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시험보는 날은 춥지

by 함문평

왜 시험 보는 날은 그리 추운지 예비고 사는 용산공고에서 보게 배정되었다.


시험 부정행위 방지한다고 우리 반에서 6명 정도만 고사장이 용산공고고 52 명이 각자 정해진 고사장마다 흩어졌다.


왜 시험일은 그리 추운지 뭐 기상관측이 실시한 이후 몇십 년 만의 최저 기온이라느니 온통 추위 보도와 추위 속의 수험생이 경찰차로 아슬아슬하게 고사장에 입장한 것이 그날 헤드라인 뉴스였다.


그 추운 날씨에도 할아버지 할머니는 고사장 밖에서 평소에 믿지 않는 하느님 부처님에게 우리 손자 시험 잘 보게 해달라고 기도하셨고 연상의 여인은 전날 찹쌀떡과 수성펜을 시험 잘 보라고 전해주었다.


1979년이 지나고 1980년 명문대는 아니지만 그래도 서울에 있는 대학교 신입생이 되어 문무대 입소를 했다.


입소 전에 교련반대 데모를 했으나 학교에서 일단 입소일자에 입소하라고 했다. 우리 과는 2조였는데 1조 다녀온 학생들 말이 크게 힘든 훈련은 없다고 받을만하다고 했다.

그렇게 입소한 문무대에서 5.18을 맞이했다.


계엄이 전국계엄으로 확대되어 대학 수업 전체가 휴강이면 병영훈련도 휴강이다.


따라서 병영훈련 거부하고 돌려보내달라는 농성에 계엄군이 해산을 시켰다.


다들 도망갔는데 각 과대표와 신입생이지만 운동권에 연이 다은 주동자급만 남았는데 나도 같이 연행되었다.


내가 연행된 것은 주동자이거나 의식이 있어서가 아니고 할아버지가 장손자 입학선물로 해주신 단화가 너무 딱 맞아 학교 언덕배기 오르내리다 보니 왼쪽 발톱이 빠졌다.


발톱이 꺼멓게 멍이 들어 뛰지 못하니 붙들 린 것이라 진술서에 이상 사실대로 기술하였습니다 하고 지장을 찍어 제출했더니 나는 바로 훈방조치되었다.


나머지 주동자급은 바로 군법회의로 넘겨졌다. 정말 현재의 잣대로 그 시절을 평가하면 안 되지만 그런 시절이니 탁! 하고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박종철 사건이 발생한 것이 우연이 아니라 시대가 암울 그 자체였다.

현재의 잣대로 과거를 평가할 수 없고 역사에 가정법이 없다고 하지만 1979년 10월 16일부터 1980년 8월 16일 최규하 대통령이 하야하고 전두환 대통령이 장충체육관에서 마지막 체육관 대통령이 될 때까지 역사는 정말 끔찍한 역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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