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를 좋아하는 이유

내가 군바리면 넌 민바리야. 21

by 함문평

BTS가 병역을 마치고, 어제의 용사들이 다시 뭉쳤다. 김일성이 전쟁준비 다 마치고 남침을 못한 이유가 딱 두 가지다. 450만 동원 예비군의 실력을 알 수 없는 것과 18방들이 도시락 가방을 들고 다니는데, 고정간첩에게 그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파악하 보고하라고 했다. 전국 수 백 명 고정간첩 단파 방송 보고가 제 각각이었다.


평양시 중성구역 85호 관저 옆 대남연락소 수집 분석관이 몇 년을 분석해도 결론도출이 없었다.


1994년 카터가 방북해 남조선 김영삼 대통령 의견은 물어보지도 않고 남북정상회담 발표를 했다.


굉장히 자존심 상한 김영삼은 화를 삭이느라 등산화를 신고 청와대 뒷산을 올라갔다. 고정간첩이 그걸 보고하자 김일성은 강선제련소 소장에게 남조선 대통령 방북하면 남포항에서 북조선 질 좋은 철광석 5만 톤을 실어 보내도록 교시했다.


드디어 남북정상회담 일자가 다가오자 7월 6일 묘향산 특각에서 주요 직위자 회의를 열었다. 대남선전선동부장과 강선제련소장, 김정일, 기타 핵심 몇 명을 부른 상태서 강선제련소장에게 물었다.


남조선 대통령 피양오면 선물로 준비하라던 철광석 제련은 어느 정도 되었는가? 물었다. 이강선은 빨치산 시절부터 거짓말 못하는 융통성 없기로 소문난 사람이었다.


수령동지,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한 톤도 제련 못했소이다?

무시기 소리오?

철광석이야 산더미로 있으나 제련하는 용광로 돌릴 전기도 중유도 없다고 보고했다. 김일성은 김정일을 보았다.


김정일은 이강선이 자기에게 보고도 안 했다는 말을 해봐야 변명밖에 안 되기에 당장 지금부터 다른 곳 송전 다 막고, 중유도 군부대 기름을 털어서라도 제련하겠다고 말했다.


그 말에 김일성은 혈압이 높은 상태서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쓰러지자마자 헬기를 뛰우려 했으나 묘향산 일대 비가 억수로 내렸다. 하는 수 없이 앰블런스로 봉화진료소로 후송했다. 묘향산 특각서 큰 도로 진입할 때 커다란 구렁이가 지나갔다.


수령 교시는 미물이라도 인민을 사랑하듯 함부로 죽이지 말라고 했으나 긴급 상황이라 무시하고 달렸다. 구렁이도 죽고, 김일성도 봉화진료소 의사가 청진기를 들었을 때는 이미 싸늘한 시신이 되었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김일성 사망 후 고난의 행군시기에 탈북자를 철책에서 대성공사로 후송하면서 탈북자에게 들은 이야기다.

다음은 부산시 해운대와 송정이 200만 평 탄약부대 시절 이야기다. 함 대위는 3 경비 중대장이었다.

3 경비 중대는 현역 47명 방위병이 210 명이었다.


방위병이 3교대 근무하는데 한조는 70 명이매일 아침 7시 출근 18시 퇴근 다른 한조는 홀수일 오후 5시 출근 익일 08시 퇴근 다른 조는 짝수일 야간 그런데 일부 중대장이 방위병 부모에게 금품을 받고 야간만 근무시킨 사례가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나에게도 그런 유혹이 왔다.


방위병 한 명이 서울대 법대 4년 휴학하고 방위 근무 중인데 자기 예비사위라고 편지 봉투에 십만 원 수표를 가득 담아 강모 일병을 야간만 시켜달라는 것이다.


나의 전임 중대장은 그렇게 해주었는데, 함 대위님은 융통성이 없다고 거의 오늘날 최순실 비슷하게 나에게 접근했다.


나는 학교 다닐 때 말랑말랑했어도 아닌 건 확실히 아니라고 말했다.

강 모 일병 애인의 어머니에게 말했다.

