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마음 하얀 마음 17
돌아가셔서도 장손만 챙기는 네 분
명절에 모이면 동생들은 장손을 성토한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모두 장남 장손만 자식으로 키웠지 동생들은 주워온 자식처럼 키웠다고.
사실이다.
할아버지는 당신의 소를 팔아 장손 학비와 서울로 전학을 위해 관공서에 뇌물을 주는 것은 하나도 아까워하지 않았다.
1970년대는 서울시 인구 억제 정책으로 서울서 지방으로 전출은 쉬웠으나 지방에서 서울로 전입은 어려웠다.
일단 학교 전학을 가면 담임 선생님이 가정방문을 해서 학생과 부모가 한집에 사는지 확인해서 교육지청에 보고했다.
처음 전학을 위해 아버지 어머니를 대방 2동에 전입을 했는데 아버지 예비군 훈련통지가 왔다.
요즘은 개인 휴대폰이 있지만 그 시절은 전화는 관공서만 있고 마을 이장댁에 전화한 대로 마을 전체가 사용해서 다른 집이 통화 중이면 내가 걸어도 소용없었다.
교환 아가씨가 기다리라고 하자 할아버지는 전보문항을 적어주시면서 우체국에 가서 전보를 치라고 하셨다.
19740714 예비군 훈련 전날 상경
최소한 문자를 줄여 뜻만 통하는 전보를 받고 13일에 아버지는 예비군복을 챙겨 서울로 오셨다.
처음에는 그런 식으로 훈련을 받았는데 도저히 횡성에 소를 키우고 농사도 지으면서 예비군훈련받는 것이 힘들어 아버지는 헝성으로 다시 주민등록을 옮기고 어머니 나 할아버지 할머니로 지내다가 중학생이 된 이후는 겁 없이 할아버지 할머니 나 셋이 한 주민등록에 등재하여 지냈다.
하지만 여동생이나 남동생 중학 입학 교복값을 아까워하셨다.
그러니 어른들 다 돌아가신 후에도 제사에 모이면 이렇게 성토한다.
동생들이 성토가 끝나자 딱 2시간만 오천만의 실내스포츠 고스톱을 하자고 했다.
여동생이 고스톱도 네 분이 장손만 도와주시는 거 아니야? 하자 막내 남동생이 조상이 도와주어도 실력은 못 누른다고 자신이 가장 젊음과 실력을 말했다.
여동생이 첫 선을 잡더니 몇 판을 이기더니 다음은 남동생이 몇 판을 이겼다.
이거 내일 아침 차례상을 받으시러 네 분의 영혼이 우리 집 상공서 내려보시면 장손 털리는 거 그냥 두시 지는 않을 거야라고 했다.
그다음 판부터 한시적으로 정한 2시까지 연속 11판을 이겼다.
판을 마치자 동생들이 한마디 했다. 조상들은 돌아가셔도 장손만 챙긴다고.
어려서는 장손이라고 어른들이 사랑해 주신 것에 감사하지만 동생들이 차별받은 것에 늦었지만 미안한 마음이다.
그 시절 우리 집뿐만 아니라 다른 집들도 남아 선호에 장손을 우대한 것은 공통이지만 오늘의 관점에서 보면 한심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