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객 여러분! 저희 비행기는 곧 인천 국제공항에 착륙하겠습니다. 비행기가 정말 정지할 때까지 벨트를 풀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희 대한항공을 이용해 주신 승객 여러분에게 감사드리며 가시는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가십시오.”
드디어 한국이다.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오득남, 박은경, 오혜령은 대한민국에 온 것이다.
득남 일가족은 중국에서 대한민국을 직행하는 비행기를 타고 탈북에 성공했지만 다른 탈북자들은 북한에서 두만강을 건너 멀리 몽고를 돌아 라오스를 경유 베트남에서 대한민국 대사관에 망명 요청하는 사람이 많았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식량부족으로 탈북자가 계속 증가했다. 집단으로 탈북사태가 발생한다면 공화국 체제 붕괴로 이어질 것을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두려웠다. 탈북자를 단속하기 위해 국경경비를 더욱 강화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탈북자의 발생을 체제 붕괴의 적신호로 생각했다. 탈북자를 정치범으로 처리했다. 김정일은 간첩 하나 잡는 것보다 탈북자 하나 막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교시했다. 조-중 국경 지역을 전쟁지대로 선포했다. 국경 지역에 지뢰를 매설하고, 국경경비를 전담하는 10군단을 창설했다. 국경선을 연하여 2킬로미터마다 1개의 감시초소를 설치했다. 지방 주민을 감시하는 사회안전성을 인민보안성으로 개칭을 하고 격을 높였다.
처음에는 효과가 있었으나 10군단 초소장, 중대장들이 중국에 드나들며 돈을 많이 버는 무역 일군들에게 뇌물을 달러로 받는 일이 늘어나자 감시초소는 뇌물로 구멍이 숭숭 났다.
연변에서 행림 상사 안 부장의 말을 듣고 북경으로 가서 대한민국 대사관에 망명 신청을 하고 한 달 후의 한국행이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인천공항은 아름다웠다. 인천공항에 내리자마자 국가정보원에서 보낸 미니버스를 타고 다른 탈북자들과 같이 이동했다.
국가정보원에서 가족 사항과 북에서의 행적을 신문하고 탈북 이유와 경로를 신문했다. 일주일의 기초조사를 마치고 득남은 남자 하나원이 있는 양주로 이송되고 박은경과 오혜령은 여자 하나원이 있는 안성으로 이송했다.
황가영 아버지 황학수는 사리원탄전 광부였다. 사리원탄전은 황해도 봉산군 모정면과 영천면에 걸쳐있는 탄광이다. 일제강점기 시절에 메이지광업회사(明治鑛業會社)가 채굴권을 받아 연간 5만 톤 정도를 생산했다. 해방 후에는 점점 채탄량이 줄어들었다. 그래도 광부들이 있으니 채탄을 계속했다. 채굴된 갈탄은 경의선 마동역(馬洞驛)으로 모여져 전국 필요한 곳으로 운송되었다.
황가영 어머니 신난숙은 마동 인민학교 교원이었다. 어떻게 인민학교 교원이 광부와 결혼했을까 생각되지만 가영의 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는 어려서 같은 서당에서 공부를 해서 아들이든 달이든 낳으면 서로 결혼시키자고 약속을 했다. 난숙은 그냥 부모님이 정해준 남자와 만나 무덤덤한 부부생활을 했다. 그러니 애틋한 사랑도 없고 의무감으로 살다 보니 남아선호사상이 잇지만 가영 다음으로 아이를 낳지 않았다.
아버지가 광부고 어머니가 교원이라 어린 시절은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 1994년 7월 8일 김일성 수령이 서거하고 이어 큰 물 피해와 가뭄으로 3년 연속 흉년이 들었다. 직장에 다니는 부모님은 시간을 낼 수 없어, 열일곱 가영이 겁도 없이 두만강을 도강했다. 중군 단동, 연변, 선양 지역을 다니면서 돈벌이를 해서, 살이고, 옥수수고 먹을 것을 구해 사리원 부모님을 먹여 살렸다.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이 붕괴하자 경제가 급속히 나빠졌다. 사회주의국가들 간의 서로 돕는 우의친선 상품거래가 무너졌다.