어머님, 예비사위를 제가 야간만 시키면 18개월 방위가 실제 근무일은 6개월입니다.


병무부조리 6.25 때도 백 없는 놈만 죽으면서 어머니! 외치는 소리와 백! 하고 죽은 소리 반반인 거 아세요? 했다.


다른 경우는 군대 와서는 안될 병사가 우리 중대 있었다. 부모님 안 계시고 형은 천 원과 만원 구분 못해 천 원짜리 세 개와 만원 바꾸자면 바꾸는 금치산자였다.


나는 소대장을 출장 보내 그 병사 고모와 병사와 형 동거 관계를 우리 중대 병사가 세대주 금치산자 형을 부양가족으로 주민등록 등본을 떼서 관련근거 병역법 금치산자 부양가족 건으로 조기전역 건의를 올려서 일병으로 전역시켰다.


처음에는 탄약사령부 인사처장이 현역 이미 온 걸 왜 조기 전역시키 려느냐?


야단치더니 조치되고 나니 자기가 잘한 것처럼 김일수 장군에게 말했다.


이미 김일수 장군은 그거 함 대위가 한 것을 알고 있었다. 천주교 신자라 도마 성당에서 마티아 형제가 신부늼, 수녀님에게 말해서 사령관이 내막을 알고 있었다.

도마성당서 세려 받을 때 그분이 나의 대부를 하였기 때문이다.


부조리 예방은 중위 시절 56사단 대대 인사장교 시절에도 있었다.

동원예비군이 왔는데 남대문서 장사하는 사람이 하루 매출이 몇 백만 원이라고 몇 놈이 오십만 원씩 거두어 오백만 원 정도를 대대장에게 주고 입소식만 하고, 남대문서 장사하고 퇴소식만 참석하는 편법 쓰려는 것을 중간서 내가 막았다.


대대장님, 중령으로 끝내시려면 그리 하시고 대령 진급하시려면 반납하고 그놈들 귀향조치하세요. 했다.


함 중위 이놈 말랑말랑 한 줄 알았는데 아니네? 하셨다.


세월이 지나 내가 소령 진급하고 육군대학을 가니 그 대대장님이 무슨 처장 하셨는데 함 중위야 고맙다.


너의 그 차단 덕에 내가 대령되었구나 하셨다. 그 사건 후 52 사서 유사한 사건으로 수방사 예하 대대적인 감찰검열이 있었다.


역시 그 부대사건인데 취사 선임하사와 양곡 선탑 하사가 짜고 훈련병 밥에 쌀을 아끼게 하고 다음 양곡 차에 쌀 50 가마 온 것으로 전표처리만 하고 잉여 쌀을 시중에 팔고 돈을 취사 선임하사와 선탑하사가 반띵 하는 것이다.


이건 정말로 내부 고발자 없이는 못 잡는 사건인데 하필 함 중위가 일직사령인데, 훈련병 600명 밥이 부족하다고 라면을 급조로 끓였다.

일단 라면을 훈련병에게 먹이고, 오늘 일직사령이 급양감독 똑바로 못해 미안합니다. 대신 라면에 한 사람당 계란 2개씩 들어가게 특수조리 라면이라고 말했다. 훈련병이 박수로 화답했다.


왕 병장을 식당에 엎드리게 하고 사꾸로 무조건 팼다. 한 30대 정도 패니 내가 힘들어 좀 쉬었다 패려는데, 인사장교님, 다 말씀드릴 테니, 조용한 곳으로 가자고 했다.


1종 창고에 들어갔다.

1종 장부정리하는 책상과 의자가 있었다. 내가 의자에 앉고, 병장은 쌀 포대에 걸터앉았다.


취사선임하사 정 상사 지시로 무조건 하루 20에서 50 킬로 잉여미 안 만들면 혼난다고 했다.


자초지종을 대대장에게 보고하고 잉여미가 최고 높아진 시점에 대대장 내무사열을 했다.


재산대장과 실제 쌀 재고 차이를 추궁해 둘 다 전역시켰다. 하여튼 요즘도 가끔 병무비리가 뉴스에 나온다. 그런 놈이 난 송충이 보다 싫다. 그래서 BTS를 더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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