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대기작품. 2

사랑은 국경을 넘어

by 함문평

사랑은 국경을 넘어

김종욱은 육군 중사다. 요즘이야 수학여행을 부모님이 빚을 내서라도 다 보내주지만, H 중학교 다닐 때는 한 번에 2~3명씩은 수학여행을 못 가는 학생이 있었다. 25명의 수학 여행비를 내지 못한 친구들이 교실에 모여 자습했다. 선생님들이 교대로 감독을 왔으나 형식적이라 만화책이나 학생 중앙 잡지를 보았어도 묵인했다. 지겨우면 나가서 축구도 했고, 야구부 연습 없는 야구장을 점령해 야구도 했다. 야구공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정구공 낡은 것을 투수 없이 한 손에 들고 다른 손으로 친 것을 두고 수비수는 수비하고 타자는 달리는 것이라 여간해서는 다 아웃이지 점수 내기 힘든 놀이였다. 그래도 즐거웠다. 중학 졸업 후 그는 S 공업고등학교에 진학했고, 나는 서울 사대문 안에 있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배정되었다. 서로 소식도 모르고 지내다가 지난 연말모임에 나갔다. 졸업생은 500명이 넘었으나 모임에 나오는 인원은 50명 정도였다. 아름아름 인원을 늘게 하자고 시작된 모임에서 나를 총무로 추천했다. 전임자에게 공금통장과 명단을 인수하였다. 전화 걸었다.

“여보세요. 김포입니다.”

“예, 안녕하세요? 흑석 중학교 25회 총무 서성천입니다. 김종욱이 있나요?”

“잠깐 기다리세요.”

“예, 김종욱입니다.”

“종욱아, 성천이다. 기억하겠니?”

“기억하지 수학여행 못 간 사람들끼리 자습한 동창인데?”

“그래, 자습 동창들 한번 뭉쳐야 하는데, 어디야?”

“김포!”

“무슨 일을 하니?”

“음, 군인이야. 중사!”

“그럼 평일에는 시간 내기 어렵겠네?”

“아니야, 요새는 군대도 퇴근 이후는 실제상황 아니면 터치 안 해.”

“그래? 그럼 모임 장소를 발산에 잡고 연락하면 나와라.”

“알았어.”

전임총무가 서울 동서남북 안양, 의왕, 용인에 동기들이 많다고 2년 동안 단골로 하던 사당 면옥을 취소했다. 우장산 식당으로 변경해서 동창 모임을 추진했다. 늘 모이던 친구보다 안 보이던 그가 나타나자 귀인이 되었다.

“종욱아, 중사면 언제부터 상사 진급 대상자 되니?”

“음, 올해부터 상사 진급 대상자 되는데 앞차들이 너무 많아서.”

“야, 그래도 명문 S 공업고등학교인데 1차로 상사 진급해야지?”

“그게 내 마음대로 안 된다. 되면 동기회 밴드에 소식 올리고 한턱낸다.!”

“박수!” 첫인사를 시켰더니 S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방위산업체에 근무했다. 5년을 근무하면 병역을 마친 것으로 처리해 주는 그것에 지원했는데, 완전 사장과 간부들이 횡포가 이어졌다. 자기들의 조카도 병역을 대신하게 하느라 이름을 등재하고 출근만 하고 슬며시 사라졌다. 그러니 그 없는 사람의 몫까지 다른 몇 명이 해도 해도 끝이 없었고 야근을 자주 해도 일은 늘 밀렸다. 중간에 그만두면 현역병으로 끌려가야 해서 대부분 억울해도 참고 일했다. 그러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울분을 느껴 4년 만에 방위산업체를 나와 군대에 갔다. 회사에서 총을 만드는 부속품을 만들었기에 주특기를 총포 수리 주특기를 받았다. 논산훈련소 29 연대 기초교육을 마치고 병기학교 후반기 교육을 받을 때는 거의 조교 수준이었다고 한다. 총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다 온 사람이라 다 만들어진 총을 수리하는 것이니 얼마나 쉬웠겠는가? 당연히 최우수 성적이었고 병기학교장 상까지 받았다. 자대배치는 김포로 총포 수리부대에 이병 계급으로 근무하는데, 부대장이 훌륭한 자원이라고 일병이 되자 부사관학교 추천을 했다. 하사 달고 중사가 되어 나이도 들고 결혼하려고 여기저기 맞선 봤다. 요즘 여자들이 결혼하는데, 사랑도 사랑이지만 남자의 직업, 시가집의 경제적 능력을 생각하는데, 별로 볼일 없는 놈이라 결혼을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특이한 방법으로 결혼하기로 했다. 한동안 다음 카페, 아이러브스쿨 등 초등 중등 동창 찾기에 열광하던 시기가 있었다. 채팅에서 중국에 있는 한글을 아는 여자와 채팅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결혼까지 골인했다. 한참 소주잔을 돌리고 인터넷 연애 이야기를 듣는 중간에 식당 주인인 손님 중에 김종욱 씨 계시면 계산대로 와 주세요? 하는 계산대로 갔다. 찾아온 사람과 몇 마리 이야기하더니 자리로 와서 미안하게 되었다. 부대에 일이 있어 들어가 봐야 한다고 미안하다. 상사 진급하면 꼭 부대에서 운영하는 회관에 친구 불러 술 한 잔 사겠다고 말을 하고 나갔다. 뒷모습이 우시장으로 팔려 가는 소처럼 보였다. 군대를 다녀온 친구들은 한 마디씩 했다. 군대는 퇴근해도 몸이 내 몸이 아니고 국방부 몸이라고 했다. 회식 중간에 불려 나가는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본 우리는 잠시 흥이 깨졌지만, 다시 중학 시절 이야기를 하고 회식을 마쳤다. 부대에 복귀하자마자 부대장실로 갔다. 대대장실에는 대대장과 이 지역을 담당하는 517 기무부대장 중령이 와 있었다. 군대서 기무부대장 중령은 사단장을 감시하는 직책이라서 사단장도 사단 참모 회식에 꼭 기무부대장을 초대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기무부대장 중령이 말단 중령 정비대대장실에 나타났으니 큰일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대대장이 물었다.

"김 중사?"

"예?"

"아내 확실히 중국교포 맞아?"

"예, 맞습니다.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여기 기무부대장님이 오셨는데, 김 중사를 당분간 조사해야 하니, 하던 업무를 다른 중사에게 인계하고 기무부대에서 조사 다 마치고 복귀해."

"예, 알겠습니다. 그럼, 제 아내에게도 알려야 하니 집에 가서 갈아입을 속옷도 준비하고 아내에게 말을 하고 기무부대로 가겠습니다.”

그 말에 기무부대장이 입을 열었다.

“김 중사 이 건은 기무가 먼저 한 것이 아니라, 경기도 경찰청 정보과에서 먼저 진행하는 일이라 이미 아내가 경찰에서 먼저 조사실로 연행했으니 김 중사는 지금 내 차로 기무부대로 가면 됩니다.”

계급장을 달고 생활하는 집단에서 상급자가 하급자에게는 반말하는 것이 상식이다. 기무부대 중령이 중사에게 평어 이상의 존댓말을 쓰는 것이 더 겁나게 했다. 기무부대장 지프 뒷자리에서 그는 기무부대장에게 허락받았다. 부대장님, 아내에게 전화 한 통만 하겠습니다. 길게 통화하지 말고 그냥 기무부대에 조사받으니 며칠 후에 집에 간다고 말해. 전화를 걸었다. 아내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 나야?"

"음 어디야?"

"지금 기무부대에 조사받으러 가는데, 며칠 걸려."

"나도 경찰서 조사받으러 왔어. 사실대로 말해."

"알았어."

처음 보는 기무부대는 블록 담장 위에 윤형 철조망이 전방 DMZ가 연상되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일반 가정집 같았다. 작은 방 하나로 안내되었다. 수사관이 왔다.

"김 중사는 지금부터는 중사가 아니라 간첩으로 의심되는 여자를 숨겨준 국가보안법상 간첩 은닉에 해당하는 피의자니, 존칭 생략합니다. 알겠습니까?"

"예."

"군복을 벗고 계급장 없고 허리띠 대신 고무줄 바지를 착용하기를 바랍니다. 이유는 조사 도중 자해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예. 갈아입겠습니다."

옷을 갈아입고 의자에 앉았다. 조사관이 다시 질문을 시작했다.

"이름이 무엇입니까?"

"김종욱입니다."

"생년월일은 언제입니까?"

"1995. 10. 26 일입니다."

"주소는?"

"경기도 김포시 김포 한강 군인아파트 2동 304호입니다."

"직업과 직책은?"

"직업은 군인 직책은 3군 지사 331 정비대대 총포 수리 담당 중사입니다."

"결혼 일자는? 2020. 2월 15일입니다."

"아내 이름은? 강현옥"

“아내 생년월일은? 2000. 4. 15 일입니다."

"아내 최초 국적은? 중국입니다."

"아내를 처음 만난 것은 언제 어디입니까?"

"2018년 10월 26일 중국 선양 공항입니다."

"선양까지 가서 만난 것이 중간에 중개인 조력자가 있었습니까?"

"아니요. 솔직히 한국 여자와 결혼하고 싶었는데, 연애하던 여자들은 계급이 중사라고 돈을 많이 벌지도 못하고 명예도 없고 평생 근무해야 상사로 전역해서 연금 받아야 해외여행 한번 못할 거라고 떠났습니다. 한국 여자와 결혼하기를 접고 인터넷으로 채팅을 했는데 2018년 5월 16일에 처음 채팅으로 중국 여자를 알게 되었는데, 자기는 결혼했고 결혼 안 한 아가씨를 소개한다고 한다고 해준 것이 강현옥입니다. 채팅으로 대화를 하고 어느 정도 지나니, 여자가 정신적으로 도덕적으로 무장이 된 여자라라는 생각 들어 청혼했습니다."

"인터넷으로 주고받은 여자와 결혼한다는 것이 수긍하던가요?"

"아니요, 처음에는 장난으로 알더 군요."

"어떻게 했나요?"

"전화번호를 알려주세요? 했더니 여기 중국인데 전화 요금 어찌 감당하려고요? 하더군요. 숙소에 인터넷 설치되어 있는데, 인터넷 전화로 걸면 전화 요금 부담 없이 통화가 가능합니다.라고 하니 알려주더군요."

"전화번호가 어떻게 됩니까?"

"예, 중국 번호 130-727-86037270입니다."

"강현옥이 중국 국적이 아니고 탈북자라고, 여자 간첩으로 의심이 된다고 조사 중이니 남편도 조사하라고 공문이 왔는데 아내가 탈북자라는 의심은 안 했나요?"

"예, 의심했다면 결혼했겠습니까? 군인이 간첩과 결혼한다는 것이 말도 안 되고, 아내가 간첩이라고 칩시다. 간첩이면 고급 정보 수집을 위해 장교이고 고급 정보를 빼낼 남자에게 접근하지 저처럼 중사에게 접근하는 간첩이 있을까요?"

"그것이 이상하지만 일단 국적을 숨긴 것 자체가 국가보안법으로 의심이 가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탈북자인데 중국에서 가자 신분증으로 살다 한국에 왔다고 하면 국정원이고 하나원이고 합동 조사만 마치면 도와주는데, 국적을 숨기고 10년이 흐른 뒤에 이런 조사를 하니 간첩을 의심할 수밖에 없어요."

"조사하면 판가름 나겠지만, 살면서 간첩으로 의심할 만한 일이 하나도 없었고, 살기 위해 애도 둘씩이나 낳았습니다. 요즘 한국 여자들 애 안 낳아 난리인데, 애를 두 명 낳았으면 간첩 누명이 아니라 여성부 장관 표창이라도 주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정말 조사관으로 조사는 하지만 난감한 조사입니다."

"예. 오늘 조사한 것으로 기무사령부에 피의자 조사를 해본 결과 국가보안법상의 대공 용의점 없다고 보고하겠습니다. 조사결과가 간첩이 된다면 다시 소환 조사할 것이고 거짓말한 것을 추가하여 가중처벌 될 것입니다."

"돌아가도 되겠습니까?"

"예, 돌아가세요." 기무부대를 나와 하늘을 보았다. 파란 하늘이 이처럼 아름다울 수 없었다. 자유가 이처럼 좋은 것을 기무부대에서 헐렁한 고무줄 옷을 입고 조사받으면서 이런 것이 범죄 수사구나 경험했다. 현옥은 지금쯤 조사가 다 되었을까? 전화했다. 전화기가 꺼져있으니 다음에 걸어 달라는 안내 음성이 들렸다. 그녀는 김포경찰서 정보과에서 조사하고 2차 조사를 받으러 경기도 경찰청 정보과로 이첩이 되어 수원으로 갔다. 수원 월드컵 경기장 근처의 정보과 특별조사실이 있었다. 안전 가옥이었다. 국가보안법으로 의심되는 피의자들만이 일반 피의자와 격리되어 조사하는 곳이다. 외부에서 보기에 일반 가정집처럼 보였다. 2층으로 안내되었다. 여자 조사관이 조사했다. 그녀의 옷은 벗고 헐렁한 고무줄 바지로 갈아입고 조사받았다. 옷을 갈아입고 의자에 앉으니 조사관이 다시 질문을 시작했다.

"이름이 무엇입니까?"