1970년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민소득이 대한민국보다 높았다. 사회주의국가들 사이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성공한 나라 중 하나였다. 사회주의 국가들이 김일성 수령을 찾아뵙고, 조선민주주의 따라 배우기를 할 정도였다.
1995 년 11월 중순에 두만강을 건넌 가영은 인신매매 중개인에 속아서 돈벌이가 좋은 곳을 알려준다기에 따라갔다가 조선족 나이 50이 넘은 남자와 결혼했다. 매매혼을 한 것이다. 중국 돈 800위안을 받았다.
열일곱 처녀가 50대의 남자와 만나 딸을 하나 낳았다. 6년을 살다가 대한민국으로 들어올 결심을 했다. 남편 모르게 조금씩 돈을 모았다. 그 돈으로 내몽고 국경을 넘으려고 중개인을 샀다. 그러다 공안에 적발되어 조선으로 송환되었다.
교화소에 들어가 3년 동안 노동 교화를 하고 만기 출소했다. 출소하자 다시 탈북했다. 중국 연변, 선양을 전전하며 식당 주방 보조, 노래방 도우미 등 닥치는 대로 일하고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오직 대한민국으로 혼자 탈출해 들어가기에 너무 험난하기에 중개인을 이용하자고 했다.
순교자의 소리 선교사 강각성을 만났다. 강 선교사의 도움으로 교회 뒤에 신입 교인들을 교리 공부를 시키려고 구한 집에 탈북자들을 숨겨주고 밥을 먹여주고 있었다. 순교자의 소리 서울과 미국 순교자의 소리 도움을 받아 숨기고 있는 탈북자들의 비행기 표나 배표가 구해지면 대한민국으로 보냈다.
대한민국으로 직행이 불가할 때는 미얀마, 태국을 경유 들어왔다. 2000 년 3월 미얀마, 태국을 경유 대한민국에 들어오는 중에 허원재를 만났다. 같은 황해도 출신이라서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대한민국에 들어오자마자 대성공사에서 조사를 받았다. 아버지가 광부이고 어머니가 교원이면 좋은 토대인데 왜 탈북을 했나? 그 말속에는 위장 탈북 혹은 간첩이 아니냐? 는 것이 숨어있었다. 조사 중에 거짓말 탐지기 테스트도 받았다.
허원재는 사정이 달랐다. 그는 학생 시절 운동을 잘해서 도민체육대회에 사리원 대표로 육상 단거리와 중거리에 참가했다. 그런 그를 알아본 NK지식연대 정보팀장 조정식이 심부름을 시키고 수고비를 주었다. 조선으로 송금을 하거나 간단한 물품을 전달하는 것을 했다. 연변, 선양, 단동을 오가며 최신 정보도 물어오고 다른 탈북 중개인의 동향도 아는 대로 조정식에게 알렸다. 조정식은 그런 정보를 대한민국국가정보원에 넘기고 돈을 챙겼다. 점점 난도 높은 일을 시켰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군인들의 군사 교범을 훔쳐오라는 것을 훔칠 수는 없고 디지털카메라로 모든 페이지를 찍어서 USB로 넘겨주었다.
하나원 선생님 중에는 자신들처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탈출하여 대한민국 사회에 적응한 사람도 있었다. 하나원에서는 대한민국인으로 정치 경제 기본지식과 조선과 다른 점에 대해 집중 교육이 이루어졌다.
곽승종, 박영만, 윤성훈 3명은 눈 속에서 눈을 헤치고 채취한 나뭇잎을 풍계서 북쪽으로 하산했다. 청진에서 풍계로 들어올 때 만났던 군인들을 다시 안 만나려고 우회했다. 들어올 때 약초를 구한다고 들어와서 나뭇잎을 가지고 나가면 의심받게 생겼다.
