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벼루 2개

유년 시절의 추억. 90

by 함문평

중학 2학년 때였다.

미술 선생님이 앞으로 4 시간은 서예와 동양화 기초를 배울 것이니 다들 벼루, 먹, 붓, 화선지를 미술시간에 준비하라고 하셨다.


인접 다른 중학교는 그냥 물감, 붓, 스케치 북으로 중학교 졸업하는데, 우리가 김홍도나 추사 김정희 될 것도 아닌데, 귀찮게 별 걸 다 가르친다고 투덜댔다.

집에 와서 할머니에게 앞으로 4주 동안은 미술시간에 동양화를 한다고 붓, 먹, 벼루, 화선지 준비하게 돈 주세요? 했더니, 벼루는 옛날에 할아버지가 훈장하실 때 쓰던 것 있을 걸 하시면서 빨리 복덕방 가서 할아버지 모시고 오라고 했다.


복덕방에서 장기를 두시는 중인데 할아버지가 상수라 빨강 한나라를 차지했지만 초록 초패왕 노인에게 상장에 걸린 상태였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모시고 오래요?

왜?

이유는 모르고 그냥 빨리 모시고 오래요. 했다.

할아버지는 지팡이를 챙겨 복덕방을 나오시더니, 때마침 장손이 잘 왔다고 하셨다. 장기 지면 노인들 5명 짜장면 값 내야 하는데, 손자 덕에 그냥 간다고 했다.

그럼, 4명이 어떻게 해요?

응, 남은 사람끼리 장기 두어 꼴찌가 짜장면 값을 내고, 3등이 소주값 내고 1,2등은 그냥 먹는다고 하셨다.

집에 오자 할아버지는 무슨 일로 불렀냐? 고 하셨고, 할머니는 손자 준비물이 먹, 붓, 화선지, 벼루인데 벼루값 비싼데, 엿날 훈장할 때 쓰던 벼루 안 버렸으면 달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그 벼루는 손자가 학교 다 마치면 주려던 것인데, 하시면서 할아버지 나무궤를 여시 더니, 벼루 2개를 꺼내셨다. 하나는 하도 먹을 갈아 가운데가 완전 천공이 되어 물이 샜다. 다른 하나는 벼루 두께의 반 정도가 움푹 패인 벼루였다.

다음 주 미술시간에 화선지와 붓만 새것으로 벼루와 먹은 할아버지 쓰던 것을 가지고 갔다. 준비물 검사를 하시던 미술 선생님이 벼루를 보시더니, 집안에 동양화하신 분 계시냐? 고 물으셨다.


동양화가 아니고 할아버지가 젊은 시절에 시골에서 서당 훈장을 하셨어요. 5.16 이후 박 대통령 각하께서 한글전용하는 바람에 서당 입학생이 없어 서당을 접고, 농사지으시다 장손 공부시키러 서울 오셨는데, 준비물 벼루 문구점서 파는 벼루보다 남포오석벼루 좋은 거라고 하셨어요?


그래, 이 벼루 소중하게 잘 간직하거라, 정말 좋은 오석벼루 진품이다. 하셨다.


구멍 난 벼루와 반 정도 패인 벼루 소중하게 간직했으나 군대서 17번 이사 중에 전방 관사에 수해피해 시 초, 중, 고, 대학, ROTC앨범 버릴 때 벼루도 다 버렸다. 종이로 된 앨범은 버려도 벼루는 잘 말려 보관하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 다른 학교 안 하는 동양화 왜 하냐? 불만이던 동창이 65세가 되니 그 때 우리학교 선생님들이 훌륭한 분 많았다는 것을 한참 후에 알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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