"강현옥입니다."

"생년월일은 언제입니까?"

"2000. 4. 15 일입니다."

"주소는?"

"남편 이름은? 김종욱"

"남편 생년월일은? 1995. 10. 26 일입니다."

"남편을 처음 만난 것은 언제 어디입니까?"

"2018년 10월 26일 중국 선양 공항입니다."

"한국 남자를 중국 여자가 만난 것이 중간에 알선자나 조력자가 있었습니까?"

"아니요. 중국서 옷 가게에서 일했는데, 총무 언니가 인터넷 채팅으로 한국 남자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 남자가 자꾸 자기랑 결혼하자고 하는데 자기는 이미 결혼한 여자니 결혼 안 한 여자를 소개해준다고 하니 그렇게 하라는데 현옥이 너 채팅해 볼래? 해서 언니가 소개해준 것입니다."

한국에 최근에 온 동생 강미옥이 대성공사에서 다 불었어요. 북한 통천이 고향이고, 언니가 강현옥인데, 한국에 와서 살고 형부가 군이 중사라고 다 불었다. 거짓말하면 정말 여간첩 모란꽃처럼 간첩되고 싶어요? 선생님 솔직히 말하면 저는 통천서 학교 졸업도 못 하고 두만강을 건너 중국에서 살다가 한국으로 왔어요. 제가 한국 온 것은 중국 국적 여권으로 이상 없이 공항 검색대를 통과해서 입국하고 남편과 결혼해 국적을 취득해서 아무 문제 없이 살았는데 이게 왜 문제 되는 거죠?

"강현옥 기자회견을 하는 것이 아니고, 신문 조서 작성하고 있어요?"

"알아요. 신문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노동신문을 말하는 거 아녀요?"

"그런 신문은 한자로 신문(新聞) 새로운 소식이라는 신문이고 지금 강현옥을 묻고 답하고 조서 작성하는 것은 발음은 같아도 신문(訊問)이라고 하는 겁니다."

"정말 너무 복잡하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대한민국 법입니다. 뭐가 그리 복잡해요? 내가 간첩 아니면 바로 풀어주는 간첩이면 바로 교도소에 처넣으면 되지?"

"교도소에 가는 것은 국가보안법상 이적행위 간첩죄를 했나 지금 조사 중인 것이고 조사결과 간첩행위 없으면 풀려나는 것입니다."

"조사관님 저를 간첩으로 만드는 조사면 이 시간 이후 저는 묵비권입니다."

"묵비권이면 정말 간첩이 되어도 좋다는 뜻이지요?"

"뭔 소리여요? 간첩이 아니니까 조서에 불응하는 것이란 말입니다."

"묵비권 행사하면 간첩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더는 묵비권으로 조사할 수 없음 서서 국가정보원으로 보내면 끝입니다. 그렇게 해드릴까요?"

"아니요? 선생님 제발 살려주세요? 저는 간첩이 아닙니다!"

"강현옥 씨가 간첩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어 꼬치꼬치 묻는 것입니다."

"그럼 제가 어떻게 하면 되죠?"

"물어보는 것에 정직하게 답변하면 됩니다."

"정직하게 답변하겠습니다."

"북한을 탈출하기 전에 가족 사항을 말씀해 보세요?"

"아버지는 통천에서 수산사업소 간부였고, 엄마는 수 학교 원이었습니다. 제가 큰 딸이고, 2살 아래 강미옥, 네 살 아래 강미경이 다섯 식구였습니다."

"아버지 성함은?"

"강훈철."

"어머니 성함은?"

"최금순."

"아버지 형제들은?"

"큰아버지가 결혼도 못 하고 돌아가신 강민철입니다."

"강민철, 미얀마 테러리스트 전투원?"

"예, 맞습니다."

"거짓말하면 안 됩니다. 일부 탈북자들이 한국에서 고급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은 보상금 많이 준다는 말에 거짓말로 친척도 아닌데 친척이라고 말하거나 원자력 핵 분야에 근무하지도 않고 근무한 척 말하는 일도 있어요. 우리는 20년을 이런 일만 한 사람이라 한 걸음만 더 들어가면 다 탄로가 나요."

"육군 중사 아내로 5년 살았는데 무슨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강민철이 아버지보다 형이라면 할아버지 할머니 성함은 무엇입니까?"

"할아버지 강석준, 할머니 김옥선 고모 강경숙입니다."

"강민철이 미얀마에서 아웅 산 묘소 폭파를 했으니 대우 잘 받았죠?"

"아닙니다. 임무 수행에 후 잡히면 자폭하라고 했는데 자폭 안 하고 미얀마 교도소에서 25년 살다가 사망해서 집안은 대우받은 것이 없습니다."

"통천을 탈출해서 중국으로는 언제 갔나요?"

"고등학교 졸업 전에 갔습니다."

"중국에서 무슨 일을 했나요?"

"솔직히 처음에는 중국말을 못 해서 어디 취직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거 제 생활을 했나요?"

"중개인이 한족에게 아이 낳아주는 곳으로 팔았습니다."

"예?"

"한족 중에는 돈은 많은데 본처가 아이를 낳지 못하면 아이를 낳아주는 여자를 들이고 임신해서 아이를 낳아주면 돈을 몇만 위안 주거든요."

"얼마나 받았어요?"

"2만 위안으로 갔는데 나올 때 3만 위안 주더군요."

"아이 보고 싶지 않으세요?"

"지금도 그 애 생각만 하면 잠이 안 옵니다. 눈에 밟혀서."

"한족 집에서 나와 어디로 갔나요?"

"한족 집에 1년 반 살면서 기초적인 중국어를 익혀서 선양으로 갔습니다. 여기는 사투리가 심해서 알아들을 수가 없더군요."

"선양에서는 무슨 일을 했나요?"

"처음에는 통조림공장에서 일하다가 생선 다듬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옷 파는 가계로 이직했습니다. “

“거기서 지금 남편 김 중사를 알게 되었나요?”

“선양에서 엄청나게 크게 하는 화장품 가게입니다. 점원이 7명이고 총무 언니 있고 사장님이 계시는데, 총무 언니가 인터넷 채팅으로 한국 남자를 알게 되었는데, 자기는 결혼했다고 해도 자꾸 사귀자고 하는데. 결혼 안 한 착한 아가씨 소개해준다고 했는데 너희들 중에 한국 남자 사귀어볼 사람 손들어? 하는 겁니다. 아무도 손을 안 드니까 저를 찍어서 소개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생전 처음 채팅이라는 걸 했는데 신기했어요.”

“혹시 인터넷으로 사귀어 한국에 데려가 어디 농촌이나 섬에 팔아넘길 거라는 의심은 안 했나요?”

“예, 콩깍지가 씌었는지 모든 것이 다 좋게만 보였어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중국에서 가짜 신분증으로 살아가는 것이 겁이 나고 싫었습니다. 언제 가짜가 들켜 공안에 이끌려 북송될 수 있다는 생각에 늘 불안과 초조하게 살다 보니 신분 안전에 대한 갈망으로 한국 남자랑 결혼하면, 한국 국적을 얻을 수 있다는 막연한 희망이 컸어요.”

“중국서 가짜 신분증은 얼마 주고 만들었나요?”

“1만 위안 주고 만들었습니다.”

“가짜 신분증이 몇 명인지도 알 수 없겠군요.”

“예, 사진을 자기 사진을 부착한 가짜 신분증이라 그 번호 원래 소유자가 죽으면 호구 정리하다 보니, 탄로가 납니다. 전에는 모르고 유통하는 것입니다.”

“북한을 탈출해서 중국에서 사는 사람이 몇 명인지 통계도 없겠군요?”

“예, 중국은 워낙 인구가 많고 호구 조사가 제대로 안 되어 통계를 현재 잡혀있는 것만 발표하니 탈북자가 몇 명이 가짜 신분증으로 일하고 몇 명이 신분증 없이 지내는지 알 수 없어요. 말이 잘 안 통하는 동안에는 여자들 돈벌이라는 게 ‘몸 팔기’ 아니면 ‘뜀뛰기’입니다.”

“몸 팔기는 알겠는데 뜀뛰기는 무엇입니까?”

“뜀뛰기는 브로커랑 여자랑 짜고 한족에게 2만 위안에 팔려가서 어느 정도 살다가 약속된 날에 집에서 나오면 브로커가 차에 태워 다른 곳에 돈을 더 받고 넘기는 것을 말해요.”

"채팅으로 만난 여자와 결혼하겠다고 혼자 중국에 찾아가다니?"

"저도 이 남자가 미쳤나? 고자인가 재혼인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어요."

“청혼하던 이야기를 자세하게 말해줄 수 있나요?”

“아마 채팅 6개월 정도 지났을 때입니다. 채팅 중에 오빠 너하고 결혼하고 싶다. 그러는 겁니다. 오빠 결혼은 돈도 많이 들고 서류도 복잡해. 중국서 한국 남자랑 결혼하는 거더러 봤는데, 공안이 별별 트집을 다 잡고 여권 심사 중에 통과 안 되는 사람 많아요. 했더니만 서류는 천천히 준비하고 돈이 얼마나 드는데? 하는 겁니다. 얼떨결에 1,000만 원 정도 든다고 말했어요. 바로 계좌번호 보내 봐서 하는 겁니다. 저는 통장이 없고, 엄마 통장으로 계좌번호를 알려주었더니, 퇴근 전에 1,000만 원 송금했다 확인해봐야 하는 문자가 오는 겁니다. 엄마에게 전화로 통장 정리해 봐 한국에서 1,000만 원 송금했을 거야. 했더니 엄마가 뭔 돈이냐? 물어 집에 가서 말할게 했죠. 그날 퇴근해서 엄마랑 엄청나게 싸웠어요. 세상에 미친년 아니고서는 한번 만나지도 않은 남자에게 돈을 1,000만 원 보내게 하고 보내는 남자가 얼마나 못났으면 한국에서 여자 하나 못 구하고 채팅으로 만나서 결혼하겠다는 것이 말이 되냐? 사기다. 1,000만 원에 여자 사서 어디 무인도나 산골에 2,000만 원 받고 되팔 수작이니, 돈 당장 돌려주고 당장 채팅이고 뭐고 끊으라 하는 겁니다. 아니, 엄마 어떻게 사람을 한 번 만나보지도 않고 그런 악담을 해요? 난 이 남자가 채팅만으로도 나를 믿고 1,000만 원이면 한국이나 중국이나 일반인에게는 큰돈인데 선뜻 보낸 건 믿음이야. 나를 믿는 남자를 의심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 했더니 엄만 완전 둘 다 미친년! 미친놈! 그러는 겁니다. 이 남자랑 결혼하면 다시는 너는 없는 딸로 간주한다고 하였어요.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결국 엄마가 졌어요. 선양 공항에서 그 남자 만나서 택시로 집에 도착하니 엄마가 최고의 맛 난 음식을 준비했고 중국인 새아버지는 고급술을 사 오셨어요. 집에 새아버지 빼고 엄마 나 동생 모두 여자라서 술을 집에서 드시는 일이 없었는데, 사위 덕에 집에서 마음 놓고 눈치 안 보고 술 마실 수 있다고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한국에는 언제 입국했나요?”

“2020년 2월 16일에 입국했습니다."

"중국서 한국 오는 절차는 위조신분증으로 다 통과되었나요?"

"예, 천만다행으로 제가 한국 입국 신청했을 때는 가짜 신분증 원래 주인이 살아있어서 통과되었는데, 한국에 오고 1년 후에 그 사람이 죽어서 호구 정리를 했고, 그 이름으로 한국행 여권 발급이 되어 한국으로 가서 중국에 귀국한 흔적이 없어서 중국 공안이 난리가 난 것입니다. 가짜 신분증 해준 분과 중국 새아버지가 잘 아는 사이라서 중국 공안에 시달려도 절대로 딸을 중국에 다시 오지 마라, 와서 공안에 잡혀가면 안 된다고 했다고 해요. 그 말에 제가 아니다. 이미 한국인으로 한국 국적을 얻었고 한국 여권으로 중국 간다고 엄마와 새아버지, 여동생 선물을 가득 준비해서 중국에 남편 10일 휴가 얻은 기간에 다녀왔어요. 선양 공항 검색대에서 공안이 저를 와보라고 해서 갔어요. 공안 말이 중국에서 만든 여권으로 출국하지 않았느냐? 그렇다. 한국에서 결혼해서 대한민국 국적 얻었고 여기 여권도 대한민국 여권으로 입국했다 당당하게 말했어요. 뭐가 문제입니까? 했더니 아니라고 그냥 중국 여권으로 출국한 거 알고 있다고 그 말을 하면서 말끝을 흐리더군요. 당당하게 대한민국 여권의 소중함과 위력을 경험하고 자부심으로 살아가는 여자에게 여자 간첩을 만들려는 수작은 너무 유치한 삼류 서커스 아닙니까?"

"알았어요. 이제는 여간첩이란 말 안 하겠으니 화내지 마세요."

"왜 오자마자 국정원이나 주민등록증 만드는 동사무소에서 말하지 않았나요?"

"누가 그걸 말해준 사람도 없고 탈북자라는 것이 자랑거리는 아니지요? 그래서 말을 못 했습니다. 이번 합동 조사에 남편이 말은 못 해도 매우 놀랐을 것입니다. 최악의 경우 숨긴 것을 이유로 이혼하자고 해도 저는 할 말이 없어요."

