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대기 작품. 3

P-73 공역 / 송충이

by 함문평

P-73 공역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중국인이 가져간다는 말이 있다. 강두연 소령이 어렸을 때, 횡성 장날에 나가보면 공터에 사람들을 모이게 하고 아기 곰 재주넘기를 하고, 무명 가수가 노래를 부르고 만병통치약이라고 약을 팔아 돈을 걷어갔다. 어린 두연은 어른이 되면 아기 곰을 데리고 전국 장터마다 다니면서 저렇게 돈을 벌고 싶었다. 인생은 그의 생각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 2024년 12월 3일 윤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했다. 심야에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했다. 처음에는 가짜뉴스로 받아들였다. 시간이 갈수록 가짜뉴스가 아니라 진짜 뉴스가 되었다. 국회의원들이 국회로 달려갔다. 시민들도 국회로 갔다. 여의도 국회의사당 주변은 아수라장이었다. 중무장한 계엄군이 헬기가 착륙하자 문이 열리고 의사당으로 진입했다. 12월 3일 밤 11시 44분이었다. 강 소령은 수도방위사령부 작전처 작전 항공 장교다. 강원도 인제, 원통에서 진급하겠다고 3년을 전방 생활만 했는데, 3차 진급에 탈락하여 전역 후 취직이라도 잘할 수 있게 육군본부에 서울 근처에서 근무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해서 보직받은 곳이 수도방위사령부 작전처 작전 항공 장교였다. 작전 항공 장교는 원래 항공병과가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항공 소령은 헬기 조종사로도 부족한 실정이라 보병을 작전 항공 장교에 보직 운영했다. 작전 항공 장교의 주 임무가 수도권지역에 비행계획을 하늘에서 충돌사고가 나지 않도록 교통정리를 하는 것이다. 신라 시대 골품제가 진골, 성골, 육두품이 있었고, 조선 시대는 사(士,) 농(農), 공(工), 상(商), 중인, 천민이 있었다. 21세기 군대에도 육사가 성골, 진골이라면, ROTC는 육두품이다. 힘겹게 소령 진급했을 때, 일찍 중령 진급 안 하고 고향 횡성에 가서 예비군 중대장을 한다고 11년 차에 전역해 횡성읍 예비군 중대장을 하는 김진섭 소령이 부러웠다. 예비군 중대장 봉급 받으면서 부업으로 더덕 농장을 하고 있다. 원래 공직자는 영리 행위 금지인데, 육군본부 동원참모부에 문의 결과 예비군 중대장을 하면서 부업으로 더덕 재배하는 것은 공직자윤리법에 위반 아니라고 해서 중대장을 하면서 병행했다. 연간 더덕 수입이 8천만 원이라고 한다. 2년 후 예비군 중대장 은퇴하면 현재 6천 평을 1만 평 더덕 농사를 짓겠다고 했다. 지난해 ROTC 동기회 송년회에 더덕막걸리를 200병이나 기증했다. 참석자 전원에게 나누어주고 남아서 육군회관 관리관과 직원에게도 나누어주었다.

2024년 12월 3일 밤 10시 30분, 대통령은 자다가 봉창을 두드린다는 말처럼 계엄을 선포했다. 여의도 국회의사당으로 국회의원들이 모여들고, 계엄군이 헬기를 타고 국회의사당 뒤뜰에 착륙했다. 계엄군과 경찰과 일반 시민이 혼재되어 여의도 국회의사당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계엄 해제 결의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되었다. 계엄을 선포했던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파면이 되었다. 2024년 12월 3일 밤 8시 특전사령부 작전 항공 장교는 수도방위사령부 상황실로 팩스 한 장을 전송했다. 이어 전화를 걸었다.

“충성! 통신보안 수도방위사령부 작전상황병 일병 한동훈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그래, 수고한다. 특전사령부 작전 항공 장교 김형섭 소령이다. 방금 팩스 한 장 보냈는데, 잘 들어갔는가?”

“예, P-73 공역 비행 승인 요청입니까?”

“그래.”

“잘 들어왔습니다.”

“그거 긴급 공문이니 바로 수도방위사령부 작전 항공 장교 드리고, 문의가 있으면 바로 특전사령부 작전 항공 장교에게 전화하도록 말씀드려라.”

“예, 알겠습니다. 충성!”

이 일병은 강 소령에게 통신병이 팩스 수신문서를 전달했다. 강 소령님, 문서 보시고 의문 사항은 특전사 작전 항공 장교에게 전화하라고 하셨습니다. 받아 든 공역 승인 요청을 천천히 읽었다. P-73은 청와대에 대통령이 집무할 때는 청와대 중심 표적을 기준으로 반경 4킬로미터를 원으로 그려 P-73이라는 암호로 공군과 민간 조종사, 육군헬기 조종사들만 알아듣는 군사용어다. 영어의 보호하다 Protect의 첫 글자를 사용한 것이 P이고 73이라는 것은 군사지도에서 한반도를 200개의 격자로 만들었을 때 73번에 해당하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더 자세한 것은 군사 비밀보호법에 위반되기에 생략한다.

12.3 계엄으로 온 국민이 다 아는 P-73이 되었다. 윤대통령이 당선되고 청와대가 아닌 용산에서 업무를 보기에 P-73이 약간 변형이 되었다. 중심점이 청와대 표지석에서 용산 대통령 실이 되었다.

비행 일시는 202412032200에서 2400까지였다.

비행 목적 : 빈칸, 착륙지점: 빈칸이다.

미친놈 아니야? 비행 목적도 없고, 착륙지점도 없으면 그냥 비행하지 왜 승인 요청을 보내? 강 소령은 바로 특전사령부 작전 항공 장교에게 전화했다.

“통신보안, 특전사 작전 항공 장교 김 소령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야, 김 소령, 강 소령인데, 비행 목적도 착륙지점은 없는 공역 승인 요청을 왜 보낸 거야?”

강 소령은 고등학교 동기 김 소령을 윽박질렀다. 김 소령은 약간 뜸을 들이더니 조곤조곤 설명했다. 사실은 비행 목적은 계엄인데, 계엄이라고 하면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기 전에 비밀이 누설되면 안 된다고 특전사령관이 은밀하게 공역 승인받으라고 했다. 이 사항은 특전사령관과 수방사령관이 다 아는 내용이라 그렇게만 보내도 수방사령관이 승인해 준다고 했다는 말을 전했다. 강 소령은 알았다고 공문에 다섯 칸 결재 고무인을 찍었다. 맨 앞에 담당자 소령 강두연이라고 서명했다. 작전 과장, 작전처장, 부사령관, 사령관 순으로 결재란이 되었다. 작전 과장은 설명을 듣고 결재했다. 작전처장 김갑성 대령은 3사 출신이었다. 대부분 육사 출신 장교들이 맡아온 수도방위사령부 작전처장을 맡은 것은 그가 정말 업무를 철저하게 했기 때문이다. 이 수방사령관과 박 육군참모총장 재판에 참고인으로 출석했다. 특전사령부 계엄군이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진입하기 위해 12월 3일 10시 40분부터 긴급비행 승인 요청을 했다. 강 소령은 비행 목적이 불분명하다고 3회 비행 보류시켰다. 특전사령부에서 계속 요청이 오자 합동참모본부에 문의했다. 합참도 모른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육군본부에 문의하니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이 즉각 승인했다. 최초 비행계획은 22시 30분에 이천 특전사령부 연병장에서 이룩해 여의도 국회의사당 뒤뜰에 23시 정각에 착륙 예정이었다. P-73 공역 비행 승인 팩스 전문 결재가 지연되어 44분이나 지체되었다.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 계엄사령관, 방첩사령관까지는 23시 정각에 특전사령부 계엄군이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착륙할 것으로 생각했으나 첫 단추부터 잘못이었다.

다급한 대통령은 특수전 사령관에게 직접 전화했다.

“어디쯤 가고 있느냐?”

“한강 상류에서 여의도 방향 비행 중입니다.”

“왜 아직 도착 못 했느냐?”

“기상이 나빠 이륙이 늦었습니다.”

윤 대통령은 군대를 안 간 사람 수준의 질문을 했다. 이 나라 예비역 병장 2천만 명에게 물어봐도 다 안다. 군대가 출동하려면 최소한 4시간 전부터 군장을 꾸리고, 군장 검사를 하고, 이동 수단에 따라 차량은 차량 탑승 위치까지 예행연습을 한다. 그런 예행연습 없이 당일치기로 그것도 P-73이라는 비행하기 힘든 공역 안으로 비행하는 작전을 당일에 공역통제 비행 승인 계획을 남의 부대에 보낸다는 것이 얼마나 한심한 서커스인지를 안다. 군대를 안 마친 자들만 모른다. 그냥 명령만 내리면 되는 줄로 안다. 군대용어로 후보계획을 모르니 지금 명령하면 군인은 알아서 하는 집단으로 잘못 알고 있다. 밤 11시 정각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밤 10시 10분에는 이륙해야 한다. 그러려면 밤 10시 이전에 P-73 공역비행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러자면 밤 9시 정도에는 공역 승인 공문을 수도방위사령부에 보내야 한다. 팩스야 팩스기계에 넣으면 되지만 받는 부대에서 공문을 접수해 실무자, 과장, 처장, 부사령관, 사령관까지 결재받고 역으로 승인 전문이 도착하는 과정을 모르니 밤 10시에 계엄을 선포하면 자동으로 밤 11시에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계엄군이 점령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수도방위사령부 강 소령은 특전사령부 김 소령에게 전화했다.