아예 생소한 길을 택해서 처음 만난 군인에게 집에 퇴비를 하려고 나뭇잎을 가져간다고 변명하려 했다. 산속에서 식량을 미리 준비해 온 것이 없었기에 칡뿌리를 캐서 허기진 배를 달랬다. 걷다가 얼지 않은 물을 발견하면 물을 배불리 마셨다. 그렇게 걸어가다 보니 어느새 국경선에 도달했다. 군인들 초소를 어떻게 통과할까 걱정이 되었다. 앞에 가던 박영만이 바위에 걸터앉자 모두 바위 주변에 앉았다.
“야, 저 앞에 군인 초소가 보이는데, 어떻게 통과하지?”
“뭐 솔직하게 집에 나뭇잎 퇴비가 조금 모자라 채취한 것이라고 말하지?”
“아니야, 중국에서 아는 사람이 나뭇잎 가져오면 1kg에 1$씩 준다고 해서 겨울이라 뭐 돈벌이할 곳도 없어 이거라도 해서 식량 해결하는 것이라고 말하자?”
“믿어 줄까?”
“우리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만약에 압수당하면 어떡하지?”
“왜 압수해?”
“군인들에게 압수당한 것이 한두 건이야?”
“야, 이렇게 하자 우리 셋 중에서 한 명이 먼저 가서 통과하면 통과하고 압수당하면 뒤에 가는 사람은 다른 길로 우회하면 되잖아?”
“누가 먼저 갈 건데?”
“내가 먼저 가서 손짓하면 오고 초소에서 한 시간 이상 지나도 연락 없으면 다른 통로로 이동해 알았지?”
“그래, 영만이 선발대 역할 잘해?”
“그 대신 내가 압수당해도 민준에게 돈 받으면 우리 3명이 균등 분할하자?.”
“당연하지?”
박영만은 비료 자루에 담은 나뭇잎을 들고 군인들이 근무서고 있는 통문으로 갔다. 초소 근무병이 불렀다.
“동무, 동무! 이리 와라!”
“예, 부르셨습니까?”
“공민증들 봅시다.”
“예, 여기 있습니다.”
“청진시라 청진 사람이 국경선에 왜 왔소?”
“예, 아는 형님이 중국에서 박사이고 비료를 연구하는데, 우리 고향 청진에 딱 맞는 비료를 연구한다고 청진 나뭇잎을 좀 가져오라 해서 가져다주는 길입니다.”
“나뭇잎 속에 마약이나 다른 물건 숨겼으면 동무들은 바로 교화소로 갈 줄 아오.”
“예, 그런 것 없이 순전히 나뭇잎만 들어있습니다. 다 쏟고 다시 담겠습니다. 군관 동지?”
“그래, 다 쏟고 검사 후에 다시 담으시오?”
“예.”
영만은 들고 온 마대의 나뭇잎을 초병이 보는 앞에서 쏟았다. 다시 담았다.
“확인했으니 통과하시오!”
영만은 손을 흔들어 성훈과 승종을 오라고 했다.
“저 동무들은 뭐요?”
“예, 저 혼자 가져가면 양이 얼마 아니 되어 동무들이 나뭇잎 같이 운반해 준다고 나선 중학 동창입니다.”
“저 동무들 것도 마찬가지요. 여기서 다 쏟고 다시 담으시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성훈과 승종이 도착했다.
“성훈이 승종 여기다 가져온 마대 다 쏟고 군관 동무 검사받고 다시 담아라!”
“알았습니다!”
곽승종과 윤성훈이 나뭇잎 검사를 마치고 다시 마대에 담았다. 3 명은 그렇게 국경선을 넘었다.
민준 어머니가 가르쳐준 주소를 물어물어 찾아갔다. 오랜만에 4명이 만났다.