"채팅으로 1,000만 원 보내준 남자니까 이혼하겠어요?"

"조사도 조사지만 집에 가서 남편에게 어떻게 말해야 하나? 걱정입니다. 차라리 800만 원에 사서 2,000만 원에 되팔아 넘겼으면 경찰에 신고하고 나 탈북자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말입니다. 같은 조선 민족인데 왜 말이 이리 다르고 억양도 다른지 처음에는 문밖에 나가기가 싫었어요."

"예, 강현옥 씨는 간첩이 아니라고 신문 조사 보고는 하는데, 탈북자이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국가정보원 대성공사에서 이 보고서를 상부에 보고하면 입소 통지가 갈 것입니다. 조사에 솔직하게 답변해 주어 감사합니다. 잘 가세요."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셔요."

조사실을 나오니 해가 져서 어둑어둑했다. 남편에게 전화했다. 전원이 꺼져있으니 나중에 다시 연락 바란다. 흘러나왔다. 동창회 공지를 밴드에 올렸다. S 중학교 동창들에게 알려드립니다. 기독교 천주교 친구들이 성탄절에 하면 불참이라 무조건 12월 둘째 주 금요일을 송년회로 하겠습니다. 회비는 3만 원입니다. 전화가 왔다. 지역 번호 031인 걸 보니 종욱이다.

“성천이다. 오랜만이야?”

“지난번 모임에 중간에 빠져나가 미안했다. 중사에서 상사로 진급했다.”

“오! 축하한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송년 모임을 군부대 회관에서 준비하려고?”

“그래 장소를 문자로 주소 전화번호 약도 보내.”

“알았어.”

12월 13일 번개회관에 동창들이 모였다.

“동기 여러분! 모두 바쁜 와중에 이렇게 멀리 김포까지 찾아주셔 감사합니다. 오늘 이 자리는 우리 25기 송년회이자 올해 중사에서 상사로 진급한 김종욱을 축하하는 자리입니다. 김종욱과 그 가족을 소개합니다. 모두 박수로 환영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중학 졸업 후 연락 없이 살아온 인생인데 제가 진급했다고 많이 참석해 감사합니다. 제 아내를 소개합니다. 이름은 강현옥입니다.”

“안녕하세요? 남편 김종욱 예비상사 아내 강현옥입니다. 억양에서 느끼셨겠지만, 저의 고향은 북조선 통천입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고) 정주영 회장님 고향입니다. (박수)

탈북 후 국적취득하고 5년 흐른 뒤에 간첩혐의 조사받았지만, 당당한 그녀에게 박수를 보냈다.

상견례(相見禮)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 잔소리에 맞선을 본다고 했다. J 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대방역 근처 S 병원에서 수련 중인 의사였다. 6월 22일(토)에 대방역 건너 ‘오소리감투’에서 맞선 약속을 잡았다. 오후 5시라 늦지 않으려고 개봉에서 12시 점심 먹고 바로 출발했다. 딸이 소개했다. 현경미입니다. 이쪽은 아버지, 그 옆은 어머니, 제 옆은 남동생입니다. 남자가 일어나 인사를 했다. 선우 영재입니다. 이쪽은 아버지, 그 옆은 어머니, 동생, 여동생입니다. 이 상견례는 의사 사위 맞이하려면 열쇠 3개 준비하라고 해서 깨졌다. 딸 결혼에 사위를 열쇠 3개로 사는 것은 삼강오륜을 아는 현상신의 품격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공식적인 자리니까 배미정이라고 소개했지, 핸드폰에는 ‘크산티페’로 저장되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15년 전에 이혼했다.

이혼하더라도 딸, 아들 혼사에는 쇼윈도 부부로 앉기로 약속했다. 이혼 시기는 딸이 고3, 아들이 중2였다. 남부지방법원 판사가 이혼을 판결하면서 이혼하면 누구와 같이 살고 싶으냐는 질문에 ‘엄마요’라고 대답했다. 판사는 막내아들이 20세가 되는 2022년 12월 31일까지 매월 130만 원씩을 양육비로 보내라고 했다. 뿌린 씨앗이니 양육비 보내는 것은 불만이 없다. 청춘을 푸른 군복에 흘려보내고 나이 50대 중반에 진급 못 해 예비역 소령으로 사회에 나왔다. 모르는 사람들은 소령으로 나왔으면 연금 220만 원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지만 배미정이 연금을 사라지게 했다. 전역 1년 전에 퇴직연금 담보 대출이 은행 이자보다 싸니 5천만 원 대출해 주면, 사업해 돈 벌고 퇴직 1주 전에 완납하겠다고 해서 대출했으나 그녀는 원금을 납부 못 했다. 전후좌우, 연관성은 전혀 고려 없이 이혼하면 남자에게 양육비 월 130만 원을 보내라는 판사의 판결에 화가 났다. 어디에 사용할 것이냐고 물어보지도 않고 대출을 받아주었다.

그녀가 전방연대 관사에 와서 좋아하는 두루치기에 소주를 혼자 3병을 마셔도 잔소리를 안 했다. 6월 30일 전역했는데, 7월 10일에 퇴직연금 원금에서 5천을 공제하고 세금을 공제하고 3억 8천을 일시금으로 받았다. 그녀는 그 돈으로 일확천금을 노리는 ‘뉴 셀’라는 다단계사업에 털어 넣었다. 전역하면 사무실 하나 개설해 1인 사장 만들어준다던 약속은 물거품이 되었다. 가정법원에서 이혼이 확정되었을 때, 딸은 그해 대학시험에 대학 경영학과에 합격했다. 등록을 포기했다. 횡성 부모님이 소를 두 마리만 팔면 해결될 것을 이혼한 아들의 딸에게 무슨 학비를 보내? 하는 아버지의 반대로 무산되고 외가에서는 부모가 이혼해 살기 힘든데, 돈 벌어야 무슨 학교냐고 하면서 입학금을 지원 안 했다. 영미는 고졸 사회초년병이 되었다. 아들은 중학교 2학년이 최종학력이라 검정고시를 봤다. 중졸이 아니기에 고입,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중학 다닐 때 친구들이 고1이 되었을 때, 고졸이 되었다.

50세 중반이면 다니던 회사원도 명퇴할 나이에 이력서를 고용노동부에서 운영하는 ‘워크 넷’부터 ‘사람인’, ‘잡코리아’ 등에 이력서를 올렸다. 벼룩 신문이나 교차로도 열심히 탐독했다. 여의도에 본사가 있는 보안 및 경비파견업체에서 면접 제안이 왔다. 이력서에 장교이고, 근무 기간이 21년 3개월이라 면접을 제안했다고 하였다. 면접 대상자는 1명 뽑는 곳에 7명이었다. 4명은 예비역 중령 3명은 예비역 소령이었다. 면접관은 3명이었다. 희망 연봉을 4천6백으로 쓰셨는데, 21년 복무했으면 연금 220 정도 받고, 회사에서 180 드리면 근무할 수 있죠?라고 물으니 바보 같은 놈들이 중령이나 소령이나 6명이 ‘예’라고 했다. 순간 혈압이 올랐다. 여기 보소, 당신네 회사가 풍산금속만큼 방위성금을 냈어요? 방위성금 한 푼 안 내고, 왜 군인 연금을 들먹거려? 남들 추석 연휴라고 설 연휴라고 열 시간씩 운전해 고향 갈 때, 경계 강화 지시에 순찰하고 철책선 이상 유무 확인했어. 뭐 연금 220 받으니 150만 원 줄 테니 근무하라고? 됐다고 하고 면접장을 나왔다. 군대 생활 21년 동안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네 분 장례식에 참석과 중위 시절 ‘조부 위독 급래요망’ 가짜관보로 횡성을 다녀간 것이 휴가 전부였다. 요즘은 초급 장교도 휴가를 눈치를 안 보고 가지만, 예비역 소령 현상신이 근무하던 시절은 눈치 보여 휴가도 제대로 못 갔다. 이력서 낸 곳에서 연락이 없자 일용직 건설근로자가 되었다. 건설근로자를 하면서 원 130만 원을 양육비로 보내고 나면 쓸 돈이 없었다. 같이 일하는 동료 4명이 술을 마시면 최소한 4회에 한 번은 나도 술값을 내야 하는데, 그게 싫어서 술자리를 피했다. 혼자 사는 집에 가봐야 할 일이 설거지 거나 빨래인데, 바쁘다는 핑계로 빠졌다. 딸에게 만나면 도저히 매월 130을 보내면 내 생활이 안 된다고 말해야지 하면서도 막상 만나면 그 말이 그렇게 어려웠다. 용기를 내서 말했다. 건설경기가 나빠서 일하는 날이 많지 못하다. 130만 원을 보내면 쓸 돈이 없다. 230 이상 벌면 130을 보내는데, 200 이하로 벌면 80만 원을 보내겠다고 하니 딸은 그러라고 했다. 딸이 돌아가서 그녀에게 그 말을 했다. 그녀는 매월 130을 안 보내면 가정법원에 추심 요청을 한다고 했다. 그 말에 딸이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엄마 정말 크산티페야? 아빠가 돈을 안 보내는 것이 아니고 230 이상 벌면 130을 보내고 200 이하로 벌면 80을 보낸다는데, 엄마는 200에서 130을 보내면 아빠는 70으로 고시원비 32만 원 내면 38만 원에서 버스 교통비, 핸드폰 요금에 최소한 아빠도 일하는 동료와 막걸리 한잔은 낼 때도 있지, 어떻게 맨 날 다른 사람이 사주는 술을 얻어먹고만 살아? 아빠가 ‘기생충’이야? 했다.

딸은 동생에게 군대 제대 후 대학입시 공부를 하라고 하니 동생이 누나 혼자 돈 벌면 너무 힘들다고 자기도 큰돈은 아니지만 벌다가 집안 형편이 좋아지면 그때 대학입시 공부를 한다고 했으니 엄마, 아빠 힘들게 하지 말자고 했다. 딸은 아빠가 핸드폰 저장을 ‘크산티페’로 했는지 알겠다고 하고는 방문을 쾅! 닫고 나갔다. 이혼하고 딸과 아들은 내 핸드폰 번호 저장 이름을 ‘은사님’으로 했다. 혹시라도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이모나 외삼촌이 볼까 봐 그렇게 저장했다. 조선 시대 홍길동이 아비를 아비라 부르지 못하고 홍대 감으로 부르듯이 딸과 아들을 아빠를 아빠로 부르지 못하고 ‘은사님’으로 불렀다. 고입, 대입 검정고시를 연속으로 합격하자 아들은 병무청에 우선 징집원서를 제출했다.

군대 간 18개월 동안은 모녀는 일생에 처음으로 집에 남자 없이 여자 둘만의 생활을 했다. 문산, 여기는 오래전 근무한 적이 있어서 1사단 신병교육대가 친숙했다. 군가 소리와 담장의 철조망이 오히려 고향 같은 푸근함을 안겨주었다. 딸과 아들은 꼬맹이 시절 말 배운 순서가‘엄마’, ‘아빠’ 다음 배운 말이 ‘충성’이었다. 엄마 등에 업혀 시장을 보러 나갈 때 들어올 때 들은 말이 충성!이었다. 신병교육대 정문에 조교들이 훈련병을 10열 종대로 앉은 번호를 시키고 100명이 되면 부대 쪽으로 인솔해 갔다. 아들은 키가 185, 몸무게 103㎏이었다. 군의관이 ‘체중 초과’로 귀향이라고 했다. 군의관에게 신병 수료식까지 90킬로 이하로 감량한다고 하고 제발 남아있게 해달라고 했다. 다른 훈련병이 저녁 후 TV 시청을 할 때 연병장 구보를 했다. 제식훈련 후 사격을 배웠다. 영점사격을 마치고 기록사격에 20점 만점을 받았다. 600명 중 7명이 만점이었다. 거구가 체중도 줄이고 사격우수자가 되었고, 귀향 조치가 체중을 줄여가면서 훈련한다는 소문이 퍼져 다른 교관들도 아들에게 점수 몰아주기를 해서 신병 교육 우수수료자가 되었다. 신병 교육 수료식에 사단장 별 둘 대신 참모장이 임석상관이 되어 군악대 반주에 맞추어 의식이 진행되었다. 사회자가 신병 교육 우수자로 현정호 외 4명을 호명했다. 엄마, 외삼촌, 외할아버지 앞에서 사단장 표창을 받았다. 사회자가 표창 수상자에게는 5일간의 포상 휴가가 자대에 가면 바로 실시할 것이라는 안내방송이 있었다. 감격한 크산티페와 외할아버지는 눈물을 흘렸다. 낙석 대대로 배치를 받아 대대장 신고를 하고, 5일간 포상 휴가를 처가 신길 감나무집으로 휴가를 나왔다. ‘감나무집’은 외손자의 사단장 표창 포상 휴가로 잔치 분위기였다. 두 명의 이모 두 명의 외삼촌, 모녀가 모여 준비한 음식과 음주를 했다. 아들이 포상 휴가 나왔을 때, 나는 제주도에서 일했다. 카카오톡이 왔다.

―아들 : 아빠, 소령이 이렇게 높은 계급인 줄 몰랐어요?

―은사님 : 훈련병이 보면 높지?