“통신보안, 특전사 작전 항공 장교 김 소령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통신보안 같은 소릴 해라. 나, 강 소령인데, 비행 목적도 착륙지점도 없는 비행 승인 요청을 왜 보냈어?”

“강 소령, 그게 말이지 우리 사령관님이 귀소 수도방위사령관에게 사전 약속한 것이라고 이렇게 보내도 비행 승인 내줄 것이라고 하셨어?”

“내가 특전사령부 작전 항공 장교 할게, 네가 여기서 수도방위사령부 작전 항공 장교 해라?”

“강 소령, 그게 말이지 솔직히 말하면 비행 목적은 계엄이고, 착륙장소는 여의도 국회의사당이다. 그걸 통신병이나 일반 장교가 알면 비밀 누설할까 봐 그렇게 한 거야.”

“야, 너 앞으로 횡성고등학교 나왔다 소리 하지 마라. 너 같은 한심한 놈과 동기라는 것이 창피하다.”

“한심하더라도 한 번만 봐주라. 지금 승인 안 되면, 차후 어떤 불상사가 날지도 몰라.”

“불상사 아니라 12.12처럼 군사 반란이 일어나도 안 된다. 다시, 비행 목적, 착륙지점 좌표 명확히 해서 보내라. 이문건은 세절한다. 이상!”

수도방위사령부 작전 과장은 비행 목적, 착륙지점이 빈칸인 비행 승인 요청 문건을 김갑상 작전처장에게 갔다. 작전처장은 비행 목적, 착륙지점이 없는 공문을 보고 바로 지적했다. 작전처장 김 대령은 3사 출신 대령이었다. 수도방위사령부가 중구 필동에 있을 때는 육사 출신 아니면 작전처장을 할 수 없었는데, 남태령으로 이사 온 후에는 3사 출신도 보직되었다. 김 대령이 그만큼 실력도 있고, 수도방위사령관에게 인정을 받았다. 특전사령부 김 소령과 수도방위사령부 강 소령은 지금은 없어진 흑석 고등학교 동기다.

강 소령은 대학을 가서 ROTC 장교가 되었고, 김 소령은 3 사관학교에 가서 장교가 되었다. 둘 다 육사 출신이 아니라서 힘들게 3차에 소령 진급했고, 중령 진급도 올해가 3차였는데, 탈락했다. 현재 보직이 끝나면 직업 보도 입소 예정이다. 강 소령은 김 소령에게 통화는 다시 보내라고 했지만 일단 접수된 공문서는 임의 파기할 수 없어서 결재 고무 결재도장을 찍었다. 맨 앞이 담당자, 작전 과장, 작전처장, 부사령관, 사령관 순으로 5개의 결재 칸이 찍혔다. 맨 앞에 소령 강두연이라고 서명했다. 작전과장실로 갔다.

“들어와!”

“특전사령부에서 P-73 공역 비행 승인 요청이 왔는데, 비행 목적, 착륙지점이 없습니다. 다시 빈칸 없이 공문 만들어 보내라고 전화했는데, 다시 공문 만들어도 빈칸으로 올 것 같습니다.”

“무슨 소리야?”

“특전사령부 작전 항공 장교가 동기라서 이런 공문이 어디 있느냐고 따졌더니, 동기니까 너만 알고 누설하지 말라는 소리에도 불구하고 비행 목적은 ‘계엄군 출동’ 착륙지점은 ‘여의도 국회의사당’입니다.”

“뭐야?”

“그러니까 비밀 유지를 위해 다시 보내오는 것도 빈칸으로 올 것이니 이걸로 작전처장에게 결재를 받으시면서 말로 이해시키시기 바랍니다.”

“야, 그렇게 작전처장 겪어보고도 빈칸 공문 결재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 강 소령?”

“그럼, 다시 공문 오는 거 받아서 두 장을 다 보여드리세요?”

그런 대화를 하는데, 급하다고 통신병이 팩스 공문을 가져왔다. 역시 비행 목적, 착륙지점이 빈칸인 전문이었다. 작전 과장이 결재인 찍은 공문과 두 번째로 접수된 공문을 들고 작전처장에게 갔다. 강 소령이 말한 것을 그대로 작전처장 김갑상 대령에게 말했다. 작전처장은 문서를 바닥에 팽개쳤다.

“윤 중령, 중령 고스톱으로 달았니? 하급자 소령이 허접한 공문을 가져오면, 가르쳐서 바른 공문을 받아와야 중령이지, 소령이 전해준 것을 그대로 들고 오면 그게 중령이야, 늙은 소령이지?”

“죄송합니다. 다시 제대로 받아오겠습니다.”

윤 중령은 작전처에서 나와 흡연실로 갔다. 담배를 한 대 피우면서 이 난국을 어떻게 풀까? 생각했다. 작전과장실로 강 소령을 오라고 했다. 강 소령에게 특전사령부 작전 항공 장교 김 소령을 통화하고 작전 과장과 통화해 보라고 했다.

“특전사령부 작전 항공 장교, 수고 많소. 나, 수도방위사령부 작전과장 윤 중령인데, 특전사령관님과 수방사령관 두 분이 교감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소?”

“우리 사령관님이 저에게 직접 하신 말씀입니다. 비행 목적에 계엄군 출동, 착륙지점에 여의도 국회의사당이라고 쓰면 사전에 다 발각되어 작전이 실패할 수 있으니 빈칸으로 보내고 실무자끼리 협조해서 공역 승인받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다 실패하면 누구 책임이야?”

“누구 책임입니까? 특전사령관과 수방사령관 책임이죠?”

“그래도 승인할 수 없으니, 비행 목적, 착륙지점을 꼭 문서 치지 못하면 자필로 써서라도 다시 보내시오.”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P-73 공역 비행 승인 요청 공문으로 40분을 흘려보냈다.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 방첩사령관, 특전사령관, 수방사령관 계엄 상층부에서는 12월 3일 밤 11시에 특전사령부 병력이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착륙하기로 약속했으나, 수도방위사령부 작전처장 김 대령과 작전 과장, 작전 항공 장교가 원칙을 고수하다 40분이 지났다. 그날 수도방위사령부 작전 항공 장교 강 소령은 자기의 책임을 다한다고 합참에 물어보고, 육군본부에 전화하여 계엄사령관이 승인하라고 해서 40분이 지체된 상태에서 P-73 공역 비행 승인을 허락했다. 승인하는 시간에 마지막 팩스가 왔다.

- 비행 목적 : 계엄군 출동, 착륙장소 : 여의도 한강 둔치라고 김 소령이 자필로 써서 급하게 팩스를 보냈다.

강 소령은 바로 결재 고무도장을 찍고 담당자에 소령 강두연이라고 서명하고 지휘통제실 병사에게 작전과장실 비대면 결재를 보냈다. 일사천리로 작전처장, 부사령관, 사령관까지 비대면 결재가 이루어졌다. 상황은 급박했다.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 육군 대장 박인수의 명령으로 비행 승인을 냈기에 비대면 결재는 형식 절차에 불과했다. 계엄사령관이 포고문 제1호를 낭독했다. 포고문은 모든 정치행위를 금지하고, 일체 집회를 금지한다고 했다. 의사 2 천 명 증원으로 파업 중인 전공의들은 즉각 복귀하라고 했다.

TV 생중계로 계엄을 선포한다는 방송을 보고, 국회의원들은 여의도 국회의사당으로 모였다. 국민의 힘 국회의원도 여의도 국회의사당으로 갔다가 국민의 힘 원내대표가 국민의 힘 당사로 모이라고 장소변경을 했다. 다시 국회의사당으로 했다가 또 의원회관으로 변경했다. 국민의 힘은 우왕좌왕했고, 야당 국회의원들과 의결 참여 의원은 200명 이상이 모였다. 국회의장이 계엄 해제 결의안건을 본회의에 상정했고, 전광판에 찬성은 파란불이 반대는 빨간불이 들어왔다. 통과되었다. 바로 용산 대통령실로 전달되었다.

그 와중에 여의도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시민들이 어디서 왔는지, 국회의사당을 인간 띠로 둘러쌌다. 707 특임부대 계엄군도 비행기를 타고 착륙장소가 평양 대동강 변 둔치로 알았는데, 한강 둔치도 아니고 국회의사당 잔디밭이었다. 훈련은 북한군처럼 강도 높게 받았으나 이날의 몸동작은 신병교육대 인소한 훈련병 수준으로 둔했다. 충격이었다. 평양으로 알고 비행기에 탔는데 내려 보니 우리나라 여의도 국회의사당 뒤뜰이었다. 명령이니 가긴 가지만 발걸음이 무거웠다.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접수한 부대는 아예 병사들이 편의점에서 컵라면, 삼호 어묵, 삼각 김밥, 바나나 우유를 먹으면서 시간을 끌었다. 병사들은 이 계엄이 실패할 것을 알고나 있던 것처럼 부여받은 임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서버는 들어낼 생각 없이 편의점에서 먹는 방송 찍는 유투버처럼 서로 먹는 장면을 스마트 폰으로 찍어 부모에게 전송했다. 오래전 군대 계엄군으로 출동한 경험이 있는 아버지는 아들에게 영상 편지를 보냈다.

