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대기 작품. 1

북디자너 설공주

by 함문평

북디자이너 설공주

TV에서 일본은 80만 명이 있다는 히키코모리(고립 은둔형 젊은이) 다큐멘터리 방송을 보는데 여동생 경화에게 전화가 왔다.

“나다.”

“오빠? 공주가 아빠보다 외삼촌을 더 좋아하는 거 알지?”

“아무리 그래도 아버지보다 외삼촌을 좋아한다는 게 말이 되니?”

“진짜야, 아빠는 말이 안 통하고, 외삼촌이 아빠였으면 좋겠다고 했어.”

“공주 진심을 너나 제갈 서방이 차단했겠지?”

“몰라, 오빠는 조카하고 대화가 잘 통하는데, 나나 언니도 자기 부모보다 외삼촌 하고 말을 잘하는데, 모르겠어. 빨리 부산으로 좀 오세요? 내려와서 말 좀 해줘요. 방문을 걸어 잠그고 말을 안 해요. 미치겠어?”

“알았다. 내려가는데, 올라오는 차표는 해줘?”

“차표뿐이겠어요? 오빠 좋아하는 해운대서 회 대접할게?”

“알았다. <노인 키오스크 기피증에 관한 연구>를 학회에 등기만 보내고, 내려가마.”여동생은 학생 시절 그림을 잘 그렸다. 교육청 주관 사생대회가 있으면 늘 입상했다. 한국을 빛낼 화가가 될 거라고 했으나 아버지가 여자는 한글 읽을 줄 알고 시집가서 애 잘 낳고, 살림 잘하면 된다는 말에 여고가 최종학력이 되었다. 아버지는 20대에 만주에서 아편 장수를 따라다니면서 일을 봐주고 받은 월급을 한 푼 두 푼 모았다. 돈을 모아 독립해서 마약 장사했다. 돈을 많이 벌었다. 번 돈의 1/3은 김구 선생에게 군자금으로 보냈고, 역시 1/3을 김일성에게 보냈다. 1/3은 차후 장사를 위해 아편 구매와 생계에 썼다. 일본이 원자탄 두 방에 항복하고, 만주와 조선 땅에서 물러갔다. 도둑처럼 광복이 왔다. 모르는 사람들은 김일성에게 왜 돈을 주었냐고 비난하지만, 그때는 빨치산이나 임시정부나 때려잡자 일본 놈은 공통목표였다. 단지 노선이 임시정부는 민주 공화정을 추구하고, 김일성은 공산주의를 지향했지만, 광복 후 김일성이가 이렇게 변할 줄 몰랐다. 21세기에도 마약계 종사자는 걸리면 감옥 위험성이 있지만 걸리지 않거나 검찰, 경찰 고위층 백 줄만 있으면 돈을 가장 쉽게 버는 것이 마약 장사다. 만주에서 아편을 팔아 금으로 샀다. 금은 전 세계 어디를 가도 만약에 화폐개혁이 있어도 전혀 손해 안 보는 것이 금이라는 것을 알기에 금으로 비축해서 횡성으로 왔다. 횡성에 도착해서 금을 팔아 소를 샀다. 소 99마리가 재산이었다.

경화만 보면 미안하다. 내가 장남 제갈 병구, 큰 여동생이 제갈 경희, 작은 여동생이 제갈 경화, 가운데 남동생이 제갈 영구, 막내가 제갈 성구다. 형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요즘은 온 나라가 인구 줄어든다고 출산 장려책을 지방자치단체마다 아이디어를 쥐어짜는데, 이건 지방자치에서 할 것이 아니라, 국가가 해야 한다. 왜 여자들이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상황인가를 파악하고, 국가 차원 정책이 나와야 하는데, 이 조그만 땅에서 좌와 우의 정책 노선이 다르다.

1970년대에 강림은 중학교가 없었다. 중학교를 보내려면 자전거를 타고 20리 통학을 해서 안흥 중학교에 다니거나 원주로 보내 명문 원주 중학을 보내거나 해야 했다. 원주 중학은 최규하 대통령, 철학자 윤노빈을 배출한 학교였다. 최규하, 김지하는 잘 알지만, 윤노빈은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부산대학교 철학 교수를 하다가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이 보도되고, 불순분자와 좌익의 사주를 받은 폭동으로 보도된 것에 좌절하고 월북했다. 구국의 소리 원고를 썼고, 지하는 그와 동창이라는 이유로 국가정보원에 잡혀갔다.

아버지는 장남인 나를 소 99마리를 팔아서라도 명문대학교를 보내겠다고 초등학교 6학년 때 서울 D 초등학교로 위장 전학했다. 강림초등학교는 한 학급 58명이 전부인데 이곳 D 초등학교는 8반까지는 남자 반 9반부터 15반은 여자반이다. 6학년 8반 77번이 전학을 와서 77번인데 9반부터 15반까지 77번은 키가 고향에 계신 어머니보다 더 컸다. 점심시간에 포크댄스를 위해 마주 보고 있으면 내 얼굴이 그녀 젖가슴에 묻혔고 춤을 추다 보면 그녀에게서 엄마 냄새가 났다. 서울로 유학을 와서 중․고등학교와 대학 졸업했다. 경희는 원주여고를 졸업했다. 경화는 강릉여고에 합격했는데, 강림서 강릉으로 학교를 보내면 학비도 학비지만, 생활비 감당이 안 된다고 가까운 횡성여고에 보냈다. 횡성여고는 대환영이었다. 여자고등학교 중에서 최상급에 속하는 강릉여고 합격했던 학생이 횡성여고에 입학한다는 것은 개교 이래 한 명도 저울대에 진학 못 시켰는데 1호로 서울대학에 보낼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여고 1학년 때 <국군 장병 아저씨께>하는 위문편지를 보냈는데 답장이 학교로 왔다.

<제갈 경화 양에게>

경화 양이 보내준 위문편지 잘 받았습니다. 위문편지는 병장부터 이병까지만 나누어주는 것인데, 포천군단 정찰대에서 전체 병사들에게 위문편지 한 통씩 배분하고 남는 것을 대대본부로 가져와서 한 통씩 무작위로 정보과와 작전과 인사, 군수 간부들 나누어 받았는데, 경화 양 편지를 내가 읽었어요. 봉투 글씨가 어디 서예대전에 입선한 사람 수준으로 정자체로 쓰여 있어 들었습니다. 펜글씨 교본 같은 글씨가 보는 사람의 눈을 즐겁게 했습니다. 첫 답장이니 이만 줄이겠습니다. 계속 편지를 주고받고 싶어요.

1990년 12월 10일

포천군단 정찰대대 정보과 중사 설재길 씀.

그 편지로 1학년 2반은 난리가 났다. 전교생이 보냈는데, 첫 번째로 답장을 받은 것이라고 담임선생님이 낭독했다. 답장했고 선우 중사가 또 편지를 보내왔다.

<제갈 경화 양에게>

편지 잘 읽었습니다. 강릉여자고등학교에 합격하고도, 아버지 반대로 등록을 못 해 횡성여고를 다니고, 언니는 원주여고라고 알아주고, 횡성여고라고 무시당하는 그 느낌 알아요. 내가 오빠라면 강릉여고 등록금 내주겠어요. 그 집은 돈 버는 오빠도 없나 봐요? 그렇게 여고를 졸업할 때까지 주고받았다. 졸업 하루 전날에 장미 20송이를 들고 집에 찾아왔다. 찾아온 선우 중사를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는 노골적으로 반대했다. 반대 사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 나이 차이가 10세는 너무 크다고 했다. 둘째는 궁합이 나쁘다고 했다. 경화는 천하수(天河水)인데 선우 중사의 사주가 대역토(大驛土)라고 했다. 흐르는 물을 제방이 막으면 그게 잘 풀리겠느냐고 반대하셨다. 어른들이 반대하자 둘은 폭탄선언 했다. 내일 졸업식만 마치면 결혼식 없이 동거부터 하겠다고 했다. 지금은 다 헐어버리고 민간 건설사에 의뢰해 아파트 단지로 내주고 군인관사용으로 분양받아 군인관사도 민간아파트와 같이 살지만, 그 시절은 민간아파트 애들이 군인아파트를 보고 거지 아파트라고 부른다고 아들이 말했다. 그것이 싫어서 상사 진급 포기하고 전역했다. 졸업식을 마치고 포천군단 근처에 보증금 없는 월 5만 원짜리 월세 살다가 6개월 후 진군아파트 304호가 배정되어 이사했다. 아들 선우 태풍이 태어났고, 공주는 선우 중사가 전역해 축협 기장지점에 근무할 때 태어났다.

부산 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경화 부부가 마중 나왔다. 나이는 나보다 6살이나 위지만 처가 족보로 제갈 경화 큰오빠기에 손위 처남 대우받았다. 경화가 운전하고 설재길이 공주 이야기했다. 부산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회사에 취직해서 1년을 버티지 못하고 꼭 11개월에 퇴사했다. 그러기를 다섯 번을 반복하더니 방문을 걸어 잠그고 나오질 않는다고 했다.

“매제가 공주와 대화는 했는데?”

“대화는 못 했어요. 공주가 제일 꼰대가 엄마, 아빠라고 말이 안 통한다고 해서, 시도를 못 했지요?”

“공주가 뭘 먹기 좋아하는지는 알고?”

“어려서는 자장면인데 커서는 몰라요.”

“스쿨 푸드에서 만드는 오징어먹물 김밥 먹어봤어?”

“아니요?”

“그런데, 공주가 오징어먹물 김밥 좋아하는 걸 어떻게 아세요?”

“음, 재작년인가 공주네 회사가 서울 코엑스에서 혁신 가전제품 전시회 출품했다고 서울 왔었지?”

“예, 알아요. 자동센서 부착된 습도조절기?”

“그래, 부스 지키는 중에, 점심시간에 회사 대표, 부장 꼰대와 밥 먹기 싫다고, 외삼촌 시간 되냐고 해서 갔더니 봉은사 옆 은행나무집에서 횡성한우 사주려고 했더니, 횡성한우는 돈 많은 꼰대가 먹는 거고 2030은 스쿨 푸드가 가성비 으뜸이라던데?”

“그러니, 방문 걸어 잠그고 외삼촌 특사로 부른 이유가 있네요?”

“어이, 그런 말 마시오, 집에선 영경이랑 인(寅)이가 날 꼰대라고 그래.”

“왜 애들은 제 부모는 꼰대라고 하고 외삼촌, 이모, 고모는 말을 하죠?”

“이름이 공주라고, 금이야 옥이야 공주로 키운 거 아니야?”

