루에도 몇 차례 내부를 위성으로 촬영하기에 김정일도 위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평안북도 금창리 지하 시설에 대한 핵의혹이 증폭된 것도 이 ‘강성대국’ 구호가 자주 등장할 때부터였다. 미국은 위성으로 지하 동굴의 입구, 저수지, 차량 진입로 등을 촬영해서 주석을 달고 지하 핵실험 시설이 분명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미국은 금창리 위성사진을 가지고 대한민국에 와서 제재를 설득했다. 미·북 간 협상을 통해 미국 조사단이 금창리에 방문하는 조건으로 미국은 60만 톤의 식량을 현물로 제공했다.

금창리 위성사진으로 동굴로 의심받은 지역을 조사단이 갔더니 동굴은 동굴인데 군사시설이나 핵 시설이 아닌 단순 동굴이었다. 동굴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인위적으로 치운 흔적도 없었다. 텅 빈 동굴 견학 대금으로 60만 톤의 식량을 미국은 제공했고 북한은 봉이 김선달처럼 돈벌이를 한 것이다.

최 주사가 정보사령부에서 복사해 온 자료를 다 분석한 결과 북한은 최소한 6 회 이상 지하 핵실험을 했다고 잠정 결론을 내렸다. 간 주사 혼자의 의견이면 공신력이 덜어지기에 국방과학연구소의 각부장들과 핵심 분석실의 실무자들을 모두 모이게 하고 자신의 연구 자료를 발표하기로 했다. 장소는 국방과학연구소의 소회의실로 하고 일시는 10월 12일 오후 2시로 했다.

최 주사는 자신이 발표 준비한 자료를 시간이 되기 전에 참석자 자리에 모두 배부했다. 그는 목을 가다듬고 침착하게 발표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분석실의 최재림 주사입니다. 바쁜 가운데 이렇게 시간을 내 주신 국방과학연구소의 소장님과 각 부장님, 과장님 감사합니다. 저는 제가 과거 서부전선 땅굴 시추부대에서 지하 소리음 청취했던 ‘인프라 사운드’ 자료를 정보사령부를 방문해서 묵은 자료 창고에서 특이한 것을 복사해서 한국 자원연구소의 지진파 기록 일지와 비교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놀라운 것을 발견했습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자신들이 전 세계에 핵실험을 하겠다고 공고하기 전 최소한 3-4년 전에 이미 소형 핵폭발 시험을 마친 것으로 일지에서 특이 사항을 발견했습니다.

먼저 2월 10일은 김정일 생일 2월 16일의 6일 전입니다. 이날 정보사령부서 복사한 자료에 평소보다 3 배 정도의 인프라 사운드가 청취되었고, 한국 자원연구소의 지진 일지에도 연구단지 기준 북동쪽 약 500 km 지점에서 강도 2.1의 지진이 관측되었습니다. 4월 15일 김일성 생일 이틀 전인 4월 13일에도 정보사령부 인프라 사운드 일지 역시 미상 지하 소리음 청취 30 여 개 북동 방향 강도 1.9의 지진이 탐지되었습니다. 진원지 추정 역시 대덕에서 북동 방향 600 km 떨어진 곳입니다. 4월 20일은 당 창군기념일 4.25의 5일 앞서는 날로 이날도 지진 강도 1.8이 탐지되고, 인프라사운드 청취도 30 회 이상입니다. 10월 9일도 마찬가지로 지진 강도 2.9이고 인프라사운드 30 회 관측되었습니다.”

최 주사의 발표가 끝나자 참석자 모두가 수고했다고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이로써 최 주사는 극소량 핵실험이 5회 이상 실시한 것으로 결론을 냈고 연구소 내 공감대도 확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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