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군바리면 넌 민바리야. 5
요즘은 군대도 안 마친 것이 겁대가리 없이 좌우상하 생각도 없이 병장 18개월을 200만 원 받게 해 준 것 때문에 길거리에 ROTC단복 입은 후배 구경을 할 수 없다.
나 때는 말이야, 꼰대 수준 이야기지만 단복 입고, 4학년 선배는 연차 마크가 세워진 벽돌 4개, 3학년은 3개였다. 시력 나쁜 사람은 30미터만 떨어지면 저것이 3개인지 4개인지 구분 못한다. 하지만 우리는 동서남북 100m, 천상, 지하 100m 범위 내 선배에게 충성! 소리가 들리도록 경례했다.
우리 학교뿐만 아니라 전국 어디에서 타대학이라도 선배를 만나면 선배님은 하느님과 동기동창으로 여기고 충성! 했다.
지금은 마로니에 공원이 많이 변했지만 거기 예총회관이 있었다. 강의실 한 곳에 시인, 소설가가 매주 목요일 돌아가면서 자기 자신의 시와 소설에 대해 쓰기 전, 쓰는 과정, 쓴 이후 경험담을 들려주는 강좌가 있었다.
상당히 비싸서 보통 작가나 시인 지망생들은 신청하고 싶어도 신청 못했다.
나는 장손답게 할아버지에게 사실대로 말씀드렸다.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졸업하고 중고등학교 국어선생을 하겠지만, 혹시라도 교장, 교감, 부장 교사와 싸우고 선생을 그만둘지도 모릅니다.
그때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기 위해 시인, 소설가 경험담을 듣는 강좌가 있는데, 한 학기 수강료가 소 한 마리 값이라고 말씀드렸더니, 소 두 마리 값을 우체국 전신환으로 보내왔다.
할아버지 왜 돈을 많이 보내셨어요? 여쭈니, 이놈아 장손이 길거리서 배고프면 되겠느냐? 청주서 서울 오가면서 선배 문인 말씀 잘 듣고, 배고프면 허접한 거 먹지 말고, 꼭 든든한 한 끼 먹으라고 하셨다. 눈물이 핑 돌았다.
정말 네 동생에게 미안하지만 장손은 진심으로 사랑하신 것을 느꼈다.
서울과 청주를 40여 회 속리산고속으로 왕복했지만 단복을 입고 다녀 실제로 내가 차표를 산 것은 두 번뿐이다. 78번은 줄 서있으면 누가 와서 툭 치고 따라와 하면 12기에서 20기 사이 선배님들이었다.
딱 한번 단복 입고 강남고속버스 터미널서 마로니에 가다 보면 꼭 중간에 단국대, 동국대 4학년을 만나 버스고 지하철이고 충성! 하는 것이 싫어서 사복을 007 가방에 넣고 와서 강남고속버스터미널 하차하고 화장실서 사복을 갈아입고, 단복을 가방에 넣고 4호선 혜화역서 내려 마로니에 공원 가는데, 지하철서 4학년 선배를 보고도 인사 안 한 것이 너무 행복해 지하철에 가방을 두고 내렸다. 그날 수업이 오정희 소설가 수업인데, 단복 걱정에 한마디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수업 마치자마자 지하철 역에서 분실물 신고했으나 아무 역에서도 007 가방 들어온 것은 없다고 했다. 청주로 내려갔다.
다음날 전공 교수에게 사실대로 단복을 분실해 학군단에 신고하고, 단복 체촌을 해야 한다고 하고 수업을 빠졌다. 학군단에 가서 훈육관에게 단복 분실 사유서를 쓰고, 단복을 다시 맞추었다.
할아버지에게 단복 분실 이야기를 했더니, 할아버지는 뭐든지 한 가지를 얻으면 하나를 잃게 되느리라 하셨다.
선배에게 경례가 싫으면 ROTC를 하지 말아야지, 경례하기 싫고 장교는 되고 싶다면 대도 조세형보다 더 나쁜 놈이다. 할아버지는 장손이 그륀 나쁜 손자가 아니길 바란다고 하셨다.
그 후로는 꼬박꼬박 단복을 입고 다녔고, 속리산고속 표는 계속 기라성 같은 선배님이 사주셨다.
나도 대위 때 조선대, 전남대 후배 광주고속 표를 끊고, 선배노릇을 했다.
할머니 우암 송시열 후손 할아버지와 싸울 때 유일한 무기 뼈대있는 집안 딸이라고 하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