이민준, 박영만, 곽승종, 윤성훈 이들 4명은 모두 청진에서 인민학교와 중학교를 함께 다닌 동무이다. 이렇게 국경선을 건너 중국 땅에서 재회하였다.
민준은 안 부장에게 전화했다.
“예, 안광수입니다.”
“부장님, 이민준입니다.”
“오랜만이야, 연락 없어 궁금했는데. 어디야?”
“여기 잘 부장님 모르는 곳인데, 중요한 건 부장님 요구하신 나뭇잎 3Kg 구했습니다. 여기 압록강 건너 중국인 농가인데 버스도 안 다니는 곳입니다. 부장님 직접 차를 몰고 오셔야 합니다.”
“알았어요. 주소지 문자로 보내요. 내가 차 몰고 찾아가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이민준은 압록강 건너 단동 농가 주택 주소를 문자로 보냈다. 2 시간 정도 기다리니 하 부장이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이민준 선생!”
“안 부장님, 반갑습니다!”
“거의 포기할 뻔한 단풍잎 사업을 성공시켜 감사드립니다.”
“부장님, 이번 나뭇잎 운반 각 1Kg 책임지고 운반한 친구들입니다. 왼쪽부터 박 영만, 곽 승종, 윤성훈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하태성 부장입니다.”
“반갑습니다. 박영만입니다. 부장님 좋은 분이란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반갑습니다. 곽승종입니다.”
“반갑습니다. 윤성훈입니다.”
“여기 오래 있으면 위험하니 빨리 이동합시다. 어서 제 차에 타십시오.”
“예.”
안 부장이 운전석에 이민준이 조수석에 그 위에 3명이 탔다. 나뭇잎 마대는 트렁크에 실었다. 안 부장은 인원이 타고 나뭇잎 마대가 실리지 바로 출발했다. 차는 전력으로 달려 연변 진달래 식당으로 향했다. 안 부장은 진달래 식당에 전화로 예약했다.
“예, 진달래 식당입니다.”
“사장님, 저 행림 안 부장입니다. 4명이 한 30분 후에 도착 예정입니다. 단고기 전골과 수육 준비해 주시고 소주 시원하게 해 주세요.”
“예, 알았습니다.”
진달래 식당에 차가 도착했다. 하 부장은 3명을 내리라고 하고, 인원이 다 내리자 민준, 득남에게 택배 보낼 곳에 가서 나뭇잎 택배 보내고 올 테니 일단 음식 준비되는 대로 드시라고 했다. 연변에 동북 화물에 가서 택배 박스를 구해 3Kg의 나뭇잎을 수신자 대한민국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로 113번지 행림상사 유영희 사장으로 하고 발신자는 연변의 장영하라고 했다. 장영하는 하태성 부장이 만약을 대비해 연변서 사용하는 위조 공민증 이름이었다. 발송하고 안 부장은 진달래 식당으로 왔다.
“오래 기다리게 해 미안합니다.”
“일없습니다!”
“힘들게 구해온 나뭇잎을 혹시 중국 공안이나 북한의 국가보위부에 압수당하면 안 되기에 바로 택배부터 보냈습니다.”
“내일이나 모레면 한국서 받겠죠?”
“예, 정말 화물운송은 나날이 발전합니다.”
“자, 음식 앞에 놓고 수다를 떨면 음식에 대한 예의가 아닙니다. 한 잔 듭시다. 우리 모두 <단풍잎> 사업 성공을 위하여!”
“위하여!”
“위하여!”
“청진서 풍계 이어서 국경선 넘는데 고생 많으셨죠?”
“예.”
“정말, 풍계는 완전 산악 계곡이 군사기지처럼 삼엄합니다.”
“그렇겠지요. 가장 극비 중의 극비 핵실험 장소니 얼마나 보안을 위해 당에서 국가적인 노력을 하겠습니까?”
