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목일만 되면

유년시절의 추억. 91

by 함문평

삼월도 절반이 되었다. 초등학교 졸업하고 중학교 1학년이 된 학생들을 보면 나의 중1이 생각난다.


강원도 촌에서 5학년을 다니고 서울은 1년 다니고 졸업하고, 추첨으로 대방동 초등학교에서 큰길 건너 S 중에 배정되었다. 그 시절은 고교입시에 체력장이 있던 시절이라, 체육선생님 지상 목표는 체력장 만점자를 많이 만들어야 교장, 교감, 이사장에게 칭찬 들었다.

1학년 입학하자마자 100m 달리기, 철봉, 왕복 달리기, 던지기, 1,000m 달리기를 시켰다.


던지기 최종라인이 50m였다. 대부분 30-40 사이 던졌다. 내 차례가 되었다. 왕년에 횡성 촌구석에서 우리 동네와 강 건너 동네와 돌팔매질 싸움 실력을 발휘했다. 짤돌 던지던 약간 어슷한 동작으로 45도 각도로 던졌다. 수류탄이 최종 라인 그 너머에 떨어졌다. 체육선생님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다시 던져보라고 했다. 더 멀리 떨어졌다.

모든 수업이 끝나면 문평이는 교무실 체육선생님 자리로 오라고 했다.


갔더니, 야구감독, 코치가 체육선생님과 대화 중이었다. 선생님, 저 왔습니다. 했다. 바로 선생님과 야구감독, 코치 선생과 야구장으로 갔다. 고무수류탄 3개, 야구공 3개를 그냥 힘껏 던지라고 했다. 수류탄은 체육시간에 던진 만큼 나갔다. 야구공은 부피가 커서인지 수류탄 보다 적게 나갔으나 중1 던 지 기로는 엄청 먼 거리라고 야구 감독과 코치는 생각한 모야이다.


그날 저녁 바로 가정방문을 왔다. 체육선생님, 야구감독, 야구코치가 사전 연락도 없이 집에 들어서자 할아버지는 장손이 학교서 큰 잘못이라도 했나 걱정하셨다. 아니, 우리 장손이 무슨 잘못을 했나요?

아닙니다. 함 군 던지기 실력이 좋아서 어르신 허락받고, 야구투수를 시킬까 하고 왔습니다.

할아버지는 일언지하에 호통치셨다. 어디 강릉 함 씨 칠봉파 종손을 그런 공놀이나 하는 천박한 놈을 시키려 하느냐? 장손은 의대를 가면 서울의대, 법대를 가면 서울법대 갈 재목이니 건들지 마라고 돌려보냈다. 돌아간 야구감독과 코치는 못내 아쉬운지 학교 수업 마치면 야구장으로 오라고 했다. 공 던지기 클러브로 캐치하는 것을 가르치고, 그냥 공을 포수 없는 그물망에 하루에 100개씩 공을 던지고 집에 가게 했다. 그렇게 2주를 보낸 후 야구공 던지기 직구, 변화구, 슬라이더 3개만 가르쳐주었다. 재미있었다. 던지기에 푹 빠져 해가 져도 집에 안 오니 할아버지가 학교로 오셨다. 1-3반 교실에 문도 닫히고 아무도 없자 야구장으로 오셨다. 야구감독, 코치, 선배 투수를 보자 호통을 치셨다. 강릉 함 씨 망하게 하려고 작정했냐? 듣기 좋은 말로 장손이라 천박한 공놀이 안된다 했거늘 왜 장손 인생길 막느냐? 호통치시고, 가자? 하고 야구장을 나온 후로 야구 응원만 했지 야구공 안 만졌다.

최동원이 58년 개띠고, 선동열이 63 토끼다. 작가는 62 호랑이다. 투수를 했으면 최동원 무쇠팔과 선동열 무등산 폭격기에 샌드위치되어 빛도 못 봤을 것이다.

그래도 인생에 딱 한번 지금은 공주사대도 종합대, 청주사대도 종합대가 되었지만 사대시절은 연고전을 모방한 사 대전을 했다. 야구시합에 투수를 하던 선배가 부상을 당해 투수할 사람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투수 마운드에 올랐다. 중1시절 익힌 실력이 대학생 때 딱 한번 써먹었다. 서울에서 연고전, 또는 고연전이라 불리는 라이벌전을 모방해 중청남도 공주사대, 충청북도 청주사대가 사 대전이라고 야구시합을 했다. 아마추어 야구라 7회가 끝인데, 잘 던지던 선배가 3:2로 이기던 5회 말에 투아웃 만루에 부상을 당했다. 정말 안타 하나만 맞으면 역전당할 위기에 아무도 투수 경험 없다고 사양해서 제가 던지겠다고 나섰다. 정식 시합은 합번도 해본 경험 없지만 촌놈 짱돌 잘던지는 실력에 반해 투수로 키우려다 할아버지 호통에 못한 투수를 했다. 일단 연습 투구를 하는데, 공 속도 좋고, 다음은 야구공 실밥을 손톱으로 글러브 속에서 흠집 내고 변화구 던졌는데, 역시 회전이 잘 먹혔다.

만루에 들어선 타자에 기싸움에서 지면 안된다. 눈에 힘을 주고, 일부러 포수에게 사인을 팔을 높이 들어 흔들고, 초구 직구 중앙을 넣었다. 심판이 스트라이크를 외쳤다. 다음은 변화구를 던졌다. 투 스트라이크 노볼은 타자가 심리적으로 비슷하면 휘두른다. 아슬아슬하게 스트라이크에서 공 반개쯤 벗어나게 던졌다. 헛스윙 삼진 아웃으로 6회, 7회를 맞이했다.

다음 타자부터는 그들 수준을 파악했기에 홈런 맞아도 강속구 뿌리는 최동원처럼 변화구 없이 스트라이크만 직구로 던졌다.

무등산 폭격기 선동렬이 한 점 차로 마운드에 오르면 게임 끝났다고.

프로야구는 아니지만 그날은 선동렬이 삼성을 1점 차로 승리하는 기쁨과 동격의 기쁨이었다.

야구를 못해 시름시름 병든 닭이 될 때 국어선생님이 기를 살려주셨다. 비 오는 봄날, 봄비가 내리자 모두 교과서 덮으라고 했다. 모두 우산을 쓰고, 목련꽃 핀 학교 동산에서 교정을 그냥 빗소리 들으면서 걷다가 수업 마치는 종소리가 나면 교실로 들어가라고 하셨다. 그 대신 <봄비> 제목으로 시는 원고지 3매, 산문은 10매 써오라고 했다. 60명 중 59명이 시로 냈는데, 나 혼자 10매를 냈다.


선생님은 그 10매 <봄비> 산문을 다른 반에 수업 시간에 읽어주셨다.

야구투수 꿈이 사라져 비실비실한 학생에게 봄에 돋는 새싹처럼 희망을 찾아주신 선생님이다.


그분이 30년 전 식목일에 돌아가셨다.

아마도 제자에게 나의 기일을 잘 기억하라고 그렇게 가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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