―아들 : 저 주특기 310 통신이래요.

―은사님 : 자대 가면 무조건 음어부터 외워라.

―아들 : 음어가 뭐야?

―은사님 : 아들 탈출해야 하는 한글을 적이 알 수 없게 숫자로 123, 274, 377, 067 변환시켜 작전의 내용을 보호하는 통신방식이다.

―아들 : 그거 비밀인데 병사가 볼 수 있어요?

―은사님: 통신병은 상황 근무 서니, 그때마다 일직 간부에게 음어 빌려.

―아들 : 알았어요.

아들은 포상 휴가를 마치고 복귀했다. 근무할 때마다 음어를 빌려 외우다 보니 일병진급 전에 다 외웠다고 문자가 왔다. 음어 외웠으면 애국가도 음어로 써보고, 군가도 음어로 써보고, 병사들끼리 대화나 욕하는 것도 음어로 써보라고 했다. 사단 음어대회 포병부대 낙석 대대 선수로 아들이 뽑혔다고 문자가 왔다. 사단 음어대회 출전 선수라면 음어는 다 외웠다. 금, 은, 동 수상자와 아닌 사람의 차이는 담력 싸움이다. 절대로 한번 쓴 답을 음어로 확인 말고 오직 직진만 해라. 일단 국군신문 사설을 매일 음어로 쓰는 연습 하라고 했다. 6월 전반기 사단 음어대회에 1등 했다. 다른 부대는 병장이 출전했다. 낙석 부대만 이병이 사단 음어대회 출전해서 우승했다. 부대 창설 이후 처음 있는 이병이 사단 음어대회 우승이었다. 길게만 느끼던 군 복무 18개월이 시나브로 지나갔다. 남들은 한 번 우승도 힘든 음어대회를 2회 우승을 하고 전역했다.

지금도 낙석 대대 현관에 두 개의 음어 우승 트로피가 전시되었다. 이력서에 나의 강점을 쓰라는데, 고졸도 아니고 검정고시 합격자가 강점 쓸 것이 없었다. 누나, 강점은 뭘 써야 해? 쓸 게 없어? 없기는 왜 없어, 너 초등 5학년 때 전국 카트라이더 대회 준우승, 1사단 낙석 부대에서 사단 음어대회 이등병 때랑 병장 때 두 번 우승한 거 써, 사진을 jpg 파일로 만들어 첨부시켜. 생각해 봐라? 네 또래 카트라이더 우승은 <떨어지는 낙엽 병장>이 했고, 준우승이 너라 게임회사는 네 또래 경쟁자가 없어. 사단 음어대회 사단 수만큼 있겠지만 그 경쟁자 중에서 카트라이더 너보다 잘하는 놈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누나 조언은 적중했다. 게임회사 대표 선수 ‘카카오’와 쌍벽을 이루는 ‘타타오’에서 이력서를 통과하고 면접 제안이 왔다. 면접관은 3명이었다. 나이 지긋한 분이 물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전국 카트라이더 대회 준우승이라고 하는데, 혹시 우승자를 기억하나요?”

“이름은 모르고 닉네임이 <떨어지는 낙엽 병장>이고 부산에서 군대 전역하고 복학하려는데, 학기 기다리느라 대회 나왔다고 들었습니다.”

“낙엽 병장이 여기 있어요.”

다른 면접 대상자나 면접관 모두 놀랐다. 면접장에서 사적 질문과 답변은 금지 사항인데, 질문자나 답변자나 전혀 그런 고려 없이 질문하고 답변한 것이었다. 명문대학 졸업도 유학파도 아닌 아들이 명문대 출신, 유학파 출신 입사 동기에게 지지 않으려고 얼마나 노력을 했겠는가? 그렇게 노력했어도 3년 근무 후 대리 승진에 다른 대졸은 다 승진했는데, 아들만 떨어졌다.

게임회사를 퇴사하고 이직했다.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자산관리공사 서울지사로 출근했다. 딸도 이직했다. 이직한 회사는 병원에 의약품을 납품하는 회사였다. 해외 수입 의약품이 많아 김포공항 근처에 회사가 있었다. 300여 품목의 의약품이 이름과 용량, 색상에 따라 관리하는 방법이 달랐다. 강서구청에서 보건위생 검열을 나왔다. 회사 대표는 딸에게 안내를 시켰다. 말이 안내지 ‘안내라고 쓰고 접대라고 읽는다.’ 수준의 하루였다. 어린 시절 전학을 여러 번 다니면서 터득한 눈치를 활용했다. 고졸로 직장생활을 하면서 눈물을 많이 흘렸다. 딸에게 문자가 왔다.

―은사님 술 한잔하실래요?

―어디서 만날까? 시흥 사거리로 올래?

―명태어장?

―그래 거기서 7시에 만나자?

―알았어요.

명태 조림을 시켰다. 밥과 소주 3병을 시켰다. 크산티페는 딸에게 의사, 판사, 검사만 배우자로 만나고 하는데 고졸로 직장 생활하는 딸에게 그런 남자가 만날 기회가 오겠냐고 하소연했다. 세상은 21세기인데, 크산티페는 의사, 판사, 검사가 계속 멋있는 딸의 남편이고 자신의 사위로 여겼다. 아빠도 그런 생각이야?라고 물어봐서, 난 아니야 했다. 딸은 그제야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딸이 사귀는 남자가 있다고 했다. 인공지능 개발자이고, ‘중견급’이라고 했다. 엄마에게는 그 남자를 소개하기 전에 야금야금 수법으로 의사, 판사, 검사보다 21세기에는 ‘인공지능 연구원’이 더 주목을 받는 사례를 딸의 말이 아닌 신문 기사나 잡지에 보도된 것을 스크랩하여 알려주라고 했다. 상견례 연락이 왔다. 딸을 통해 상견례 장소에서 초라하게 보이면 안 된다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단정하게 하고 오라고 했다. ‘예, 감사합니다, 그렇군요? 잘 가세요.’ 등 네 마디가 상견례 동안 내가 할 말이라고 크산티페가 딸을 통해 알려왔다. 아울러 당신 군대 전역 계급을 예비역 소령이 아닌 예비역 중령으로 저쪽에 소개했으니 예비역 소령이라거나 하는 일이 경비라는 일은 절대 하지 말고 전업 작가로 소설만 쓴다고 했으니 그리 알라고 했다. ‘예, 감사합니다, 그렇군요? 잘 가세요’만 구구단 외우듯이 외웠다. 아니, 예비역 소령이 어때서, 예비역 중령은 훌륭하고 예비역 소령은 허접한 인간이야? 아직은 출판사 인세가 생활이 안 되니 경비하면서 소설을 쓴 것이 어때서 상견례에서 그런 거짓말을 해야 하나? 열불이 났지만, 그녀가 화나면 딸과 아들만 힘들어지기에 참았다. 상견례 장소는 김포 장기동 <금빛 수로>를 따라가면 시내 쪽에 있는 ‘라베니체’ 건물에 있는 한정식 ‘마담 마당’이었다. 하루 전에 장기동 미용실 ‘벨라’에서 머리를 단정하게 커트했다. 눈썹도 다듬어준다는 것을 거절했다. 눈썹이 호랑이 눈썹처럼 길게 삐쭉 나온 것이 할아버지 말씀에 의하면 집안의 유전이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95세에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92세에 돌아가셨다. 그런 확실한 사례가 있기에 미용실 ‘벨라’에서 머리만 자르고 눈썹은 그대로 두라고 했다.

30분 전에 상견례 장소에 갔다. 현영미 선우 창욱 이름으로 예약 실이 어디냐고 물었다. ‘죽(竹)’실이라고 했다. 방은 ‘매난국죽(梅蘭菊竹)’ 4개였다. 나머지는 큰 홀이었다. 홀에 사람이 북적거리는 것으로 봐서 맛집이 분명했다. 식당에 세팅은 다 되었다. 약속 시각이 되자 딸과 아들, 배순선, 선우 창욱과 부모님, 남동생이 들어왔다. 모두 들어온 것을 확인한 딸이 먼저 소개했다. 소개가 진행되는 중에도 ‘예, 감사합니다, 그렇군요? 잘 가세요.’를 실수 없이 하느라 속으로 외웠다. 돌발사태가 발생했다. 예비 시아버지가 한마디 했다. 초면에 송구한 질문이오나 확인해야 할 문제라서 물어봅니다. 두 분이 혹시 이혼하셨나요? 그런 말이 귀에 들려서요. 배미정은 즉각 아닙니다. 15년 전에 애 아버지가 귀가 얇아서 남의 보증을 잘못 서서 아파트 2채가 공중분해 되었어요. 망하더라도 한 사람만 망하자고 제가 위장 이혼을 하자고 했어요. 그러니까 오늘 상견례에 같이 나왔지요. 한다. 입 다물고 ‘예, 감사합니다, 그렇군요? 잘 가세요’를 생각하다가 저절로 방언이 터졌다. 방금 크산티페, 아니 배미정 여사가 한 말은 거짓말입니다. 이혼 맞고요, 15년 전에 가정법원 판사는 양육비 130만 원을 매월 보내라고 했는데, 솔직히 절반은 80만 원 보냈고, 절반은 130만 원 보냈습니다. 그래도 딸이나 아들 구김 없이 잘 자랐고, 선우 창욱이 지금은 딸 연봉보다 많다지만 앞 전 ‘비전헬스 팜’ 회사에서는 딸이 직급도 높았고, 연봉도 높았어요. 부모가 15년 전에 이혼한 것이 애들 결혼에 문제가 되나요? 만약에 그게 문제라면 결혼시킬 수 없습니다. 아차, 싶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아들이 옆에서 옆구리를 쿡 찔러서 멈추었다. 순간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상견례에서 부모 4명 중 3명이 반대하고 나 혼자 찬성자가 되었다.

창욱 식구들이 다 나가고, 내가 나가려는데 그녀가 앉으라고 했다.

“아니, 딸을 시켜서 입 다물고 ‘예, 감사합니다, 그렇군요? 잘 가세요’만 외우고 그 말만 하라고 했지? 머리는 장식으로 가지고 다녀, 파충류 뇌야?”

“이혼한 것이 내가 보증 잘못 서서 우리 집 망한 거야? 인공지능이 거짓말 누가 제일 잘하니 물으면 ’ 최은순-김건희 모녀가 제일 잘해 ‘라고 나온다는데 ’ 배미정이가 더 잘해 ‘라고 인공지능 답변을 수정할 것이야?”

“명색이 작가라면서 셰익스피어 말도 몰라?”

“뭘 몰라?”

“있다고 다 보여주지 말고,

안다고 다 말하지 말고,

가졌다고 다 빌려주지 말고,

들었다고 다 믿지 마라.

허구를 사실로 착각하지 말라고 했지?”

“그래서?”

“작가라는 자가 꼭 그렇게 파혼할 말을 해야 해?”

그 말을 무시하고 화제를 돌렸다. 딸에게 물었다. 창욱이랑 결혼하고 싶어? 물으니 말없이 머리를 끄덕거리면서 눈물을 흘렸다. 옆에서 배미정은 이미 파혼인데 무슨 결혼이야? 양가 부모 4명 중 3명이 반대해도 나 혼자 결혼 허락한다. 누구 맘대로? 청춘 남녀가 사랑한다는데, 반대하는 부모가 유신 시대나 광복 시기도 아니고 2024년 21세기 부모가 할 짓이야? 다들 천박한 자본주의에 병들어 진실을 못 보는 인간들이지? 딸, 창욱이랑 시간 되면 개웅산 내 집에 와. 올 때 빈손으로 오지 말고 지평막걸리와 너희 마실 음료 들고 오너라. 예. 그렇게 상견례 식당을 나왔다. 상견례 식당을 나오니 날이 어두워지자 ’ 금빛 수로‘에 분수가 가동되었다. 조명이 비추니 아름다웠다. 인공수로 물결이 찰랑찰랑 일고, 수상 스키가 윙-윙-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7월 13 일이에 딸과 예비 사위가 개봉에 왔다. 딸과 예비 사위에게 물었다.

“신랑 선우 창욱 군은 신부 현영미 양을 사랑하는가?”

“예.”

“이어 신부에게 묻습니다. 신부는 신랑 선우 창욱 군을 사랑합니까?”

“예.”

“그럼, 신랑 선우 창욱 군과 신부 현영미 양의 결혼이 원만하게 이루어진 것을 개웅산 산신령에게 고하겠습니다.”

막걸리를 종이컵에 따라 현관문을 열고 개웅산 초입에 뿌렸다.

“이 조그만 정성을 개웅산 산신령님은 북극성과 마고 할머님께 다음날 특급으로 전해주시옵소서.” 딸과 창욱은 함께 절을 했다. 나도 절을 했다.

“아빠, 이제 우리 어떻게 살아?”

“제주에 가면 갈치 전문식당 <제주 문무 갈치식당>이 있다. 군대 동기 홍태영이 대표이사인데, 전화해 줄 테니, 일단 딸은 주방보조로 창욱은 홍 사장 특별보좌관으로 사장을 도와주고, 창업하는 기법을 배우고, 결혼 후에는 창업 바란다.” 바로 홍 사장에게 전화했다.

“문무 갈치 홍태영입니다.”

“반갑다. 홍 사장, 현상신이다!”

“아이고, 작가님이 시간에?”

