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군바리면 넌 민바리야. 14
용화사로 부대 이동했고, 4월 1일 중위로 진급했고, 병장 14명 꼴통들도 전역해서 소위 전입 이후 온 병사가 주축이라 소대장 하기 좋은 상태에 철책선 투입완료 지휘보고를 했다. 보고받은 중대장은 전령을 대동하고 감바위 중대 본부로 오라고 했다.
내일부로 전출명령이 났다고, 별도로 환송회 할 수 없으니 간단하게 삼겹살에 소주 한잔 중대장과 마시자고 관사로 데려갔다.
1987.6.26, 전출 명령으로 후임 25기 이 모 소위에게 인수인계를 했다. 용화사 소초 우리 경계용 탄약과 BL탄약 다 이상 없고 수류탄 발수 맞고 마지막 대공 초소로 올라갔다.
분명 지난 전군 재물조사 700발
이상 없어 당연히 이상 없는 줄 알았다.
내가 세니 699발 후임 이 소위가
세도 699발 하는 수없다 내가 확인서 써 줄 테니 문제 되면 너는
책임 없고 전임함 중위 책임이라고 해. 확인서 대공초소 캐리버 50 실탄 700발 중 1발 분실하였음을 확인 서명합니다.
군번 성명 서명했다.
아울러 편지도 한 장 썼다.
대대 병기관 진성균 준위에게
안녕하세요?
함봉호 예비역 준위 조카 함문평 중위입니다.
떠나면서 소주 한잔 못하고 떠납니다.
제가 가는 곳이 서울이니 휴가 때
철원 가면서 서울서 소주 한잔하고 가세요.
떠나면서 한 가지 죄를 짓고 떠나는데 전 철저히 했는데 캐리버 50 대공초소 700발이 전군재물조사도 이상 없었는데
내가 후임에게 699로 인계하고
확인서 쓰고 갑니다.
나중에 서울서 만나 결과 알려주세요.
감히 그렇게 확인서 편지만
쓰고 떠난 것은 이유기 있었다.
대대 병기관은 우리 작은 아버지가 6사단 병기관 전역하고 전역 3년 만에 돌아가셨다.
작은 아버지가 중사를 자기 후임으로 병기관 준위 시험 보게
했는데 준위 되었다.
6사단으로 못 가고 17사로 그것도 100 연대 3대대 병기관을 했다.
소위 전입 간 날 알아보고 혹시
함봉호 준위님 조카 아니십니까?
예 맞습니다!
그러고 보니 작은 아버지 댁에서
뵌 듯합니다.
참 인연이란 묘한 것이다. 작은 아버지 부대 중사를 은퇴 대비하여 준위 양성했는데, 조카가 근무하는 부대서 병기관을 했다.
세월이 지나 그 문제의 캐리버 50 실탄 절도범을 알게 되었다. 1990년 10월 결혼을 취소하고 1991년 5월 5일 결혼하고 제주도 신혼여행지에서 소대장님? 하길래 봤더니, 역시 신혼부부 신랑이 병장 14명 무더기 전영지 중 한 명이었다. 신부 목걸이 페넌트가 캐리버 50 탄두였다.
지구상에 하나뿐인 목걸이를 신부에게 해주려고 전역하면서 그걸 몰래 가져간 것이다.
나의 정보장교 눈빛이 신부 목걸이에 1초간 머물자 소대장님! 이실직고하겠습니다.
뭘?
소대장님 용화사 떠날 때 대공초소 문제없었습니까?
말도 마라 700발 중 699 발이라고
대대 병기관 닦달하지 기무 반장
중사 새끼 지랄하지 중대장 함중위 한 발 어디 팔아먹었어?
죽다 살았다.
헤헤 죄송합니다. 제가 아내 목걸이 해주느라 하나 뺐습니다.
정말 어떻게 그리 예쁜 목걸이와
반지를 만들었나?
50 한 발이 그렇게 예술품이 될 수
있음을 제주도서 알았다. 철없는 대위 아내는 자기도 저런 거 해줘 하는 것을 저런 건 병장 이하나 하는 것이지 장교가 쪽팔리게 나중에 155미리 포탄 탄두로 멋있는 장식물 해줄게 하였다. 참고로 군용물 유출죄는 그 시절 10년 이하 징역에 처한다였는데, 요즘은 바뀌었을 것입니다.
정말 50 탄피 잘 절단하면 예쁜 반지 되고 실탄 탄두 화약 제거 후
가운데 천공하면 최고의 목걸이
페넌트 된다.
군용 물 절도죄 공소시효 10년이라 제주경찰에 신고해도 되지만 이미 병기관이 후속조치한 것이고, 소총실탄이면 사고우려 있으나, 그 큰 캐리버 실탄은 사고 염려가 없어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