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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프라사운드

07. 순교자의 소리

by 함문평

숫돌에 하산바 끝을 예리하게 갈았다. 도끼날도 잘 들게 갈았다. 머리카락이 잘릴 정도로 갈았다. 벌목공 200여 명이 20명씩 10개 조로 나누어 산으로 나무를 하러 떠났다. 사나흘 전 내린 눈이 딱딱하게 굳었다. 사람이 밟고 올라가도 발자국만 남고 눈이 발목 아래로 내려가지 않았다. 그만큼 단단하게 굳었다. 벌목에 처음 나선 신입자들은 반장이 벌목공 선임과 일대일로 짝을 맺어주었다.

“오늘 벌목 반원 신입은 6명이었다. 신입은 반장이 지정해 준 선임 반원 말을 잘 들어라!”

“예, 알겠습니다!”

“선임들은 신입이 넘어지거나 나무에 깔리거나 넘어져 다치는 일이 없도록 교욱을 잘 시키고 벌목해라!”

“예, 알겠습니다.”

오득철의 선임은 정세준이다.

세준은 사회에서 절도와 강간범으로 교화소에 온 인물이었다. 눈 위를 걸어가면서 세준은 득철에게 도끼로 나무 쓰러뜨리는 법을 일러주었다.

산이 비탈이기 때문에 도끼질을 먼저 아래서 위로 절반 정도 하고 나중에 위에서 아래로 도끼질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나무가 쓰러져도 앞으로 산 아래로 쓰러져 뒤에 있는 사람과 도끼질하는 자신이 안 다친다고 일러주었다. 득철은 그 말이 이해가 안 되었지만 말을 끊으면 선임이 화낼 것 같아 그냥 예 예 하고 눈길을 따라갔다. 산 중턱에 이르자 정세준은 굵은 나무 하나를 가리키며 득철이 오늘 쓰러뜨려야 할 나무를 일러주었다. 그 나무에서 20 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세준은 자신이 쓰러뜨릴 나무를 고르고 도끼질을 했다.

득철도 선임에게 들은 대로 도끼질했다. 나무 밑동 아래서 위로 도끼로 찍었다. 나무가 탱탱 얼어 도끼가 튕겨 나갔다. 장갑을 고쳐 끼고 다시 도끼질했다. 열 번 찍어 안 쓰러질 나무 없다는 각오로 도끼질했다. 나무 굵기의 반쯤 아래서 위로 찍고 쉬었다 땀을 조금 식히고 다시 위에서 아래로 찍었다.

우두득- 우두득 –하더니 정말 나무가 쿵! 하면서 아래로 쓰러졌다. 난생처음 해보는 통나무 벌목을 득철은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정세준도 자신의 나무를 찍다가 말고 득철의 나무 쓰러지는 것을 보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주며 잘했다는 표시를 해주었다. 득철은 첫날을 흐뭇하게 시작했다.

청진의 이민준 어머니 김채란 노파는 보안서에 출두했다. 민준이가 여행 증명서도 없이 청진을 떠난 후 여러 날 소식이 없자 보위부 청진시 지부에서 정도 어머니를 닦달했다.

“민준 모친 이름이 뭐요?”

“김채란입니다.”

“이민준이가 청진을 언제 떠났소?”

“작년 11월 초입니다.”

“어디로 갔소?”

“중국.”

“중국 어디요? 그 넓은 땅덩어리 다 돌아다니지 않겠지?”

“자세한 지명은 나도 모르오?”

“소문에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 나뭇잎 20 Kg을 민준이가 살 것이라는 소문이 이었는데. 모르오?”

“예, 작년 11월 그런 말을 했으나 도저히 가망 없는 말이라 생각했습니다. 생각해 보시오. 나뭇잎 20Kg 면 집채만 한 것을 무슨 수로 이동시킨단 말입니까?”

“알았소, 오늘은 이 정도 조사만 하고 돌려보내니 차후 아들이 집에 오면 바로 사회 안전부에 신고하오?”