출동하는 것은 상부의 명령으로 출동하더라도 절대로 국민을 향해 총을 쏘아서는 안 된다. 혹시라도 총을 쏜다면 하늘을 향해 쏘라고 했다. 밤 10시 30분에 계엄을 선포한 대통령은 국방부 장관에게 전화했다. 11시에 국회의사당을 장악한다더니 왜 아직 못했느냐? 다그쳤다. 국방부 장관이 특전사령관에게 전화하는데 이미 통화 중 신호음이 들렸다. 그새를 참지 못하고 대통령이 바로 특전사령관과 통화했다. 왜 11시에 국회의사당을 점령하기로 한 작전이 아직도 도착 안 했느냐? 닦달했다. 그렇다고 공역 승인이 늦어 못했습니다.라고 할 수 없었다. 눈이 와서 늦었다고 대답했다. 손자병법에도 전쟁에서 이기려면 하늘이 도와야 이긴다고 한 것은 천문기상이 전쟁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날 하늘은 계엄군 편이 아니라 일반시민 편이었다. 눈과 비가 섞여 내린 날, 시민은 나이 불문, 남녀불문 유명 가수들 콘서트에나 쓰는 형광 봉 들고 밤하늘을 수놓았다.

여론조사기관 ‘꽃’으로 가라고 명령받은 간동훈 대령과 나잘난 중령과 운전병은 처음 고속버스터미널 옆 서울 성모병원 주차장으로 갔으나 주차비가 30분에 6,000원이라 너무 비싸다고 한 대령이 반포대교로 가라고 했다. 잠수교 남단 한강 둔치에 시간당 300원 하는 공용 주차장으로 갔다. 여기서 스마트 폰으로 뉴스를 검색했다. 국회의장이 계엄 해제안건이 가결되었다고 의사봉을 두드리는 방송을 보고 부대로 복귀했다. 방첩 사령관은 국방부 장관과 대통령을 번갈아 통화 중이었다. 2차, 3차 계엄을 준비하라고 했다.

다급한 대통령은 특전사령관에게 국회의사당 회의실에 있는 국회의원을 4인 1조가 되어 팔다리 한 짝씩을 잡고 끌어내라고 했다. 707 특임부대장과 1 공수여단 김영기 대령에게 특전사령관이 호출하고 비화 전화기로 명령했다. 4명이 팔다리 한 짝씩 잡고 끌어내라고 하자 김 대령이 할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명령 불복종 항명이냐? 고 했다. 예, 항명이라도 이건 할 수 없습니다. 저는 이등병부터 부사관 중사까지 경험하고 장교가 되었고, 성공, 진골, 육두품도 아닌 ‘무두품(無 頭品) 장교’가 중령이면 사람으로 할 도리 다했고, 진급할 만큼 다했습니다만 우리가 군복을 입고 충성한다는 것이 사람에 대한 충성이 아니고, 국가와 국민에 대한 충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4인 1조가 되어 끌어내라는 명령은 수행할 수 없습니다. 특전사령관은 겁이 났다. 707 특임부대장과 1 공수여단 1대대가 여의도에서 용산으로 쳐들어가 위화도 회군하듯이, 김 국방부 장관과 윤 대통령을 내란수괴로 체포하고, 총을 겨누면 어쩌나 걱정되어 바로 국방부 장관에게 전화했다. 계속 통화 중이라 통화할 수 없었다. 국방부 장관은 수방사령관과 통화 중이었다. 수도방위사령부 1 경비단장에게 특전사만으로 여의도 진압이 어려우니 여의도로 이동하라는 수방사령관 명령을 거부했다. 수도방위사령부 1 경비여단 대대장이 인솔하는 선두에게 무전을 날렸다. 부대를 이동하다가 서강대교가 나오면 적당한 공터에 중대별로 소산 및 휴식을 취하고 있어라. 누구의 무전이 와도 여단장 직접 육성 아니면 이동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다. 수도방위사령관이 국방부 장관에게 그런 내용을 전하자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수도방위사령부 1 경비여단과 특전사 707 특임부대와 1 공수여단 1대대가 용산으로 오면 완전히 위화도 회군 21세기 버전이 될 것이 두려웠다. 12월 3일 계엄은 실패했다. 역사적으로 친위 쿠데타가 실패할 확률이 희박하나, 이날 친위 쿠데타 형식의 계엄은 장군들만 순응했지, 대령 이하 장교와 병사들은 소극적 행동으로 계엄에 반대 행동했다.

군사용어로 명령 불복종, 세속 언어로 항명이 이루어졌다. 대통령은 탄핵, 파면되어 서울 구치소로 갔다. 계엄군으로 특전사령부 제1공수여단 1대대와 707 특수임무부대가 국회의사당을 점령했다. 4인 1조가 되어 국회의사당 본 회의실에서 계엄 해제 의결하려는 의원들을 밖으로 끌어내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1 공수여단 김 대령이 여단장에게 보고했다. 끌어낼 수 없습니다. 군인이 훈련받고 출동하는 것은 국가와 국민을 지키기 위해 출동하는 것이지, 국회의원을 강제로 끌어내라는 명령은 제가 항명죄로 처벌받는 한이 있어도 할 수 없다고 했다. 1 공수여단장은 그 내용을 특수전 사령관에게 보고했다. 특전사령관은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잠시 후 707 특임부대장도 무전으로 보고했다. 국회의원을 끌어낼 수 없다고 했다.

1980년 12.12 군사 반란은 하나회를 주축으로 반란군은 실패하면 죽음이라고, 부당한 명령이지만 물불 안 가리고 수행했다. 경복궁 30 경비단에 모인 하나회 장군들과 삼각지 육군본부에 정승화 참모총장이 연행되고 참모차장이 지휘하는 내란 진압 세력과 싸움에서 군사 반란 세력이 이겼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세계적 금언을 깨고, 대한민국은 여의도 국회의원이 여소야대 시절에 성공한 군사 반란 12.12와 성공한 쿠데타 광주 5.18 민주화운동 진압에 대한 책임을 소급하여 처벌했다. 국회의사당에 전두환과 노태우가 번쩍거리는 장군 계급장이 달린 정복이 아니라, 죄수 복장으로 청문회에 나왔다. 청문회 국회의원 질문과 답변을 생중계했다. 5공 청문회로 대한민국은 세계사에 보기 드문 성공한 군사 반란, 성공한 쿠데타도 소급하여 처벌하는 모범적 나라가 되었다.

2024년 12월 3일 계엄은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 계엄사령관, 방첩 사령관, 특수전 사령관, 수방사령관 등 그들만의 계엄이었다. 민주화된 대한민국에서 정상적인 학교 교육을 받은 대령 이하 병사까지는 이 명령이 정당한 명령인지 부당한 명령인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군인이라는 것을 12.3 내란 수괴와 중요 임무 종사자 장군은 몰랐다. 45년 전 군인 수준으로 명령만 내리면 부당한 명령, 불의의 명령이라도 복명복창하는 군인으로 착각했다. 수도방위사령부 1 경비단장은 선발대로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도착했다. 본대가 마포에서 서강 대학교를 지나 여의도로 진입할 예정이었다. 1 경비단장은 본대는 서강대교를 절대 넘지 말라고 명령했다. 방첩사령관으로부터 14명의 우선 체포자 명단을 받은 구인회 방첩사령부 수사단장은 수사관을 소집했다.

수사관들에게 14명 명단을 불러주고 임무 분담시켰다. 우근식 국회의장, 한서훈 나라의 힘 대표, 이재문 더불어 조국당 대표, 언론인 김우준, 김정수 등도 포함되었다. 그날 계엄 해제 의결에 참석한 18명의 여당 의원과 190명의 야당 의원들은 12월 3일 계엄이 성공했더라면 모두 체포되어 B1 지하 벙커에 케이블타이로 손목이 묶인 채로 수용되었을 것이다. 애국가 가사에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처럼 18명의 생각 있는 국민의 힘 의원 덕분에 계엄이 해제되었다. 12월 4일 새벽 1시경 국회 본회의에서 ‘계엄 해제 요구안’이 압도적 찬성으로 가결되었다. 헌법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탄핵이 인용되었다.

윤 대통령은 파면되었다. 박근혜에 이어 임기 중에 파면된 두 번째 대통령이 되었다. 대통령 직무는 정지되고, 한강수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다. 이어 한 국무총리도 탄핵되어 교육부총리가 권한대행의 권한대행 대통령이 되었다.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60일 이내 새 대통령 선출해야 했다. 압도적 차이로 이 현명이 21대 대통령이 되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라고 불렀다. 원래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나라라는 뜻이다. 한민족이지만 휴전선으로 둘로 나누어진 나라, 남이나 북이나 정말 국민은 똑똑하지만 북은 김일성 이후 3대 세습으로 발전하지 못한 나라, 남은 광복 이후 친일 청산을 못 해 친일파 후손들이 국회의원과 장․차관 절반 이상이 되는 형편없는 나라라는 뜻이다.

2010년 11월 23일 오후 2시 30분 연평도에 북한 해안포 170여 발이 떨어졌다. 이날도 주가는 폭락했다. 2024년 12월 3일도 그 이상이었다. 12월 한 달은 주가 폭락 연속이다. 전 세계적으로 망신당했다. 환전소에서 한국 돈은 환전도 안 해준다고 했다. 여행 불안 국가로 지정되었다. 인천공항으로 예약된 비행기 표가 무더기로 예약 취소되었다. 서울에 5성급 호텔 12월 25일을 기준으로 전후 예약된 객실 90%가 취소되었다.

