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군바리면 넌 민바리야. 22
부산 3경비 중대장 관사 자등응답전화기는 하루라도 사건 사고가 없으면 불안한 기계였다.
지금 당신들이 살고 있는 부산 해운대, 송정 신시가지 아파트단지가 1990년대는 200만 평 탄약고였다. 민정당 대통령 후보가 해운대 백사장에서 열러분! 이 사람을 찍어주신다면 저기 보이는 탄약부대를 전방으로 이쥔시키고, 부산시면 여러분에게 돌려드릐겠습니다. 한마디로 판세가 부산 맹주 김영삼을 표로 뒤집었다.
들리는 말로 눈치없는 장교만 탄약사나 탄약창 경비중대장 간다
는 말이 있어도 뭐 하와이 가는 거
아니고 대한민국 땅이겠지? 하고 갔다.
나의 배짱은 첫날부터 후회감 들게 했다. 1991년 7월 27일 취임 했다. 7월 28에 비가 어마어마하게 내렸다.
방위병 210 명이 70 명 3교대로 근무하는데 근무하는 70명이 아니라 안보이는 140 명이 사고를 쳤다.
퇴근해 부산 각구로 흩어진 방위병들은 어디서 사고가 날지
몰랐다. 사고 내용도 강간. 강간미수. 절도 절도미수. 상호 폭행 등 다양했다.
지금이야 스마트 폰에 길거리 감시카메라가 많지만 당시는 삐삐가 유용한 소식통이었다.
궁리 끝에 나는 녹음되는 자동 응답기능 탑재된 전화기를 구입 했다. 예를들어 방위병들에게 사고나면 무조건 중대장집에 전화를 걸어 삐소리 나면, 각자 사고내용을 말 하고 삽버튼이나 백설표 누르고 끊으면 된다고 했다.
과연 효과 만점이었다.
퇴근해 녹음을 듣고 사고 파출소 가서 신원보증 서고 합의주선하고
경찰서 파출소서 출소시켰다.
양정에 있는 헌병부대에 이첩되면
사고사례 등재되고, 사고 건수 많으면 아무리 다른 점수가 높아도 연말 우수부대는 탈락이었다.
헌병대 이첩 기록이 적은 부대가 부대관리 우수부대 였다. 3경비 중대는 2년 연속 우수부대가 되었다. 1.2경비 중대장과 1.2.3탄약 중대장이 물었다.
왜 3경비만 사고 헌병 이첩 건이 적어?
파출소서 헌병대로 넘기기 전에 방위병을 빼왔어요?
어떻게?
퇴근하면 부산 시내 파출소마다
순찰돌며 우리 중대원 사건은 헌
병 이첩 전에 합의시키고 뺐어요.
5 명의 인접중대장들은 매일 해운대 송정서 순찰 중 술을 마시고 나를 불러냈다. 술을 함께 마시다 아내가 나에게 삐삐치면 나는 집으로 전화해 응답기 녹음을 들었다.
다른 중대장에게 사고 보고 들어와 먼저 갑니다 인사하고 파출소로 달려갔다. 자동응답 전화기값이 비쌌어도 그값 이상 효과만점이었다. 지금은 박물관에 있을 법한 맥슨 자동응답전화기가 대위 본봉 288,000원 시절에 20만 원이었다. 그 좋은 전회기에 국어교육과 후배 2명이 임용고사 강원도에 합격은 했는데, 2학기 발령이라고 여름방학 기간에 해운대 해수욕장에 왔다. 자동응답전화기에 두 여자가 합창으로 선배니임~ 함 선배님, 밥 잘사주던 ROTC선배님 보고 싶어 왔는데, 전화 안 받으시네요. 여기 보직 끝나고, 강원도로 전출 오시면 연락주세용~하고 녹음을 남겼다.
내가 먼저 들었으면 삭제했을텐데, 크산티페가 먼저 들었다. 누구냐? 추궁하는 말에 둘이 합창으로 녹음한 것을 어떻게 알아? 내가 과학수사연구소 분석관이야 뭐야?
큰소리로 되받아쳤다.
혹시 이글 총각들이 읽으면 명심하기바란다.
부부싸움은 초장에 기선제압해야지 처음에 지면 죽을 때까지 그륗게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