“아닙니다. 집에서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위아래 알아보게 키웠어요. 회사에서 위, 아래, 좌, 우 두루두루 잘 지냈어요.”

“그럼, 회사서 퇴직금 몇 푼 아끼려고 고의로 11개월 부려 먹고 해직하는 악덕 회사만 들어간 걸까?”

“그건 모르겠어요.” 이런저런 대화하다 보니 집에 도착했다.

“오빠, 일단 씻고 나오세요. 제가 얼른 밥 준비해서 공주랑 겸상 준비할게요.”

“왜? 네 명이 먹지?”

“아니요, 모처럼 오빠 서울서 부산 행차인데 기분 좋게 시작해야지요.”

“알았다.”

경화가 밥상을 들고 공주방을 두드렸다.

“공주야, 문 열어. 우리 딸이 좋아하는 외삼촌 오셨다.”

“너랑 외삼촌 겸상이다.” 그 말에 철옹성처럼 굳게 닫혔던 방문이 딸깍 열렸다. 내 허리를 럭비선수 태클 들어오듯 달려들었다. 허리를 감고 나는 공주 등 중간까지 내려간 머리카락을 옆으로 밀고 등을 쓰다듬었다. 가슴에 얼굴을 묻고 흐느껴 울었다. 마음껏 울도록 기다렸다. 한참 울더니 화장실에 가서 세수하고 왔다. 언제 울었을까 싶을 정도로 밝은 목소리로 외삼촌 오랜만에 오셨는데, 눈물을 보여 죄송하다고 했다. 아니야, 울고 싶을 때 울고, 웃고 싶을 때 웃어야 건강한 거야 했다. 요즘 세상은 솔직한 사람만 손해 보는 세상이더라.

“어서 밥 먹자?”

“예. 맛있게 드세요?”

“음, 너도.”

“외삼촌은 보림 언니나 종수와 대화 잘하세요?”

“보림이는 가끔 하는데, 종수는 트럼프 보기보다 더 힘들어. 트럼프는 그래도 뉴스 채널에 종종 나오는 거 보는데, 그 애는 월부터 금은 새벽에 나가 퇴근하면 씻고 밥 먹고 자야 아침 새벽 나가고 토요일과 일요일은 게임동우회에서 정보통이라고 있는 것과 없는 것 승률 차이가 엄청나다고, 상대 팀이 제갈 종수 출전하는지 안 하는지가 관심 사항 1호래.”

“와, 그러면 돈 좀 벌겠는데요?”

“게임이 돈이 돼?”

“그럼요, 모르셨어요?”

“그냥 피시방 바둑 두러 가면 옆에서 헤드셋 쓰고, 욕지거리해 가면서, 에너지 음료 마시면서, 라면 먹어가면서 전투하는 거 봤지만 돈이 되는 줄을 몰랐어.”

“제 친구도 여자애가 게임에 미친 애 있는데요, 직장 다니면서 월급 타서 게임용 PC는 비싸고 모니터도 두 개 쓰잖아요?”

“그래, 인이 방에도 모니터 두 개야.”

“돈 벌어 최신형 나오면 계속 업그레이드해요. 팀원 중에 나머지 최신인데 자기만 등급 낮으면 왠지 자기 때문에 진 거 같아서 최신형 안 살 수가 없다고 해요.”

“그럼, 그들은 게임이 실제 전쟁터의 병사로 보일 나이니까.”

밥을 다 먹었다. 경화가 커피와 과일을 가져왔다. 커피를 마시면서 대화를 이어갔다. 무슨 말이든지 지금부터는 외삼촌과 조카가 아니고 공주와 동갑 친구로 생각하고 말하라고 하니 어떻게 그렇게 하느냐고? 했다. 나는 일단 말 놓는 시간을 하고 그 버전으로 계속 말하라고 했다. 내가 먼저 한다.

“야, 선우 공주 너 첫사랑이 언제 누구였어?”

“기장중학교 3학년 때 주인현이다.”

“왜 깨졌는데?

“인현이가 전교 1등인데, 나랑 사귀면 공부 안된다고 인현 엄마가 우리 집에 와서 난리를 쳤어.”

“그에 대한 복수 방법 생각해 봤어?”

“아니. 그럼, 이제부터 내가 물을게.”

“말해봐?”

“제갈 병구 너는 첫사랑이 언제야?”

“중3 겨울 서울시 고입 연합고사 마치고, ST 학원 특수반 B반 김경희였다.”

“어떻게 사귀었는데?”

“할머니가 수유리 신일 중․고등학교 앞에 내려 작은집에 가야 하는데, 한 정거장 지나가서 내려 고생하시니까 여학생이 주소를 들고 작은집에 데리고 와 준 거야. 검정 교복 단정하게 입은 여학생이 길 안내해 주니, 할아버지, 할머니가 감동하신 거지, 손자며느리 감이라고.”

“그래서?”

“할머니, 할아버지 소개로 알게 되었고, 둘이 같은 학원에 들어갔는데, 매월 시험으로 A, B, C, D, E, F 반을 만드는 거야. 그래서 나는 수학을 잘한다고, 경희가 수업 마치고 남으라고 해서 남았더니 자기가 나에게 영어를 가르쳐 줄 테니, 나보고 자기에게 수학을 가르쳐달라고 했어.”

“그다음은?”

“수학 함수 개념을 잘 모르기에 동전을 들고 자판기로 갔지. 경희야 잘 봐. 함수는 내가 동전을 넣지. 너 코코아 좋아하자 코코아 누르면 나오지?”

“응.”

“자판기 속 안이 어떻게 생기고 부품이 몇 개 들어가고 필요 없어, 자판기에 100원 넣고 누르면 코코아 나오네? 코코아가 함숫값이고 자판기가 함수야. 그런데 x에 그냥 x면 1차 함수, 제곱이면 이차함수, 삼 제곱이면 삼차 함수, 그러면 99 제곱이면 뭐겠어?”

“99차 함수?”

“오케이, 그녀는 함수에 통달했다. 겁먹지 말고 풀어봐? 그 말 한마디에 정말 수학을 열심히 했고, 다음 달 국어, 영어, 수학 시험에 국어는 나보다 2점 적고, 수학은 둘 다 100점, 영어는 그녀가 100점 나는 58점이라 국어 수학 덕분에 B반 유지했고, 그녀는 A반으로 올라가고, A반에서 B반으로 윤여정이라는 애가 내려왔는데, 야는 못생겨도 너무 못생긴 거야. 그러니 내가 수학을 가르치겠어? 경희를 가르쳐 준 거 아는 것은 경희 혼자인데, 그녀가 발설했거나 A 반에 가서 자랑했는지, 여정이도 나보고 수학을 가르쳐달라고 해서 싫어했더니 왜? 해서 나는 수학 가르쳐주고 수학 점수 올리는데, 영어 배우고 점수가 똑같으니 나만 손해야. 그냥 안 가르치고 안 배운다고 했더니 그 시절 귀한 파카 만년필을 사주는 거야. 중학교 교훈이 義에 살고 義에 죽자 인데, 처음으로 교훈을 어겼다.”

“파카 만년필 받고 또 가르쳐주었어?”

“음 함수 물어보니 횡설수설하기에, 동전을 들고 따라오라 했지. 100원 넣고 여정 너는 땅콩 차 좋아하지? 땅콩 눌러? 나는 코코아.”

역시나 함수 설명을 자판기에 비유해야 하였더니, 어머 넌 수학 최영수 선생보다 더 쉽게 가르친다 했다. 그 시절 최영수 선생은 청주고등학교 수학 선생인데 예비고사 출제위원 소집되어 가서 ‘킬러 문항’ 출제로 유명세 치르고, 서울 종로학원으로 스카우트되었었다. 인생 알 수 없는데, 내가 수학 가르쳐 준 여자애 둘은 원래 중학까지는 장래 희망 영어 교사였고, 영문과나 영어교육과 간다는 애들이 경희는 서울대학 수학과, 여정은 계산통계학과에 갔다. 물론 지금은 계산통계학과 이름이 촌스럽다고 변경했겠지만, 그 시절은 그런 과도 있었고, 난 여자와 거래해 손해만 본 인생이다. 제대로 된 연애 한 번 못하고 이용만 당했다.

“공주 초등, 중학 시절 제일 흥미 있고 그 시간이 행복했던 고목이 뭐야?”

“미술!”

“그런데, 왜 미술 분야 꼭 미술 동양화, 서양화 아니더라도 산업디자인이나 응용미술과 그런데 생각은 안 해봤어?”

“예!”

“예가 뭐야? 말 놓는 시간 벌칙으로 나가서 배나 사과 간식 만들어와?”

“알았다. 상일아~~~”

“그래. 이제 제법 말 놓는 시간 할 줄 아내, 너 엄마, 아빠랑 말 놓는 시간 한 번도 못 했어?”

“당근!”

“어이쿠 배 예쁘게 깎았는데?”

“음, 요즘 2030 한심하다고들 하는데, 다 그런 거 아니라고요?”

“또, 말 놓는 시간 벌칙 뭘 할까? 너 강림 외할머니댁에 와서 외할머니와 윷놀이하고 옷 할머니 옷 다 벗긴 거 기억나?”

“기억나지, 그땐 윷이 얼마나 잘되는지, 던지면 모, 모, 모, 윷, 걸 잡는다고 개! 외치면 개, 도 외치면 도가 나왔는데, 그거 비디오로 찍어야 했는데, 이젠 외할머니도 돌아가시고.”

“미술 좋아했는데, 그 생각 못 하고 경영학과 점수에 맞추어 갔다고 했지, 지금이라도 응용미술, 산업디자인 배워 공모전 응모할 생각 없어?”

“32세, 이 나이에?”

“그럼, 70세 노인도 시인으로 등단하고, 서예대전 미술 대전에 60세 이상 어른도 공모전 입상하는 거 뉴스에서 봤지?”

“응.”

“오늘은 너와 말 놓는 시간만 하고, 내일 네 엄마, 아빠 승낙을 얻어서, 너를 데리고 강림은 일가친척 하나 없는 집이지만 구경한다. 횡성 공원묘지에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산소에 막걸리 한잔 올리고, 포천 왕방산 정기를 좀 받고 포천서 너는 부산으로 나는 서울 구로구 개봉동으로 헤어지자?”

“알았어!”