“예, 알겠습니다.

이민준은 자신의 주머니에 들어 있는 20만 $를 만지작거렸다. 꿈이 아니다. 이 거금을 들고 청진 집에 가서 어머니 좋아한 고깃국에 이밥을 해드리고 싶었다. 지금이야 조선말을 알아듣게 하지만 민준이 어린 시절 할머니는 재일교포 할아버지와 결혼한 일본인 여자 아사코다. 서투른 조선말 때문에 설움도 많이 당했다. 그런 어머니에게 20만 $를 들고 바로 어머니께 달려가고 싶었다. 그런데 뭔가 기분이 찜찜했다. 여관방에서 나와 공중전화로 어머니에게 전화했다.

“여보세요?”

“어머니, 민준입니다.”

“얘야, 너는 별고 없지?”

“어머니는?”

“여긴 말도 마라. 너 없다고 청진 보위부에서 매일 닦달이다. 엄마는 너만 잘되면 난 아무래도 좋으니 넌 절대로 다시는 청진 올 생각 말고 한국이나 미국이나 일본이나 가고 싶은 곳으로 가거라. 특히 일본으로 가면 너의 외가를 찾아가면 많은 도움이 될 거다.”

“예, 알겠습니다. 어머니!”

이민준이 박영만, 곽승종, 윤성훈을 불러 밥이나 먹자고 했다. 장소는 역시 진달래 식당이었다. 4 명은 만나자 그동안 안부를 물었다. 민준이 말문을 열었다.

“내가 오전에 청진 어머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어머니는 나보고 다시는 청진에 오지 말고 남조선이나 일본 미국 어디든 가고 싶은 곳에 가서 공부도 더 하고 자유롭게 살라 하시더군. 청진은 이미 어머니에게 청진시 보위부 우병우 과장과 보안 지서 놈들이 어머니 괴롭힌다고.”

“야, 그럼, 나도 집에 보안 지서에서 찾아왔는지 모르겠는걸.”

“그래, 동무들 나가서 공중전화로 집에 안부 전화하고 들어와라.”

박영만, 곽승종, 윤성훈 3명의 사정도 민준이와 마찬가지였다. 남자가 여행 증명서도 없이 한 달 이상을 집을 비웠다고 모두 집에 오는 즉시 보안 지서로 신고하고 본인은 바로 출두하라고 했다. 집에서는 어차피 집에 와서 잡혀가면 고문을 당하니 외부에서 돈을 벌어 집으로 중간 수수료를 떼더라도 돈이나 보내지 절대 집으로 오지마라고 어머니가 말했다.

이민준, 박영만, 곽 승종, 윤성훈은 단고기 전골과 소주가 눈앞에 있지만 먹고 마시고 즐길 마음이 사라졌다. 너나없이 4명의 집에는 사회 안전부와 보안 지서에서 중국으로 온 자신들 때문에 집안 식구들이 고초를 겪었다.

청진으로 돌아간다면 분명히 그동안의 행적을 추궁당할 것이고 적당히 거짓말로 얼버무리면 거짓말했다고 고문을 혹독하게 당할 것이다. 민준이가 입을 열었다.

“야, 우리 어차피 고향에 다시 못 갈 신세인데, 달러를 소지한 것 청진으로 중개인 통해 송금하고 탈북자로 망명할래?”

“어디로?”

“뭐 각자 가고 싶은 나라로 가서 처음 몇 년 고생하고 제일 먼저 자리를 잡은 사람이 초청 이미 형식으로 한 나라에 모여 살면 되지?”

“어차피 가려면 남조선으로 가는 것이 정착금 많이 받고 좋은 거 아니야?”

“야, 남조선 좋은 건 김일성 수령님 살아생전 이었고 지금은 대우 별로래.”

“왜 그래?”

“한 마디로 탈북자가 너무 많아 희소성이 떨어진 거지. 빼먹을 정보도 이미 다 뺐다고 보고.”

