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수로는 再修지만 햇수로 三修인 것을 생각해 열심히 공부했다.
4년 졸업 시까지 국어국문학 책은 학교도서관 있는 것 다 읽고 졸업한다는 각오로 공부했다.
재수생 원서는 교장을 대신해 학교장 직인을 찍어준 황 00 선생님과 약속대로 한복에 흰 고무신을 신고 모충동 구룡봉을 넘나들었다.
지금은 아파트 단지로 변한 모충동이 당시는 청주사대 회색 건물과 형석아파트 회색 건물 사이는 기존의 이층 집들과 형석아파트 이외는 공터 거나 논이었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살다가 여동생 경화가 대학생이 되어 할아버지 할머니를 고향 강림으로 가시게 할 때까지 모충동 논 옆에 두 칸 세 들은 방에는 출입문 이외 벽에는 책이 꽉 차 있었다.
도서관에서 대여도 많이 했고 시간 되면 서울 청계천과 성수동 서대문 등지의 헌책방을 알고 있어서 싸게 필요한 책을 많이 구했다.
그건 서울에서 있는 동안 데모도 잘했지만 나를 데리고 헌책방에 가서 당시 지니기만 해도 잡혀갈 칼 막스의 자본론 독어로 다스 카피탈 로자 룩셈부그의 생애와 사상 아무도 미워하지 않은 자의 죽음 이영희의 여러 책들 조선공신주의 운동사 등등의 책을 사서 내 고등학교 교복을 졸업하고도 입고 가방 들고 그 안에 불온서적을 넣어 다정한 척 다니면 수많은 경찰을 만나도 유유자적 통과했다.
고등학교 졸업식에 나는 교복 교모를 찢어버리려 했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연상의 여인이 꽃다발 주면서 졸업 축하하는데 교복 교모는 버리지 마! 해서 왜?라고 묻지도 않고 교복을 안 버린 몇 안 되는 모범생이었다.
결국 연상의 여인이 짭새를 속이기 위해 교복과 교모를 고이 간직하게 한 것이었다.
우리의 속담 같은 영어 관용구에 Out of sight Out of mind라는 말이 있다.
시야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나는 청주 모충동에서 1982년 봄부터 1983년 겨울까지 정말 한복에 흰 고무신으로 꽃다리 육거리 본정통을 누비고 다녔다.
미팅도 많이 하고 법학개론 시간에 무용과 여학생이 한자가 너무 많아 읽을 수가 없다고 음을 달아 달라기에 국어교육과 39명 여자들의 눈흘김을 당하면서도 음을 달아주었다. 어떻게 해보려고 하지만 나에게 다가오는 여자는 딱 두 명이 있었다.
ROTC 최종 합격 통지를 받은 주 토요일에 국어교육과 편지함에 편지봉투가 아닌 백지에 편지를 쓰고 딱지 접듯 접은
겉면에 국어교육과 2 함문평 뒷면 발신은 아는 여자라는 뜻밖의 편지를 받았다.
그것도 같은 과라 드러내놓고 사귀지는 못했으나 내가 소위 달고 전방 가면 내 책을 보관해 주기로 한 여자가 눈을 흘기면서 아는 여자가 무슨과야? 하면서 주길래 풀어보니 연상의 여인이었다.
수신: 함문평
발신: 검정교복과 가방 신세 진 여자
내용 : 수업이 언제 끝날 지 몰라 시내 숲 속의 언덕 키피숍에서 기다리니 수업 마치면 행차바람
지참금:없어도 되나 돌아갈 차비는 있어야 함.
난감했다. 표정관리가 어려웠다.
저 저저기 말이야...
왜 말을 더듬어?
아니 저 그게 말이야 이 편지는 경주 우리 고모님 근처 누나인데 내가 고등학교 교복 입은 학생은 가방검사 안 해서 데모 유인물을 내가 운반해 준 적 있는데 고맙다고 인사 왔네. 나 먼저 간다. 미안
그녀는 눈빛이 싸늘해졌고 나는 그래도 부지런히 숲 속의 언덕으로 갔다. 어두침침한 조명 아래 그녀는 죄 없는 성냥개피만 부러뜨리면서 내가 나타날 때까지 커피 한잔으로 4시간을 기다렸던 것이다.
차를 마시고 술을 곁들인 저녁을 먹고 다음 어딜 가나? 생각 중인데 이미 그녀가 본정통 좋은 모텔을 예약해 두었다.
완전히 연상의 여인이 거의 엄마가 일 학년 학교 데리고 가는 표정으로 따라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내가 먼저 씻고 나올 테니 나한테 잘한 일은 무엇이고 잘못한 게 무엇인지
생각하고 있어.
예!
예가 뭐야? 응 해봐?
응!
그녀는 욕탕에 들어가 샤워를 하고 물기를 다고 나오면서 타올로 몸을 가리고 나와 병영훈련서 샤워시간 1분 주었다며 나는 30초 준다 30초에 샤워 마친다 실시!
실시!
샤워가 아니라 그냥 소나기에 흠뻑 젖은 꼴로 나와 대충 물기를 닦고 그녀가 얼굴만 내민 이불속으로 들어갔다.(중간생략)
이불속에서 그녀가 물었다. 나에게 가장 잘한 일이 무엇이야?
검은 교복 모자 쓰고 가방에 누나가 전달하라는 대로 해준 거.
그래 맞아.
가장 잘못한 거는?
청주 내려와서 누나에게 연락 한번 안 한 거.
알긴 아네? 영어로 Out of sight Out of mind가 뭔지 알아?
시야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
그래 나는 네가 이렇게 멀어지더라도 다음 여자는 잘해. 아라찌? 했다.
그 일로 나는 정말 망했다. 2년 동안 공들인 여자가 정말 졸업하는 순간까지 찬바람이 불었고 연상의 여인이 나를 찾아온 이유는 부모님 등살에 거의 강제적으로 경주서 잘 나가는 집안 가운데 며느리 되는데 시집가기 전 꼭 한번 보고 싶은 사람이 너였다고.
뒤늦은 후회지만 이승기가 부른 너라고 부를래 하는 노래가 1982년에 나왔더라면 내 인생이 달라졌을 텐데~~~♡(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