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 도둑이 소도둑으로

by 함문평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고 한번 나를 시켜서 단 한 번의 검문도 안 받고 흑석동 달마사 아래 허름한 자취집에서 학교 앞까지 운반했더니 다음에 또 심부름을 시켰다.


시험 문제 내는 가리방으로 긁어서 찍어낸 유인물을 무사히 제작소에서 배포처로 이동시킨 것은 197X 년 신촌 대학가의 아는 사림만 아는 전설이 되었다.


하필 중간고사 일정표가 나온 상태라 나름 상위권을 유지하려고 각 과목별 시험 일정에 따라 공부계획을 세웠는데 연상의 여인 부탁을 전에는 씩씩하게 하고 거절할 수가 없었다.


문평 학생 월요일이 수학시험이라는 거 아는데 수학 귀재지? 하면서 은근히 나를 비행기 태우는 바람에 또 그 일을 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거 심부름 대가로 누나가 수학 주관식을 예상해서 하나 출제해 주었다. 홍성대의 수학 정석을 펴서 누나가 낸 예상문제와 유사한 것을 먼저 풀고 누나가 내준 문제를 백지에 풀어 풀이과정과 답을 보여주었다.


누나는 와락 껴안으면서 나는 남동생 없이 딸만 셋인 집에 가운데라 이 리치이고 저리 치이는데 네가 내 찬동이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어린 걸 천재일우라고 하나 오비이락이라고 해야 하나 월요일 수학시험지에 앞에는 전부 객관식이고 마지막 문제가 주관식인데 누나가 예상문제 내준 것과 등호 다음 숫자만 누나는 4로 낸 것을 우리 수학 선생님은 8로 낸 것이었다.


만주벌판 주관식 답안지를 잘 정리된 경작지처럼 풀이와 답을 쓰고 여유 만만하게 선생님 이런 고난도 문제를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편지까지 썼다.


정말 그 시험은 우리 600 명 중에 제대로 다 쓴 사람은 내가 유일했다고 다음 시간에 수업 들어오신 최경조 선생님 말씀이었다.


너무 기뻐 이 기쁜 소식을 누님과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고하려고 종례를 마치자 바람을 가르면서 집으로 달려갔다.


할아버지 할머니 제가 수학 제일 잘 봤어요!


그래 장하다 우리 장손! 장손이 최고야! 하시고 할아버지는 지팡이를 짚고 바로 정육점에 가서 돼지고기 두 근을 끊어 오셨다. 자주 먹지 못하는 고기 늘 한 근으로 할아버지 할머니 나 셋이 먹으면 할머니는 늘 고기를 별로 좋아 안 해 두부가 더 좋아! 하시면서 할아버지와 손자를 더 먹이는 것을 안 할아버지가 셋이 원 없이 먹게 두 근을 사 오신 것이다.


날이 어두워지고 84번 막차 운행을 마치고 들어온 옆방 큰 누나 들어오기를 기다렸다가 작은 누나는 오늘 집에 안 들어오나요?


나도 걱정이다. 사실은 어제도 안 들어와서 내가 일하면서 내내 그년 어디 교통사고라도 났나 잠이 안 온다.


중간고사라 안 들어온 건만 확인하고 내 다른 과목 공부를 했다. 그런데 이상한 건 암기과목은 일단 외워야 하는데 외워지지가 않았다.


연상의 여자가 내가 전달한 유인물 뿌리다 경찰에 잡혀가 남영동에서 조사받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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