“남조선 국가정보원서 탈북자 정보만 빼먹고 더 이상 이용 가치 없으면 몰래 처형을 하는 거 아니야?”

“아니야, 이거 다 탈북자 막으려고 당국에서 조작한 말이고 절대로 남조선서 탈북자 처형하는 일은 없는데, 가서 적응하기 힘들어 탈북에서 다시 탈 남한을 하여 캐나다나 유럽으로 간다고 하더라.”

“왜?”

“남조선서 탈북자는 취업하기가 조선족이나 몽골 출신보다 더 힘들고, 심지어 말투가 이북 사투리면 빨갱이라고 놀리고, 자식이 태어나 학교 가면 어린 학생들이 빨갱이 자식이라고 놀려서 탈북자 자식들은 학교 적응하기도 힘들고 놀림이 심한 곳에서는 애가 학교를 안 다닌다고 버틴다고 하더라.”

“야, 이거 북남 통일이든 남북통일이든 이래서 되겠나?”

“그래, 말로만 정치하는 놈들이 햇볕정책이고 뭐고 떠들지 남조선 인민들은 6.25 전쟁을 북조선이 먼저 남침을 한 것이라고 지금도 빨갱이로 미워하는 인민이 많다고 하더라.”

“그럼, 탈북해서 굳이 남조선 갈 필요 없이 차라리 미국이나 영국으로 가는 것이 좋겠네?”

“그래, 그래서 요즘 탈북자가 남조선으로 가는 수와 해외 영국이나 캐나다, 프랑스, 독일, 스웨덴 등을 선택하는 수나 반반이래.”

“민준아, 여기서 탈북하려면 어떻게 해야 해?”

“나도 모르지, 혼자는 가다가 죽기 십상이고, 무조건 중개인을 쓰는 편이 좋다고 하더라.”

“중개인은 어떻게 구해?”

“내가 아는 형님 중개인이 한 명 있거든 언제 한번 같이 보자?”

“그래.”

“승종이 넌 어디로 가고 싶어?”

“난 영국이지.”

“왜?”

“영어를 좀 하니까?”

“성훈?”

“난 노르웨이.”

“왜?”

“노르웨이 숲이 멋있을 거 같아서.”

“영만은?”

“난 뭐 영어도 못하고 일어도 못하니 남조선.”

“민준 너는?”

“나는 일본이다. 우리 아버지 재일교포 기업가였고, 어머니 일본인 아니니. 너희들이 나 어려서 째포라고 놀렸지? 그래서 간다면 일본으로 가고 싶다.”

“그래, 우리 남조선, 일본, 영국, 노르웨이 각국에서 살다가 제일 먼저 성공한 사람이 우리 모두 초청해서 모여 살자?”

“그런데. 중개인은 어떻게 구하고 나라 흩어진 다음 무슨 수로 연락하지?”

“우리가 피시방 가서 인터넷 우리만의 카페를 하나 만드는 거야.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가입 못하게 우리가 초대해야 가입되는 폐쇄형 카페를 만들고, 전 세계 어디서나 인터넷으로 카페 방문하고, 채팅하면 되지.”

“좋은 생각이네.”

“카페 이름은 뭐라고 하지?”

“우리 4명이니 4형제로 하자?”

“그래 좋다. 4명의 형제 4형제.”

“그래 그럼 내가 중개인 알아보고 연락할게.”

“알았어.”

정도는 북경에 아는 중개인에게 전화를 했다.

“안녕하세요? 저 이민준입니다. 형님!”

“그래, 오랜만이야, 별고 없고?”

“예, 그럭저럭 지내고 있습니다.”

“웬일이냐?”

“형님, 중개인 일 남조선으로 가는 중개인만 하시지요?”

“그건 왜?”

“제가 아는 동무들이 영국이나 노르웨이 쪽으로 망명을 원하는 친구가 있어서요.”

“그래? 그러면 내가 언제 가서 설명해 줄 테니 약속 잡아한 곳에 모이게 해.”

