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 시절의 추억. 97
학생시절은 검정교복 남학교는 흑석동 84번 종점에 있어고 부속여고는 거기서 10분 정도 더 걸어 언덕 위에 있었다.
우리는 여학생들을 말 한번 걸어보려고 별수작 다 걸었으나 여학생들은 대부분 대꾸도 안 해주고 언덕을 올랐다.
세월이 흘러 중앙대재단이 돈이 없어 학교가 두산그룹에 팔렸다. 기업은 역시 돈 버는 귀재였다.
중대부속고등학교 건물을 철거하고 중앙대 부속 병원을 지었다.
마지막 교장, 교감은 서울시 교육청에 이전 부지 달라고 해서 도곡동 학교필지를 얻었다.
포클레인으로 땅을 파는데, 남고만 오면 안 되고 남녀공학으로 와야 학교 인가 한다고 해서 1996년인가 이전한 후배는 남녀공학으로 배운다.
선배들은 졸업연도 묶어 군대동기 먹듯이 동기가 되었다. 작가는 부고 80이 되었다. 봄 벚꽃놀이에 남녀 80 학생이 여의나루역에서 만나 윤중로를 걸었다.
뒤늦게 국회의사당 앞을 걸을 때 합류한 동기는 모임에 몇 십 년 안 나오다 처음 나와서 하는 말이 <부인들이 다들 참 아릅다우십니다. 이렇게 부부동반인 줄 모르고 저 혼자 와서 죄송합니다. 다음에는 아내를 꼭 데리고 나오겠습니다.>했다.
우리는 모두 웃었고, 65세, 66세 여자들은 아름다운 신 분에 웃음꽃이 피었다.
서울 벚꽃 기준 나무 표지
일행은 국회의사당 안에 와 본 것은 처음이다. 우리가 오늘 행복하게 이길을 걷는 것은 12.3계엄을 조기 해제시킨 국회의원과 그날 외곽을 인간띠 형성한 시민덕이라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통과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