1979년 12.12 군사 반란은 잘못된 명령이라도 상관이 명령하면 따랐다. 2024년 12월 3일 계엄 명령은 대통령 명령이더라도 국방부 장관, 계엄사령관, 방첩사령관, 특전사령관, 수방사령관 등 장군들만 명령을 들었고, 대령 이하 이병까지는 그 명령이 국가와 국민을 위한 명령이고 정당한 명령인가를 각자가 생각했다. 1979년 12월 12일과 45년 후 2024년 12월 3일의 차이는 엄청났다. 707 특임부대장과 1 공수여단 1 대대장 김 중령은 국회 회의실에 들어간 국회의원을 4명이 1조가 되어 팔다리 한 짝씩을 잡고 끌어내라는 명령이 내려왔으나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특히 김 중령은 일반 시민들에게 병사들이 얻어맞았음에도 민간인과 1미터 이상 거리를 유지하라고 명령해서 더 이상의 불상사를 막았다.

방첩 사령관이 수사단장 구인회 대령에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여론조사기관 ‘꽃’의 서버를 압수하라고 명령했다. 구 대령은 방첩사령부의 수사관을 모두 집합시켜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 갈 팀과 여론조사기관 ‘꽃’으로 갈 인원을 편성했다. 그때 방첩사령부 참모장 정우성 준장이 수사단장 구 대령을 불렀다. 큰소리로 작전은 신속하게 해야 한다.라고 했다. 구 대령 그런데 말이지 이리 가까이 와봐, 작은 귓속말로 수사관들에게 각자 임무 장소로 가서는 하는 척만 하고 실제로 서버를 탈취하지는 말라고 했다. 유재원 대령은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 김정기 대령은 여론조사기관 ‘꽃’으로 가기로 되었다.

정 준장이 귓속말로 구인회 수사단장에게 지침 주는 것을 가까이에서 본 대령들은 임무 수행을 하는 척만 하고 실제로는 시간만 끌었다. 방첩 사령관만 양은 냄비처럼 팔팔 끓었지, 나머지 장교들은 느긋했다. 여론조사기관 ‘ 꽃’은 강북에 있었기에 한강을 건너야 했다. 유 대령이 한강대교를 넘지 말라고 했다. 자신이 혼자 가겠다는 것을, 혼자 가면 위험하다고 중령 한 명과 운전병까지 3명이 여론조사기관 ‘꽃’으로 출발했다. 처음은 고속버스터미널 옆 성모병원으로 갔다. 주차비가 30분에 6천 원이라 너무 비싸서 차를 돌려 나왔다. 잠수교 옆 한강 둔치로 갔다. 주차요금 저렴한 이곳에서 대기하다 계엄 해제 소식을 들었다. 이렇게 대령 이하 운전병까지는 소극적 12.3 계엄 임무 수행했다. 표현이 소극적이지 사실은 항명이고 군법회의 감이다.

최성헌 대령은 수도방위사령부 1 경비단장이다. 그날 임무는 국회의사당 본청에 들어가서 국회의원들을 계엄 해제 의결하지 못하도록 국회의원들을 밖으로 끌어내는 임무였다. 선발대로 최 대령과 1개 소대 규모가 선발대로 국회의사당에 도착했다. 본대는 북한산에서 마포로 이동했다. 무전으로 어디쯤 오고 있냐? 물었다. 서강대교 5킬로 미터 북쪽이라고 했다. 절대로 서강대교를 넘지 마라. 서강대교 근처에 공터가 있으면 적절하게 산개하여 대기하라고 했다. 여기 상황을 보고 서강대교를 넘으라고 하면 그때 넘어야지 절대로 미리 넘으면 안 된다고 했다.

1 공수여단 김 대령은 국회의사당 본 회의실 3층에 있었다. 복도에서 국회의원 보좌관에게 대대 병사가 맞았다. 흥분한 병사들이 총을 쏘려는 것을 제지, 대대 병력은 국회의원 보좌관이나 사무처 직원과 1미터 이상 덜어지라고 명령했다. 분기탱천한 공수 부대원에게 본 회의실 진입하라는 명령은 안 내렸다. 여의도 국회의사당 주변이 아수라장이 되었다. 국회의사당 안으로 707 특임부대가 담장을 넘어 안으로 들어갔다. 국회의원들도 국회 담장을 넘어 국회 본 회의실에 도착했다. 의사당 밖에는 시민들과 학생들이 경찰과 엉켜있었다.

계엄군의 총부리를 맨손으로 잡고 항의하는 안귀령 민주당 대변인 모습이 BBC 카메라에 잡혔다. 그 화면은 전 세계로 타전되고 쇼츠 영상으로 나돌아 1억 뷰 이상의 조회가 되었다. 세상이 바뀌었다. 12.3 계엄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장군들은 구속되어 재판을 받았다. 그날 특전사령부 707 특임대대가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23시 정각에 착륙하기로 되었는데, 강 소령과 작전처장이 공역통제 전문을 미비점을 발견해 다시 보내라고 하는 동안 44분이 지체하여 착륙했다. 44분 지체 사유 책임을 물어 작전처장은 영천 3 사관학교 교리발전처장으로 좌천되었다. 강 소령은 인제, 원통서 3년 근무하고 마지막 전역 직전 서울에서 근무하였다. 서울서 몇 달 근무하고 동해안 양양부대로 전출되었다. 딸이 고2라서 아내가 말하기를 어차피 1년 근무하고 직업 보도에 올 것이니까 당신 혼자 독신자 숙소하나 얻어 근무하라고 했다. 애들 교육을 위해서 강원도 양양으로 전학했다가 다시 서울로 오면 애들에게 혼란만 가중된다고 했다. 강 소령은 혼자 양양으로 갔다.

헌법재판소에서 대통령이 파면되었다, 법에 따라 새 대통령이 탄생했다. 국무회의에서 12.3 내란에 상급 부대의 명령에 소극적으로 행동한 인원에 대하여 군인사법을 개정해서라도 특별진급 방안을 지시했다. 판단의 근거는 검찰에 소환되어 12.3 내란에 관한 수사를 받은 계엄사령관, 국방부 장관, 방첩 사령관, 특전사령관, 수방사령관과 경찰청장 등이 진술한 것과 참고인 조사받은 707 특임대대장, 1 공수 여단장, 수도방위사령부 1 경비단장, 1 여단 1 대대장 등의 수사기록을 참고로 국방부 인사국에서는 특별진급 대상자를 선정했다. 대령에서 장군으로 특진한 사람은 3명이었다. 방첩사령부 강 대령은 계엄이 선포되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점령하여 메인 서버를 확보하라는 명령받았다.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갔으나 선거관리위원회 전산실에 들어가 서버를 확보하는 대신 운전병과 함께 출동한 대원들과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어묵과 삼각 김밥을 먹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국회에서 국회의장이 계엄해제안건을 상정하고, 투표가 완료된 후에 편의점을 나와 부대로 복귀했다. 강 대령은 소극적 계엄명령을 수행한 것으로 2025년 12월 1일 장군 특별진급을 했다. 수도방위사령부 1 경비단장 최 대령도 장군 특별진급을 했다.

특전사령부 1 공수여단 김 대령도 국회의사당 본청 건물에서 의원 보좌관과 사무처 직원들에게 부하들이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부하들을 1미터 이상 떨어지라고 명령하고, 특전사령관의 회의실 내부로 들어가 국회의원을 4인이 1조가 되어 끌어내라고 했으나 소극적 임무 수행으로 계엄 해제 의결이 될 때까지 시간을 끌었다. 김 대령도 소극적 임무 수행 유공으로 장군이 되었다. 이렇게 3명은 대령에서 장군으로 특별 진급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12.3 계엄이 실패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1차 소극적 임무 수행은 이천 특전사령부 연병장에서 이륙하는 헬기에 P-73 공역 비행 승인만 22시 10분에 났으면 바로 707 특임부대가 23시 정각에 국회의사당에 도착했을 것이다. 그것을 44분을 지연시킨 것은 강 소령과 김 대령이다.

강원도 횡성군 강림면 강림리 시골 장날에 나가보면 공터에 사람들을 모이게 하고 곰 재주넘기를 하고, 무명 가수가 노래를 부르고 만병통치약이라고 약을 팔아 돈을 걷는다고 했다. 그런 것을 어른들이 말하기를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중국인이 번다’라는 말처럼 12.3 계엄이 실패할 수밖에 없도록 소극적 임무 수행한 것을 평가한다면 강 소령과 김 대령이 수훈갑이지만 세상은 언론에서 검찰 피고인 조서에 나온 것으로 평가되고, 그 외 진실을 보지 못했다.

새로 선출된 대통령이 12.3 계엄 명령에 소극적 임무 수행한 장교를 특별진급을 시키라고 국무회의에서 지시했다. 수도방위사령부 1 경비단장 최 대령, 1 공수여단 김 대령, 방첩사령부 강 대령이 준장으로 진급했다. 대통령은 3명에게 삼정도를 수여했다. 소극적 임무 수행한 장교를 특별 진급시킬 것이라면 강 소령과 김 대령부터 특별진급 해야 정상 아니겠어? 수도방위사령부 작전처장 김 대령과 작전 항공 장교 강 소령은 12.3 계엄에 특전사령부 707 특임대대가 23시에 국회의사당에 착륙할 것을 44분 지연시킨 소극적 임무 수행이 아니라, 거의 항명 수준의 임무 수행을 했으나 좌천되었다. 2026년 1월 1일부로 전역했다.

