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계절. 210
처음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으로 국가최고통치자 물려받을 시기에 작가는 저거 몇 달 못 가겠지? 했다.
하지만 유년시절을 횡성 촌구석과 서울시라고 하지만 조선시대와 일본강점기 시절은 경기도 땅인데, 광복 이후 서울 팽창으로 서울에 편입된 동네 초등학교와 길건너 중학교를 졸업한 작가 보다 스위스에 유년시절 유학한 것이 실력발휘한 것이 윤석열이 전쟁을 유발해 계엄을 선포하고 전쟁으로 미국과 일본 무력 북한은 중국, 러시아 무력을 끌여들이려는 계획에 김정은이 말려들지 않은 것이다.
작가가 재수 시절은 국립중앙도서관이 남산에 있었다. 지금은 이전해 고속버스터미널 위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건너편에 있다. 남산 자유열람실 차지하려면 흑석동서 84번 첫차 타고 서울역에 내려 무거운 책가방 들고뛰어야 했다. 도착하면 먼저 온 재수생, 삼수생, N수생이 뱀꼬리처럼 줄을 늘어섰다.
그런 작가보다 스위스 과도한 경쟁 없이 옆사람 배려하는 교육을 유년시절 공부했으니, 거짓말하고 점수 지난 시험보다 떨어졌다고 고무호스로 맞고 자란 윤석열 전쟁하자 작전에 말려들지 않은 것이다.
김정은이 알고 있으면서 말 못 하는 것이 조선민주주의 인민 여러분!
남조선이 우리 북조선보다 잘 사는 것 나도 알지만 체면상 말 못 하는 것입니다.
때가 되고, 남조선이 통일되어도 김 씨 가문과 항일 빨치산 후손에 대해 남조선 국가보훈부가 정한 보훈가정에 대한 예우를 해주면 통일을 논의할 용의가 있다. 반대로 남조선 동작동 현충원과 대전현충원에 모셨더라도 북조선 자료에 친일행위기록된 자는 현충원에서 파묘해야 한다고 사실상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부터 정보장교 중에 관심 있는 사람은 알고 있지만 분위기 상 모른 척했을 뿐이다.
김정은이 윤석열 남북전쟁 획책계획에 말려들었으면 남이나 북이나 다 망했을 것을 김정은 인내심이 조선반도 삼천리를 구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