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 놀란 일

내가 군바리면 넌 민바리야. 9

by 함문평

1986년 초등군사반을 수료하고 전방 가는 길에 4일 휴가를 주었다. 첫날은 강림서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와 지내고 다음날은 운학리 외할머니 댁에 갔다. 군화가 무거워 사복으로 가려는데, 오늘 인사드리고 전방에 가면 언제 또 외할아버지 보겠니, 이왕이면 군복 입은 모습으로 가지? 하셨다.


군복 입고 군화신고, 어머니가 담아준 엄마표 두부 두모, 아버지가 잡고, 손질해 준 닭 한 마리를 배낭에 넣고 외가로 갔다.


어린 시절 눈길에 음력설 다음날 세뱃돈 받는 맛으로 신나서 가던 산길이 왜 그날은 그리 먼지, 가도 가도 산길이었다.


강림, 선계, 월현을 지나 주천강을 따라가면 멀기에 고일재를 넘었다.

재를 넘어 산을 내려가니 운학 우체국이 보였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우체국 정문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우체국장에게 우리 외손자인데, 금년 ROTC소위로 임관했다고 자랑했다.

국장 아들도 강원대학교 25기라고 했다. 내년 자기 아들 임관하면 갈구지 말라고 부탁했다.

아마도 ROTC가 강원대 학군단이 전부로 아신 모양이다. 한해 임관인원이 3000명이 넘는데, 우체국장 아들이 내가 갈굴 같은부대 근무할 확률은 로또 1/840만 이상이다.


외할머니 댁에 동네 노인들이 소위를 처음 본 사람처럼 모여들었다. 소위 계급장 정말 다이아몬드로 만들었냐? 묻는 노인도 있었다. 모양이 세워진 마름모가 다이아몬드 각이라는 것이지 쇠로 만들고 도금한 것이라고 알려드렸다.

우체국장이 오자 동네 노인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무겁더라도 두부와 닭을 더 지고 올 걸 후회도 되었다. 닭다리는 우체국장과 외할아버지 그릇에 담고 나머지 사람은 날개, 가슴살을 조금씩 나누어 담고, 국물만 푸짐하게 퍼서 나누어주었다.

외할아버지는 외가 자식들 전체 중에 첫 장교라고 엄청 자랑하셨다.

그런데, 노인 한분이 외손자가 꼭 미군처럼 생겼다고, 딸이 미국 사람과 결혼한 거 아니냐고 물었다.

외할머니는 펄쩍 뛰었다. 무슨 그런 흉한 소릴하냐? 외손자 이름을 봐라. 함문평 소위 미국사람이 함 씨 성이 있냐고 언성을 높였다.


전방에 와서 눈이 펄펄 내리는 12월에 외할아버지 부음을 듷었다. 외할아버지는 휴가사유가 아니라 그냥 할아버지 사는 운학 방향으로 묵념만 했다. 그것이 외할아버지에게 외손자가 처음이고 마지막 장교복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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