거실로 나와 매부 옆에서 잠잤다. 다음날 여동생 부부에게 말했다. 여행 경비 내가 쓰는 것은 내가 낼 텐데, 공주가 강림 우리가 살다 부모 돌아가시고 처분한 집 구경하고, 태종대 노고소, 횡성공원묘지에서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산소 막걸리 한 잔 올리고, 포천 왕방산 정상 찍고, 진군아파트 다 사라졌겠지만, 위치 답사하고, 포천 맛, 집 홍두깨나 풍뎅이 통나무집이 지금도 있나 확인하고 있으면 거기서 포천 산나물비빔밥 먹고 없으면 아무 중국집 가서 자장면 곱빼기 먹고 헤어질 테니 알아서 여비 공주에게 주라고 했다.

강림은 많이 변했지만, 우리가 살던 집은 지붕이 초록색 그대로였다. 횡성군 강림시장길 30년 전에 여기 살다가 부모님 돌아가셔서 강림을 떠났다. 조카가 어린 시절 추억을 되살리고 싶어 해 방문했다고 하니 구경하라고 허락하셨다. 장독대 옆에 방치된 녹슨 세발자전거를 보더니 공주는 큰 소리로 나를 불렀다.

“외삼촌!”

“왜?”

“나, 이거 탈게. 밀어 봐?”

“야, 이 강아지야, 안장에 엉덩이가 들어 기나 하겠어, 다 큰 어른이?”

“일단 엉덩이만 걸치고 다리 옆으로 뻗게 밀어 봐!”

“야, 말 놓는 시간 끝났다!”

“뭐야? 나 여름방학에 외삼촌이 생활 국어 가르친다고 친족 간에는 공대의 안 쓰고, 나이 불문 반말이 통용된다고 했지?”

“와~우리 공주, 중학 때 외삼촌이 말해준 거를 서른둘에도 기억하네?”

“그럼, 기장중학교 김혜정 선생이 생활 국어 시험에 존대어 나왔는데, 우리 반에서 나 혼자 100점이라고 방학 동안 무슨 일 있었어? 물어서 여름방학에 통일전망대 중대장 하는 외삼촌 댁에 가서 화진포 김일성 별장, 이승만 별장 구경하고 회 먹고 관사에서 외삼촌이 중대장이지만 대학교는 국어교육과 출신이라고 생활 국어 가르쳐주셨어요?” 했더니 좋은 외삼촌 둔 것도 복이라고 하셨어요.

옆집 초롱 미용실과 길 건너 숙다방은 그대로였다. 숙다방에 들르니 사장님은 30년 전 그분이 아니었지만, 분위기는 그대로였다.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로 공주는 바닐라 라테로 마셨다. 노고 할미가 태종에게 거짓말을 하고 자진한 노고소와 태종이 쉬어간 곳이라고 주필대(駐匹臺)라는 비석이 있지만 통상 태종대라 부르는 정자에서 사진을 찍고, 막국수 집에서 메밀전병과 막국수를 먹었다. 때마침 부곡에서 횡성 읍내로 나가는 시내버스가 오기에 냉큼 올라탔다.

횡성 시내에 내려 택시를 탔다. 횡성 공원묘지 두 번째 블록으로 가자고 했다. 택시 기사는 나올 때는 어떻게 나오시려고요? 뭐 아버지 어머니 산소에 막걸리 한 잔 부어드리고 나올 겁니다. 금방 나오시면 거기 기다릴까요? 아닙니다. 그냥 카카오 택시 부르겠습니다. 거기 묘지는 카카오 잘 안 잡혀요? 왜요? 카카오에서 개발을 어떻게 했는지 모르지만 연결되는 기사가 없다고 문자 뜰걸요. 그때 그 문자 나오면 연락드리면 오실 수 있나요? 저게 핸드폰에 저장할게요.

공주는 8월 15일 광복절에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못 왔다. 정규직만 5일간의 경조사 휴가가 있고 계약직은 없다고 말이 안 되는 소리지만 공주는 그 자리마저 해고가 두려워 일했는데, 결국 11개월 마치고 해직되었다. 횡성 공원묘지 제2블록 경사진 길을 올라가 단풍나무 한그루 지나면 아버지 제갈 선호의 묘였고, 다섯 번째 지나면 어머니 전선 미의 묘였다. 준비해 간 막걸리를 종이컵에 따라 상석에 올려 절을 두 번 하고 산소에 골고루 뿌렸다.

공주는 외할아버지 묘소에서는 담담했는데, 외할머니 묘소에는 통곡했다. 꼬맹이 시절 업어준 것을 생각하면 만사 제쳐두고 달려와야 할 것을 그놈의 재계약 안 되면 어쩌나 두려워 못 왔어요. 외할머니 죄송하고, 거기서는 외할아버지와 싸우지 말고 잘 사시라고 했다. 다 돌아가신 후에는 웃음이 나는 소리지만 공주가 세 살 네 살 시절에 강림 외가에 오면 외손녀 생각해서라도 싸울 일 있으면 미정이네 식구가 강림을 떠난 후에 싸우시든가 하지, 우리 부모는 전혀 그런 거 안 가리고 싸우셨다. 산소에 막걸리를 부어드리고 공원묘지 2블록만 돌아보았다. 카카오 택시를 불렀다.

횡성 택시 기사 말대로 연결되는 기사가 없다고 문자가 0.5초 만에 떴다. 미친놈들이지 이걸 앱이라고 개발했나? 택시 기사가 알려준 핸드폰 번호로 전화했다. 아까 하차한 횡성 공원묘지 2블록으로 와 주시라고 했다. 기사는 예, 알겠습니다. 했다. 그동안 카카오 택시와 일반택시가 카카오 앱을 사용하는 것에 차별을 많이 지적해도 눈도 끔쩍 안 하던 카카오 창업자가 대통령이 한마디 하니 별별 대책을 다 낸다는데, 한심하다. 횡성 공원묘지에는 즉각 연결되는 기사가 없다는 문자 뜨는 앱을 앱이라고 만든 것인지 그러고도 연구개발비 정부 지원받았나? 의문이 간다. 카카오 아닌 일반택시를 타고 횡성 KTX 역에서 서울역으로 왔다.

포천이 공주 아빠가 총각 시절 근무하던 시절과는 너무 많이 변했지만, 왕방산 정상은 등산로가 안전하게 정비된 것 외에는 그대로였다. 정상에서 군단사령부와 진군아파트 자리가 잘 보이는 곳을 찾아 나무 그루터기 2개 있는 곳을 물색했다. 공주 한자리 나 한 자리 차지하고 각자 물병의 물을 꿀꺽꿀꺽 마셨다.

“공주야, 저기 도로가 직선이고 나무가 줄 똑바로 맞추어진 거 보여?”

“네.”

“저기가 네 아빠 설 중사가 근무하던 부대다.”

“엄마는 횡성여고 출신인데, 포천 중사를 어떻게 만났어요?”

“다 이야기하자면 여기서 밤을 새워야 한다. 간단히 말하게 궁금한 건 엄마에게 물어봐라. 아니, 너 그 유명한 여고 졸업하고 바로 동거한 사건을 몰라?”

“엄마. 아빠가 싸울 때, 너 나 이렇게 고생시키려고, 여고생 앞길을 가로챘냐고? 그 소리는 들었는데, 부부싸움에 나온 소리를 물어볼 수 없었어요.”

“그래. 본인들이 말해주지 않는데, 물어보기 그렇겠다. 그럼 좀 자세하게 말할 테니 묻지도 말고 집에 가면 모른 척해. 그냥 왕방산에서 아빠 근무한 부대 내려다보고 왔다고. 경희 이모와 네 엄마는 한 살 차이라서 자라면서 싸우기도 엄청나게 싸우고, 공부도 서로 누가 잘하나 시합하는지, 양궁 선수 국가대표 선발전이 올림픽보다 더 어렵다고 하듯이, 상장 누가 많이 타나 시합하는지, 둘이 탄 상장을 외할머니는 동네 사람 보라는 듯이 벽지 대신에 상장으로 벽을 한 면 가득 도배했다. 지금은 매월 월례 고사가 없어졌는데, 외삼촌이나 이모, 막내 외삼촌 학생 시절은 매월 시험을 봐서 1등에게 월 1등 상장을 수여했다.

공부를 잘하니 경희는 촌 강림중학교를 졸업하고 원주여고 입학시험에 차석으로 합격했고, 이에 질세라 경화, 네 엄마는 원주여고보다 강릉여고가 더 힘들다는 거 알고 겁도 없이 강릉여고 입학시험을 보고 합격을 한 거야. 집에 합격통지서를 가지고 나 강릉여고 합격했다고 자랑하자 집안이 난리가 난 거야. 이놈의 계집 애, 여자가 집 가까이 믿게 공부해야지 뭐, 대관령을 넘어 강릉여고라고 당장 취소해? 하는 할아버지 호통, 아버지 맞장구, 그냥 따라가는 할머니, 어머니까지. 네 엄마는 울면서 포기했고, 원주여고는 입학 사정이 끝나 안 된다고 하고 횡성여자고등학교는 받아준다고 해서 횡성여고 학생이 된 거야. 그러니 엄마가 공부 제대로 하겠어? 대충 하고 미술부에서 강릉 오죽헌 사생대회 나갔는데 금상을 받았고, 홍익대학에서도 고등학생 상대 미술대회를 했는데, 거기서도 은상을 받아서 미술과로 홍대를 가면 바로 합격인데, 여자라고 외할아버지, 증조부모가 반대해서 너 엄마 최종학력이 횡성여고야. 엄마 무시하면 안 된다. 알았지?”

“예!”

공주는 여기서도 나에게 안겨 꺼이꺼이 울었다.

“외삼촌, 왜 우리 엄마 아빠는 그런 말을 한마디도 안 해주었는지 미워요?”

“미워 마라. 나도 네 엄마에게 미안해. 강릉여고 합격이면 내가 서울에서 대방동 S 중학교 졸업하고 우신고등학교 시험 봐 합격점이 200점 만점에 190에 턱걸이인데 189로 낙방하고 뺑뺑이로 흑석 고등학교 진학하였다. 우신고보다 합격선 높은 것이 강릉여고라고 보내주어야 한다고 말을 해야 했는데, 오빠라고 허수아비 오빠였다. 그러니 공주도 엄마 촌 여고 출신이라고 무시하지 말고, 네 몸속에는 엄마 유전자가 51%, 아빠 유전자가 49% 흐르고 있으니 32세, 나이 무시하고 미술 공부나 디자인 공부 바란다. 알았지?”

“예.”