“그래도, 여기 세분의 선생들 덕분에 행림 상사는 회사 폐업의 수모를 겪었지만, 책임완수를 해서 너무나 기쁩니다.”
술이 한 순배 돌아가자 박영만이 험난한 군인 초소 통과 이야기를 꺼냈다.
“청진서 비닐 마대만 휴대하고 풍계까지 가기는 갔는데, 진입로에 군인 초소가 너무 많이 있어서 돌아가려 하는 순간 한 군인 초병이 부르더군요. 초소 앞에 가니 우리 3명 공민증 검사와 여행 증명서를 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군인 양반 이미 고난의 행군 시기에 당에서 국가 배급이 중단되어 여행 증명서고 뭐고 식량 인민들이 알아서 해결했는데, 무슨 여행 증명서요? 했더니 공민증을 자기 초소에 맡기고 풍계서 나올 때 찾으라 하더군요.”
“그래서 공민증 냈습니까?”
“미쳤습니까? 내면 우리가 나뭇잎 채취 후 나오는 길도 그리로 와야 하는데. 제가 대들었지요. 당에서 국가서 식량 해결 못해 우리가 겨울에 먹을 것을 구하러 왔는데 나가는 길은 이리 갈지 반대로 산을 넘을지 모르는데 어떻게 여기에 공민증 맡기냐고 항변했더니 그냥 공민증 돌려주더군요.”
“나뭇잎 눈을 헤치고 담느라 고생 많았겠습니다.”
“예, 눈이 많이 쌓인 곳은 1미터 이상 눈이 있어 최대한 양지쪽에 가서 나뭇잎을 채취했습니다.”
“국경경비초소는 어떻게 통과했습니까?”
“혜산 팀은 군인 초소에 300$ 뇌물 고이고 통과했다는데요?”
“우리도 안 되면 뇌물 고일 작정으로 1$짜리 200$ 정도 준비하고 떠났습니다.
박영만 동지가 대담하게 국경초소 군인들에게 청진 아는 형님이 중국에서 비료 연구하는 과학자인데, 청진 풍토에 가장 적합한 비료 연구해 준다고 부탁해 청진 고향의 나뭇잎을 가지고 간다고 말하니 별 의심 없이 통과시켰습니다.”
“정말 대단한 일을 하셨습니다.”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이 안 부장님이 그동안 우리 친구 이민준을 잘 챙겨주고 뭐든지 가격을 높게 쳐주어 일이 성공한 것입니다.”
“예, 그래서 고생하신 3명 선생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제가 택배로 보낸 나뭇잎 받아보면 사장님이 제 계좌로 돈을 바로 입금할 것입니다. 돈이 들어오면 바로 출금해 여러분에게 나누어 드리겠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우리는 나뭇잎이 이런 돈벌이가 되는 줄 몰랐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상부의 명령이니 시키는 대로 수행할 뿐입니다. 저도 생수 지난번 서울로 보내고 혜산 팀이 그렇게 허망하게 무너질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예, 저희 청진 팀은 특별히 조심할 것입니다.”
“자, 그럼 전 숙소에 가서 오늘 여러분이 가져온 물목에 대해 서면보고를 해야 하니 이만 먼저 일어서겠습니다. 남은 음식과 소주는 이민준 선생 주관으로 더 드시고 부족하면 사장님께 요구하세요. 돈은 제가 차후 정산하겠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안 부장이 나가자 이민준이 술을 더 시켰다. 이야기꽃을 피웠다. 어린 시절 청진서 바닷가에서 놀던 이야기, 고난의 행군 시기에 산에 가서 산나물 채취했던 이야기, 먹을 것이 없어 ‘고북’이라 불리는 흙덩이를 먹고 피똥을 싸던 이야기, 김일성 사망하고 엉엉 울던 이야기, 군대 입대 전 온 동네 쏘다니며 술 마신 이야기 등 밤을 새워 이야기해도 끝이 날 것 같지 않던 것을 진달래 식당 사장이 영업시간 종료를 알리자 끝이 났다.