송충이

육군본부가 지금은 대전 계룡대에 있지만 조성복, 엄헌자가 D 초등학교 시절에는 해군본부가 서울 대방동에 있었고, 육군본부가 삼각지에 있었다. 조성복 아버지는 육군 중령, 엄헌자 아버지는 S 중학교 한문 교사였다. 6학년 때 D 초등학교 6학년에서 조성복, 엄헌자, 정율화, 박윤희, 함영구 등이 만났다. 그때 나는 강원도 횡성군 강림면 강림초등학교를 5학년만 마치고 서울 D 초등학교로 전학했다. 6학년 8반 77번이 되었고, 조성복은 8반 반장이었다. 헌자는 6학년 15반 77번이었다. 점심시간에 운동장에서 음악이 나오면 번호순으로 줄을 섰다. 77번 은자와 내가 마주 서면 내 얼굴이 헌자 젖가슴에 묻혔다. 출렁하는 젖가슴에 고향에 계신 어머니 생각이 났다. 눈물이 났다. 헌자가 “왜 울어?” 했다. “응, 네 젖이 내 얼굴에 닿으니 엄마 생각이 난다.”그 시절은 여촌야도(與村野都)라고 투표하면 촌에서는 여당이 이기고 도시서는 야당이 이겼다. 서울로 인구 집중하는 것을 막기 위해 시골서 서울로 전학을 오면 담임선생이 가정방문을 했다. 가정방문 동안 아버지, 어머니가 함께 있고, 담임이 온 가족이 사는 것이 맞다. 는 보고서가 올라간 후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서울로 오고, 아버지, 어머니가 횡성으로 갔다. 촌닭 관청에 온 것처럼 주눅이 든 상태에서 촌놈이 잘하는 일이 생겼다. 지금은 공군사관학교가 청주에 이전했다. 그때는 현재 보라매공원 있는 곳이 그 시절 공군사관학교였다. 토요일 오전 수업을 마치고 6학년 전원이 공군사관학교에서 송충이 잡는 날 행사가 열렸다. 남학생들은 자기가 10마리 먼저 잡아 검사받고 집에 갔다. 송충이가 징그러워 잡지 못하는 여학생은 저학년 시절 남학생 짝을 찾아 잡아달라고 했다. 저학년 시절 짝이 송충이 10마리를 잡아주었다. 나는 저학년을 여학생과 지낸 일이 없기에 70마리를 잡아서 6학년 9반부터 15반 77번은 모이라고 소리쳤다. 엄헌자, 이미정, 송혜령, 박영선, 조윤선, 선지연, 남경희 등이 달려와 10마리씩 나누어주었다. 초등학교 졸업 후에는 여학생 소식을 모르고 지냈다.

남자 중학교, 여자중학교로 배정받은 이후로는 소식을 모르고 지냈다. 서울로 전학 오기 전 강림초등학교 친구 최홍기와 조필원은 각림 고등학교 동기였다. 지금은 강림에 인구가 줄어들어 각림 고등학교가 폐교되었다. 최홍기와 조필원은 각림 고등학교 야구부 투수와 포수였다. 지명은 강림인데 고등학교 이름은 각림 고등학교였다. 이 마을에는 신라 시대에 각림사(覺林寺)가 있었다. 조선 시대 강원 관찰사가 있는 원주 감영에서 관리하는 직할 창고가 이 마을에 있었다. 일본이 조선을 강점하고 토지측량을 했다. 측량기사와 기록하는 말단 공무원이 ‘각(覺) 발음을 할 수 없었다. 가꾸림, 강림을 고민했다. 조선총독부 고급 관리가 강림(講林)으로 하라고 해서 지금까지 지명은 강림이고 고등학교 이름은 각림 고등학교(覺林高等學校)다. 이 지역 유지 김광수라는 분이 군대서 대장으로 전역하고 재산을 학교설립에 기부했다. 전국에 면 단위 고등학교 중에 개인이 재산을 헌납해 학교 건물을 짓고 기부채납형식으로 횡성교육청에 기부했다. 개교와 동시에 야구부도 만들었다. 면 단위 고등학교에서 육군사관학교 합격자가 두 명이나 나왔다. 최홍기와 조필원이었다. 2회 졸업생 2명이 육군사관학교에 합격하자 교문에 축하 플래카드를 걸었다. ‘경축, 최홍기 조필원 육군사관학교 합격’ 현수막이 걸렸다. 그 두 동기생이 한 명은 수도방위사령부, 한 명은 특전사령부 작전 항공 장교였다.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 어렸을 때, 사랑방에서 할아버지가 임진록(壬辰錄)을 읽어주셨다. 할아버지가 30년 전에 돌아가셨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무렵 철원읍 대마리 철책을 담당하는 연대 정보과장을 했다. 관보가 왔다. ‘조부 위독 급래요망(祖父危毒急來要望)’ 위독하다는 관보로는 휴가를 보낼 수 없다는 연대장 말에 화가 나지만 참았다. 이틀 후에 ‘조부사망 급래요망(祖父死亡急來要望)’관보가 왔다. 눈물이 났다. 금이야 옥이야 장손이라고 사랑을 엄청 주셨는데, 장손은 임종도 지키지 못하고 사망관보를 받고서야 철책 정보과장을 정보장교와 보안부사관에게 과장 없어도 펑크 안 나게 잘하라는 말을 하고 철원에서 서울행 버스를 탔다. 서울서 원주까지 고속버스로 원주에서 강림까지는 택시를 타고 갔다. 할아버지 염을 마쳤으나 장손이 미도착이라고 장손이 보는 상태에서 입관한다고 다들 기다리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12월 12일 돌아가셨다. 14일 선산에 할아버지를 모시고 가는 영구차 앞자리에 할아버지 영정을 들고 갔다. 할아버지를 선산에 묻고 전방으로 오는 버스 안에서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1년 전에 하신 말씀을 회상했다. 휴가 한번 제대로 가지 못하니 94세 노구를 이끌고 강림서 원주까지 동신운수 버스로, 원주서 서울은 동부고속으로 강남터미널서 동서울 까지 전철로 동서울에서 철원까지 시외버스로 철원에서 철책연대 정보과장 관사까지는 대중교통이 없으니 택시로 오셨다. 할아버지 좋아하시는 보신탕 전골을 안주로 관사에서 할아버지와 손자는 최후의 만찬을 했다. 할아버지 말씀이 내가 아마도 2-3 년을 넘기지 못할 것 같구나. 아마도 내가 가고 30년 후에는 손자 어린 시절 읽어준 ‘임진록’ 같은 일이 조선 땅에서 발생하는데, 경거망동하거나 주술에 휘둘리지 말고 ‘중용의 도’를 지키라고 하셨다. 할아버지야 사서삼경을 통달하고 중산서당(中山書堂)이라고 조선의 마지막 서당을 하였다. 나는 사서삼경 책 제목만 시험에 나오니 암기했을 뿐이다.

2024년 12월 3일 윤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했다. 심야에 계엄을 선포했을 때, 처음에는 가짜뉴스로 생했다. 시간이 갈수록 가짜가 아니라 진짜가 되었다. 국회의원들이 국회로 달려갔다. 시민들도 국회로 갔다. 여의도 국회의사당 주변은 아수라장이었다. 중무장한 계엄군이 헬기가 착륙하자 문이 열리고 의사당으로 진입했다.

12월 3일 밤 11시 44분이었다. 홍기 소령은 수도방위사령부 작전처 작전 항공 장교다. 특전사령부 조필원 소령이 전화가 왔다.

“작전 항공 장교 최 소령입니다.”

“잘 지내지, 조 소령이다.”

“웬일이야?”

“수도방위사령관이 너에게 뭔 말 없었어?”

“응, 없었는데?”

“잠시 후에 내가 P-73 공역 비행 승인요청 공문 보낼 것인데, 거기에 비행 목적, 착륙지점 없이 보낼 거야. 이유는 대외비라서 병사들이 보거나 작전에 관련 없는 사람이 보면 안 되는 것이라서 공란으로 보내니, 비행 목적은 계엄선포, 착륙지점은 여의도 국회의사당이라고 수기로 써서 작전처장과 수방사령관 결재받고 바로 P-73 공역 풀어주라.”

“알았다.”

2024년 12월 3일 밤 10시 30분, 대통령은 자다가 봉창을 두드리듯 계엄 선포했다. 미리 특전사령부 조 소령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최 소령은 P-73 공역 승인 요청 공문에 빈칸으로 온 것에 수기로 써서 결재 도장을 찍고 차례로 결재받았다.