산에서 내려왔다. 배가 고팠다. 풍뎅이 통나무집으로 들어갔다. 사장님은 30년 전의 사장님이 돌아가시고 아들 내외가 했다. 산나물비빔밥을 주문했다. 포천까지 왔는데 이동막걸리는 먹어주어야 예의라고 막걸리 주문했다. 식사를 마치고 의정부까지는 시외버스로 의정부에서 전철로 광명역에 와서 부산행 KTX로 보내주었다. 콩나물시루 전철을 타고 개봉에 내려 개웅산 중턱 내 집으로 올라갔다. 공주가 부산으로 가고 해가 바뀌었다. 소포가 왔다. 책이다. 도서 출판 <義에 살고 義에 죽고>에서 펴낸 구범묵 회고록 <원주에서의 민주화운동> -지학순 주교, 무위당 장일순과 나-라는 부제가 붙었다. 책 표지에 명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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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디자이너

설공주

강원도 횡성군 태기산도 65길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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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 : 050-3434-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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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출판 물푸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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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 적

진호는 3대 독자였다. 3 재가 들어오는 해는 어머니가 용한 무당을 찾아가 부적을 해서 주머니에 넣어주었다. 고향을 떠나 객지에서 생활하고부터는 부적 대신 흑백사진을 넣고 다녔다.

“아야!”

“사람 살려!”

“진호 형! 왜 그래?”

시흥 신축공사장에서 해체작업 중에 거푸집에 깔렸다. 보 거푸집을 받치고 있던 받침대 두 개가 250kg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고, 그가 넘기기 전에 떨어졌다. 뒤로 물러났다. 안전모를 착용한 덕에 머리는 이상이 없었다. 왼쪽 다리가 움직일 수 없었다. 현장소장과 공사 과장은 해체 인원 4명과 정리 인원 12명을 동원해서 짓누르고 있는 보 밑면을 들어 옮겼다. 보통은 보의 양 옆면은 폼으로 연결하고 밑면은 합판으로 되었다. 해체팀장이 물었다.

“진호 형! 진호 형! 정신 있어요?”

“응, 정신 있어.”

“이거 몇 개야?”

“세 개 ”

“형, 확실히 말해, 정말 머리는 이상 없는 거지?”

“음, 정말 머리는 안전모 덕분에 이상 없어.”

“그래, 형은 안전모 하나는 잘 썼지.”

그는 건설일용직이 되기 전 20년은 직업군인이었다. 안전모에는 흑백사진 한 장이 있었다. 사진과 여행용 휴지가 안전모의 완충 작용을 높였다. 현장소장은 누르고 있는 폼과 앵글로 연결된 보 밑면을 들어내고 해체 공과 정리를 동원해 현장 밖으로 들어내려 했다. 현장소장이 그를 불렀다.

“진호 씨!”

“예!”

“정신 들어요?”

“예, 정신 있어요.”

“들어서 현장 밖으로 이동할게요.”

“미쳤어요? 빨리 119 나 불러줘요.”

비상 사이렌을 울리면서 119 구조대가 달려왔다. 신속하게 안전모를 벗겼다. 부목을 대고 흔들리지 않게 몸을 묶었다.

“환자분! 이름이 뭐예요?”

“하진호!”

“어떻게 다쳤어요?”

“해체하다가 보 거푸집에 깔린 겁니다.”

“왼쪽 넓적다리부 골절이니 부목을 대고 온몸을 묶을 겁니다. 아파도 참아요.”

“예.”

“마취할 수도 있는데, 병원이 가까워 마취 없이 이동하니 아파도 참으세요.”

“예.”119 대원은 그를 내리누르던 보 밑면을 사진 찍고, 최초 상태를 사진 찍고 이동했다. 119 구조 차량은 신속히 시화병원으로 이동했다. 응급실에 도착했다. 당직 의사가 인수하였다. 시화병원 제1 정형외과 과장 김인유 과장이 물었다.

“환자분, 이름이 뭐예요?”

“하진호!”

“어떻게 다쳤어요?”

“해체하다가 보 밑면에 깔렸어요.”

“보 밑면 무게가 어느 정도입니까?”

“한 100㎏!”

“환자분, 수술하려면 전신마취가 필요해요. 수술 동안은 아픈 줄 모르는데, 마취 풀리면 많이 아파요.”

“예, 알겠습니다.”

수술실로 들어가자 김 과장은 그에게 전신마취를 시켰다. 응급실에서 환자 이동용 침대에 실려 수술실로 이동했다. 마취 전문 의사가 물었다.

“환자분! 이름이 뭐예요?”

“하진호!”

“예, 좋아요. 하나 둘 셋 이렇게 스물까지 세 봐요!”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채 열을 세기 전에 잠들었다. 8월 19일 오후 3시 30분에 수술실로 들어가 7시 40분이 되어 회복실로 이동했다. 병원은 간호와 간병을 겸하는 병실이었다. 오늘은 보통 병실이 없어서 2인실 사용하고 공동 간병인 실이나 4인실이 나오게 되면 그리로 이동한다고 했다. 8월 20일이 되었다. 마취가 서서히 풀리자 비명을 질렀다.

“아 야!”

“환자분! 왜 그래요?”

“다리가 쿡 쿡 쑤시고 아파요.”

“예, 서서히 마취가 풀리면서 아파요. 아파도 참으세요. 일단 진통제 한번 주사할 테니까 진통제는 많이 맞으면 안 됩니다. 하루에 3번 이하로 맞아야 하니까 참아보고 간호사 부르세요.”

“예.”

“간호사 선생!”

“예, 환자분!”

“저 부탁이 있는데 말해도 됩니까?”

“말해보세요. 뭔지?”

“안전모 속에 흑백사진 한 장이 있을 텐데, 그걸 좀 찾아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간호사가 원무과에 전화하여 안전모에서 흑백사진을 찾아왔다.

“이거 맞아요?”

“예, 감사합니다.”

“누구예요?”

“내 첫사랑입니다!”

“이름은?”

“박은경!”

“아주 오래된 사진이네요.”

“예, 1995년 사진입니다.”

은경이 중학교 2학년 경주로 수학여행 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 사진 속 그녀 뒤로 다보탑이 보였다. 그녀와 초등학교 동창이었다. 치악산 아래 수주 초등학교 50회로 다니다가 6학년 때 그가 서울로 전학하였다. 중학교 2학년 때 그는 속리산 법주사를 거쳐 경주 불국사로 수학여행을 다녀왔다. 그녀는 백담사를 거쳐 동해안 7번 국도를 따라 내려가 불국사를 다녀왔다. 이때 찍은 사진 검은색 교복에 하얀 칼라의 독사진을 편지 속에 넣어 보냈다. 그는 속리산 문장대 정상에서 바위에 앉은 사진을 보냈고, 그녀는 다보탑을 배경으로 한 사진을 보냈다. 전신마취가 풀리자 통증을 느꼈다. 왼쪽 넓적다리부부터 아픈 기운이 서서히 아래로 내려갔다. 아픔을 참아가며 환자복 주머니에서 은경의 흑백사진을 꺼내 봤다. 빙그레 웃음이 났다. 검은색 치마, 하얀 칼라에 검은색 교복을 입은 단발머리 은경의 모습이다. 이 사진을 1995년부터 2025년 8월 19일까지 30년 동안 부적으로 간직했다. 대학 시절에는 지갑 속에 주민등록증 아래 숨겨 지니고 있었고, 2006년 3월 4일 육군 소위로 임관한 이후는 철모 속에 사진을 넣고 지냈다. 3월 4일 소위로 임관하고 조치원역에서 호남선 열차를 타고 광주 송정역에 내렸다. 역에서 육군 보병학교까지는 군용 버스로 이동했다. 훈육 중대장이 유격 훈련 순서를 정하는 제비 뽑기에서 1번을 뽑아서 그가 소속된 제3중대가 유격 1기로 입소하였다. 순서는 3, 5, 6, 9, 10, 8, 2, 1, 7중대 순으로 정해졌다. 4는 군대서 죽을 사(死)와 음이 같아서 4중대는 없고 바로 5중대로 이어졌다. 첫 주 훈련은 기초 체력 단련이었다. 이름이 기초 체력 훈련이지 거의 삼청교육대 목 봉체조 수준이었다. 구보, 연병장 축구 골대 돌아오기 선착순, 오리걸음, 유격 체조 등으로 이루어졌다. 기초 체력 훈련을 마치면 두 줄타기, 세줄 타기, 외줄 타기, 도르래 도하 훈련 등을 하였다. 세줄 타기 훈련은 동복 유격장 강 중류에서 두 줄 타기와 도하 훈련했다. 단계마다 교관 한 명과 조교가 3명씩 배치되었다. 올빼미 번호 순서대로 세줄 타기를 하였다. 교관이 구령을 붙이고 조교의 시범이 있었다.

“올빼미들! 시범 잘 봤습니까?”

“예.”

“목소리가 작습니다. 올빼미들 아침 식사 못 했습니까?”

“했습니다.”

“밥 먹은 소리가 아닙니다. 죽도 못 먹은 소리 내지 말고 힘차게 외칩니다. 알겠습니까?”

“예~~에!”

“일 번 올빼미 앞으로!”

“옛, 일 번 올빼미 도하 준비 끝!”

“일 번 올빼미 애인 있습니까?”

“예, 있습니다!”

“이름이 뭡니까?”

“김경희입니다!”

“김경희 3회 복창!”

“김경희, 김경희, 김경희!”

“좋습니다. 도하!”

“도하!”

“유격, 유격! 유격! 유격! 유격!”

유격을 복창하며 1번 올빼미가 도하를 마쳤다. 순서대로 도하를 하였다. 49번 올빼미 하 소위 순서가 되었다.

“49번 올빼미 도하 준비 끝!”

“49번 올빼미 애인 있습니까?”

“예, 있습니다!”

“이름이 뭡니까?”

“박은경입니다!”

“박은경 3회 복창!”

“박은경, 박은경, 박은경, 박은경!”

“교관이 3회 복창하라는데 49번 올빼미 4회 복창했습니다. 49번 올빼미 정신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다!”

“정신 차리는 의미에서 박은경 10회 복창합니다.”

“박은경, 박은경, 박은경, 박은경, 박은경, 박은경, 박은경, 박은경, 박은경, 박은경! 이상입니다!”

“좋습니다. 도하!”

“도하!”

“유격, 유격, 유격, 유격, 유격!” 유격을 외치면서 세줄 타기를 마쳤다.