이민준은 자기가 묵고 있는 여관으로 3 명 친구들을 데려갔다. 들어가면서 가게서 소주 3병과 오징어채를 싸서 들어갔다.
여관방에서는 유리컵에 소주를 나누어 마셨다.
“야, 정도야 우리가 가져온 나뭇잎 얼마나 쳐줄까?”
“20Kg에 70만 $였으니 3Kg 면 20만 $ 이상 주겠지?”
숙소로 돌아온 안 부장은 유영희 사장에게 공문을 작성해 팩스로 보냈다.
(대외비)
수 신 : 행림상사
참 조 : 영업부장
제 목 : 단풍잎 매입 보고
----------------------------------------------------------------------------
1. 안녕하십니까? 행림 상사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귀사에서 문의한 단풍잎에 대한 매입 보고를 아래와 같이 하오니 결재 바랍니다.
2. 내 용
최초 단풍잎을 귀사에서 20kg 요구하였습니다만 겨울이라 이곳에 눈이 너무 많이 내려 인부를 구할 수 없어 3kg만 구했습니다. 단풍잎은 오늘 동북 화물 택배로 발송했습니다. 화물 받으시면 단풍잎 대금을 입금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끝.
199X. 1.21.
단동에서 장 영 하 드림
FAX 전문을 받은 이시연 전무는 유영희 사장에게 보고했다.
“사장님, 하 부장 보고입니다.”
“그래, 뭐라고 왔어?”
“일단 20Kg는 아니고 3Kg 구했습니다!”
“야, 정말 하 부장이나 오득남 밑에 있는 행동대원들 물건이네!”
“예, 거의 혜산 팀 교화소 가고 행림 상사 폐업하고 접을 사업을 이 정도 해낸 것은 대단합니다.”
“그래, 방사능 잔류량 검출 안 되려면 20Kg도 검출 안 될 것이고 검출되면 3Kg도 검출될 거야.”
“예, 그렇습니다.”
“단풍잎 대금은 얼마나 보낼까요?”
“산술적으로 하면 20 Kg에 70만 $니까 3 Kg 면 나누기 7은 10만 $인데 사장님 좀 더 쓰시죠?”
“그래, 다들 목숨 걸고 한 일들이니 욕 안 먹게 주어야지, 50만 $ 보내서 이민준 선생 20만 $를 주고 나중에 운반한 3명에게 각 10만 $ 주도록 해. 안 부장은 본인 경비 10만$에 격려금 5만$ 추가해 주고.”
“예, 알겠습니다.”
유 사장실에서 나온 이시연 전무는 국제전화를 걸었다.
“예, 장영하입니다.”
“그래, 수고 많다. 장영하, 내 전화는 그냥 안광수로 받으면 안 되냐?”
“아닙니다.
실수하면 안 되니 아예, 모든 국제전화는 장영하로 받습니다.”
“그래, 보낸 팩스 사장님 보고 마쳤고, 사장님 기뻐하시면서 50만 $를 보내 이민준은 20만 3명은 각 10만 $ 하 부장은 숙식비 10만 $ <단풍잎 작전> 성공 격려금 5만 $ 총 65만 $ 보낸다. 70만 $에서 5만 $ 남는 것은 행림식구 서울서 회식한다. 이상!”
“예, 감사합니다. 전무님!”
다음 날 아침 9시가 넘자 하태성 부장은 연변 중심가 은행으로 갔다. 통장을 정리했다. 신규 입금 55만 $가 찍혔다. 50만 $를 인출했다. 진달래 식당으로 이민준 외 3명을 모이라고 했다. 식당에 4명 단고기 전골 주문을 했다. 12 시에 만나 점심을 먹으면서 이야기하자고 했다.