“한창 바쁠 시간에 전화해서 미안해.”

“아니야, 단체 손님들 다 빠지고 개별 손님만 남아서 바쁜 거 없어.”

“우리 영미 문제야?”

“결혼할 거라는 소문은 들었어!”

“얼마 전에 상견례했는데, 양가 부모 4명 중 3명이 결혼 반대다.”

“미쳤어? 애들이 결혼하지 60 늙은이들이 결혼해, 황혼이혼하고 재혼이야?”

“그래서 부탁인데, 영미와 사위 묶어 보낼 테니, 시작은 최저시급으로 시작하고 일하는 상태 봐서 급여 조금씩 인상 바라.”

“뭔 최저시급이야, 최저시급 주면 제주에 소문나서 손님 다 도망간다. 연봉 5천으로 시작하고 1년마다 갱신 물가상승 플러스알파로 할게.”

“고마워!”

“고맙긴 문무 갈치 천하 명문 카피라이터로 도와준 현 작가 딸인데.”

배미정과 선우 창욱 부모는 3인이 공동명의로 딸과 아들 실종신고를 김포경찰서에 신고했다. 영미와 선우 창욱은 제주공항에 도착했다. 홍 대표에게 전화했다. “사장님, 현상신 아빠 딸 영미입니다. 제주공항 도착했습니다.”

“알았다. 그런데, 누가 소령 딸 아니랄까 봐 어투가 다, 까 끝나니?”

“아닌 게 아니라 회사서 지적받아요. 말투가 여군 장교 말투라고.”

“거기 택시 타는 곳 맨 뒤에 바닥에 빗 줄 친 곳에서 기다려 바로 가마. 미친놈들이 택시 구역 있으면 픽업 구역도 만들어야 국가 세금 잘 쓰는 거 아니야? 공항 만들 때 국민제안 했는데도, 공무원이 무시하고 안 만들어 이런 편법을 쓴다.”

홍 대표는 영미와 창욱에게 운전하면서 이것저것 물었다. 백미러로 두 사람 표정을 보면서 물었다.

“현 소령을 뺀 3명 부모가 두 사람 결혼 반대 이유가 뭐야?”

“일단 시부모 쪽은 우리가 이혼한 것을 문제 삼고, 크산티페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것을 무시한다는 것이 반대 이유고요, 나는 딸 바보라 무조건 찬성에 홍 대표님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는 겁니다.”

“야, 그런 소리 말아라, 현 작가가 문무갈치 회사 이름 지어주고 한 줄 홍보 카피라이터 쓴 사람이다. 6월 30일에 개업했는데, 동기회 밴드에 공지했다. 제주도에 갈치음식점을 개업하려고 하는데, 상호, 한 줄 소개 문구를 공모합니다. 당선되는 분에게는 제주도 오시면 후하게 대접해 드립니다.라고 공지했단다.”

“공지를 보고 수백 편의 상호이름과 한 줄 카피가 올라왔다. 그중 <문무 갈치> 상호설명에 사관학교 출신 장교들도 문무를 겸비한다고 하나 역시 문무겸비의 표본은 ROTC이고, 상징이 ’ 문무 갈치’라고 하면 전국의 동문이 간판만 봐도 동문이 하는 식당임을 연상할 것입니다. 그래서 ‘문무 갈치’로 제안합니다.라고 한 것을 홍 대표가 제주를 삽입한 것이다. 그래서 ‘제주 문무 갈치’로 상호 등록했다.” 한 줄 카피는 기막힌 말인데, ‘제주에 오셔서 몰라 못 오신 분은 있어도, 한번 오고 그만 오신 분은 없다는 전설의 제주 문무 갈치’였다. 그 한 줄 카피로 제주에 와서 한번 문무 갈치를 드신 분들이 두 번, 세 번, 열 번, 백번을 드신 분들이 입소문을 내서 지금은 제주에 3층 건물로 1층은 갈치조심, 2층은 갈치구이, 3층은 갈치회로 층을 구분해서 할 정도로 성장했다.

“정말 아빠가 지어주신 이름인가요?”

“그럼, 네 아빠는 군대 생활하면서 별명이 ‘조선 마지막 선비’였어. 선배고 동기고 후배 2세들 태어나면 작명한 것이 100명도 넘어, 최초 이름은 소대장 때 선배 김원태 선배 딸 이름 ‘김세리’를 지어준 사람이야. 골프선수 ‘박세리’ 때문에 세리 이름이 흔해졌지, 김 선배 딸 ‘김세리’라는 그 시절 독보적 이름이었다. 두 번째 이름은 배현기라고 동기생이 아들을 낳았는데, 쌍둥이가 태어난 거야. 중위 봉급 몇 푼이나 된다고 작명에 돈 쓰지 마라. ‘배형우’, ‘배현우’ 이름을 지어주었고, 광주 보병학교 교육받으면서는 출신에 상관없이 거기서 태어난 딸 아들 이름을 다 지어주었단다.”

“어머, 몰랐어요.”

배미정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다 자고자

“애들 어디로 숨겼어?”

“뭔 소리야?”

“시치미 떼지 말고, 제주도에 있는 귀남이 전화를 받았으니까 거짓말할 생각 말고 불어? 그럼, 여고 동창 남편이 검사인데, 그리 확인한다.”

“친구 보고 물어봐. 난 아는 바 없어!” 하고 전화를 끊었다.

대한민국은 법이 있어도 법대로 되는 일이 있고 안 되는 일이 있다. 법이 없어 안 되는 일이 없는 일도 있다. 결국, 검사를 알면 ‘유검 무죄’, 검사를 모르면 ‘무검 유죄’의 나라다. 배미정은 귀남에게 전화했다.

“귀남아, 나 미정이야. 웬일이야?”

“응, 잘 지내지, 그럼, 잘 지내지. 넌?”

“미치겠다. 딸이 가출했다.”

“아니, 왜? 그 착한 애가, 우리 종현이 짝으로 생각했는데, 안되어 아쉬운데 무슨 이유로 가출이야?”

“응 상견례에서 양가 부모 4명 중 3명이 반대다.”

“뭐야? 찬성은 너야?”

“아니 캡틴 봉봉!”

“크크크 지금도 봉봉이니?”

“그럼 영원한 봉봉 캡틴이지?”

“전화 용건이 뭐야? 딸을 찾아달라고?”

“아니, 핸드폰 번호 알려줄 테니 남편 검사니까 위치만 확인해 줘?”

“야, 검사가 뭐 남 전화추적이나 하니? 아내의 동창 딸이 행불이라고 해?”

“알았다.”

제주도 문무 갈치 홍태영 대표에게 전화했다.

“문무 갈치 홍태영입니다.”

“나 현 소령이다.”

“왜, 딸과 예비 사위 잘 지내는데 무슨 일이야?”

“혹시, 제주 문무 갈치 제주검찰청에서 다녀갔어?”

“아니, 우리 탈세 없어?”

“탈세가 아니고 영미 엄마 배미정이 여고 동창이 제주에 사는데, 남편이 제주검찰청 지검장 최재경이야.”

“뭐, 최재경? 그런 중요한 이야기를 왜 지금 해, 미리 해야지?”

“최재경, 서울 출신이 제주지청 간 것은 아무래도 줄이 썩은 줄이지?”

“뭔 소리야, 승진해서 왔는데?”

“하여튼 배미정이 여고 동창 남편이니 혹시 거기 방문하면 선수를 쳐서 문무 갈치 피해 없도록 대처해.”

“알았다.”

배미정과 선우 창욱 부모가 경찰청에 실종 신고했다. 실종자는 현영미, 선우 창욱이 었다. 전국지방경찰청에 전문이 내려갔다. 제주경찰청에서 영미의 핸드폰과 창욱 핸드폰이 제주에서 발신 수신된다는 보고를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팀에 통보되었다. 제주경찰청 사이버 지능 팀이 전파탐지 결과 ‘제주 문무 갈치’가 핸드폰 전파송수신 지점을 알아냈다. 제주경찰청 사이버팀장이 손님으로 가장하고 제주 문무 갈치에 예약했다. 시간에 맞추어 식당에 갔다. 홍 대표이사가 사이버팀장을 맞이했다. 순간 두 사람은 동시에 어? 했다.

24기? 그래 24기 두 사람은 군대 동기였다. 주문한 갈치조림과 소주를 마시면서 대화했다. 혹시 여기 종업원 중에 핸드폰 끝자리가 ‘7396’으로 끝나는 사람 있어? 둘인데, 남자, 여자? 둘 다. 무슨 소리야? 경찰이라고 남 핸드폰 맘대로 위치 추적해도 되는 거야? 인권위에 신고한다. 아니, 저 그게 말이야 부모님이 실종 신고한 두 사람이야. 그 실종신고 왜 했는지 문무 갈치 사장이 제주경찰청 지능사이버팀장에게 알려주면 경찰 쪽팔리지? 아니, 안 쪽팔려. 경기경찰청이 쪽팔리겠지, 우린 사실을 알려만 주면 된다. 솔직히 동기니까 알려주는 것이다. 현영미와 선우 창욱이 사랑하는 사이인데, 양가 부모 4명 중에 신부 아버지, 현상진 소령 알지? 정보병과 동기 딸인데, 신부 아버지 뺀 4명이 결혼 반대로, 남녀를 제주 문무 갈비로 부탁한 것이야. 여기서 결혼식 올리고 평생직장으로 부부를 고용해 달라고 했어. 그래서 채용했다. 아니, 서울서 살던 사람을 제주에 뭘 믿고 채용해? 자세한 것 말하면 영업비밀이고 그냥 서울경찰청에 보고나 잘해주라. 여기 제주에 신호 뜨는 것은 확실하지만, 부모님이 직접 오시면 현장 안내는 하지만 수사 보고는 할 수 없는 상태라고 보고해. 알았다. 귀남 이모 전화를 받고 그녀가 바로 제주로 왔다.

“어머, 귀남아!”

“이게 얼마만이야?”

“야, 네가 서울을 떠나 제주로 가니 못 만난 거야. 서울 사는 상미, 윤선이랑은 분기마다 만났어. 하여튼 영미 있는 곳부터 가자?”

귀남이 운전해서 문무 갈치에 도착했다. 홍 대표가 인사했다.

“홍 대표님, 영미 엄마 배미정입니다. 인사해 미정아?”

“안녕하세요, 현영미 엄마입니다. 우리 딸을 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런 식당 일 한 번도 안 해 본 애인데 어떻게 합격시키셨어요?”

“아이고, 별말씀을 식당일 정직원도 아니고 보조인데, 뭐 기술 보고 뽑나요? 성실한가. 아닌가? 평가합니다.”

그간 이야기를 엄마와 귀남 이모에게 했다. 친 이모는 아니지만 여자 중학교, 여자고등학교 6년간을 사진반을 함께했던 친구다. 여고 동창 4인방이 결혼 후에도 30년 동안 모임을 유지했다. 3명은 서울서 계속 만나는데, 귀남 이모 남편이 제주검찰청으로 승진해 오는 바람에 2년 동안 모임에 참석을 못 했다. 그 참석 못 한 아쉬움을 오늘 배미정과 현영미를 만난 것이라고 귀남은 생각했다. 귀남이 영미에게 물었다. 남자를 어떻게 만났냐고 물었다. 예전에 같은 회사에 근무하였는데, 그때는 사랑하는 줄 몰랐어요. 저도 이직을 하고 남자도 이직하고 나니 지나간 일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런데, 상견례에서 네 엄마, 미정은 왜 사랑하는 남자를 반대한 거야. 엄마가 먼저 반대한 것은 아니었어요. 예비 시아버지가 엄마, 아빠 이혼한 것을 문제 삼았어요.

“미친 인간 아니야? 요즘이 홍길동이 아비를 홍대 감으로 부르는 시대야? 젊은 애들이 결혼 못 해 인구 줄어드는 나라에 둘이 좋아한다면 무조건 결혼시키는 것이 ‘애국 가문’이지 결혼 반대해서 ‘애국 가문’ 기회 잃어버린 것이야. 국가보훈 부가 ‘병역 명문가’ 뽑는 거 보고 여성가족부에서 2025년부터 결혼해서 신혼부부가 아기 3명 이상 낳으면 ‘애국 가문’으로 선정해서 표창하고 상금도 5억 준다고 뉴스에 났어. 이모가 네 엄마 설득해서 결혼시킬게, 걱정하지 마.”

귀남 이모 설득으로 결혼을 추진했다. 이모는 제주에서 ‘천공 선사’보다 더 잘 본다는 ‘이천 공일 선사’에게 크산티페를 데리고 갔다. 이천 공일 선사는 45년 전에 귀남 이모 남편 최재경 검사가 고시 8번 떨어지고 찾아가서 이천 공 일 선사님에게 이제는 고시 공부 접고 일반 직장 알아보겠다고 하니 펄쩍 뛰면서, 이런 아둔한 인간이 있다. 금광을 캐는 광부가 캐도 금이 없다고 포기한 것을 다음 사람이 인수하여 1m를 파니 금광이 나왔다는 것이 북한에 있는 ‘검덕광산’이야. 최재경 운수는 1m 앞 검덕 광산이라고 했다. 정말 신기하게 9수에 사법시험 합격하고 검사의 길을 가고 있다. 제주지검 특수부장이다. 다음 인사에는 지방검찰청장이 될 거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이천 공일 선사가 2024년 12월 28일이 길일이라고 했다. 결혼은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요즘은 촌스럽게 주례 선생 모셔서 교장선생 훈시 같은 주례사 없이 양가 부모가 한 명씩 축사하는 것이 대세라고, 당신 작가니까, 딸 결혼 축사를 써서 A4 딱 한 장에 출력해 가져오라고 했다. 지엄하신 크산티페 명령이라 축사를 출력해 딸 편에 보냈다.