기초 체력 훈련과 장애물 통과 훈련을 마치고, 3중대는 도피 및 탈출 훈련을 하였다. 교관 강 중위는 도피 및 탈출 훈련은 전쟁에서 본대에서 고립되었을 때 지도와 나침판을 가지고 목표지점을 찾아가는 훈련이라고 했다. 41번부터 50번까지 5조가 되었다. 각 조에 부여된 좌표를 찾아가면 그 좌표에 육군에서 사용하는 콘크리트 말뚝에 독도법 부호가 하나씩 새겨져 있었다. 그것을 해당 좌표 옆에 도식하면서 찾아가는 훈련이다. 조장은 매일 돌아가면서 했다. 이동 간에는 절대로 민간인 구역으로 내려와서는 안 된다. 민간인 집이나 상점 주변에는 교관이나 조교들이 매복하고 있다가 걸리면 한 명 때문에 조 전체가 유격에서 최저 점수를 받는다고 했다. 그가 소속된 5조의 출발은 좋았다. 첫 번째 좌표를 찾아가니 독도법의 <보병 제17사단> 표시가 있었다. 두 번째 좌표를 찾아가는데 좌표가 민간인 과수원 한복판을 지나가게 되었다. 오늘의 지휘자 하 소위는 올빼미 회의를 소집했다.

“올빼미 집합!”

“올빼미 집합, 모여라!”

“오늘 내가 조장인데, 두 번째 좌표를 보니 저기 민간 과수원 안에 우리 좌표가 있는데, 내 생각은 그냥 건너뛰고 3번 좌표로 갈까 하는데 올빼미들 생각은?”

“43번 올빼미 의견 있습니다!”

“말해봐!”

“만약에 이걸 건너뛰고 9개만 찾아 최종 목적지에 갔을 때 다른 조들이 모두 10개 다 찾으면 우리 조가 꼴찌 아닙니까?”

“그렇지? 그러나 그 많은 조가 10개 찾는 일은 없다고 본다.”

“45번 올빼미 의견 있습니다. 저는 49번 조장 올빼미 의견에 찬동합니다. 왜냐하면, 어차피 어느 한 조는 민간 구역에서 포로로 잡힐 텐데 이거 하나 건너뛰고 포로 안 되고 9개 신속히 찾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합니다.”

잠깐이면 될 줄 알고 올빼미 회의를 소집했는데, 시간이 반 시간이나 흘렀다. 여기서 더 시간을 지체하면 안 되니 조장은 사회만 보고 거수는 안 하고 나머지 올빼미 거수 바란다. 먼저 이곳 건너뛰자 손들어! “

“3명!”

“이번 목표 찾고 가자 손들어!”

“6명, 그럼 다수결 원칙으로 찾고 간다. 41번 곽승종 올빼미는 김범진 올빼미와 둘이 척후 조로 임명한다. 과수원에 침투하여 민가에 사람 유무를 확인하고 없다고 확인되면 나무에 양말 한 짝을 매달아 신호하라.”

“예, 알겠습니다.”

“나머지 8명은 동서남북으로 은폐된 곳에서 사주 경계를 한다.”

“예, 알겠습니다.”

척후 저가 출발하고 한 시간 정도 지나자 과수원집 바로 옆 나무에 양말 한 짝이 걸렸다. 그것을 본 8명의 본대는 야호! 환호를 질렀다. 과수원 안은 너무 조용했다. 이산가족 상봉이나 한 듯 10명은 다시 만나자 서로 부둥켜안고 기뻐했다. 기쁨도 잠시 서로 얼싸안은 상태서 호각 소리가 들리고 동작 그만하는 교관의 굵직한 음성이 들렸다. 유격대 총괄 교관 민 중위의 목소리였다. 10명의 올빼미는 부동자세를 취했다.

“오늘의 조장은 몇 번 올빼미입니까?”

“예, 49번 올빼미!”

“조장은 교관이 분명 어떠한 경우라도 민간 구역에는 나타나지 말라고 한 말을 기억합니까?”

“예, 기억합니다!”

“그런데 왜 여기 민간 과수원에 들어온 것입니까?”

“예, 처음에는 그냥 건너뛰고 3번 좌표로 가려했는데, 조원들 의견이 나누어져 다수결로 정해서 찾기로 했습니다.”

“49번 올빼미는 전쟁이 나도 다수결로 할 것입니까?”

“아닙니다!”

“49번 올빼미는 군인정신이 털끝만큼도 없는 올빼미로 생각됩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수결 방식이 투철하니 썩은 자본주의 정신을 빼고 군인정신을 주입하기 위해 포로 신문 소로 이동합니다. 조교 49번 올빼미 포로 신문 시작!”

“예, 알겠습니다!”

“49번 올빼미 이외 9명은 완전군장으로 과수원 울타리 보행합니다. 실시!”

“실시!”

과수원 흙벽돌집 안방으로 들어갔다. 벽에 대형 북한의 인공기가 걸려있고 하단 좌우에 김일성 초상화가 걸려있었다. 군화를 신은 상태로 49번 올빼미를 벽에 나무 십자가에 묶었다. 빨강 모자를 쓴 조교가 물었다.

“49번 올빼미는 소속, 계급, 군번, 성명을 말씀하시오!”

“......”

“아하, 49번 초장부터 묵비권 행사다 이거지?”

“묵비권 남조선 안기부 놈들이 민주인사 고문할 때 민주인사들이 쓰던 방법인데, 동무는 지금 포로로 잡혔다.”

“제네바 협약에도 소속, 계급, 군번, 성명은 말하게 되었다, 어째서 그네 가지도 말 안 하는가? 49번 올빼미 동무!”

“좋다, 동무가 묵비권을 행사하니까 지금부터 우리도 우리 임무를 수행한다.” 방구석에 세워놓은 야구 방망이로 전투화 밑창을 개 패듯 때렸다.

“다시 한번 묻습니다. 49번 올빼미 소속은?”

“군번은?”

“계급은 역시 묵비권?”

“...... ”

“이런 멍청이가 어떻게 남조선 국방군 장교가 되었지?”

“하는 수 없지. 지금부터 물고문, 전기고문, 고춧가루 고문, 잠 안 재우는 고문 49번 올빼미 원하는 것으로 해준다 골라라.” 커다란 고무 물통에 물이 가득 차 있었다. 조교는 49번 하진호 포로를 물통에 얼굴을 처박았다. 1분 30초, 2분, 3분 30초 점차 시간을 늘려가며 물고문을 했다. 물고문을 30분 정도 하자 49번 올빼미가 자백했다.

“소속은?”

“육군 보병 학교”

“계급은?”

“소위입니다.”

“군번은?”

“성명은?”

“하진호입니다.”

“좋소, 진작 시원하게 대답하면 힘든 고문 안 해도 되었지, 공연한 고집을 부려 조교도 힘들고 하 소위도 힘들었습니다.”

“가족은?”

“애인은?”

“없습니다!”

49번 올빼미가 고문당하는 동안 9명 올빼미는 완전군장으로 과수원 울타리 안에서 보행하고 있었다. 49번 올빼미에게 김일성 만세! 3번 외치면 풀어준다고 회유했다. 49번 올빼미는 끝까지 저항했다. 고문을 이어가도 나를 죽이지는 못한다는 마음으로 버티고 전기고문도 참았다. 10명이 완전군장 보행과 고문에도 김일성 만세를 않고 저항을 하니까 금요일 오후에 풀려났다. 원래는 10개의 좌표에 표시된 독도법 부호를 다 찾아야 하지만 1번 < 보병 17사단>을 찾고 2번을 찾다가 화, 수, 목 3일간을 고문으로 시달리고 금요일을 맞이했다. 금요일에 풀려나면서 2번부터 8번까지의 좌표의 독도법 표시를 문제지 옆에 조교가 표시해 주었다. 끝까지 김일성 만세를 부르지 않고 저항을 잘했기에 주는 상이라고 했다. 제5조 올빼미는 북쪽의 대형 송전탑만 보고 정상의 송전탑 아래 9번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정상에서 9번을 찾으니 10번은 처음 유격 훈련 출발했던 숙영지 축구 골대 옆에 있다는 메모가 있었다. 5조 올빼미들이 3중대 200여 명의 올빼미 중에서 가장 먼저 출발지점에 도착했다. 중간에 포로로 고문은 당했어도 10개의 독도법 부호를 모두 찾았다. 토요일 오후 3시까지 이곳에 집결하면 되는데 5조는 오전에 다 찾고 도착해 있었다. 팀장이 올빼미 소집을 하였다.

“올빼미들 오후 3시 여기 모이면 되는데 그때까지 뭐 하면서 시간 보내지?”

“50번 올빼미 건의 있습니다.”

“말해봐라. 50번 올빼미!”

“여기서 오후까지 빈둥거리다 교관에게 걸리면 청소나 하게 되니 강가에 가서 물고기 잡아 매운탕이나 먹읍시다.”

“좋아요. 한 표!”

“좋아요. 2표!”

“나도 한 표!”

“좋다, 그러면 여러 올빼미가 다 찬성하니 강으로 출발!”

출발 명령을 내리고 철모를 쓰기 전에 흑백사진 검은색 교복에 하얀 칼라가 눈부신 모습을 보고 빙그레 웃었다. 김범진 올빼미는 어느새 대검으로 축구 골대를 감싼 녹색 그물망을 가로 1m 세로 3m로 잘랐다. 양 끝을 나무로 묶어 손잡이를 만들었다. 진호와 범진은 그물망 양쪽을 잡고 나머지 8명은 강 상류로 올라가서 고기를 몰고 내려왔다. 녹색 그물망에는 붕어, 버들치, 모래 무자, 피라미, 쏘가리 등 다양한 물고기가 잡혔다. 조성상 올빼미는 쌀을 씻어 밥을 짓고, 이 학원 올빼미는 된장, 고추장, 채소를 준비했다. 어느새 곽승종 올빼미는 살금살금 민가 밭에 가서 풋고추, 깻잎, 상추를 뜯어왔다. 유격 마지막 날 토요일의 점심은 강가에서 매운탕으로 배부르게 먹었다. 어디서 구했는지 소병학 올빼미가 소주를 꺼냈다.

“여러 올빼미 여기 주목! 매운탕에 소주가 빠지면 앙꼬 없는 찐빵이다. 다들 소주 한 잔씩, 모두 반합 따까리를 들어.”

“이거 어디서 구했어?”

“구하긴 어디서 구해. 훈련 출발 전에 좌표 다 찾고 들어오면 여기 원위치라고 해서 미리 소주 사서 축구장 옆 소각장에 숨겨두고 떠났다가 지금 찾아왔지?”

“야, 정말 소병학 올빼미 선견지명 있다.”

“자 모두 따랐으면 건배한다. 5조 성공을 위하여!”

“위하여!”

“위하여!”