“형님, 그럼 이번 주 토요일 6시 30분에 연변 진달래 식당서 만나요?”

“그래, 토요일 진달래 식당서 만나.”

“예.”

민준이가 형님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강각성이다. 강은 원래 종교단체 <순교자의 소리(V. O. M : Voice Of Martyrs )> 선교사였다. 중국에서 선교활동을 하면서 탈북자에게 도움을 준 것이 문제가 되어 중국 공안에 체포되었다 풀려난 경험이 있다. 미국 영주권 소지자라서 중국에서 큰 처벌 없이 훈방 조치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아예 선교활동을 안 하고 전문적인 탈북자를 자유세계로 안내하는 중개인이 되었다. 순교자의 소리는 1967년 루마니아의 리처드 웜 브란트 목사가 설립했다. 리처드 웜 브란트 목사는 13년 동안 공산국가에서 종교적 신념으로 감옥생활을 했다. 전 세계 50개국 이상의 나라에 순교자의 소리가 있다. 한국은 2020 년 에릭 폴리 목사와 현숙 폴리 박사에 의해 설립했다.

토요일 저녁 6시에 그는 진달래 식당으로 박영만, 곽승종, 윤성훈을 불렀다.

북경에서 강 각성 중개인도 왔다. 민준은 양쪽을 소개 인사시켰다.

“형님, 제 동무 박영만, 곽승종, 윤성훈입니다.”

“처음 뵙습니다. 강각성입니다.”

“안녕하세요, 박영만입니다.”

“형님 말씀 민중에게 많이 들었습니다. 곽승종입니다.”

“윤성훈입니다.”

민준이 오늘 특별한 손님이 오신다고 해서 단고기도 황구로 특별히 준비했다. 상 위에는 단고기 전골이 진한 냄새를 풍기며 끓고 있었다.

“자, 이렇게 만난 것도 큰 인연인데, 자축하는 의미로 한잔 듭시다.”

“예.”

“우리 모두 자유세계 정착을 위하여!”

“위하여!”

“위하여!”

민준이 말을 이었다.

“우리 동무들에게 강 씨 형님을 소개하면 원래 미국 국적 가진 한국인 선교사인데, 선교하다가 탈북한 사람을 도와준 것이 죄가 되어 중국 공안에 체포되어 고생하신 분이야. 미국 시민권자라서 풀려났는데, 지금은 선교는 그만두고 전문적인 탈북자 도와주는 중개인으로 활동하고 있어.”

“지금 이민준 동무가 말한 것처럼 원래 직업은 선교사였는데, 지금은 선교일 보다 탈북자들을 자유세계 여러 나라에 안착시키는 중개인을 전업으로 하고 있어요.”

“형님, 혼자서 세계 여러 나라를 다 보내십니까?”

“아니, 대한민국 여러분 표현으로 남조선으로 보내는 일은 중개인이 너무 많아 나는 손의 떼고 한국 이외의 나라로 가는 것만 담당하고 있어요.”

“그럼, 우리 중에 남조선으로 가려면 어떻게 하죠?”

“내가 믿을 만한 남조선 담당 중개인을 소개해주면 그 사람 말을 꼭 따라야 합니다.”

“꼭 중개인을 끼고 탈북해야 합니까?”

“혼자 북한을 탈출해 오면 여기 중국 땅에서 말이 통해야 일을 하거나 어디 찾아갈 텐데, 방법이 없어요.”

“그럼, 한국으로 가는 것 이외의 영국이나 미국, 프랑스, 독일 등으로 가는 일은 어떻게 합니까?”

“내가 탈북자 개개인을 면담해서 그 사람 기술이 어떤 것이 있는지, 외국어 수준은 어느 정도 인지 파악하고 희망하는 나라에 있는 중개인과 미리 짜고 약속된 일시에 비행기를 표구해 비행기 태워 출국시킨 후 해당 나라 중개인에 국제전화를 걸면 그가 공항에 나가 마중하고 은신처 구해 숨겼다가 난민 담당 사무국에 진입을 하게 합니다.”

