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전국 계엄 확대로 전국의 대학이 휴교가 되자 연상의 여인은 경주 집으로 오라는 전갈이 왔다.
우리 할아버지에게 연상의 여인이 제안을 했다. 어르신! 문평 학생 고모 경주사신 다는데 보고 싶지 않으세요?
보고 싶지!
그럼 어차피 전국 계엄으로 학교가 다 쉬고 학점은 리포트로 대체하는 판이니 이참에 어르신 따님 댁에나 다녀오시죠?
정말 기막힌 제안이었다.
할아버지 생신에나 다녀가는 고모와 고모부 그리고 외손자를 할아버지 할머니 보고 싶은 마음을 콕! 집어서 제안하니 할아버지 할머니가 싱글벙글이었다.
연상의 여인은 그 당시 귀한 계란을 한판을 삶고 소금에 고춧가루를 잘 배합해 준비하고 기차 안에서 소주병 역무원이 제지한다고 소주를 사이다 환타병에 위치이동을 해서 준비했다.
지금이야 기차 속도가 빠르지만 당시는 중앙선 비둘기호가 청량리에서 경주 가는데 꼬박 10시간이 걸렸다.
경주에 도착해 고모 고모부에게 인사를 하고 연상의 여인은 나를 경주 구경 같이 하고 이틀 후에 고모님 댁에 나를 데려다주겠다고 말씀드리고 나를 경주 황남동 자기 집으로 데려갔다.
그 집은 딸만 셋이라서 제일 큰언니는 버스 안내원 가운데가 그녀 막내딸은 아예 경주서 대학 안 가고 취직한다고 여상을 졸업해 경주 모 은행에 근무하고 있었다.
그 막내딸이 나랑 동갑 호랑이라서 바로 친구가 되었다.
여자 아버지는 네 명의 꽃밭에 유일한 남자였는데 나를 보더니 정말 굴러온 아들 취급을 했다.
술상이 차려지고 나랑 연상의 여인과 아버지는 소주를 어머니와 나랑 동갑 여자는 맥주를 마셨다.
역시 대화는 광주 이야기였다. 지금은 명칭이 광주 민주화 운동이지 당시는 광주사태였고 불순분자들이 북한의 사주를 받아 폭동을 일으킨 것으로 부모님과 동갑 여자는 알고 있었다.
동갑 여자는 내일 출근해야 된다고 9시 뉴스 끝날 때 잠자러 가고 나와 연상의 여자 부모님은 밤을 꼬박 새우면서 대화를 했다.
뉴스로 세뇌된 머리를 연상의 여자가 논리적으로 박정희 대통령 긴급조치 사건부터 오죽하면 김재규가 쏘았겠는가?
전두환이 조금 지나면 최규하를 하야시키고 지가 체육관 대통령 될 것이고 재야 운동권과 대학생 시위서클은 또 전국적인 데모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모님은 너희 둘은 여기서 말하는 건 좋은데 절대로 데모는 하지 마라고 신신 당부하셨다.
5.17 계엄 확대를 전국으로 시행했다. 광주사태진압은 1979년 부산 마산 사태 때 부산을 강경하게 신속 진압을 못해 미산 창원까지 번졌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보안사령관 전두환이 공수부대를 투입하여 전광석화 같은 진압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