2월 어느 날 은경 엄마의 몸이 이상해졌다. 한겨울에 감자떡이 먹고 싶다고 했다. 다음 날은 돼지고기가 먹고 싶다고 했다. 평소는 고기를 별로 먹지 않던 화자가 두 근을 혼자 다 먹었다. 다섯 딸은 돼지고기 냄새만 맡았다. 은경이 아버지에게 한마디 했다.

“아버지, 엄마가 돼지고기 먹고 싶다고 하면 좀 넉넉히 사지, 엄마만 먹고 우린 뭐예요?”

“그래, 미안하구나! 내가 내일 다시 장 보고 오마.”

엄마는 돼지고기 다음으로 겨울에 수박이 먹고 싶다고 했다. 정훈은 겨울에 수박을 어디 가서 구하냐고 내일 안흥 보건소에 같이 가자고 했다. 안흥 보건소장은 중앙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산부인과 전공을 한 최지영 의사가 공중보건의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군의관은 3년 공중보건의 사는 5년인데, 최지영은 산부인과 전공이라 군대보다 공중보건의사를 택했다.

“문명자 님?”

“예!”

“임신 축하드립니다!”

“아들입니까?”

“아직 아들인지 딸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여보, 임신이래.”

“그래, 태교 잘해 멋진 아들 낳아.”

임신을 확인한 아버지는 안흥에 하나밖에 없는 택시를 불러 집으로 왔다. 중간에 택시에서 화자가 닭을 먹고 싶다고 했다. 정육점에 들러 생닭 두 마리를 샀다. 은경네 식구는 이날 닭 2마리로 닭볶음탕을 해 먹었다. 2월 마지막 주가 되었다. 강림 중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하고, 원주여자고등학교에 합격해, 원주에 자취해야 했다. 자취 준비는 짐이 많다. 동생 은서가 은경 짐을 원주까지 같이 날랐다. 동신운수 시외버스를 같이 탔다. 처음 타 보는 버스라 은서는 차멀미했다. 은경은 원주 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주사범대학 수학교육과를 진학했다.

졸업 후 반년 정도 기다려 2005년 9월 1일부로 간성 고등학교 수학교사가 되었다. 여기서 음악 교사 김 모 선생을 만나 결혼했다. 간성, 고성, 주문진, 속초 일대에서 4년마다 이동하며 근무했다. 결혼 후 임신을 하고 첫 아이를 낳았다. 태어날 때 산소 부족으로 아기가 태중에서 산소 부족으로 인한 정신지체아로 태어났다. 영화 마라톤에서 초원 엄마처럼 살았다. 모든 것이 첫 딸의 정신지체아를 살려야 한다고 학교를 사표를 냈다. 전국에 유명한 박사들은 다 찾아다녔다. 아이를 처음에는 간병인을 구해서 간병했는데, 아예 은경이 직접 간병을 배웠다. 직접 간병을 하면서 간병인 사무실을 개업했다. 첫 딸을 위해 강원도를 벗어나 수도권으로 이사했다. 안산에 ‘데레사 간병인협회’를 만들었다.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정말로 세상에 착하게 살아온 내가 왜 이런 지체 장애가 있는 자식을 하느님에게 주신 거냐고 원망했다. 아이에게 전념하느라 시댁과 친정과도 인연을 끊고 지냈다. 대학교, 고등학교, 중학교 동창회도 참석을 안 했다. 오직 딸을 위해서 모든 것의 제1 결정이 되었다. 초등학교 5학년 나이가 되어도 발음이 부정확하고, 손의 기능이 땅바닥의 동전을 줍지 못했다.

안산 상록수역 롯데리아 건물 2층에‘데레사 간병인회’를 개업했다. 그녀 전공은 수학교육이지만 일반선택으로 특수교육도 공부했다. 속초 고등학교 사표를 내고 한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석사과정을 마쳤다. 안산 일대의 간병인이 필요한 병원에서 간병인을 파견 보냈다.

그는 2010년 10월 2일 부대 이동을 하였다. 전방 철책을 지키던 2대대가 예비 부대로 이동하고 3대대가 철책선 경계근무를 하게 되었다. 동해안 최북단 통일전망대를 기준으로 해안 명파마을부터 북으로 통일전망대 좌측 1㎞까지 9중대가 담당했다. 그 좌측이 10중대, 오른쪽이 11중대 순으로 책임 구역이 정해졌다. 10월 9일 한글날이었다. 철책선 경계근무는 그날이 일요일이든 국경일이든 하는 일은 똑같다. 야간 경계근무를 철수하고 실탄을 반납하고 소총을 어깨 위쪽으로 하고 격발을 했다.

“이상 무!”

“이상 무!”

아침 식사를 하고 해안을 멀리 볼 수 있는 고가초소만 점령했다. 오전 10시쯤 명파 초소에서 상황보고가 들어왔다.

“해안 14 초소입니다. 어선 한 척 북상!”

“알았다, 계속 감시하라.”

“전 초소 들으라고 명파 초소에서 어선 한 척 북상 중이다. 어로 한계선 넘지 않게 미리 경고 방송, 경고 사격 준비하라!”

“예, 알겠습니다.”

어선은 계속 북상했다. 바다에 어민들만 아는 부표로 어로 한계선을 설치했는데, 그것을 통과했다. 초소 병력은 공포탄을 쏘고 실탄 사격도 했다. 신호탄도 올렸다. 어선은 계속 북상했다. 9 중대장은 대대장에게 보고했다.

“대대장님, 9 중대장입니다. 어선 한 척이 어로 한계선 가까이 북상합니다. 소총으로는 신호가 안 되니 106밀리를 사용하겠습니다.”

“월북자 아니야?”

“현재로는 월북 기도인지 단순 북상인지 알 수 없습니다.”

“내가 현지로 갈 텐데, 9 중대장은 어디에 있을 거야?”

“예, 통일전망대 106밀리 초소로 오십시오. 106 밀리로 배를 돌리겠습니다.”

“배를 돌리는 것보다 명중시켜 수장시키는 것이 어떠냐?”

“아닙니다. 배 후미에서 전방으로 포탄 나가게 하여 배를 돌리겠습니다.”

9 중대장은 부대대장 조규정 소령에게도 전화했다.

“부 대대장실, 김 상병입니다!”

“음, 나 9 중대장이다. 부대대장님 바꿔라.”

“지금 주무시는데요.”

“야, 실제상황이라고 전화받으시라 해!”

“9 중대장, 뭐야?”

“충성! 실제상황입니다! 어선 한 척이 어로 한계선을 넘어 북상 중입니다. 통일전망대에서 106밀리로 선수를 돌리겠습니다.”

“대대장님은?”

“통일전망대 106밀리 진지로 온다고 했으니 부대대장님도 그리 오십시오.”

“알았다!” 106 미리 분대장 안봉희 하사가 9 중대장에 보고했다.

“중대장님, 106밀리 2정 배에 조준 완료했습니다. 사격하겠습니다.”

“배를 명중하지 말고 뒤에서 배 밑으로 포탄이 지나가 배를 돌리도록 하라!”

“중대장님! 차라리 명중이 쉽습니다. 그게 더 어렵습니다!”

“그래서 안봉희 하사에게 명령하는 거다.”

“예, 알겠습니다. 줄이기 5밀리 발사!”

“발사!”

“쾅! 쾅!” 두 발의 106 밀리가 발사되자 배 앞에 하얀 물기둥이 솟았다. 선수를 돌려 남하했다. 106밀리 사격으로 고가초소 비밀 막이 터져나갔다. 전망대 유리창도 몇 장 파손되었다. 남하하여 명파 어민 통제소로 이동했다. 통제소에는 이미 사단 기무부대장, 사단 정보참모, 기무부대 전방 담당 반장, 해양경찰 정보과장, 거진 경찰서 정보과장, 국가 안전 기획부 속초 파견관 등이 집결했다. 명파 어촌계장 소봉 선훈 씨도 나왔다. 명파 소초장 학 기철 중위가 남하하는 배를 소총을 겨눈 상태서 어민 통제소로 나왔다. 학 중위로부터 신변을 인도받은 헌병이 헌병 차량에 태워 호송했다. 거진 경찰서 명파 파출소에서 최초 합동 신문했다.

< 최초 합동 신문 조서>

-성 명 : 즙창우 (54 세, 남)

-주 소 : 강원 고성군 현도면 명파리 산 65 번지

-직 업 : 어 부

**** 월경 경위 *****

상기 명 즙창우는 2020. 10. 8일 자신의 어로 잡이 배가 엔진에 문제가 있어 거진 항에서 수리를 하였으나 재차 고장이 발생하여 속초 대포항 대명 공업사서 선박을 수리하여 명파로 오던 중 배 안에서 음주(소주 4병)로 명파 어민 통제소를 지나 월경한 사고임.

-대공 용의점

본인의 진술과 명파리 가족관계, 개인 채무 등 모든 점에서 월북 사유가 없어 단순 월경으로 대공 의심할 사항 없음.

**** 조사자 ****

- 동해사단 정 보 참모 중령 박 영 빈

- 기 무 부대 파견 반 대위 정 종 오

- 해양경찰 속 초서 경위 남궁 채집

- 거지는 경찰서 정보과 경위 최 재 길

- 국가안전기획부 4급 김 성 철

이 사건으로 최초 발견자 안재식 상병 외 1명, 최기철 중위, 통신병 이훈정 일병이 사단장 표창을 받았다. 합동 심문조가 최초 발견 지점부터 마지막 106밀리 발사까지 전 과정을 조사했다. 사단 군수 처에서는 소모한 실탄과 예광탄 공포탄을 보충했다. 상황이 종료되자 하 대위는 숨겨둔 흑백사진을 보고 빙그레 웃었다.

10월 10일 3 대대장 실에서 주요 직위자 회의를 하였다. 대대장 소봉 건영 중령은 이번 10월 9일 민간 선박 월경 차단 작전은 결과는 좋았지만, 우리가 반성할 점이 많다고 했다.

“9 중대장! 발견은 명파 초소에서 했는데, 왜 배의 선수를 돌리지 못하고 월경선 직전까지 갔지?”

“예, 저도 참 그 점이 답답했습니다. 해안 4 소초부터 호각 불고 신호탄 쏘고, 공포탄 실탄 다 쏴도 바다에 얼마 안 가 물속으로 들어가지 배에 경고할 수단이 없었습니다. 맨 마지막 106밀리 아니었으면 월북 못 막았을 것입니다.”

“뭐, 획기적인 방법 없을까?”