수신 : 수도방위사령관

발신 : 특전사령관

제목 : P-73 공역 비행 승인(요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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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 일시 : 202412032200 ~202412032400

비행 목적 :

착륙 지점 :

최 소령이 수도방위사령관 결재받고 특전사령부로 답신을 보냈다. 작전명령 충성 8000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707 특임부대는 이천 특전사령부에서 헬기에 팀 단위로 나누어 탑승하고 여의도 국회의사당 마당에 23시에 정확히 착륙했다. 완전 무장 계엄군이 국회의사당을 봉쇄했다. 국회의장과 여당 야당 대표 등 우선 체포 대상 정치인 14명을 먼저 체포하여 방첩사령부로 인계했다. 수방사령관은 B1 문서고를 개방했다. 비상 발전기를 가동했다. 상전 전원도 ON으로 올렸다.

TV 생중계로 계엄을 선포한다는 대통령의 방송이 KBS, MBC, SBS, JTBC, YTN, 연합뉴스 TV, CNN, BBC, NHK 등이 합동으로 중계했다.

국회의장이 체포되어 계엄 해제 결의를 시도 못 하고 국회가 점령당해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인 조성복 대장이 포고문을 낭독했다.

계엄사령부 포고문(제1호)

자유대한민국 내부에 암약하고 있는 반국가세력의 대한민국 체제 전복 위협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2024년 12월 3일 23:00부로 대한민국 전역에 다음 사항을 포고합니다.

1.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 활동을 금한다.

2.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거나, 전복을 기도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하고, 가자뉴스, 여론조작, 허위 선동을 금한다.

3.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

4. 사회 혼란을 조장하는 파업, 태업, 집회 행위를 금한다.

5. 전공의를 비롯하여 파업 중이거나 의료현장을 이탈한 모든 의료인은 48시간 이내 본업에 복귀하여 충실히 근무하고 위반 시에는 계엄에 의해 처단한다.

(중간 생략)

이상의 포고령 위반자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계엄법 제9조에 의하여 영장 없이 체포, 구금, 압수수색을 할 수 있으며, 계엄법 제14조에 의하여 처단한다.

2024. 12. 3(화) 계엄사령관 육군 대장 조 성 복

계엄은 성공했고, 국회의사당 밖에 계엄을 반대하는 시민이 응원 봉을 들고 에워쌌다. 계엄군은 육군헬기 부대를 동원해 시위군중에게 상공에서 최루탄을 살포했다. 헬기에서 지상으로 기총 소사하듯 최루탄을 발사했다. 국회의사당을 에워쌌던 시민들은 눈물범벅이 되었다. 많은 군중이 해산되었다.

1980년 12.12 군사 반란은 하나회를 주축으로 반란군은 실패하면 죽음이라고, 부당한 명령이지만 물불 안 가리고 수행했다. 경복궁 30 경비단에 모인 하나회 장군들과 삼각지 육군본부에 정식화 참모총장이 연행되고 참모차장이 지휘하는 내란 진압 세력과 싸움에서 군사 반란 세력이 이겼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세계적 금언을 깨고, 대한민국은 여의도 국회의원이 여소야대 시절에 성공한 군사 반란 12.12와 성공한 쿠데타 광주 5.18 민주화운동 진압에 대한 책임을 소급하여 처벌했다. 국회의사당에 전두 환과 노태우가 번쩍거리는 장군 계급장이 달린 정복이 아니라 죄수 복장으로 청문회에 불려 나왔다. 청문회 국회의원 질문과 답변을 생중계했다. 그렇게 5공 청문회로 대한민국은 세계사에 보기 드문 성공한 군사 반란, 성공한 쿠데타도 소급하여 처벌하는 무서운 나라가 되었다.

대통령은 기세등등하게 계엄사령관 조성복 대장의 보고를 받았다. 문제는 조성복 대장이 합동수사본부장 정율화 방첩 사령관 보고에 의하면 용산 대통령집무실 민정수석실을 압수수색 중에 금 거북이 30돈 자리 4개가 나왔다. 조심스럽게 대통령에게 민정수석실에서 금 거북이 4개 발견되었습니다. 보고하니, 민정수석을 하다 보면 금 거북이를 받을 수도 있지, 참 기자 놈들이 말이 많네?라고 한 것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조성복 대장은 조심스럽게 대통령님, 저는 더 계엄사령관을 할 수 없습니다. 사직서를 수리해 달라고 했다.

다음 날 조 대장은 전역했다. 후임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에 엄대장이 임명되었다. 대한민국 최초 여성 4성 장군이었다. 엄 대장은 육군사관학교가 남녀공학이 되던 해 1호 입학생이다. 육군사관학교 수석으로 입학 수석으로 졸업했다. 소대장은 백골로 소문난 3사단 철책 소대장을 했다. 대위로 진급하고 중대장 시절에는 유명한 되로 받고 말로 퍼부었다는 5사단 531 GP를 담당했던 수색 중대장이다. 세월이 흘러 여군 최초 장군이 되었으면, 사단장을 마치고 3성 장군으로 교육사령관을 하는 중에 계엄이 발령되었다. 솔직히 계엄에서 교육사령관은 한직이라면 한직이라 유성에 유명한 피부과에서 피부가 가무잡잡한 것을 좀 희게 만들려고 갔다가 얼굴에 손도 못 대고 4성 장군 진급 신고와 전임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인계·인수했다. 엄헌자는 육군사관학교를 갔고, 조성복은 연세대학교 국문과를 갔다. 거기서 ROTC를 했다. 승승장구하여 4성 장군이 되었고, 계엄사령관을 하다가 민정수석실의 금 거북이를 발견하고, 양심에 선택의 곤란함으로 전역했다. 조성복은 후임자 엄헌자 대장에게 조용하지만 엄숙한 어투로 물었다.

“헌자야, 감당하겠어?”

“뭔 감당?”

“금 거북이 4개가 문제가 아니야, 아직 자세한 것은 합동 수사본부에서 수사를 마쳐야 알겠지만, 민정수석이 비자금 800억 원을 조성했다고 방송인 김허준이 나팔 불고, 역시 방송인 장미선 기자가 영부인이 경복궁 어좌에 앉아 사진 찍은 것을 공개하겠다고 예고편을 방송했다. 더구나 이맹수 기자와 정찬수 PD는 양평 공흥 지역 개발에 양평군이 충은 산업개발에 편리를 봐주었다고 난리야. 충은 산업개발이 이름은 임충식의 ‘충’자와 박은순의 ‘은’ 자를 한자씩 모아 ‘충은 사업개발’이라고 했단다.”

“어떻게 하지? 대장 진급과 계엄사령관 보직을 받고 바로 사표 내면 세상 사람들이 다 욕할 것이고, 그런 항간에 흘러 다니는 소리를 계엄 언론통제로 막으면 풍선효과로 다른 곳에서 터질 것이고?”

“좋은 생각이 있는데, 계엄사령부를 네가 혁명사령부로 바꾸고 혁명위원회 간판을 용산 집무실 말고 삼청동 옛날 국보위 자리에 걸고, 혁명으로 대통령과 영부인, 건망 법사, 만공 이병호, 임충식, 박은순, 임진우, 임진한 등을 다 잡아드려서 혁명재판소에 넘겨라. 은자 너는 대통령 하지 말고 새로운 헌법으로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출까지만 관리하고 군 본연의 자세로 돌아간다면 1961년 5.16에 박정희가 이루려던 소박한 꿈을 엄 대장이 대신 이루어주었다고 온천지 언론이 칭찬할 거다.”인수인계를 받고 조 대장은 계엄사령관실을 떠났다. 내일 있을 전역식 준비에 들어갔다. 엄 대장은 합동수사본부장을 불렀다.

“충성! 합동 수사본부장입 나다.”

“민정수석실에서 금 거북이가 나온 것이 사실이오?”

“예, 금 거북이도 금 거북이지만 비자금 장부가 나왔습니다.”

“금액은?”

“정확한 수사를 마쳐봐야 알겠지만 500억 원 정도입니다.”

“그 돈을 누가 냈어?”

“재계 서열 1위부터 29위까지입니다.”

“수사 부담되지요?”

“계엄으로 하면 대통령을 수수할 수 없습니다. 은밀하게 혁명사령부로 간판을 바꾸고 한시적으로 혁명적 조치를 하고 군으로 원대 복귀하시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알았습니다. 혁명사령부 간판이 걸리기 전에는 비밀입니다.”

“예, 역시 조 장군님보다, 엄 장군님에 강단이 있으십니다.”

“성복이 그렇게 물러터진 남자가 어떻게 장군이 되었나 모르겠어?”

대한민국 현대사는 민주주의가 좀 될 만하면 군부의 개입으로 무산되고, 전국비상계엄과 해제의 연속이었다. 1952년 전쟁으로 정부가 부산으로 피난 간 상황에서도 이승만과 원용덕의 친위쿠데타가 발생했다. 1960년 4. 19 혁명으로 나라가 민주화되나 싶더니 박정희가 5.16 군사쿠데타를 하고는 학생들에게 국민교육헌장을 외우고 5.16을 혁명이라고 교과서에 반영하고 가르쳤다. 그런 교육과 하나회라는 끈끈한 사조직이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가 독재자 박정희를 시해하고 1980년 ‘서울의 봄’을 맞이할 듯하였으나 12.12 군사 반란으로 무산되었다. 계엄은 국가 위기 상황을 타개할 목적으로 발령되었으나 국가폭력을 정당화하는 나쁜 무기였다.

