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시절의 추억. 86
요즘 학생 교복은 색상, 디자인 모두 일반인 복장과 비교해 손색없지만 작가는 중학교, 고등학교 6년은 검정교복이었다.
검정교복을 두 번 다른 용도로 사용했다. 작가가 태어나기는 쌍둥이로 태어났는데, 형이 홍역으로 죽었다.
치악산 구룡사 스님이 시주받으러 왔을 때, 쌀이 없어 어머니가 옥수수 시주를 했다.
시주 옥수수를 받은 스님이 어머니에게 쌍둥이 아들 한 명이 죽었는데, 남은 아들도 일찍 보내지 않으려면 학식 많은 양부모를 맺어주라고 했다.
강림면 촌구석에 학식 많은 사람이라고 하니 중학교 한문선생을 떠올리고 사정 이야기를 했다.
위로 딸, 딸, 딸인 집에 양아들이 되고, 그 집에 아들이 태어났다. 혈육은 아니지만 누마들이 귀여워한 남동생이었다.
서울서 공부하는 나에게 예고 없이 누나가 왔다. 이유는 누나가 애인 면회를 가는데, 같이 가자고 했다. 이유는 위수지역이 있어 안양이 부대라 서울로 오면 중간 검문소에 걸린다.
내 교복을 빌려달라고 했다. 책가방에 책을 다 빼고, 교복을 입고 사복 한벌 준비해 수양누나와 안양으로 면회를 갔다.
나 오자미자 명찰 오바로크집에 부탁해 군복, 군화를 맡기고, 예비 매형은 내 교복을 입고, 신발도 검정 운동화를 신었다.
나는 예비 사복을 입고, 준비해 간 다른 운동화를 신었다. 검문소를 의심 없이 통과해 서울로 왔다.
누나와 매형은 명동으로 가고 나는 흑석동 집으로 왔다.
세월이 50년 흘렀어도 누나와 매형은 두고두고 검정교복 정말 고마웠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