“난민 사무국에 들어가면 다 난민 지위를 얻나요?”

“아나요, 난민 되기도 하고 보류시키기도 해요. 그래서 해당 국가 중개인이 준비시키는 것을 철저하게 준비해서 답변 잘해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추진합니까?”

“일단 북한에서 두만강을 건너 중국에 탈출한 사람은 중국에서 만나는 모든 조선족, 한족, 공안이나 중개인나 다 흡혈귀로 봅니다.”

“피를 빨아먹어요?”

“예, 탈북자를 사람으로 대우해 주는 것이 아니라 돈으로 생각하거든요.”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생각해 봐요? 일단 북한을 탈출한 이상 보호해 줄 국가가 없는 무국적자가 됩니다. 정당한 취직을 할 수 없어요. 그러니 안 보이는 곳에서 일하는데 일만 시키고 노임을 안 주어도 주인에게 크게 항의할 수도 없어요. 항의하면 공안에 신고하면 바로 잡혀가서 북한으로 송환되었거든요. 탈북자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벌이 북송이거든요.”

“예, 청진서도 그런 소문은 많이 들었습니다. 여자는 완전 한족 마을 깊은 산골에 팔려 죽어라 낮에 일하고 밤에는 한족 노리개나 된다고.”

“예, 여기 중국에 탈북 여성들은 거의 얼굴 반반하면 다 낮에는 힘들게 일하고 밤에는 남자들의 성상대로 지낸다고 봐야 합니다. 그런 억울한 사정을 어디다 하소연을 할 수도 없고 이를 악물고 참으면서 난민 지위를 얻을 때까지 은밀하게 행동하고 참는 것입니다.”

“그럼, 강 씨 형님은 어떻게 탈북자를 처리합니까?”

“일단 탈북자를 만나서 공안이 잘 안 오는 곳으로 이동시키고 면담을 합니다.”

“면담 내용은요?”

“탈북을 혼자 했는지, 가족이 있는지? 영어나 다른 외국어는 어느 정도 하는지, 기술은 어떤 기술이 있는지 면담을 합니다.”

“기술은 어떤 것을 말합니까?”

“배관 기술이나 용접 기술 아니면 차량 정비 기술이 있나 확인합니다.”

“그런 기술 있으면 뭐가 좋아요?”

“일단 그런 기술 있으면 유럽에서 대우받고 일당도 단순노동보다 높게 받습니다.”

“아하, 그렇군요?”

“그런 면담 후에 최종적으로 어느 나라로 망명을 원하는가 물어봅니다.”

“원 하는 나라로 다 보내줍니까?”

“가능하면 해주는데, 난민을 받지 않는 나라거나 난민 심사가 까다로운 나라는 까다로운 내용을 알려주고 그 근처 다른 나라로 가서 상태 봐서 다시 탈출해 난민 심사받으라고 알려줍니다.”

“여기 4명 중에 누가 남조선 대한민국으로 가고 싶어 해?”

“예, 박영만 동무입니다!”

“박영만 동무는 왜 남조선으로 갈 생각이요?”

“예, 저는 외국어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솔직히 기술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남조선이 탈북자 정착금 가장 많이 준다고 해서 남조선으로 가려합니다.”

“그럼, 박영만 동무는 내가 남조선 안내하는 중개인을 별도로 소개해 줄 것이오.”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꼭 중개인을 써야 합니까? 나 혼자 그냥 버스 타고 택시 타고 남조선 대사관 쳐들어가면 안 됩니까?”

“그렇게 해도 되는데 중간에 중국 공안에 잡히거나 북한에서 중국에 활동 나온 안전원에 걸리면 바로 북송되어 교화소로 잡혀갑니다.”

“예, 알겠습니다. 안전하게 안내할 중개인 부탁합니다.”

“영국으로 가고 싶어 하는 동무는 누구요?”