이민준은 박영만, 곽승종, 윤성훈이 묵고 있는 장백산 여관으로 갔다.
“야, 일어나!”
“지금 몇 시야?”
“10시 30분!”
“할 일도 없는데 좀 더 자자?”
“야 할 일 없는 것이 아니라 엄청 중요하다. 너희들 나뭇잎 가지고 온 수고비 남조선 유 사장님이 돈을 보내왔다 12시 진달래 식당에서 배불리 먹고 돈도 받는다. 알았지?”
“야! 이게 꿈이야?”
“네 손등을 꼬집어 봐라 아픈가 안 아픈가?”
“아픈 것을 보니 꿈은 아니다!”
부지런히 씻고 양치질하고 면도도 했다. 옷은 허름해도 몸은 때 빼고 광내고 진달래 식당으로 갔다. 진달래 식당 사장이 배시시 웃으면서 일행을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이민준 사장님!”
“우리 사장 아닌데?”
“아이고 사장이 별건가요? 우리 진달래 식당 단골이면 사장님이십니다!”
“우리 보고 오늘 매상 많이 올리라 이 말이네~~”
“예, 맞습니다. 오늘 술 좀 많이 팔아 주세요. 헤헤 ”
안방 깊숙한 곳에 전골과 수육이 자려지고 소주도 4병 올려 있었다.
“어서 오세요, 선생!”
“반갑습니다. 하 부장님!”
“반갑습니다. 장 선생님과 두 분 이 선생님!”
“반갑습니다. 부장님!”
모두 자리에 앉자 안 부장이 입을 열었다. 술 취하면 하고 싶은 말을 하다가 잊을 수 있다고 술을 마시기 전에 다 한다고 말을 했다. 주요 내용은 서울 유영희 사장이 여기서 보낸 택배 나뭇잎을 잘 받았고 여러분 수고비로 50만 $를 보냈다.
이민준 선생은 이 사업 최초부터 수고한 노고로 20만 $를 3명의 운반자에게는 10만 $를 보내 여기서 나누어준다고 말했다. 아울러 지난번 혜산 팀이 30 만 달러를 받아 각각 15만 $ 나누어 덕철이 흥청망청 쓰다가 혜산에서 국가안전보위부에 잡혀가 조사받고 최종에는 교화소로 간 사례를 말해주며 정말로 돈 사용 조심조심해서 돈의 출처가 탄로 나지 않게 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
“동생이 잡혀가자 형 득남은 아내와 딸을 데리고 북경의 대한민국 대사관에 가서 망명 요청을 하고 지금 한국으로 망명 대기 중에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탈 없게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예, 알겠습니다.”
“자 이제 마음껏 듭시다. 먼저 잔을 들어주세요.”
“우리 모두 단풍잎 작전 성공을 위하여!”
“위하여!”
“위하여!”
덕철이 수감된 교화소는 일반 사회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별천지였다. 계호원의 도움 없이는 외부에서 음식을 넣어줄 수도 없었다.
계호원에 담배 한 보루를 뇌물로 괴여야 뭐 하나라도 전달이 되었다. 교화소에 들어온 여자 죄수 중에 얼굴이 반반한 여자는 계호 책임자의 성노리개가 되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일반 계호원도 자기가 당직 서는 날 여자 죄수를 자기 사무실로 불러 강간했다. 그래도 교화소 내부에서는 누구 하나 말을 못 했다.
덕철이 교화소에 입소한 지 2개월이 되는 1999년 2월 1일은 전날부터 내리던 눈이 이틀 동안 그칠 줄 모르고 내렸다. 아침을 먹고 죄수들이 각자의 일터로 나가야 할 시간 계속 눈이 내리자 교화소장은 일터로 가는 것을 중지시키고 대기했다가 전원이 제설 작업을 하라고 명령했다.
