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군바리면 넌 민바리야. 6
완전정복 값이 250원 시절 이야기다.
하도 오래되어 중1인지 중2인지 아사무사하다. 기억나는 것은 여름방학이었다.
지금은 고향이 횡성군 강림면에 강림중학교가 있지만 작가가 초등학생 때는 중학교가 없었다. 원주나 횡성으로 보내 하숙이나 자취를 했다. 아니면 자전거를 구입해 안흥찐빵으로 유명한 안흥중학교에 다녔다.
장손이 허약해 자전거로 집에서 안흥중학을 다니게 하는 것은 무리로 생각하셨다. 어차피 객지에 나가 자취를 할 것이면 서울로 보낼 결심을 했다. 요즘은 서울도 인구가 줄고 학교가 학생이 없어 폐교가 되는 세상이지만 그때는 아니었다.
할아버지는 소를 몇 마리 팔았다. 안흥면장에게 2만 원, 강림출장소장에게 1만 원, 지금 신길6동으로 명칭이 변경된 대방 2 동장에게 3만 원 봉투를 주고 위장전학을 했다.
시골초등학교는 1학년부터 6학년 한 반씩인데, 전학 온 서울 초등학교는 6-8까지 남자반 9-15반은 여자반이었다.
더한 것은 1학년부터 3학년은 교실이 모자라 2부제 수업을 했다. 옆에 도신초등학교가 신설되자 1, 2학년은 주소가 가까운 학생은 강제 전학되었다.
서울로 전학은 엄격한 통제를 했다.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여촌야도라고 촌구석은 민주공화당이 표를 많이 받고, 도시는 신민당 표가 많다 보니 서울로 전학을 엄격히 통제했다.
서울로 전학 오니 담임선생이 가정방문을 왔다. 아버지, 어머니, 나 확인을 했다. 담임은 형제자매를 물었다. 아버지는 3남 2녀인데, 전세살이 하다 보니 장남만 부모가 키우고 동생 2남 2녀는 시골에 조부모에게 맡겼다고 새빨간 거짓말을 천연덕스럽게 했다.
담임이 확인하고 1달 후 장학사가 확인 왔다. 장학사 확인이 끝나자 아버지, 어머니가 고향으로 가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서울로 오셨다.
졸업 50주년에 갔더니, 나를 조손가정으로 말하는 친구가 있어 그냥 그렇다고 했다.
이미 조부모, 부모 다 돌아가신 후라 상관없었다.
대충 1년 다니고 중학생이 되었다. 완전정복 한 권이 250원 시절 10과목 값을 탔다. 국어, 영어, 수학만 새책으로 사고 나머지 과목은 청계천 중고헌책방에서 50원에서 100원 정도에 사고 비자금을 형성했다.
여름방학에 고향으로 갔다. 오랜만에 대식구가 다 모여 식사를 했다. 횡성극장에 홍길동 상영 소문이 났다.
여동생 경희, 경화를 불렀다. 오빠가 횡성극장에 홍길동을 보여줄 테니 절대로 누구에게도 말하면 안 된다고 했다.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다음날 아침밥상에 둥그렇게 앉아서 아침을 먹었다.
큰 여동생 경희가 오빠! 오빠! 우리 어제 영화 안 봤지? 했다. 얼덜결에 응, 안 봤지 했다.
작은 여동생이 언니, 언니는 말 안 하기로 새끼손가락 약속하고 말하뭔 어떻게 해? 난 몰라 언니가 다 책임져! 했다.
아침상을 물리고 나와 두 여동생은 어머니 아지트 부엌으로 호출되었다. 영화를 보라고 돈 준 적이 없는데, 무슨 돈으로 봤냐고, 비자금 추궁을 받았다.
사실대로 말했다.
완전정복 10권 값을 2500원 받아 국어, 영어, 수학만 새책을 사고 나머지 과목은 청계천 헌책방에서 샀다고 했다.
그 사건으로 다음 학년부터는 참고서 구입예산이 반으로 줄었다. 국영수만 새책 나머지과목은 헌책으로 사서 공부하였다.
고3졸업까지, 그래도 그런 경희가 커서 파트너 없는 오빠 일일 파트너 가 되어 트로피까지 받은 이야기는 이글 4에서 먼저 밝힌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