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군바리면 넌 민바리야. 1
한 십 년 전 이야기다. 어디 취직을 하는데, 주민등록 등본이 아닌 초본을 제출하라는 곳이 있었다. 별 미친 회사가 다 있다고 생각했지만 한 푼이 아쉬운 시절이라 동사무소에서 초본을 떼고 놀랐다.
세상에 초본 용지가 한 장이 아닌 두장이었다. 이유는 총각시절과 결혼시절 다 합하면 17번 이사를 했고, 사회 나와서도 5번 이사를 해서 주소가 22개 찍히다 보니, 초본 용지가 2장이었다. 요즘은 군인 간부들이 광역 아파트 배정이지만 그 시절은 4개 대대가 돌아가면서 철책을 6개월마다 이동했다. 그때마다 이사를 하니, 총각 간단한 이삿짐이지만 이사는 싫었다.
결혼하고 아이가 태어나고, 초등학교 5학년이 학교는 여섯 번째 전학이었다. 행정실 전학접수받는 공무원이 어머, 이 학생은 학년은 5학년인데, 학교는 여섯 번 째라고 놀랐다.
이사하면 요즘은 이삿짐센터에 연락하면 돈만 지불하면 포장이사팀이 깔끔하게 해 준다. 1990년대 군대에서 이사는 대한통운 8톤 트럭에 모든 것을 트럭 기사와 이사하는 간부부부와 지원 나온 병사들이 수작업으로 했다.
이사하면 꼭 거울이 깨지거나 고추장 장독대가 깨지기 일쑤였다.
가장 힘든 것은 책이었다. 대위 중대장반에서 공부한 책 사실은 가져가서 한 번도 읽어보지 않으면서 이사할 때마다 라면박스 미리 충성마트 관리관에게 부탁해 20개 정도가 책이었다.
책은 무겁기도 하고 나르고 날라도 티가 나지 않았다. 결국 아내가 나르던 병사들에게 책은 그만 실어요. 이거 남은 것은 다 중대 교양실에 가져가 아저씨들 보던지 필요 없으면 태워버리세요 했다.
그래서 내 책의 절반은 통일전망대 지키던 중대에 기증되었다.
요즘은 책을 사기보다는 공공도서관에서 대출해 읽고 있는데 신간은 역시 사야지 아직 우리 공공도서관이 신간을 바로바로 비치하지 못한다.
독자 희망도서 써서 함에 넣으면 내경험으로 10장 쓰면 하나 채택되는 수준이다.
오늘 만보를 걷다가 이삿집 올리는 사다리차를 보니 옛날 군인아파트 엘리베이터도 없는 곳에 들어 올리던 일이 떠올랐다.
정말 젊었고, 그 시절은 다들 어려웠으니 그런가 보다 하고 살았지, 요즘 나보고 다시 군대 가라고 하면 못할 것 같다.
사회 나와 처음으로 동창회에 나갔다.
친한 친구가 어이 군바리 이리 와! 하면서 자기 옆에 앉으라고 하고, 소주 한잔을 주었다.
나도 답례로 소주 한잔 따르면서 야, 내가 군바리면 너는 민바리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