“중대장에게 106밀리 진지 이동하여 해안 4 초소나 3 초소에서 사격할 수 있다면 통일전망대 가기 전에 배를 저지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 앞으로는 교전 교칙 변경해 평시 월경 방지를 위해 106밀리를 진지 이동하여 사격할 수 있도록 개정하도록, 작전 장교 알았지?”

“예, 수정하겠습니다!”

부대대장 조규정 소령이 한마디 했다.

“야, 9 중대장 106밀리로 배를 명중시켜 격침하면 여기 있는 사람 다 훈장 받을 텐데 왜, 명중 안 했어?”

“배가 월북 의도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데 어떻게 격침해요?”

“야, 9 중대장은 장군 되기 틀렸구나. 장군 되려면 안면몰수하고 격침할 기회에 격침해야 한다. 이미 명파를 넘은 것은 격침해도 너에게 잘했다 그러지 왜 격침 이유는 따지지 않는다.”

“예, 다음 이런 기회 오면 격침하겠습니다!”

“너 앞으로 제대하는 날까지 그런 기회는 없다.”

“9 중대장은 훈장 수상 기회 잃어버린 거야!”

“그렇게 훈장 받으면 마음 편하겠어요?”

그 말에 대대 회의 참석자 모두 웃었다.

6월 15일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정상회담을 하였다. 정상회담의 후속 조치로 2004년 5월 26일 남북 장성 회담이 열렸다. 남북의 합의로 쌍방의 상호 비방 금지, 선전 수단을 철거하기로 했다. 전선 155마일 요소요소에 설치된 대북 확성기 방송 시설과 백령도에서 우측 최북단 통일전망대까지 북쪽으로 시계가 확보된 곳에 설치된 11개의 대형 전광판을 철거하기로 했다. 아울러 북으로 보내는 전단 140만 장을 폐기하게 되었다.

6.15 남북 정상회담의 후속 조치로 이루어진 명령이라 철거 기간이 6월 16일부터 8월 15일 00시였다. 그러니까 8월 14일까지 끝내라는 뜻이다. 국군심리전단장 서 대령은 심리전단의 주요 직위자들을 지휘통제실에 모아놓고 훈시를 하였다.

“여러분 TV 뉴스를 봐서 알겠지만, 남북 장성 회담서 쌍방의 선전 수단을 철거하기로 하였습니다. 기간이 6월 16일부터 8월 14일까지 끝을 내야 합니다. 이런 중대한 임무를 우리 부대가 수행합니다. 틀림없이 철거 현장에 국내외 언론들이 보도하러 올 것입니다. 절대로 인터뷰하기 전에 단 본부의 승인을 받고 인터뷰하고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바랍니다. 작전과 장은 철거 계획을 일자별로 수립하고, 군수 과장은 재산 대장 정리 빠짐없이 하기 바랍니다.”

군수 과장은 재산 대장을 꺼냈다. 전광판 하나 설치에 2억 들었고 11개 설치되었으니 22억, 그 22억짜리가 철거하면 하나에 2-3만 원 고철이 되는 것이다. 1월부터 4월까지 전방 확성기 방송시스템을 정비하고 그 수리부 속 트랜지스터를 정품 하나에 6,600원 하는 것을 3,000원짜리 비급으로 구매하고 영수증 정리는 6,600원으로 해서 그 차액을 비자금으로 만들라는 단장의 지시를 안 들어 군수 과장과 단장이 한동안 소원했다. 이렇게 철거하고 없어질 것이라면 단장 품위 유지비나 만들어 좋은 놈 소리나 들을 걸 하는 후회도 되었다.

한편 아니야 하진호, 넌 잘한 놈이야 세상에 돈으로 되는 일이 있고 돈으로 할 수 없는 일이 있음을 확실하게 단장에게 보여준 몇 안 되는 훌륭한 장교야 하는 소리도 들렸다.

8월 14일 모든 선전 수단을 철거했다. 확성기 방송 세트 52개소, 대형 전광판 11개소 철거했고, 1 억장의 전단은 중대별로 지역 소각장에서 전량 소각 전에 사진 찍고 소각 장면과 소각 후의 사진 찍었다. 전광판은 고철로 1개소에 2만 6천 원 고철값을 국방부에 국고반납을 하였다. 마지막으로 8월 14일 24시, 즉 8월 15일 0시를 기하여 ‘자유의 소리 방송’으로 불리던 대북 방송을 중단했다. 군수 과장 하 소령은 정비 군무원 박명규 주사와 정 비관 홍성도 사무관을 대동하고 용문산 중계소에 올라가 방송 송출 전원을 껐다. 작업을 마치고 철모를 쓰기 전에 철모 속 흑백사진을 보고 빙그레 웃었다. 임무가 중단된 국군심리전단은 전방의 확성기를 운용하던 인원과 마이크를 잡고 방송하던 여군들이 모두 심리전단 본부로 모였다. 군대는 절대로 밥만 먹고 노는 군인을 그냥 안 두었다. 지금까지 해오던 총성 없는 전쟁이라고 하던 심리전 (고무풍선에 전단 보내기, 전광판 불빛, 대형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고 새로운 심리전을 준비하라고 했다.

가칭 ‘사이버 심리전 부대’로 정했다. 정식 편제되기 전 임시 조직으로 하 소령이 사이버 심리전 창설 반장을 맡게 되었다. 장비를 철거한 부대의 군수 과장은 그야말로 할 일 없는 소령으로 육군본부서 본 모양이다.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대북 방송하던 여군들 40여 명과 전방에서 방송 장비를 조작하던 남자 군인 20명 하 소령까지 총 61명에 심리전단 본부 9명이 사이버 심리전 부대 창설 요원이 되었다. 사이버 심리전 부대 70명의 교육 훈련계획을 작성했다. 북한은 미림대학이라는 곳에서 대량의 해커를 양성하고 대남 사이버 심리전을 중국에 나와 출처 불명의 인터넷 주소를 사용해 미국과 일본과 한국을 대상으로 해킹도 하고, 사이버 폭탄도 전파하는 시기에 하 소령은 부대원 훈련계획을 수립했다. 이미 컴퓨터를 어느 정도 알고 있던 여군들은 아우성이었다. 신수정 중사가 최고로 불만이 많았다.

“하 소령님, 면담 신청하겠습니다.”

“신 중사가 나를 면담?”

“예.”

“그래, 점심 식사하고, 내 방으로 와.”

“예, 알겠습니다.”

하 소령이 점심을 먹고 사무실에 오니 문밖에 신 중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거, 손님을 기다리게 했구나. 어서 와!”

“예, 여기 소령님 좋아하는 캔 커피 하나 들고 왔어요.”

“아이코, 이거 손님에게 대접해야 하는데, 손님이 마실 것을 들고 왔네?”

“그럼요, 소령님에게 얻어먹은 커피가 몇 잔인데, 이 정도는 해야지요?”

“신 중사 면담하는 요지는?”

“만드신 교육계획 제가 봤는데요, 요즘 누가 DOS를 배워요?”

“여군들이 이거 보고 다 웃었어요. 아니 한심하다고 선임 중사로 말하래요”

“왜?”

“마우스로 붙이면 다 되는 세상에 DOS 배우라고 하니 하사들이 난리지요?”

“그럼, 신 중사는 낄낄거리는 하사 혼내주지 같이 낄낄거렸어?”

“그럼요, 윈도보다 시대에 도스 배우는 것 웃음거리 아닙니까?”

“신 중사,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마우스로 무엇을 검색하는 일도 있지만, 컴퓨터 저 밑바닥에서부터 공부하지 않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것이야.”

“그게 뭔데요?”

“그건 나도 몰라.”

“모르면서 어떻게 DOS를 교육과목에 편성합니까?”

“음, 거시기 뭐냐 신 중사 해킹 알아?”

“알지요.”

“해킹하려면 어떻게 하는데?”

“해킹 프로그램 검색하면 세계적 유명한 프로그램 떠요, 그중에서 내가 사용할 프로그램 클릭하고 끌어다 쓰면 되죠?”

“그래, 그런데 만약에 말이야 새로운 해킹 프로그램 만들라고 하면?”

“그걸 왜 만들어요? 해킹하라면 하면 되는 거지?”

“야, 북한 미림대학 출신은 이미 해킹 프로그램 만들어 활용하는데, 우리는 맨 날 남이 만든 해킹 프로그램 클릭이나 해서 북한을 이길 수 있어?”

“지금 교육계획을 짜는 것은 당장 뭘 하자는 것이 아니야, 당장 뭐 할 수 없고, 난 이미 중령으로 진급 기회 다 지나, 막말로 내년이면 직업 보도 가니 나 몰라라 할 수도 있는데, 명색이 예비역 영관 장교가 떠난 후에 욕먹으면 안 되니까, 최소한 남은 사람에게 욕 안 먹게 하려고, 탈북자 중에서 미림 출신이거나 정찰국 근무자 면담하고 참고하여 만든 거다.”

“하 소령님, 교육계획 목표는 무엇입니까?”

“신 중사, 국가정보원 심리전 국장 수준 질문인데?”

“아이, 농담하지 마시고요.”

“내 교육계획 목표는 미래 언제인지 모르지만, 남북이 사이버전을 수행할 때, 미림 출신 사이버 전사와 싸워지지 않을 사이버 전사 양성이 목표다.”

“그거 민심 부장님이나 심리전단장님 지침입니까?”

“아니, 아직 지침이고 뭐고 없어. 그냥 나보고 미래 사이버 부대 만들기 전 단계로 수행할 일을 하려면 어떤 교육이 필요한지 교육과목을 선정해 보라는 거야.”

“참 막연한 교육계획을 짜고 있다.”

“어머, 벌써 근무 시간 되었어요. 다음에 또 면담하겠습니다.”

신 중사가 돌아가고 가칭 ‘사이버사령부 창설’ 대비 교육 훈련계획을 수립하였다. 남북이 상호 비방 선전하던 심리전을 동시에 중단하고, 장비를 철거하고 사라지는 부대 마지막 군수 과장이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사이버사령부 교육 훈련계획을 만들었다. 여군들이 컴퓨터 실력이 어느 정도 있어서 모르는 용어 나오면 그녀에게 물어가면서 계획을 완성했다. 그렇게 탄생한 부대가 세월이 지나 대통령 선거에 여론 조작과 댓글부대가 되어 압수수색을 당했다. 이놈들 이런 한심한 짓거리 하라고 하 소령이 DOS 교육한 것은 아닌데 마음이 쓸쓸했다.

