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의 계절. 734
구국의 결단이 객지서 고생많다.
윤석열이 사형이 아닌 무기로 지귀연이 귀연답게 세계사, 교양문화사, 서양사통론 정도 이수한 사람은 다 아는 말로 번지르하게 윤을 공소기각 초안을 쓰다가 도저히 그렇게 했다가는 자식에게도 의절하자 소리 들을 거 같으니까 교묘하게 방향을 틀었다.
판결문 읽어보면 정말 논리적으로 이게 내란죄라는 거야 아니라는 거야 애매한 문장이 많다.
2심 재판부는 사형을 선고할 이유가 바로 선고 다음날 발표문에서 계엄이 실패해서 죄인이지, 계엄 자체는 <구국의 결단>이라고 했다.
구국의 결단은 전두환과 하나회, 보안사 나부랭이가 12.12군사반란을 <구국의 결단>이라고 했다. 정권을 잡고, 암하유불 우리 강원도 어르신 최규하 대통령을 우협으로 하야시켰다.
1987년 박종철이 탁! 하고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신문만평부터 이한열 열사 사망, 국민들이 대통령 직선제 요구에 억압하는 <4.13 조치>를 내릴 때도 <구국의 결단>이라고 했다.
작가는 1987년 4월 중위 소대장으로 2,3 소대장이 늦게 전입온 학사, 3사 소위라 어쩔 수 없이 선임 소대장으로 <4.13 조치와 우리의 자세>를 중대 150명 통합 교관을 했다.
지금은 원만하면 군인이 다 대학 다니다 온 수준이지만 그 시절은 소대원 30명 중 대학 휴학하고 군대온 병사는 8-9명 수준이었다.
1소대야 소대장이니 병사가 어느 학교 다니다오고 가정형편이 어떤지 알지, 2,3, 화기 소대는 알 수 없는 상태에 4.13 교육을 하고 나니 병사들 질문이 정말 국회 장관 청문회 수준이었다.
소대장님, 교육 잘 들었습니다만 소대장님 이 교육 진심이십니까?
평소 ROTC소대장이라 상식이 통하는 소대장일 거라고 1소대를 부러워했는데, 오늘 교육을 들으니 뭐 3사 출신 자기네 소대장과 별차이 없다 소리도 했다.
순간 고민이 되었다. 교육하는 저 뒤에는 중대장, 월남전 참전 휘장 치렁치렁한 인사계, 기무반장 중사도 양복 입고 참관하는 상태라 맘에 없는 독한 말을 했다.
군대는 거시기를 거시기 까라고 하면 까는 것이 군대다. 오늘부터 연대장님 대대장님, 연대 정훈장교, 사단 인사참모가 수시로 순찰 돌며 질문할 것이다. 답변 잘하면 포상휴가고, 덜덜거리면 군기교육 갈 줄 알라고 하고 교육을 마쳤다.
골 때리는 일이 벌어졌다. 교육시간에 교관을 골탕 먹이는 질문을 했던 한국신학대, 서울신학대, 고려대, 동국대, 조선대, 동아대 등 주로 데모로 유명한 학교 다니다 입대한 병사가 답변은 청산유수로 포상휴가증을 뱓았다.
그 덕에 작가는 사단장 표창을 받았다. 이유는 <4.13 조치와 우리의 자세> 교육 유공이었다.
윤석열은 전두환이 이미 써먹었고, 사실은 군국주의 시절 통치자가 독재를 위해 사용한 <구국의 결단>이 객지서 고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