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프롤로그
제갈 보민은 아빠, 제갈 상길에 대하여 이제까지는 ‘지상에서 최고 아빠’로 생각했었고, 상길도 ‘우주 최고 딸’이라고 불렀다. 그런 30년의 믿음이 오늘부로 깨졌다. 이유는 이혼하고 떠난 생모 최성현 자리에 새엄마 연영애가 딸을 셋이나 데리고 들어왔다. 완전히 여자 천국이 되었다. 할아버지 제갈 선호, 할머니 송경아, 아버지 제갈 상길, 맏딸 제길 보민, 막내 제갈 종우 이렇게 남자 3명 여자 2명이 살던 집에 새엄마 연영애가 딸 셋을 데리고 들어왔다. 큰딸 선우 진선, 둘째 딸 선우 미선, 막내딸 선우 경선 이렇게 4명 여자가 식구로 들어와 여자 6명 남자 3명의 대식구가 되었다. 우선 장유유서 서열정리가 필요했다. 어른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제갈 상길, 새엄마 영영애까지는 서열이 분명했다. 선우 진선은 보민 보다 두 살 많았다.
내키지는 않아도 보민은 선우 진선을 언니라고 불렀다. 선우 미선은 동갑인데 보민보다 두 달 늦었다. 선우 경선은 종우와 동갑인데 제갈 종우 보다 3일 빨라 누나였고 종우는 위에 4명의 누나 ‘꽃밭 속에 유일한 왕자님’이 되었다. 성도 제갈, 송, 연, 선우 네 성씨였다. 하늘 아래 ‘한 지붕 삼대 네 성 아홉 명 가족’이 보민의 집이다. 한자로 표현하면 ‘천하삼대사성구인가족(天下三代四姓九人家族)’이었다.
샛강은 서울 대방 전철역에서 여의도로 건너가는 중간에 작은 실개천이다. 1980년대는 샛강이 조그만 콘크리트 다리였으나 지금은 대방역에서 여의도 넘어가는 차도와 나란하게 하얀색 철물구조에 바닥은 나무로 발판을 만든 멋진 ‘여의교’가 완공되었다. 샛강은 자전거 도로와 보행자 도로를 별도로 만들어 산책에도 좋았다. 제갈 상길에게 첫사랑이었다가 보민에게 새엄마가 된 영애와 첫 키스를 한 곳이다. 보통은 첫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다고 한다. 이루어질 수 없기에 더 애틋하다고 한다. 헤어진 첫사랑을 다시 만나면 대부분은 실망하고, 아니 만난 것만 못하다고 하는데, 제갈 상길과 영애는 예외였다.
‘이게 말이 돼?’ 할 수도 있겠으나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상길이 이혼하고 몇 년이 지난 후에, 샛강이 내려다보이는 2층 집 아래층에 방이 세 개, 2층에 방이 세 개인 집을 제갈 선호가 김포 시골집과 텃밭 900 평이 한강 신도시 아파트단지에 수용되어 받은 보상금으로 서울에 아파트 큰 평형에 방이 여러 개인 것을 살 수 없다고, 대방역 근처 허름한 2층집을 사서 이사를 오셨다. 그리고 제갈 상길괴 최성현이 이혼하고 전세를 살던 상길과 이혼한 며느리 최성현과 살던 보민, 종우를 이층집으로 들어와 살게 했다. 할아버지가 사준 이층집에 1층을 비워두고 2층에 살게 하고 1층은 수리했다.
아래층 안방은 제갈 상길과 새엄마 영애와 맏딸 선우 진선이 사용했다. 안방을 진선이 부모와 쓰는 것은 그녀가 지체 장애가 있기 때문이다. 영애가 선우 진선을 낳을 때 제왕절개를 해야 한다는 박윤희 산부인과 원장 말을 듣지 않고 자연 분만을 고집했다. 진통을 오랜 동안 하고 태어났다. 산소부족으로 정신지체아로 태어났다. 이혼한 남편 ‘선우 태영’이나 연영애 부모 둘 다 오른손잡이인데 왼손잡이로 태어났다. 정신지체아에 왼손잡이라 영애는 모든 생활에 우선을 첫딸 키우는 것에 두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동창회에 사진동우회, 유야교사 모임이 있어도 진선이 병원을 가거나 개인지도 선생님 오시는 날이면 어떤 모임도 정중히 거절했다.
작은방 하나는 둘째 선우 미선이가, 다른 작은방은 막내 선우 경선이 쓴다.
2층 안방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쓰시고 작은방 하나는 제갈 보민이, 마지막 방은 동생 종우가 사용한다. 요즘 보기 드문 9명 대가족이다. 성씨도 다양하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보민, 종우는 할아버지 성을 물려받아 ‘제갈’이고 할머니는 북한의 ‘은진 송’씨다. 새엄마는 연 씨, 새엄마와 같이 들어온 세 딸은 이혼한 아버지 성을 따라 ‘선우’인 것이다. 하늘 아래 ‘4개 성씨 9인 가족’이라면 다들 그런 집도 있어? 하고 놀라겠지만 샛강 옆 보민이가 살고 있는 집이 그렇다.
1층 집수리를 하면서 벽을 병원에 가면 휠체어나 몸이 불편한 사람을 위한 허리 높이의 안전대를 길게 설치했다. 작업할 때는 왜 저런 것을 하지? 생각했는데, 큰딸 선우 진선을 배려한 것이었다. 땅바닥에 100원 동전 줍는 것도 한참 걸렸고, 말도 어눌하게 하고 가끔 침도 흘렸다. 신기한 것은 막내 종우가 왼손잡이인데, 선우 진선도 왼손잡이였다.
지금은 이혼해서 제갈 상길과는 남이지만 보민에게는 영원한 생모인 최성연은 남편 제갈 상길이 물러터진 성격이 싫었다. 시집에 어렵다고 도움을 받던가? 스스로 돈을 잘 벌어오든가? 해야 하는데, 그는 돈을 잘 벌지도 못하고, 제갈 선호, 송경수 부모님께 아쉬운 소리도 못 했다.
본처 최성현은 제갈 상길이 군인으로 전방에 있으면서, 가족에게 소홀했다고 이혼했지만 이면은 영등포역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사진을 교육받았는데, 문화센터 사진 강사가 엄마 실력을 칭찬해주었고 지방으로 1박 2일 촬영을 다니다가 정이 들어 이혼한 것이다. 남편 최종 계급 ‘육군 소령의 아내 최성현’보다는 ‘사진작가 최성현’이 더 좋았기에 보민이나 종우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혼해서 사진작가 김교성과 살고 오직 사진 촬영에 최우선 가치를 두고 살아간다.
신기한 것은 보민과 종우 성씨가 ‘제갈’두자로 된 성씨인데, 연영애가 데리고 온 딸들이 성이 ‘선우’로 두 글자 성이라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어쩌면 이들 가족의 운명으로 생각되었다.
그는 지금도 자신의 이름 ‘제갈 상길’ 네 글자를 밝히기를 두려웠다. 그것은 친일 행위를 한 사람들이 신분 세탁을 하였듯이 신분 세탁을 하고 싶은 것이 상길이지만 세탁할 기회가 없었다. 아빠 ‘제갈 상길’은 총각 때,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망원(望遠)이었다. 망원은 기관의 끄나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