나 태어난 이 강산에 군인이 되어

꽃 피고 눈 내리기 어언 30년

(중간생략)

푸른 옷에 실려 간 꽃다운 이 내 청춘-

술이 얼큰하게 취한 그는 늙은 군인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시흥 사거리에서 은행나무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소령에서 중령으로 진급하려고 아내는 연대장 공관에서 식모처럼 지낸 일도 있었다. 군수 과장 시절에는 군대 납품하는 물건에서 정품과 비품의 가격 차이가 많은 것을 이용해 영수증 정리는 정품을 구매한 것으로 하고 실제는 비급 제품을 구매하라는 압력도 받았다. 진급 못 하면 못했지 그런 매국노 짓은 안 한다고 거절했다. 중령으로 진급하면 53세까지 복무할 수 있지만 소령은 만 45세가 정년이다. 만 45세가 되던 해 5월 31일 전역했다. 전역 후에는 쉬면서 여기저기 이력서를 냈다. 취직은 안 되었다. 그래서 아파트 경비원을 하려고 이력서를 냈더니, 영관 장교는 연금 받는 것이 있어서 경비원 생활 오래 못한다고 뽑지를 않았다.

아내는 변호사를 고용하여 이혼 소송했다. 이혼 조짐은 몇 년 전에 있었다. 애들을 서울로 전학시키고, 하 소령 혼자 전방에서 근무할 때 아내는 서울에서 애들 학교 보내고 무료한 시간을 달래려고 백화점 문화 강좌에 사진 강좌를 들었다. 대방여중과 서울여고 시절 사진반 활동을 했었기 때문에 주변에 대학교 사진학과 출신들이 있었지만 큰 어려움 없이 사진 강좌를 마쳤다. 더구나 강좌 수료를 기념으로 사진 작품 전시회를 열었는데, 좋은 반응을 얻었다. 대한민국 미술대전에 사진 부문 입선도 하였다. 그러다 보니 여기저기 사진 동호회에서 초청이 있고, 지방으로 사진 촬영도 많이 다녔다. 남녀 사진작가들이 어울려 다니며 사진도 찍고, 술도 마셨다. 전방에서 군복 하나로 지내는 소령의 아내라는 것이 속상했다. 나가면 최 여사 최 작가! 호칭부터 다른데, 소령의 아내라는 것이 짜증이 났다. 애들에게도 네 아버지가 오직 군대만 알고 가정에 불성실해서 이혼하는 것이라고 교육을 해서 딸이나 아들 모두 엄마 편이 되었다.

전방에서 외박 나온 그를 아내 최성연이 조용히 불렀다. 당신 비뇨기과 검사 좀 받아보라 했다. 내가 왜? 일단 왜 하지 말고 받아보라면 받아봐. 그래 좋다. 내가 비뇨기 검사해서 이상 없으면 다시 외박 안 나온다. 알아서 하셔! 신대방동 조윤희 비뇨기과에서 검사했다. 비뇨기과 검사에 정상으로 나왔다. 반대로 최성연이 임질 양성 반응이 나왔다. 이후 그는 전방에서 근무만 하고 외박을 얻어도 전방에서 고대산 등산을 하거나 백마고지 노동당 당사 등 전적지 답사로 외박 기간을 보냈다.

남부가정법원에 출두했다. 가정법원 여자 판사가 물었다.

“하진호 씨는 아내를 폭행한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하진호 씨는 마약을 복용한 적이 있습니까?”

“아니요. 없습니다.”

“하진호 씨는 알코올 중독자입니까?”

“아닙니다.”

“예, 알겠습니다. 그러면 이번 하진호와 최성연 이혼 소송은 2개월의 숙려 기간을 부여하겠습니다. 그 기간 두 분이 노력해 보고 조정이 안 되면 이혼을 판결하겠습니다.” 2개월 후 그는 가정법원에 출두하지 않았다. 자동이혼이었다. 예비역 소령 하진호는 오늘도 술에 취해 늙은 군인의 노래를 불렀다. 전역 후 여기저기 구직 활동을 했으나 취직이 안 되어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이 ‘막일’ 정식명칭으로 건설일용직 근로자가 되었다. 시흥 사거리 대우인력에 나갔다. 김재영 부장이 인사를 했다.

“어서 오세요, 오늘 처음이시죠?”

“예, 처음입니다!”

“우선 신분증을 주세요.”

“예, 여기 있습니다.”

“혹시 전에 무슨 일 하셨습니까?”

“예, 뭐 이것저것 다했습니다.”

“그럼, 목수일 해보셨나요?”

“아니요, 건설일은 아니고, 과외교사, 외판원 뭐 이런 거 했습니다.”

“아예, 그럼 오늘 최진철 팀장이 시키는 일만 하고 오세요.”

“예, 알겠습니다.”

일용직 사무실에서 예비역 소령이라고 말하기는 너무 창피했다. 최 팀장은 그와 한 살 차이였다. 건설현장에서 5살 차이는 차이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최 팀장과는 서로 말을 놓는 친구로 지냈다. 처음 일을 나간 곳이 고척 스카이돔구장 건설현장이었다. 기초 공사를 하고 외야 관중석 공사를 하는 때였다. 최 팀장 이정규, 하진호 등 내국인 6명과 교포 4명이 한 팀으로 갔다. 해체 공이 거푸집 해체한 것을 목재는 목재끼리, 철재는 철재끼리 분류해서 대를 만들어 쌓는 일이었다. 최 팀장이 하진호에게 교포 3명을 데리고 목수 팀 지원하러 가라고 했다. 목수 반장이 하 씨! 하고 불렀다. ‘예’ 하고 가니 교포들 데리고 오비 끼 50개만 목수 작업하는 곳으로 가져오라고 했다. 그는 오비 끼가 뭔지 몰라 최 팀장에게 오비 끼가 뭐야? 하고 물었다. 최진찬은 오비 끼 일본말인데 우리말로 상승 각이라 한다고 가르쳐주었다. 50개를 다 나르니 목수 반장이 다시 그를 불렀다. 이번에는 다루끼 60개를 가져오라고 했다. 이번에는 최진찬 팀장에게 묻지 않고 교포들에게 바로 말했다. 목수 반장이 다루끼 60개 가져오래요. 교포들은 ‘예’ 하더니 바로 다루끼를 나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처음 건설일용직 근로자가 되었는데, 정리 공을 하다가 일 년 정도 정리를 하고 해체 공이 되었다. 해체하러 시흥 정왕동 신축공사장에서 해체하다가 앵글과 폼으로 연결된 보 바닥을 해체하다가 다쳐서 넓적다리부 골절상을 입고 시화병원으로 실려 왔다. 환자복 주머니에서 흑백사진 한 장을 꺼냈다. 은경의 사진이다. 흑백사진을 만지면서 작은 소리로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를 불렀다. 가사 중에 ‘첫사랑 그 소녀는’을 ‘ 첫사랑 은경이는’으로 바꾸어 불렀다. 추석 연휴에도 707 병실에 누워있었다. 연휴라고 데레사 간병인협회에서 소장과 부장 과장들이 각 병동의 간병인들에게 선물을 나누어 주었다. 707 병실은 여자 간병인 석 여사와 남자 간병인 강 선생이 하고 있었다. 여자 간병인이 소장님을 불렀다.

“소장님!”

“석 여사 수고 많아요. 추석인데, 쉬지도 못하고.”

“환자들 간병이 일인데요, 소장님, 추석 잘 보내셔요.”

“여기 작은 선물 세트 준비했어요.” 하면서 선물 세트 2개를 꺼냈다.

남자, 여자 간병인에게 주었다.

박 간병인회 소장은 선물을 나누어주면서 병실 환자를 돌아보았다.

순간 그는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박 소장 눈이 빛났다.

은경도 한눈에 진호를 알아본 것이다.

“하진호 환자분! 휠체어 탈 수 있어요?”

“예, 혼자는 안 되고 휠체어 밀리지, 않게 잡아주면.”

간병인이 휠체어를 잡아주고 진호가 휠체어에 탔다. 왼 다리를 다친 상태라 휠체어 왼쪽은 일자로 뻗고 오른발은 아래로 접었다. 왼쪽 다리를 흔들리지 않게 압박붕대로 묶었다. 석 간병인이 휠체어를 말고 병실 문을 나왔다. 박 소장이 석 여사에게 말했다.

“석 여사는 707 병실 지켜요. 이 환자는 내가 휠체어 밀어주고 갈 때는 병실까지 내가 데려다 줄게요.”

“예, 소장님!”

그녀가 휠체어를 밀고 5동을 지나 엘리베이터에서 1층을 눌렀다. 1층으로 내려와 응급실 앞을 지나 강가를 따라 조성된 갈대 공원으로 휠체어를 밀었다. 한적한 곳에서 휠체어를 멈췄다. 휠체어 바퀴를 밀리지 않게 레버를 걸었다.

“진호라고 할까? 진호 씨라고 할까?”

“그럼 난 은경아, 은경 씨, 박 여사 중에서 뭐로 불러?”

“그냥 은경이가 좋지.”

“그럼 뭐로 불러야겠어?”

“진호야, 병실서 선물 나누어주고 침대 이름표 ‘하진호’ 이름 보고 동명이인이나 하고 얼굴을 보는데, 너와 눈과 마주친 순간 심장 터지는 줄 알았다.”

“나도 마찬가지야, 내가 군대서는 고공 낙하산 탈 때나 유격 훈련 때 포로로 잡혀도 김일성 만세 안 부르고 저항한 힘이 뭔지 알아?”

“뭔 데?”

“이거!” 환자복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낡은 흑백사진 한 장을 꺼냈다. 은경이 중2 때 수학여행 가서 찍어, 편지로 보내준 흑백사진이다. 검정 교복에 하얀 칼라가 눈부셨다.

“어머, 이걸 아직 간직했어?”

“음, 이걸 부적처럼 몸에 지니고 살았지. 군대서나 사회에서나 힘들 때 남몰래 이걸 보며 어려운 순간을 넘겼다. 포로로 잡혀 고문당할 때도 이 사진 덕분에 이겨냈다. 이번 다친 것도 사람들이 그 무거운 거 몸으로 떨어졌는데 죽지 않은 것이 용하다 하는데, 내 몸에 이 사진 숨겨둔 덕이라 생각해.”

“어머나, 나 몰라. 정말 영화 같은 순진한 사랑이 진짜로 있었네!

난 네가 이런 줄도 모르고 시집가기 한 달 정도 전에 네 편지랑 사진이랑 다 태워버렸는데, 미안해. 정말 미안해, 너의 이런 맘 몰랐어!”

은경은 휠체어 레버를 고정했다. 옆으로 와서 그의 목을 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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