“곽승종 동무입니다.”

“곽 동무는 영어 잘해?”

“예, 잘은 아니고 간단한 인사말과 공항에서 표 검사하고 통관하는 말은 할 줄 압니다.”

“그 정도면 아주 훌륭하지, 나도 일하기 편하고.”

“영국은 난민 심사 잘 나옵니까?”

“작년까지는 잘 나왔는데, 요즘 영국으로 다른 나라 난민도 너무 많이 몰리다 보니 요즘은 좀 깐깐하게 심사하지?”

“깐깐하게 하는 것은 어느 정도입니까?”

“영국에 공항에 내리면 영국에 있는 중개인이 나와서 맞이해 안전한 주택으로 이동하여 며칠 동안 먹고 같이 지내며 난민 심사 관청에서 물어보는 내용을 알려주는데, 일단 북한의 인공기와 남조선의 태극기를 보여주고 어느 국기냐고 고르라고 하거나 백지를 주고 그려보라고 합니다. 그리고 김일성 장군의 노래 불러 보라고 하고, 김일성 생일 언제나? 김일성 생일을 다른 말로 뭐라 부르냐? 정답은 태양절인 거 알지?”

“예, 그 정도는 알지요.”

“그래, 그 정도면 이상 없다.”

“일본은 누가 갈 마음 있어?”

“예, 접니다. 민준.”

“민준 일본 가는 이유는?”

“예, 우리 아버지가 재일교포입니다. 어머니는 일본 여자입니다. 저는 일본 가서 외가만 찾으면 적응하는데 이상 없을 것입니다.”

“그래, 그럼 민준은 내가 일본 비행기만 태워주면 이상 없겠구나?”

“아닙니다. 그래도 실패하면 안 되니 일본 중개인 부탁해요.”

“그래, 일본 중개인 붙여주지.”

“윤성훔은 어디로 가고 싶어?”

“예, 저는 노르웨이로 가고 싶어요.”

“노르웨이는 한 번도 보낸 적이 없는 나라인데, 왜 독일이나 프랑스 아닌 노르웨이야?”

“뭐랄까 노르웨이가 살기 좋을 것 같아서요.”

“그래. 노르웨이가 복지제도 잘 된 나라지.”

“그럼 노르웨이는 공항에 나올 중개인이 없나요?”

“없어. 독일이나 프랑스, 스웨덴 중에 한 나라로 보내주면 거기서 돈 벌어 노르웨이로 들어가 난민 신청해.”

“예, 그러면 스웨덴으로 가게 해주세요.”

“그래.”

진달래 식당에서 술이 얼큰하게 취해서 헤어진 중개인 강 씨는 북경으로 갈 수가 없어 연변의 장백산 모텔로 들어갔다.

안 되는 사람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고 모텔에 들어서 301호 방으로 들어가니 3층이 중국 공안이 나와 검문했다. 피할 수도 없어 301호 객실에서 그대로 검문했다.

“강각성, 주소가 북경으로 되었는데 이곳에 무슨 일로 왔소?”

“예, 아는 사람이 술을 한잔하자고 해서 왔습니다.”

“그런데, 북경으로 돌아가지 않고 모텔은 왜 왔어요?”

“술도 취했고 늦어서 한숨 자고 북경으로 가려고 모텔로 왔습니다.”

“여기서 만난 사람이 누구요?”

“그건 왜 물어요?”

“여기서 술을 마셨다고 하는데, 상대가 있어야 술 마셨다는 알리바이가 성립하지? 우리는 사실을 확인하는 겁니다.”

“이민준이랑 마셨어요.”

“이민준 한 사람이요?”

“아닙니다. 민준의 친구 3명과 같이 마셨어요.”

“그럼, 그 3명은 어디 있소?”

“그건 모르오. 그냥 술 마시고 헤어졌으니 그들이 어디 간 줄 어찌 알겠소?”

“어디서 마셨소?”

“진달래 식당입니다.”

