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 시절의 추억. 83
강원도 횡성군 강림 촌구석 초등학교 5년을 다니고 6학년 3월 4일에 서울 D초등학교로 전학을 왔다. 봄소풍 장소가 관악산이었다. 지금은 관악산이 서울대학교가 들어서 소풍장소가 될 수 없으나 나의 6학년은 서울대 일부만 오고 공대는 공릉동에 그대로 있어서 소풍 공간이 있었다.
싸 온 김밥을 우리 반 몇 명이 반만 먹고 버렸다. 나는 친구가 버린 김밥을 물에 씻어서 꾸역꾸역 먹었다. 친한 친구가 야~ 어떻게 버린 김밥을 먹니? 했다.
내가 버린 김밥을 먹는 것은 배가 고파서도 아니고 쌀 한 톨 만드는데 들어간 농부의 발걸음 때문이라고 했다. 이해 못 한 친구에게 부연 설명을 했다. 서울애들은 논과 벼와 모내기와 피 뽑기와 비료주기, 탈곡을 몰라 김밥을 버리는데, 이 쌀 한 톨 만들기 위해 농부는 논을 88번 드나든다고 말했다.
친구는 그제야 남이 버린 김밥을 물에 씻어 먹은 나의 심정을 공감했다. 작가는 왕년에 정보장교 시절 탈북한 하사 장철봉이나 최주활 상사, 고위급 황장엽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까지 만났다. 그들의 공통 이야기가 남조선서 버리는 음식만 절감해 북으로 보내면 북조선 인민이 굶어 죽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정말 이나라 삼천리금수강산에 태어나기를 남한과 북한 장소가 인생의 행 불행을 나누는 것이 한심하다.
남과 북 정치지도자가 정말로 하나의 조선을 만들지는 못해도 서로 안부를 묻는 편지 교환과 통화만이라도 허락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고모가 90, 돌아가신 아버지가 92, 생사를 모르는 북한군 예비역 대좌 큰아버지가 살아계신다면 94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