<축사>

안녕하십니까? 신부 아비 현상신입니다. (고개 숙여 인사)

요즘은 세상이 온천지 개나 소나 스승, 선생, 거사, 선사의 시대입니다. 심지어 가수들, 연극배우, 영화배우에게도 선생님, 선생님, 심지어 스승님이라고 하는 세상입니다. 하도 ‘님’을 남발하다 보니 사회자가 ‘신부 아버님’이라고 실수를 했는데, 그냥 신부 아비, 신부 아버지가 맞습니다. 왜냐하면 이 예식장에서 주인공은 신랑, 신부지만 참석자의 가장 높으신 분은 하객 여러분입니다. 바쁘신 중에도 신랑 선우 창욱과 신부 현영미를 위해 오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중간생략)

딸이 자전거 배우던 날 얼마나 기쁘면 커도 시집 안 가고 아빠랑 살면서 엄마가 아빠 혼내면 엄마, 그러지 마! 할 거라고 했는데, 오늘이 딸에게 배신당한 날입니다. (하객 웃음)

가납리 비행장에서 비행 없는 휴일에 딸에게 자전거를 가르쳤습니다. 직진을 가르치고 아빠가 뒤에서 잡아준다고 페달을 힘껏 밟으라고 했다. 활주로 중간에서 따라가지 못하고 손을 놓았다. 혼자 끝까지 달려 활주로 담장을 들이받았다. 팔과 다리 타박상을 입었다. 고가초소 경계병이 상황 보고를 해서 위생병이 구급낭을 메고 달려와 치료했다. 혼자 활주로 2킬로미터 달린 것이 얼마나 기뻤으면, 어른이 되어도 시집 안 가고 아빠랑 살 거야. 엄마가 아빠 야단치면 못 하게 할 거야 했습니다. 그런 딸이 오늘 아비를 배신한 날입니다. (중간생략)

인생은 부부 두 사람이 2人 용 자전거를 타는 것입니다. 자전거 타다가 쓰려지려는 순간 더욱 힘차게 페달을 밟아야 합니다. 비틀거리는 자전거에 어-어-소리만 지르면 자전거가 쓰러지고, 인생도 쓰러집니다. 오늘 새 출발 하는 신랑-신부가 인생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으라고 박수 한번 부탁드립니다. (하객 박수)

로컬라이저

(Localizer)

조종사 김진섭은 무서웠다. 제주공항 7C 2216편이 무안국제공항에 착륙 허가받고 108.1 메가 헬스 신호로 발사되는 로컬라이저 신호와 동체 센터를 일치시켰다. 비행체는 활주로 중앙선을 맞추면서 착륙했다. 하지만 동체 랜딩 기어 바퀴가 펴지지 않았다. 항공기 조종사들 은어로 ‘배꼽 착륙’했다. 비행체의 속도에 활주로 바닥에 닿자 불꽃이 생겼다. 펑! 하는 소리와 화염에 싸인 비행기 승객들의 비명에 나는 눈을 감았다. 사고 비행기 2216은 HL8088은 2009년 8월 19일에 첫 비행을 한 보잉 737~800 기종으로 15년 된 비행기다. 통상 사고가 발생하면 비행기 노후를 먼저 언론은 주목한다. 그동안 우리나라가 못살던 시절에는 다른 선진국에서 도태 직전의 비행기와 배를 사서 수리해서 운항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사고 나면 그 비행기나 배가 수령이 얼마나 되었느냐?부터 확인했기에 이번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사고도 비행기 수령을 기자들이 확인했다. 이 비행기는 그리 오래된 비행기는 아니다. 김 조종사는 무안에서 초등학교, 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부모님이 마늘밭 2,000평을 경작하는 것으로는 대학 등록금을 감당할 수 없어서 모든 것이 국비공군사관학교에 진학했다. 공군 전투기 조종사 생활을 10년 하고, 전역해 민간항공기 조종사를 했다. 대한항공, 아시아나, 에어프랑스까지 몰고 은퇴할까 하다가 마침 고향 무안국제공항에 제주항공에서 동남아시아 취항 허가받았다기에 착륙하면 어머니가 해주는 집밥을 먹고 싶어 이직했다. 나이도 있고 여기가 마지막 조종사 생활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가장 부러워하는 친구는 무안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방대에서 ROTC를 하고, 육군 소령으로 무안에서 예비군 중대장을 하는 예비역 육군 소령 현영섭이다. 예비군 중대장을 우습게 보는 사람도 있지만, 동장, 면장 사무실 인접해 예비군 중대 사무실이 있고, 두 명 병사가 파견되어 행정업무와 각종 청소하고 예비군 훈련 통지서 발송업무를 해주기 때문에 예비군 지휘관은 별정직 공무원이다. 부업으로 돼지 200마리를 키운다. 늘 돼지우리에 200마리를 유지하면서 새끼가 태어나면 새기 수만큼은 큰 돼지를 팔아 통장에 저축한 돈이 8천만 원이 넘는다. 공무원은 영리 행위를 할 수 없다는 법규 때문에 도시에서 중대장을 하는 동기는 아내 이름으로 사업자 등록을 내고 호프집을 하거나 노래방을 운영했다. 촌에서 돼지를 키우는 것은 예비군 지휘관을 하면서 법적 저촉이 없는 것이었다. 무안 촌에서 예비군 중대장 봉급 매월 10일에 받고 통장에 돼지를 팔아 모은 8천만 원이 들어있고, 딸과 아들은 다 시집, 장가보내 걱정이 없는 현영섭에 비하면, 공군 소령으로 전역해 항공사를 전전하면서 돈을 많이 벌었지만, 아내가 씀씀이가 커서 남은 것이 없다. 더구나 딸도 아들도 아직 결혼 전이다. 공군에서 전투기 조종할 때는 조종사와 부조종사 둘만 타기에 추락해도 비행체와 군인 2명만 사망한다. 하지만 제주 항공기 조종사 뒤에 탄 승객들은 비행운임을 지불하고 탄 175명을 안전하게 모실 책임이 있다. 조종간을 잡고 있을 때가 가장 행복했다. 누구 지시, 명령도 잔소리도 들을 수 없는 하늘에서의 자유는 조종 경험이 있는 사람만 느낄 수 있다. 출처가 불분명한 나쁜 놈들이 무안국제공항 제주 항공기 사고를 이용해서 음모론을 퍼뜨리는 몰염치한 짓을 했다. 윤 정부 들어서 이태원 참사, 해병 채 상병 순직 사건, 오송 지하차도 참사에 이어 무안국제공항에서 제주항공 참사가 난 것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더니, 무안국제공항 사고 후 국토교통부는 국내 7개 공항에 대해 로컬라이저 둔덕을 없애기로 했다. 처음 기자들이 무안국제공항 로컬라이저 둔덕이 사고를 키운 것 아니냐? 질문에 아니다. 전혀 문제없다고 하던 국토교통부가 슬며시 국제규격에는 문제가 없지만 차후 사고 재발을 위해 제거한다는 기자회견을 했다. 일종의 면피성 기자회견이다.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조사 중일 때 손흥기 전임 공항 공사 사장이 숨진 채 발견됐다. 사고 발생한 무안국제공항 로컬라이저 개량사업을 시작할 때 한국공항공사의 공항 안전부서장이다. 국제 민간항공 연합기구(ICAO : International Civil Aviation Organization) 규정에 따르면 혹시라도 비행기가 착륙하다 로컬라이저와 충돌이 생기더라도 잘 부서지는 재질로 만들어 비행체에 충격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되었다. 무안국제공항 로컬라이저 입찰에 응한 회사는 2개였다. 무안 제일 건설은 지상에 설치하고 둔덕으로 덮는 설계를 제출했다. 한편 차악 건설은 국제규격에 맞게 잘 부서지는 재질로 설계를 제출했다. 당연히 공사비가 치악 건설이 비쌌고, 의사결정권자들은 저렴한 무안 건설이 낙점되었다.

최초 시공 계약금 3억을 받은 것에서 5천만 원을 사과는 외부서 보이는 투명 비닐 부분만 사과를 넣고 나머지는 5만 월권 신권지폐로 가득 채워 손 안전본부장에게 전달했다. 이 나라 관급공사는 그런 식으로 악의 카르텔이 맺어진 지 30년이 넘었다. 너도나도 다 알면서 모르는 척 넘어가는 것이다. 그래도 서울은 워낙 기자들이 많아 덜 하지만 지방은 누가 그걸 취재 보도하는 사람도 없으니 타성에 젖었다. 손 사장이 죽자 무안 중학교, 고등학교 동창들이 그의 빈소가 마련된 J 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 장례식장에 모여들었다. 친구 중에는 미친놈 죽기는 왜 죽어? 돈 5천만 원이 뇌물은 뇌물이지만, 골프가방에 20억 받은 놈도 잘만 사는데, 5천만 원으로 죽느냐? 항의성 발언하는 동창도 있었다. 민간항공기구(ICA0: International Civil Aviation Organization) 규정에 맞게 설계했던 치악 건설만 닭 쫓던 개 신세가 되었다. 그때를 잊을 수 없다. 무서웠다.

조종사가 “메이데이! 메이데이!”

“버드 스트라이크! 버드 스트라이크!”

외치면서 착륙했다.

당연히 랜딩 기어가 내려와 바퀴의 유압 제동장치로 활주로 끝단 안에 정지할 줄 알았는데, 비행체는 랜딩 기어 없이 동체가 활주로에 닿는 동체 착륙했다. 활주로에 엄청난 속도의 비행체가 닿는 순간 화염이 일었다. 상공에서 한쪽 엔진에서 펑! 소리와 하얀 연기를 봤지만, 화염에 싸인 비행체가 나에게 달려오자 눈을 감았다. 순간 비행기 승객과 함께 인생을 마감한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 당신들 사람만 태어나면 고귀한 인명이라고 하면서 이런 참사가 반복되는지, 콘크리트 로컬라이저도 당신들 인간을 이해할 수 없다.

비행기는 방콕에서 전날 출발했다. 제주항공 소속 2216편이 무안국제공항에 착륙하다 발생한 이 사고는 크리스마스 연휴에 태국 여행을 다녀오던 한국사람 173명과 태국인 2명, 승무원 6명 포함 총 181명이 타고 있었다. 우리나라도 관광지가 많은데 왜 그 멀리 태국까지 가냐? 비난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왜 가겠어? 우리나라 관광명소라는 제주도, 강원도, 부산 해운대, 남해안 한려수도 관광지에 숙박업소고 횟집이고, 심지어 중국집까지 바가지요금이 심하니 총 경비 따지면 국내 여행보다 비슷하거나 사기 때문에 나가는 것이다. 공무원들은 그것도 모르고 대체휴일, 공휴일 지정하면 해외로 많이 나간다고 금요일을 이빨 빠진 근무일로 만들었다.

젊은 직장인은 금요일을 연차나, 월차로 쓰고 해외로 나간다. 공무원들이여 머리는 장식으로 달고 다니나? 그런 일을 볼 때마다 돌아가신 (고) 노무현 대통령이 생각난다. 상고 출신으로 얼마나 설움 받았으면 이걸 뛰어넘는 길은 오직 사법고시뿐이라고 공부해 합격해 인권변호사가 되었다. 그래도 그 시절은 고졸이 노력하면 변호사 할 수 있었지, 요즘은 뭐 법학전문대학원이라는 학비가 한 학기 1천만 원이다. 보통 집 딸 아들은 감히 생각할 수 없다. 이렇게 부의 세습을 깰 수 없다. 신라 시대는 진골, 성골, 6두품, 무 두 품 계급이고, 조선 시대는 사농공상, 일본 강점기 시기는 친일매국, 독립군, 평민, 자작농, 소작농 계급이었다. 요즘은 벤츠, 테슬라, 제네시스, 모닝을 줄여서 ‘벤 테제 모’라고 부른다.

차를 몰고 호텔을 가보거나 주유소에 가봐라, 종업원 대하는 태도가 차종에 따라 달라진다. 181명이 탄 제주항공 비행기가 오전 8시 54분에 관제탑과 교신했다. 착륙 허가받고 관제사가 01번 활주로를 이용하라고 했다. 8시 57분에 관제탑에서 그런데 말이야, 새 떼가 방금 지나갔다. 조심하라고 했다. 조종사는 알았다고 Roger를 외쳤다. 8시 59분, Roger라고 하자마자

“메이데이!”

“메이데이!”

“버드 스트라이크!”

“버드 스트라이크!” 외쳤다.

관제사와 기장이 착륙 허가 교신 때부터 로컬라이저는 신호를 발신했다. 발사한 전파가 비행기 배꼽, 양 날개 수신 장치에 정확히 빨려 들었다. 센터를 정확히 맞추어 착륙했다. 그 순간 나는 됐어, 안도했다. 웬걸, 이걸 ‘Roger’라고 하는데, 랜딩 기어 바퀴가 안 보였다. 기장은 센터를 맞추어 배꼽 착륙했다. 배꼽 착륙 수준으로 봐서 조종사는 베테랑임이 틀림없다.