“그럼, 이민준이라는 사람 전화 연락해서 이리 오라 하시오.”

“이민준을 왜 부르는 것이오?”

“아까 말했잖아, 강각성 당신 술 마신 알리바이 확인한다고?”

“공안이 모텔 검문하면서 모텔서 만난 사람과 같이 술 마신 사람도 검문하게 공안 규정에 나왔소?”

“거참 말이 많네?”

“이민준 연락하지요.”

“여보세요? 민준 동무 나 강 각성인데, 내가 장백산 모텔에 묵고 있는데, 여기 공안이 방 호실 점검하다가 내가 주소지가 북경인데 여기 왜 왔냐고 해서 술 마시러 왔다고 하였더니 같이 마신 사람을 불러오라고 하니 동생이 장백산 모텔로 왔다가 가라.”

“형님, 뭐 잘못한 거는 없고 단순 확인이래요?”

“현재는 그래.”

“현재는 그렇다면 뭐 다른 일도 있다는 거요?”

“아니, 이곳 공안은 자기 마음대로니까.”

“알았어요. 제가 장백산 모텔로 갈게요. 한 이십 분 정도 걸려요.”

“음, 기다리지.”

전화 통화를 마치고 20 분 정도 지나니 제 정도가 장백산 모텔에 나타났다. 정도는 모텔 주인에게 강각성 투숙객 만나러 왔다고 하니 301호실로 안내해 줬다.

“형님, 이게 뭔 일이요?”

“글쎄, 나도 황당해서, 북경으로 바로 가기에 술이 너무 취해 잠 좀 자고 술 깨면 가려고 들어온 모텔서 이 봉변이네.”

“내가 이민준인데, 왜 찾는 거요?”

“공민증 봅시다.”

“여기 있어요.”

“주소지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청진인데, 청진 떠나 여기 온 지는 얼마나 되었소?”

“한 달 됩니다.”

“그 한 달 동안 어떻게 지냈소?”

“돈 벌려고, 여기저기 다녔습니다.”

“청진 떠나 한 달 이상 중국서 머물러도 이상 없어요?”

“그럼요, 먹을 것이 없어 중국서 뭐라도 해서 돈 벌어 쌀이든 옥수수든 사 갈 것 아니요?”

“이민준 당신은 북한에서 중국 공안으로 체포해서 북송하라는 북송 체포자 명단에 들어 있소.”

“어디 북송 대상자 명단 좀 봅시다.”

“같이 공안 지서로 갑시다.”

연변 공안 지서에서 이민준은 오득남 오득철 형제와 행림상사의 과거 거래에 대한 추궁을 당했다.

청진서 나뭇잎 운반한 친구 윤 성훈, 박 영만, 곽 승종에 대한 추궁도 했다. 바로 박영만, 곽승종, 윤성훈이 체포되어 왔다.

한심하게 4명은 자신들의 수고비 10만 $와 20만 $를 제대로 써보지도 못해 보고 공안에 체포되어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에 넘겨졌다.

4명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적대행위자 쉬운 말로 간첩죄가 적용되었다.

중국 공안에 체포된 4명은 북한 국가 안전부로 인계되었다. 오득철의 형 오득남은 가족 일행이 모두 이미 북한을 탈출하여 남한으로 갔다는 것이 남한 내 활동하는 고정간첩에 의해 확인되었다.

오득철은 혜산 제3 교화소에서 이민준, 박영만, 곽승종, 윤 성훈이 수감된 전거리 교화소로 이송했다. 득철이 이송해 오자 총 5명이 총살형을 당하게 되었다.

전거리 교화소 영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지금 바로 반공화국 적대 행위자에 대한 공개총살이 있을 예정이니 전거리 교화소 전 직원 및 죄수들은 모두 사형장으로 모이라고 했다.

사형장은 전거리 교화소 후문 쪽에 위치했다.

제방 위에 사형당할 죄수들이 나무 기둥에 묶여 있었다.

