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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내 반입 금지 도서

야만의 계절. 662

by 함문평

작가 보다 먼저 장교로 지낸 분은 더 많은 <금지도서>를 접했겠지만 1986년 소위로 전방을 가니 금지도서 목록이 있었다. 휴가에서 복귀하는 병사가 소지한 반입도서에 발견되면 즉각 중대장에게 보고하고 전방 대대 파견 나온 기무반장이라고 하는데, 양복에 넥타이를 매서 몰랐지, 나중에 알고 보니 중사였다.

김동길 박사 <길을 묻는 그대에게>, 김병익 <지성과 빈지성>, 마르쿠제 <이성과 혁명>, 리영희 <전환시대의 논리>, <8억 인과의 대화>, 라이머 <학교는 죽었다>, 현기영 <순이 삼촌>, <김형욱 회고록>등이 지금도 기억난다. 골 때리는 깃은 <학교는 죽었다>는 학생시절 교육사회학 이건만 교수가 리포트를 쓰라고 과제로 준 책이고, 위에 열거한 책 전부를 학생시절 읽고 장교가 되었다. 속으로는 반입금지 도서로 지정한 놈이 군대 윗대가리겠지만 속으로 어이구 무식한 놈들이라고 생각만 하고 발설은 안 했다. 가끔 기무반장실에 가서 반장님, 타 주시는 커피 한잔 마시러 왔어요? 하면 정말 정성껏 커피를 타주었다. 왜냐하면 부대 간부를 감시하는 기무반장이니 다들 예예는 하고 있어도 엄청 외롭다는 것을 일고 있었다.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는 교육학 16학점이 필수인데, 작가는 교육학과 전공으로 배우는 3학년들의 심화된 심리학, 심화된 사회학도 공부했고, 병과도 정보병과라서 인간정보, 신호정보, 영상정보에 혹시 국군심리단에 근무할지도 몰라 심리전, 흑색선전, 백색선전, 전단제작 기법 등등을 공부해서, 전방대대서 대대장 말고 아무도 접근 안 하는 기무반장 중사 방에서 커피를 가장 많이 마신 사람이다. 선배는 야, 함 소위 너무 기무반장이 사람으로 보이니? 했다.

그럼요, 사람이니 제가 그방에 가서 커피 마시죠?

커피가 넘어가?

그럼요, 최고 실력발휘로 타 주는 커피인데요?

야, 너는 뱃속에 능구렁이 9마리 들어있는 거 같아?

선배님, 쪼잔하게 9마리가 뭐야 99마리지?

왜 100마리 채우지?

100채 우면 귀신이 시기해 단명한다고 우리 할아버지가 뭐든 99 정도만 소유하라고 해서 저도 소 99마리가 최대 재산 목표입니다라고 했다.

하여튼 그 시절 금지도서를 기무반에 가서 커피 마시고 30분 정도에 한 권 다 읽고 나왔다. 왜냐하면 서울대에서 잘려 청주사대 온 박화엽 교수에게 속독법을 제대로 익힌 제자였기 때문이다.

아마 백서가 1980년대에 출판했더라면 전두환을 깠다는 이유로 반입금지도서가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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