2024년 12월 29일 현지 시각 오전 2시 29분 방콕 수완나품 공항에서 이륙해 오전 8시 57분 무안국제공항에 착륙 교신했다. 사고 후 오전 9시 3분 무안 공항 소방대는 즉시 출동했다. 43분 후에 화재진압을 완료했다. 생존자 2명은 동체 꼬리 쪽 점프 시트에서 구조된다. 소방대뿐만 아니라 군인, 경찰도 투입되어 구조를 지원했다. 공항 주변에 사는 민간인 목격자에 의하면 이미 비행기는 착륙 전 하늘에서 기체에 폭발음도 들렸고, 연기도 났다고 했다. 조종사는 희생자들에게 면목이 없었다. 하지만 정말 나쁜 놈은 국제민간항공기구 규정이 있음에도 돈 몇 푼 아끼려고, 몇 푼 뇌물로 엉터리로 로컬라이저를 시공한 관련자들이다. 공항 만들 때 시장, 국회의원, 공항 관리공단 이사장과 임원을 무안에서 잘 자란 물푸레나무 도리깨로 등짝을 뒈질 때까지 패고 싶다. 맞아야 할 이유를 말하겠다. 부모와 자식, 손자, 손년 3대가 그 비행기에서 사망했다. 요즘은 평균 수명이 80이라고 칠순 잔치하는 대신 칠순을 맞이한 강석기 씨와 부인 김경희 여사가 아들 부부 손자, 손녀와 여행을 갔다 귀국길에 참변을 당했다. 화순에서는 과거에 함께 근무했던 퇴직 공무원 3명이 부부 동반으로 여행을 마치고 귀국하다 참변을 당했다. 쥐꼬리만 한 공무원 봉급으로 평생을 살았다. 자식들 공부 다 시키고 은퇴 후 모처럼 마련한 해외여행, 첫 해외여행이 이생에 마지막 여행이 되었다. 목포에 근무하던 자매 공무원 2명은 이종 4촌 조카들을 데리고 크리스마스 연휴를 해외에서 즐기고 귀국하다 희생되었다. 한국인은 한국인이 로컬라이저 부실하게 만들었으니 그럴 수 있다고 쳐, 태국인 2명은 무슨 죄가 있는가? 태국은 외교 경로로 따져, 국제법상 배상 기준에 맞게 배상 요구했다. 최연소 탑승자는 2021년에 태어난 3세 최순주 어린이였다. 부모와 함께 첫 해외여행을 다녀오던 길이다. 최순주 어린이의 아버지 최기철은 SNS에 행복한 날이라고 아들 첫 여권에 도장 쾅! 행복하다. 일정은 힘들었지만, 아들 덕분에 행복하다고 글을 남겼다. 더 기막힌 사연은 신혼여행 마치고 귀국하는 부부도 희생되었다. 고교 동창 5명이 7년 동안 여행 친목계를 조직해 여행을 마치고 귀국길에 참변을 당했다. 이 정도면 무안국제공항 로컬라이저 공사에 설계자, 발주자, 시공자, 감리까지 무안 야산의 물푸레나무 도리깨로 패 죽일 놈이다. 언제부터 조선 땅이 검찰 공화국이 되었는지 검사는 전지전능한 하느님과 동기동창이 되었다. 이 나라는 최은순이 동업자 정대택을 김명신이 동거하는 양 검사가 법정 구속했을 때부터 ‘유검 무죄 무검 유죄’의 나라가 되었다. 그녀는 350억 원 통장 잔액을 위조해 부동산 거래했고, 동업자와 이익을 반반 나누기로 했으나 그를 구속하고 혼자 이익을 독차지했다. 구속은 검사 사위가 한 것이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으로 23억 부당이득을 취했다.

조작에 관련된 모든 사람이 구속되었으나 최은순 딸만 무사했다. 검사 출신이 대통령이 되더니 인권위원회도 검사 출신, 문화재청도 검사 출신, 금융 감독원장도 검사 출신이 차지했다. 검사가 금융사기 사건 수사를 몇 번 했다고, 서강 대학교 경제학과 미국 시카고학파와 대적할만하다는 서강 학파 경제학 석사, 박사보다 이복경이 경제 지식이 더 있겠어? 언제부터 이 나라는 중대범죄를 저지르고도 뒈지면 ‘공소권 없음’이 된다. 죽은 자는 죽었더라도 범죄는 끝까지 수사해서 결론을 내야 한다. 그래야 부정부패의 먹이사슬과 악의 카르텔을 끊어낸다. 이 상태로 나간다면 지구상에서 가장 부패한 나라가 될 것이다.

제주항공 사고 항공기 블랙박스 2개를 수거했다. 수거했지만 대한민국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아닌 미국으로 후송했다. 한국이 세계적으로 전자정보 산업이 발전했고, 세계에서 가장 광통신을 전국으로 개통한 나라, 주민등록증 전산화, 전자정부 구축했다. 블랙박스를 조사 못 하고 흙 묻은 블랙박스를 미국으로 보냈다. 무식한 사람들은 당연히 제조사로 가는 것이 맞다. 이런 것을 일종의 강대국 갑질이다.

대한민국 전파연구소는 세계 제일 전파분석 기관이다. 미국이 777부대를 한·미 합동부대로 유지하는 이유가 한국 감청 분석관 실력이 세계 제일이기 때문이다. 60만 대군을 유지하고, 100만 명의 북한군과 대치하고 있다. 하루하루 통신 감청을 수집하고 분석한 결과물이 세계에서 가장 많다. 미국은 세계 요소요소에 파견되어 있다지만 미군이 잘하는 것은 영어 통화할 것을 숫자 암호로 변환하여 통화한 것을 해독 잘하지, 한글을 숫자 암호로 변환한 것을 잘할 수 없는 노릇이다. 북한, 어랑 비행장에서 미그 전투기가 이륙해서 박천 비행장에 착륙할 때까지 교신은 777부대 한국인 분석관이 최고다. 서해안 백령도에서 동부전선 최북단 통일전망대까지 북한 전파가 잘 수집되는 곳은 꼭 777부대 감청 기지가 있다. 매일 0시부터 다음날 24시까지 24시간 마감한다. 그 통신감청 첩보를 분석해 정보 가치 있는 것만 추려서 일일 정보 보고로 만든다. 중요한 것을 일명 블랙북 보고(Black Book)로 육군은 군단장 이상, 해군은 함대사령관 이상, 공군은 비행단장 이상에게 보고한다. 그런 실력이면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사고기 통신 기록 분석을 대한민국이 해도 될 만한 것인데, 미국으로 보낸 것은 강대국 미국의 갑질이다. 혹시 통신 기록 분석에 기체결함이나 미국 국가이익에 위반하는 내용이 나올 것을 겁내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엔진제조사가 프랑스 국적이기에 가져간 것이지만 속내는 따로 있다. 차후 이런 갑질을 안 당하려면 한국항공우주산업(KAI:Korea Airport Institute)에서 무인항공기와 공군 고등훈련기, 전투기 만들고 있는데, 장기적으로 민항기 제조도 해야 한다. 무안국제공항에서 수거한 엔진과 블랙박스를 분석하는 것을 미국은 아무리 빨라야 6개월이고 길어지면 2년이라고 언론에 흘렸다.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수사본부는 무안국제공항 운항 관리 본부와 관제탑을 압수 수색했다. 제주항공 본사와 무안영업소, 국토관리부에서 무안국제공항 관련 서류 일체를 압수했다. 무안국제공항 로컬라이저 개선작업 시기의 공문과 사업 승인 절차 서류도 압수했다. 여객기와 충돌한 새 떼 관련 무안국제공항의 새 떼 퇴치 법적 인원과 채용인원 활동일지도 압수했다. 오래전 이야기다. 기술 약소국은 혹시라도 기체 결함이 있더라도 기술 강국이 엔진을 분석한다고 엔진 결함을 숨기고 조종사 과실로 책임을 더넘길 수 있다.

실제로 무인항공기를 이스라엘에서 처음 수입하여 전방 1, 5군단에만 배치했을 때 이야기다. 비행을 무사히 마치고 기지로 복귀할 때,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전파간섭이 왔는지 모르나 조종사의 조종 박스 신호가 안 먹혔다. 바로 예비주파수로 주파수 변경했다. 그래도 비행체는 조종사의 조종 박스 신호와 무관하게 비행장 담장 밖 80m 지점 논에 추락했다. 무인항공기 기술 분석 역시 조종사 조작 미숙 결론이다. 제주공항 본사에서는 사고기 기체 정비 이력을 압수했다. 로버트 샘 월트 전 미국 연방 교통위원회(NTSB: National Transportation Safety Board) 위원장은 조류 충돌에 대해서 하나의 원인일 수는 있지만, 결정적인 원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특히 조류 충돌로 인한 엔진 고장으로 랜딩 기어가 작동 안 되었다는 언론보도에 대해서는 아닐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제주항공의 보인 737 사고 기종의 구형 모델로 10년 동안 조종을 해봤지만, 조류 충돌이 어떻게 랜딩 기어의 고장을 유발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왜냐하면 자신도 구형 보잉 737로 조류 충돌로 비상 착륙한 경험이 두 번이나 있었으나 모두 랜딩 기어는 이상 없었다. 언론에 보도된 영상을 보고 랜딩 기어뿐만 아니라 날개 플랩도 작동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새 떼가 엔진에 부딪힌 것과 상관없이 랜딩 기어와 날개 플랩의 정비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고 CNN 인터뷰에서 말했다. 한국공항공사 자료에 의하면 2019년 4월부터 2024년 8월까지 전국 14개 공항 중 공항 주변 철새 도래지를 조사한 결과 무안국제공항이 버드 스트라이크 발생률이 가장 높다. 무안국제공항이 10건, 김해공항이 147건으로 김해가 1등이지만 운항 항공기당 발생률은 무안 공항이 오히려 높았다. 무안 공항은 사건 당일 조류 퇴치팀 1명이 근무했다. 조류 퇴치 직원은 4명으로 3교대 근무했다. 4명이 한 팀인 조류 퇴치반은 주간 조는 9시에서 오후 6시, 야간 조는 오후 6시에서 아침 9시까지 1명이 근무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듯 공항은 사고가 나니 조류 퇴치 인원 보강을 약속했다. 제주항공은 사고 여객기가 정비 상 문제가 없다고 발표했다. 새빨간 거짓말인 것이 탄로가 났다.

2021년 공항 활주로에 충돌 사고가 있었는데, 정지 비행 금지하는 규정을 무시하고 비행을 강행했다. 2억 원의 벌금 부과되었다. 2021년 2월 17일에 김포공항에서 제주공항을 향해 이륙하던 동체 고리가 활주로에 긁혀 기체 일부가 손상되었다. 이때도 정지하지 않고 비행했다. 2억 2천만 원 벌금을 냈다. 규정을 어기고 벌금만 내면 된다는 안전 불감증이 누적되어 대형 참사를 유발한다. 경찰 수사가 손 사장을 향해 좁혀오는 것을 감지했다. 왜 로컬라이저 둔덕으로 만들고 더구나 잘 부서지는 재질로 설계한 회사의 안을 탈락시키고, 콘크리트 구조물로 설계한 것을 최종 낙점한 것인지 해명해야 한다. 손 사장은 무안국제공항에서 제주항공의 불타버린 비행기가 꿈에 나타나 잠을 잘 수 없다. 수면제를 먹어도 효과 없다. 잠이 부족하니 아침을 아내가 진수성찬으로 차려도 먹는 둥 마는 등하고 집을 나섰다. 무안국제공항이 잘 보이는 야산에 올랐다. 준비된 A4 2장과 볼펜을 꺼냈다.

<나는 갑니다. 더 사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나는 공부도 잘했고, 처자식에게 부끄럽지 않은 가장이라고 자부하고 살아왔습니다. 무안 중학교, 고등학교 동문 여러분들에게도 죄송합니다. 윤 대통령과 여운걸 방첩 사령관과 이상철 행정안전부 장관, 김용열 국방부 장관 등 현암고 출신들이 나라를 개판으로 만들어 현암고 후배 학생들이 창피하다고 교복도 못 입고 다닌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혹시 저로 인해 후배 무안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교복을 못 입고 다닐까 걱정도 됩니다. 무안국제공항 로컬라이저 설계한 곳은 국토교통부였다. 사고조사를 국토교통부가 한다는 것이 공정성에 문제 있다고 했으나 강행했다. 2005년 신 공항 건설을 추진하며 서울지방항공청은 공항시설의 건설과 운영, 관리를 담당했다. 전국 교통안전 관련 교수들은 둔덕이 로컬라이저를 지탱하면서 사고를 키웠다고 주장했다. 국토교통부 항공 장애물 관리 세부 지침에 따르면 로컬라이저 안테나는 충돌 시 항공기 손상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파손되거나 변형되도록 설치되어야 한다. 국토교통부는 둔덕이 국제 민간 항공 기구(IACO) 규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둔덕이 활주로 말단으로부터 259미터 이내의 종단 안전 구역 밖이라 해당 지침 적용받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그 발표가 국내외 언론에 퍼지자 세계 은퇴한 조종사들이 항의가 국토교통부로 전화가 폭주했다. 국내 언론도 국토부가 설계한 둔덕에 대한 사고조사를 국토부가 하는 것이 객관성과 신뢰성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사고조사는 중앙사고수습본부가 맡지만, 설계를 맡은 국토부가 조사에 개입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기자가 지적했다. 민간단체는 사고조사를 제주항공 맡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했다. 영국 공군 장교로 은퇴한 항공전문가 데비드 리어마운트는 무안국제공항 사고와 관련하여 착륙활주가 끝날 무렵 기체에 손상이 없었고 화재도 발생하지 않았다. 단단한 콘크리트 둔덕에 부딪히면서 화염에 휩싸였고, 그것이 탑승자들의 목숨을 앗아갔다고 직격탄을 BBC에 날렸다.