엄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이 난국을 어떻게 해결할까? 엄 장군은 군대서 자기가 진급에 누락되거나 부대에 나쁜 일이 생기면 난곡우체국 사거리 푸른 한의원에 갔다. 한의원에서 보약 지어먹는 것은 기본이고 인생사 상담했다. D 초등학교 동창인 푸른 한의원 원장은 별명이 초등학생 때부터 관악산 산신령이었다. 머리가 초등학생 시절부터 흰머리가 반이 넘더니 중학생이 되어서는 올백이 되었다. 한의사라 환자치료를 기본적으로 잘하고, 정신의학 공부도 많이 해서 심리상담을 잘해주었다.

엄 대장은 푸른 한의원에 전화했다. 포근한 목소리가 들렸다.

“푸른 한원입니다.”

“원장님, 엄헌자입니다. 오늘 저녁 약속 있나요?”

“아이고, 약속 있어도 계엄 사령관님이 부르시면 달려가야지요?”

“계엄사령관이 되니 온천지 가는 곳에 다 사진기자가 따라붙어서 그러는데, 한의원 간호사들 다 퇴근하고 난 시간에 한의원으로 음식 배달시켜서 조성복, 정율화, 원장님과 넷이 식사하면서 집단지성을 빌릴 수 있나 해서요?”

“뭐, 푸른 한의원에 혁명사령부 간판이라도 달려고?”

“역시, 관악산 산신령이십니다. 제 뱃속 들어온 것처럼 말씀하십니까?

그럼 오늘 7시 30분에 한의원으로 가겠습니다.”

1979년 12.12 군사 반란은 잘못된 명령이라도 상관이 명령하면 따랐다. 2024년 12월 3일 계엄 명령은 대통령 명령이더라도 국방부 장관, 계엄사령관, 방첩사령관, 특전사령관, 수방사령관 등 장군들만 명령을 들었고, 대령 이하 이병까지는 그 명령이 국가와 국민을 위한 명령이고, 당한 명령인가를 생각했다. 곡우체국 사거리 허름한 건물 2층 푸른 한의원 좁은 복도를 올라가면서 운전병과 전속부관은 옆 건물 아래 ‘양자강’ 중국집에서 알아서 시켜 먹으라고 돈을 주었다. 정확히 7시 30분에 주문한 배달 음식이 오고 인원도 다 모였다. 엄 대장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솔직히 계엄사령관이라 대통령을 내란 세력으로부터 보호하고 헌법을 수호해야 하는데, 정율화 합동수사단장이 보고한 것만으로도 민정수석 가장 깨끗해야 할 곳에서 금두꺼비 수사하려고 해도 수사 방해 세력이 많아서 진행을 못 한다고 하니, 관악산 산신령님 지혜 좀 빌립시다.”

“나도 합동수사본부가 수사하면서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하겠구나? 생각했는데, 이 난국을 타개하는 방법은 혁명밖에 없다고 생각해.”

“1960년 4.19 혁명은 5.16 쿠데타로 실패했고, 1979년 10. 26 탕! 탕! 혁명은 12.12 군사 반란으로 좌절되었고, 애국가 가사에 하느님이 보우하사라는데, 하나도 이 나라는 하느님은 없고 하나님만 있는 나라 같아.”

“지금까지 쿠데타만 있고, 혁명이 없었는데, 이번에 제대로 준비해 혁명 한 번 하시지요? 엄 계엄사령관님? 혁명을 하려고 해도 엄두가 안 나요?”

“일단 적폐 청산은 언론에 매일 보도되는 양평 고속도로 일명 바나나 고속도로부터 파헤치고, 민정수석 금두꺼비와 대기업이 비자금 제공했고, 민정수석이 여야 국회의원, 언론사 주필을 뇌물로 대통령에게 양평 처가 쪽에 우호적인 기사를 작성한 놈들을 잡아들여야 합니다.”

“영부인이 경복궁에서 조선 시대 임금님이 앉던 어좌에 앉았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그것뿐이야 주가조작도 주가 조작한 일당에게 이익금 40%을 주었다. 국민은 1980년대도 아니고, 계엄사령부를 혁명사령부로 전환하면 광주 5.18 민주화운동 같은 저항이 일지 않을까? 걱정되어 마음은 당장 대통령을 끌어내리고 싶은데, 못하고 있어.”

“12월 12일 계엄사령부를 혁명사령부로 전환한다고 발표하고, 모든 정치활동을 금한다. 언론도 혁명사령부 언론대책반 검열한다고 하고, 언론대책반장은 시인 백윤석을 시키면 잘할 것이야. 백윤석 보다 김순진이 더 잘할걸?”

“아니야 김경수가 우리 초등학교 나오고 아버지가 외교관이라 일본으로 가서 일본 문화에 동화된 점은 있지만 일본 문화 특히 일본 주술에 잘 아니까, 강남 점집에서 압수한 아마테라스 그림과 거기 심취한 영부인에 대해 일반인이 체포해도 공감할 수 있게 먼저 신문에 게재하도록 하면 문제없을 것이야.”

“그래, 그럼 일단 12월 12일 0시를 기하여 계엄사령부를 혁명사령부로 전환한다고 하고 혁명위원은 누굴 뽑지?”

그 명단은 조성복 예비역 대장이 작성해 준다고 말했다. 혁명위원 짤 거면 조 장군이 계엄사령관 시절 하지 왜 사표 내서 나를 힘들에 하는 거야? 나, 솔직히 계엄사령관으로 있을 때는 전혀 생각이 없었는데, 막상 전역 지원서 던지고 나니 아차, 이런 생각을 왜 못했지? D 초등학교 출신으로만 혁명사령부를 구성하면 출신 고등학교가 다 다르니까 국민이 멍청하게 ‘충암파’라니, ‘용현파’라는 소리 들어가며 일도 참 멍청하게 하는데, 우리 D 초등학교 출신이고, 현역 장군이거나 예비역 장군 중에 기본 인격 갖추어진 인원과 서울법대 출신 중에 판사, 검사로 또는 변호사로 평판 좋은 사람으로 혁명위원을 구성하면 일단 군인 장군 출신으로 혁명위원회 구성한 것보다 거부감이 덜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국회를 정지시키면 국회를 대체하는 입법기관과 사법부 정지시키고 사법부를 대체하는 혁명재판소도 있어야지? 입법기관은 국회의원 5 선하고 S 중․고등학교 재단 이사장을 하는 김인환에게 부탁하고 혁명이 완수되고 군인들 원복 때, 영등포구 갑 국회의원 후보 보장으로 하고, 당선하면 6선으로 국회의장 시키면 잘할 것이야. 사법기관은 현재 정율화 합동수사본부장이 짜라고 했다. 그렇게 푸른 한의원 만찬을 마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푸른 한의원에서 계엄사령부를 혁명사령부로 간판을 변경하는 협조 회의는 기막히게 비밀이 준수되었다.

12월 11일 밤 12시, 12월 12일 0시에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계엄사령부를 혁명사령부로 변경하는 방송을 했다. 오늘 밤 12시 계엄사령관 시국 담화 발표라고 모든 방송에 자막을 내보냈다. 사회는 구독자 600만 명을 자랑하는 ‘겸손은 아주 쉽다’를 진행하는 방송인 김허준이 맡았다. 머리는 산발이고 수염은 거의 임꺽정 수준인 그가 국내와 26개의 방송 카메라 앞에 섰다.

“안녕하십니까? 오늘 엄헌자 계엄사령관 특별담화 진행을 맡은 김허준입니다. 그럼, 엄헌자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을 앞으로 모시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사전 공지는 계엄사령관 특별담화로 하였지만 현 시간 12월 12일 0시를 기하여 전국계엄이 선포된 상황에서 계엄사령부를 혁명사령부로 전환합니다. 정직한 공지를 못한 점 사과드립니다. (마이크 옆을 나와 90도로 허리 굽혀 인사)

그동안 전임 계엄사령관이신 조성복 육군 대장이 계엄사령관을 하면서 합동수사본부가 민정수석실에서 발견된 금두꺼비를 수사하려고 했으나 대통령이 반대하여 수사를 못했습니다. 저 역시 계엄사령관을 맡고 금두꺼비 수사를 보고했으나 재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조성복 대장은 사임했지만 저는 임명받은 잉크도 마르기 전에 사임하면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되어 혁명하기로 했습니다. 계엄사령부 상태로 죄질이 불량한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결재받아 일을 하다가는 영월 엄 씨, 조선시대 엄흥도 어르신께 저승에 가서 뵐 면목이 없을 것 같아 계엄사령부를 혁명사령부로 변경했습니다. 과거 박정희 대통령처럼 민정 이양을 약속하고 군복을 벗고 넥타이를 착용하고 대통령을 18년씩이나 하는 양아치 짓은 안 할 것입니다.

합동수사본부에서 한남동 대통령관저에 수사관을 보내 대통령과 영부인을 체포했고, 관저에서 키우던 개와 고양이는 과천동물원으로 보내 사육사가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서울 양평 고속도로를 바나나로 휘게 만들었던 전임 국토교통부장관과 4급 7급 9급 공무원과 용역업체 사장과 양평 고속도로 노선 변경 가담자와 공흥지구 부정 편법 관련자 전원을 합동수사본부가 전원 구속했습니다.

국민 여러분!