교화소 죄수들이 만드는 것은 다양했다. 나무로 책상 의자 옷장 등을 짜기도 하고, 벌목공은 산에 가서 나무를 해왔다. 돼지, 염소를 키우기도 하고, 함석으로 지붕도 만들고 난로 연통을 만들기도 했다.
점심을 먹고 나니 눈이 그쳤다. 눈은 교화소 연병장에 쌓인 것만 무릎 이상 올라오게 쌓였다. 수감자는 각 호실 별로 1과 과장이 제설 작업 구역을 나누어주었다. 죄수들 전원이 오후 내내 제설 작업을 했으나 내린 눈이 워낙 많아 눈에 잘 보이는 곳만 우선 눈을 치웠다.
다음 날도 모든 작업을 중지하고 제설 작업을 한다고 공지했다. 교화소 본동에서 멀리 있는 강당은 제설 작업 손도 못 대고 토끼 사육장과 염소 사육장은 겨우 사료를 나누어 줄 수 있을 만큼 길만 겨우 냈다. 당초 부실한 교화소 급식인 데다 하루 종일 제설 작업을 하니 저녁을 먹었으나 배가 쉬 꺼졌다.
득천은 형 득남이 잡혀 오면 함께 총살할 것이라고 7번 감방에서 밥을 먹고 나면 교화소 간부들의 심부름이나 하던 것을 2개월 지나도 득남이 안 오니 노동 강도가 높다고 소문난 벌목공에 배치되었다. 교화소에 벌목공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인원이 많다 보니 벌목하다 죽는 사람도 많았고 허약 환자도 가장 많았다. 벌목 반장이 득천을 불렀다.
“7번 방 오득철 벌목반장님께 불려 왔습니다.”
“야, 덕철이 너 간첩이라며?”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냐 이놈아! 내가 다 반탐 과장에게 다 들었는데.”
“예, 죄목이 간첩 죄목입니다.”
“어떻게 간첩 노릇을 했나?”
“예, 우리 형님이 특별히 바쁜 거 없으면 같이 물이나 뜨러 가자고 해서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에 가서 샘물 한 말 떠다가 중국에 내다 주었더니 달러 30만 $ 주어 형과 15만 $씩 나누어 쓰다가 보위부에 걸려들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 새끼 완전 미제 반동분자네! 아주 고약한 간첩이야!”
“공화국 수령님과 장군님이 강성대국이라고 외치는 것이 핵무기 보유하여 자주권을 지키는 것인데, 핵실험 여부를 확인하는 미제에게 풍계 생물을 떠다 바치는 놈이 완전히 정신 나간 매국노지?”
“전 그 물이 핵실험 여부를 가리는 물인 줄 모르고 했습니다.”
“야, 이 자식아! 그래서 사람은 배워야 한다는 것이야? 너처럼 무식하니 돈이 된다면 마약인지 간첩질인지도 모르고 그냥 다 해주는 놈들 때문에 미국 CIA나 남조선 국가정보원이나 공화국 정보를 그런 놈들 달러로 매수해서 야금야금 빼가는 거 아냐?”
벌목 반장의 논리적인 말에 득천은 변명할 틈이 없었다. 그런 벌목 반장도 돈에 관심이 갔다. 15만 $ 중 얼마를 쓰고 얼마나 남았냐고 물었다. 2만 $는 유흥으로 탕진하고 13만 $는 휴대하고 있다가 보위부에 몰수당했다고 했다.
3일 동안의 제설 작업이 끝나고 벌목 반원은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 벌목반의 필수품은 도끼와 하산바다. 도끼는 나무 찍어 쓰러뜨리는 것이고, 하산바는 벌목한 나무를 교화소까지 끌고 오는 것이다.
하산바는 단단한 삼마줄이나 쇠줄 끝에 뾰족한 쇠창살을 부착한 것이다. 득철도 벌목반이라 선임들에게 물어서 하산바를 만들고 도끼는 공구를 담당하는 4 과에 가서 벌겋게 녹슨 도끼 하나를 얻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