형식상으로 공개입찰을 한다고 무안에 있는 건설사와 강원도 횡성에 있는 차악 건설을 입찰에 참여시켰다. 치악 건설은 로컬라이저를 활주로 바닥과 수평이 되도록 시공하려고 했다. 기계장치 몸통은 지하에 묻고 로컬라이저 신호 발신 장치만 활주로에 수평이 되도록 시공계획서를 제출했다. 무안 제일 건설은 오늘 사고 둔덕 형태의 시공계획서를 제출했다. 당연히 공사비 총액이 저렴한 무안 건설 시공 안이 채택되었다. 은퇴한 손 공항 공사 사장이 2005년 공항 관리공단 안전책임자였다. 20년 전이나 요즘이나 이 나라 관급공사 수준이 이런 카르텔이 형성되었다. 너도나도 알면서 묵인하는 토목 건설 비리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 합동 추모식에서 고(故) 김영준씨의 딸 다혜 양은 눈물로 쓴 편지로 마지막 인사를 “아빠의 딸로 태어나서 정말 행복했습니다. 당신과 함께한 모든 순간을 기억하겠어요.”라고 낭독했을 때 무안국제공항 사고 합동 영결식장은 눈물바다가 되었다. 정부에서는 탄핵당한 대통령과 이어 탄핵에 넘겨진 국무총리를 대신하여 대통령 권한 대행의 대행 최 교육부총리가 조사를 낭독했다. 국회의원과 무안시장의 추도사까지 인터넷상에 떠도는 판에 박힌 추도사를 영혼 없이 낭독했다. 영혼 없는 추도사라 유족 가슴에 남는 말은 없었다.

매번 참사가 나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소리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해 정부는 노력하겠다고 했지만, 세월호 그 엄청나게 큰 배가 전복되고, 이태원에서 핼러윈이라는 대한민국과는 족보상 관련 없는 행사에 안전대책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희생자가 생겼다. 이날 추모식은 희생자의 넋을 기리는 진도 씻김굿 추모 공연을 시작으로 헌화, 분향, 추모사, 기억의 시간, 추모곡 공연 순으로 진행했다. 추모사에서 박형신 유가족 대표는 억울하게 돌아가신 희생자들의 한을 풀도록 하나의 거짓도 숨김도 없이 참사 원인을 정확하게 밝혀 유가족과 국민께 설명해 주길 바란다고 했다. 며칠 후 손흥기 유서가 발견되었다.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는 말과 변명이었다.

(전반부 생략)

마지막으로 검찰, 경찰 수사하는 분들은 당신들이 의심한 것 맞습니다. 뇌물 5천만 원 사과 상자에 5만 원권으로 받았습니다. 로컬라이저는 활주로와 로컬라이저가 수평이 되도록 설치하거나 지상으로 돌출 설치할 때는 잘 부서지는 재질로 만들어 혹시 항공기와 부딪치는 일이 있더라도 항공기 기체에 손상이 적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20년 전에는 그리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잘 부서지는 재질로 설치하면 5년마다 재시공해야 하고, 그때마다 보고서 만들고 결재받고 시공사 입찰에 부쳐야 하는 번거로움 대신 콘크리트로 견고하게 하면 20년은 이상 없이 사용할 것이라고 채택했다. 그때는 견고하게 하는 것이 예산 낭비를 막는 줄 알았다. 이 모든 것이 저의 무지와 욕심이 불러온 참사이기에 면목이 없어 결심하고 실행한 것입니다. 저 이외의 공항 공사 안전과에 후배나 하급자에 대한 처벌은 저의 자진으로 더 이상의 문책이 없기를 바랍니다.

2025년 1. 15.

손 웅 기 씀

손의 시신과 유서가 발견되어 며칠 동안 언론은 로컬라이저와 유서가 신문을 도배했다. 일부 유튜버들은 이 유서가 가짜라고 주장했고, 가짜뉴스가 나돌았다. 2024년 12월 3일 10시 30분 윤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한 것도 처음에 가짜뉴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손은 경찰대학을 1기로 졸업했다. 서울의 명문대학을 진학할 실력은 되었으나 무안 촌놈이 서울에서 대학 등록금과 생활비를 무안에서 마늘 농사짓는 부모에게 부담시키기 죄송해서 국비로 공부하는 경찰대학을 선택했다. 1기인 만큼 경쟁자도 없이 승승장구했다. 경찰대학 학장으로 은퇴했다. 경찰대 학장으로 은퇴하고 연금만 받고 노년을 보내도 될 것을 20대 총선에 출마했다. 무안초, 중, 고등학교 동문만 찍어도 당선이라고 출마하였으나 낙선했다. 2018년 12월부터 2022년 2월까지 한국공항공사 사장을 지냈다. 제주항공 여객기 무안국제공항 착륙 간 사고에 대한 수사가 전남경찰청 수사본부에서 손 사장에게 1월 20일 참고인 조사를 할 것이니 출두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가슴이 먹먹했다. 잠을 잘 수 없었다. 꿈에 제주항공 조종사가 보였다. 꿈에 진섭이 호통을 쳤다.

“손흥기, 야 이놈아, 아무리 뇌물이 사탕보다 좋다고, 경찰대학식이나 나온 놈이 규정에 잘 부서지는 재질로 만들라고 한 것을 콘크리트로 공사라고 월급 또박또박 받은 것이 부끄럽지도 않냐? 그러고도 중, 고등학교 동문회에 내빈석에서 인사하고 음주를 즐기느냐?”

호통을 쳤다. 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무안국제공항이 국제공항 규격에 맞기나 하냐? 김대중 대통령 시절 김대중 왼팔이니 오른팔이니 하는 한화갑이 무안 국회의원이라고 국제공항 감량도 안 되는 것을 밀어붙여 국제공항을 만들었다. 말로만 국제공항이라고 하고 국제선 운항하는 항공사들 입주가 없어 활주로에 고추를 말리던 곳이 무안 공항이다. 또한 활주로 종단 안전 구역이 권고 기준인 240미터보다 짧은 공항은 무안 공항, 김해공항, 여수공항, 포항 경주 공항, 사천공항, 울산공항, 원주공항 등 7개 공항이다. 이들 공항은 공항 울타리 밖 토지를 매입하여 안전거리를 확보하고, 토지매입이 불가능한 경우 활주로 이탈 방지시설 (EMAS: Engineered Materials Arrestor System )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국토교통부 놈들 하는 짓이 서울 양평 고속도로를 원안을 변경 바나나처럼 휘게 만들고, 무안국제공항에서 고귀한 생명 179명의 희생자가 생기고 나니 이런 개선책을 발표한다. 무안국제공항 로컬라이저를 설계한 박해억은 조선대학교 건축학과 2학년을 마치고 3학년 때 서울 홍익대학교 건축학과로 편입했다. 대부분 편입생이 그렇듯이 그 학교 처음부터 다닌 학생과는 개밥에 도토리처럼 지냈다. 그 대신 오직 실력으로 승부한다고 공부만 했고, 열심히 설계했다. 마침 공항 공사에서 로컬라이저 공모가 있어 공모했다. 솔직히 국제민간항공기구의 규정이 있는 것조차 모르고 오직 로컬라이저가 전파 발신 장치라는 것만 알고 설계했다. 다른 나라 로컬라이저 설계도를 공부하고 약간 다르게 차후 표절 의혹에 저촉되지 않게 설계한 것이 덜커덕 당선되었다. 무안국제공항이 위치한 곳의 행정구역 명칭은 전라남도 무안군 망운면 피사리다. 얼마나 구름이 많으면 이름에 구름 운이 들어간 망운면이겠는가? 일제 강점기 자료에 의하면 이곳은 1년 365일 중에서 60일 이상이 안개라는 것이다. 1944년 일본이 군용 비행장을 공사했으나 미처 완공하기 전에 패망했다. 일본이 공사하다 중단한 군용 비행장을 1989년 수도권, 영동, 호남 3개 권역에 신공항 건설계획을 발표했다. 강원도는 양양군 손양면에 전남은 무안군 망운면에, 인천은 영종도에 타당성 조사했다. 1993년 7월 26일에 아시아나항공 733편 추락사고가 발생했다. 호남지역 신공항 필요성 여론이 높아졌다. 1994년 4월 19일 제1차 공항개발 중장기 기본계획에서 호남권 신공항 무안국제공항 발전 계획에 수립되었다. 목포 공항은 활주로가 짧다. 계기착륙장치도 없었다. 지형과 기상 조건이 나빴다. 안개도 자주 발생했다. 1998년 정부는 대통령 선거공약이었던 호남 신공항을 국책사업으로 추진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한 3주 후인 1999년 3월 20일 국토부는 무안군에서 신공항 개발사업 환경영향평가 설명회를 열었다. 소음 대책, 토지 보상, 이주대책에 대해 주민설명회를 했다. 관제탑으로부터 새 떼들을 조심하라고 통보받은 김진섭 기장은 마음속으로 버드 스트라이크 버드 스트라이크를 중얼거렸다. 머릿속에 암기된 체크 리스트지만 눈으로 다시 한번 확인했다. 착륙 준비를 마쳤을 때 온몸에 한기가 느껴졌다. 어린 시절 공동묘지를 혼자 지날 때 머리가 쭈삣 주삣한 현상이 일었다. 첫 착륙에 실패하고 비행기가 하늘로 향해 떠오르게 파워를 높였다. 이미 비행기 엔진이 시동이 멈춘 것을 알았다. 아무리 파워를 자동, 수동으로 올려도 계기판에 바늘이 그대로였다. 파워가 약한 상태라 멀리 회전할 수 없기에 최대한 가까이 선회하도록 관제탑에 보고했다. 관제탑에서 고우 어라운드 승인이 떨어졌다. Roger 오케이 신호를 보내고 착륙했다. 로컬라이저와 비행체의 센터를 정확히 맞추고 랜딩 기어 없이 동체착륙을 시도했다. 활주로에 동체를 최대한 완만한 각도로 착지했다. 그래도 바퀴 없는 동체가 활주로에 높은 속도로 닿자마자 불꽃이 발생했다. 순간 이것이 내 조종사 생활 마지막이란 직감이 들었다. 공군사관학교 생도 시절부터 처음 T-50 기종으로 훈련기를 타고, F-15, 16 전투기를 타고 중령 진급을 포기하고 소령으로 전역했다. 그 시절은 공군 소령으로 전역하면 민간 항공사에서 서로 모셔가던 시절이라 대한항공 7년 아시아나에서 10년, 에어프랑스에서 3년을 근무하고 고향 무안국제공항에 제주항공이 취항한다는 공고를 보고 이력서를 냈다. 바로 면접이 정해지고 이직했다. 인생살이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했던가? 어차피 떠돌이 인생 조종사가 직업인 것을 그냥 에어프랑스에 있었으면 향수병이야 컸겠지만 이런 참사는 안 당했을까? 별별 생각이 다 지나갔다. 로컬라이저 신호와 동체를 센터라인에 맞추고, 눈을 감았다. 활주로 끝단에서 담장까지 거리가 400미터가 안 되는 공항은 대형 그물로 된 제동장치가 있어야 했다. 무안국제공항은 그것도 없다. 관제탑에서 동체착륙을 보는 순간 버튼만 누르면 활주로 끝단에 참새 잡이 그물처럼 그물이 펼쳐져서 동체 착륙한 비행체를 그물이 더 이상 진출 못 하게 막는 장치다. 환영이 보였다.

로컬 라이저 둔덕에 영섭과 그가 키우는 돼지 200마리가 로컬라이저 둔덕 위에 걸어가고 있었다. 진섭은 공군사관학교 생도 복장으로 짧은 2주 여름 방학에 고향에 왔을 때, ROTC 하계병영훈련 입소하는 영섭을 길에서 잠시 만난 적이 있었다. 그때는 영섭이 진섭에게 부럽다고 했다. 솔직히 초, 중, 고 학생 12년 동안 영섭은 진섭에게 공부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늘 진섭은 상위권이라면 영섭은 중위권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구구단을 외워도 진섭이 먼저 외웠고, 국민교육헌장을 외워도 진섭이 먼저 외웠다. 하지만 인생은 마라톤. 누가 행복은 성적순도, 군번 순도 아니다. 한 말이 떠올랐다. 로컬라이저 둔덕 앞에 진섭은 공부를 잘하고, 공군사관학교 출신 최고 기량 조종사도 소용없었다. 공부 못해 지방대 출신 ROTC 예비역 소령 현영섭이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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