이번 군인들이 계엄사령부를 혁명사령부로 전환한 것은 이 나라 역사에 4.19 혁명 후에는 5.16 쿠데타가 1979년 10. 26 탕! 탕! 혁명은 12.12 군사 반란으로 민주화가 될 뻔했으나 실패한 경험을 교훈 삼아 우리 군이 이번 계엄사령부를 혁명사령부로 개칭한 이후의 일정에 대해서는 혁명사령부 대변인 허대은 정훈병과 대령이 발표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인사를 마치고 허대은 육군 대령이 마이크를 잡았다.

“안녕하십니까? 혁명사령부 대변인을 맡은 허대은 대령입니다. 2024년 12월 12일 0시를 기해 혁명사령부가 출범했습니다. 12월 12일부터 2025년 1월 31일까지 현재 대통령과 처가와 관련된 수사를 완료하겠습니다. 2월 1일부터 3월 31일 기간에 각종 부정 비리 국민들 민원을 접수 처리하겠습니다. 4월 1일부터 5월 31일은 새로운 헌법을 만들겠습니다. 현재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 선거 시기가 달라 항상 정권 초기와 정권 말기의 불협화음을 없애기 위해 새 헌법은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 선거 임기를 4년으로 통일하겠습니다. 6월은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선거를 동시에 하겠습니다. 6월 10일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 선거를 마치면 혁명사령부에 파견 나온 모든 군인은 6월 11일 개표방송이 끝나면 12일 0시에 원대 복귀하겠습니다.

다음은 혁명사령부 각 위원과, 정지된 국회를 대신할 혁명 입법 위원 발표는 김인환 S 중․고등학교 재단이사장 김인환이 하고, 정지된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를 대신할 혁명재판소 재판관 명단은 혁명사령부 합동수사단장이 정율화 소장이 발표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인환 전 의원이 마이크를 잡았다.

“지금부터 혁명 입법위원을 발표하겠습니다. 발표는 직책 생략하고 이름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계흥석, 구자흥, 구본무, 김건기, 공춘추 이상 52명입니다. 계엄사령부를 혁명사령부로 전환시켜 정지된 여의도 국회의원 300명의 활동을 중지시키고, 혁명 입법위원들이 입법업무를 하실 것입니다.

이상 입법위원 발표를 마치고 다음 혁명재판소 재판관을 정율화 합동수사단장이 하겠습니다.”정율화 합동수사단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안녕하십니까? 혁명사령부 합동수사단장 육군 소장 정율화입니다. 계엄사령부에서 민정수석 수사 중 발견된 금 두꺼비를 수사 방해한 대통령을 구속하기 위해 계엄군으로는 할 수 없어서 혁명사령부로 전환했고, 민간과 군인 모든 수사를 총괄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대법원에서 판사들이 부적절하게 고급 살롱에서 향응을 접대받고 판결을 피해자에게 오히려 가혹한 판결 내리는 등 국민들이 사법부에 대한 불만과 원한이 하늘을 찌르기에 12월 12일 0시를 기하여 1심 재판부터 3심 재판 모두를 정지시키고 다음 발표하는 혁명재판관들이 1심, 2심을 나누어 실시할 것입니다. 혁명 기간은 3심 재판은 없습니다.

혁명사령부가 새로운 헌법에 따라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선출하고 나면 소정의 공모를 통해 대법원을 꾸리기 전까지는 아래 발표하는 혁명재판관이 1심과 2심을 나누어할 것입니다. 혁명재판관 명단입니다.

먼저 1심 재판관입니다. 강두연, 강영훈, 권혁문, 금동해, 김경조, 남효주, 최철호, 함홍근 이상 40명입니다.

다음 2심 재판관입니다. 강석기, 강근수, 강미정, 나맹우, 남맹우, 이윤구, 박돈곤, 박윤수, 주인현, 성석모, 차인식, 함 웅, 함 진, 함 달. 이상 24명입니다.”

혁명 사령관 엄 대장은 2024년 12월 13일부터 2025년 4월 30일까지 위원회는 정치 일정을 밝혔다. 현재 수사 중인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 수사외압, 서울 양평 고속도로 노선 변경,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등 국정을 발목 잡고 있는 사건과 여의도 국회의원 300명에 대해 전수조사로 공천이나 선거에 부정이 발견된 국회의원은 모두 혁명재판소에 기소한다고 했다. 아울러 2025년 5.1~6.30 사이에 입법위원이 제9공화국 헌법을 만들고 그 헌법에 따라 대통령과 국회의원 동시 선거를 7월 17일 전국 동시 선거를 한다고 밝혔다. 현재의 헌법과 각종 선거법은 대통령의 임기와 국회의원 임기의 차이로 매번 선거마다 집권 초기는 각종 임명직이 버티기를 하고, 집권 후기는 레임덕이 빨리 오기 때문이라고 했다.

혁명사령부는 오차 없이 최초 발표한 그대로 정치 일정을 준수했다. 2025년 7월 17일 대통령선거와 전국 국회의원 선거를 했다. 7월 18일 개표방송이 끝났다. 혁명사령부는 해체되었다. 혁명사령부 파견되었던 모든 군인은 원대 복귀했다.

D 초등학교 19회 동창회장 서원석에게 문자가 왔다.

<알림>

D 초등학교 19회 엄헌자(嚴憲子) 육군 대장 전역식에 초대합니다.

-일시 : 2025년 12월 12(금), 10:00

-장소 : 계룡대 연병장

-내용 : 참석자는 금일 17:00까지 동창회 밴드에 참석 댓글 달기 바랍니다.

참석인원 25 명 이상이면 관광버스(관악산관광)로 이동할 것입니다.

서울 D 초등학교 19회 동창회장 서 원 석 드림

나, 함 소령은 군대서 열쇠부대 정보과장 시절 DMZ 수색 중대 동반 수색 정찰 중에 북한 땅에서 폭우로 떠내려 온 목함 지뢰가 터져 수도통합병원에서 18개월 치료받고 전역했다. 잠시 고민했다. 초등학교 시절 송충이 10마리도 무서워 못 잡은 그녀가 대통령과 영부인은 물론 국회의원, 부정비리에 연루된 대법원 판사까지 혁명재판소에 넘겼다. 공정하게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 선거 관리해 주고 군인으로 돌아가 전역한다는 것이 믿을 수 없었다. 서원석 동기회장은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회장님, 헌자 전역식에 몇 명이나 가요?”

“헌자라니? 예비역 소령이 예비역 대장에게 대장님 해야 하는 거 아니야?”

“회장님, 제가 아무리 지방대학 출신이지만 국어교육과 전공이거든, 재향군인회장 초대장이면 엄헌자 대장님이 맞는데, D 초등학교 동창회장 초대장이라 헌자가 맞습니다. 우리 국어에 ‘격(格)’과 ‘장(場)’이라는 것이 있는데, 천자문도 모르고 돈만 많거나, 직급만 높은 인간들이 격과 장을 모르고 설치거든요. 초등학교 6학년 때 제가 송충이 10마리 잡아준 수고비를 헌자 대장에게 받아내야 합니다.”

“예비역 함 소령 고맙다. 네가 전화 와서 딱 25명 되었다. 운전하는 박호영이 포함하면 D초등학교 26명이 축하 사절로 간다.”

관악산관광은 초등학교 동창 박호영이 1인 사장으로 관광 모집 영업 운전을 혼자 하는 회사다. 출발은 사당역 13번 출구였다. 버스는 나이 60 넘은 남녀가 야, 자 반말이었다. 서 회장이 인원 점검을 하고 25명 이상 출발! 외쳤다.

육군본부 연병장은 군악대 연주가 흘러나오고 의장대, 군악대 뒤로 전역식 행사 병력이 도열했다. 초등학교 동창 참석자 명단이 미리 알려진 상태라 보안 조치는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서원석 D초등회장은 엄 대장에게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전역을 축하드린다고 덕담을 나누었다. 헌자는 다리를 절뚝거리는 나에게 달려와 부축해 주었다.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초등학교 시절 헌자는 이름이 헌자라 동생은 ‘새자’냐? 놀림을 받았다. 양주란은 기둥 주(柱)를 동직원이 계(桂)로 잘못 올려 ‘양계란’이 되었다. 삶은 계란, 찐계란 놀림을 받아 학교를 퇴교하고 호적을 양주란으로 바로잡은 후에 검정고시로 대학에 갔다. 초등학교 때는 헌자, 새자 놀렸는데, 중학생이 되어 한문을 배우고 헌자 이름이 ‘헌자’, ‘새자’가 놀림감이 아니고 정말 귀중한 헌자(憲子)라는 것을 알았다. 헌자 아버지 이미 고인이 되신 엄태흥(嚴台興)이 나의 S 중학교 은사였다. 학교를 졸업하고 설날에 세배를 가서 알게 되었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 전역을 축하한다!”

“예비역 함 소령, 송충이! 고마웠다.”

“그걸 기억해?”

“그럼, 그 징그러운 송충이 10마리 잡지 못하면 집에 못 가는데, 번호가 77번이라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

“송충이 10마리도 무서워 못 잡던 은자 어린이가 어른이 되니, 인간송충이 105명을 잡았더군?”

“ 무슨 105명이야, 말 똑바로 해 300명이지?”

옆에 있던 관악산 산신령 푸른 한의원 원장과 방첩사령관 정율화가 300명은 여의도 송충이이고, 서초 송충이까지 합치면 400명도 넘는다고 했다. 은자는 D 초등학교를 빛낸 인물이다. 아무도 이루지 못한 혁명 사령관 육군 대장에서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와 존경받는 유일한 시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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