5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사격수들의 사대가 설치되었고, 사대 뒤 20미터 정도 타원으로 길게 계단식 언덕이 있다. 죄수들과 전거리 교화소 직원들 2천여 명이 사형 장면을 구경하고 있었다. 사격수 지휘는 경비소대장이 했다. 경비소대장이 구령을 붙였다.

“사격수 앞에 총!”

“앞에 총!”

“사격수 사격 준비!”

“사격 준비!”

“탄알 일발 장전!”

“탄알 일발 장전!”

“사격!”

“탕! 탕! 탕! 탕! 탕!”

각 일발에 명중된 사형수들의 목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서부전선 땅굴 시추부대서 전역한 최 대위는 예비역 대위 최재림 신분으로 군무원 시험공부를 하였다. 서부전선 땅굴 시추부대 근무 시 정보 사령관 표창받은 인연으로 정보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근무했다. 정보 사령관이 정보사령부 인사처장에게 지시하여 예비역 대위 최재림을 정보 군무원 7급으로 채용하라고 지시해서 최재림은 199X 년 6월에 전역을 하고 7월 중순 정보사령부 인사과장 면담을 했다.

“과장님, 대위에서 소령도 진급 못한 놈이 군무원을 해서 뭐 합니까?”

“무슨 소리야? 사령관 지시로 최 대위가 서부전선 땅굴 시추부대서 정말로 창의적인 생각으로 근무해 정보사령부가 북한의 지하 핵실험을 미국이 위성사진으로 찍고 금창리 사찰까지 해도 허탕을 친 것을 조기에 탐지했는데, 그 공을 사령관님은 진급이나 훈장으로 최 대위에게 보상이 가야 마땅한데, 장기 복무자가 아니라 진급도 시킬 수 없었고 공개적으로 하면 안 된다는 햇볕정책으로 간 대위에 대한 조치를 아무것도 못 한 것이 아쉬워 사령관님이 자네를 정보 군무원 만들려는 뜻을 감사하게 받아들여야지?”

“예, 사령관님 뜻은 고맙지만 이제 전역했으니 민간인 신분으로 편하게 살고 싶습니다.”

“무슨 소리야? 사령관님 지시로 최 대위가 서부전선 땅굴시추부대에서 창의적으로 열심히 근무했는데, 단지 장기 근무자가 아니라고 표창도 밀리고 진급은 기회도 없이 전역한 것이 아까워서 정보사령부에서 군무원으로 채용해 정보 경험을 살려 근무하게 하려는 것인데, 사령관님 뜻을 저버리는 거야?”

“예, 사령관님 뜻은 고맙습니다만 사령관님이 제 인생 전부를 책임져 주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야 그렇지, 사령관님은 최 대위를 군무원 만드는 것만 해주시는 거고 그다음은 최 대위 인생 최 대위 스스로가 책임이지?”

“그러니까 저는 비록 짧은 기간이나마 대위까지 근무한 경험으로 더 이상 군대나 군무원 생활은 싫습니다. 사회에서 힘이 들게 돈 벌더라도 어느 정도 벌고 제가 식당을 하거나 청과상의 가게 하나 내서 청과물 상회를 하더라도 개인 사업을 하지 조직의 일원으로 조직의 이익과 목표를 위해 희생하는 기계 부품 같은 인생을 그만 살고 싶습니다.”

“예비역 대위 최재림, 너 정말 고집이 세구나! 남들은 군무원 7급 못해서 난리인데, 노량진 가봐 9급 행정직, 경찰직, 군무원 등등 줄져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거야 알지요?”

“정보 사령관이 7급 그것도 정보 직위서 근무한 사람 아니면 풀 수 없는 시험문제 출제하게 하고 응시하라고 하는데도 거부하는 최재림 마음을 모르겠다.

평양감사도 자기가 싫으면 할 수 없는 노릇 나는 사령관님에게 면담했으나 본인이 고사한다고 보고하마. 잘 가라.”

“충성! 안녕히 계십시오. 과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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