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졸업식장에서 검정교복을 버리려는데 연상의 여인이 그걸 왜 버려? 보관하면 쓸 곳이 있을 거야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검정 교복 교모를 데모하는 유인물 전달하는 남자 대학생을 고등학생처럼 머리를 짧게 하고 내 교복에 명찰만 함문평을 장문평으로 갈아서 이용했다.
서울에서 유인물을 만들어 부산, 대구, 광주로 운반하는데 경찰 불심 검문에 안 걸리고 잘 이용했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발생하고 43년 이 흘렀다.
제목에 감히 돌직구라고 쓴 것은 전두환의 5 공화국 노태우의 6 공화국 그 후로도 김영삼 김대중이 문민정부라고는 하지만 정치자금 몰래 받은 것이 있어서 김영삼도 김대중도 신군부세력이 기록을 가필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자료를 더 모은 후에 글을 쓰려고 했는데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꼴이 더 늦어지면 내 글이 돌직구가 아닌 변화구 5.18일 될 것 같아서 현재 수집된 범위에서 일단 올리고 수정하기로 했다.
이글에 등장하는 허장환은 1948년 경북 경산 출신이다. 경상도 출신이 1980년에 굉주보안부대 수사관이었다.
상관인 서의남 중령과 불화로 전역해 전라북도 진안 강원도 화천 오지에서 자신이 경험한 광주이야기를 글로 썼으나 책을 발행하기 전에 원고가 압수당했다.
1988년 12일 6일 평민당사에서 기자회견을 하였고 2019년 5월 13일 국회의원회관에서 1980년 당시 미 정보부대원 김용장 씨와 합동기자회견으로 베일에 싸이고 왜곡된 5.18에 대해 정의로운 증언을 했다.
이 글은 두 기자회견을 기초로 작성했음을 밝혀둔다.
위 사진은 정승화가 육사 교장 재직 시 건립한 내 생명 조국을 의해 비석의 취지문 원문이다.
12.12군사반란 이후 정승화의 이름을 지웠다가 복원했다.
정승화는 1975년 9월에 육사교장에 취임했다.
그의 자서전 361쪽에 보면 이 비석의 세운 유래가 나온다.
그는 생도들의 인성 교육에 신경을 썼다. 능력 있고 존경받는 지휘관이 되기 위해서는 훌륭한 품성이 기본이라고 생각했다.
인성교육을 위해 교과목을 추가하고 학자들의 자문을 받아 교과서를 만들었다.
돌을 구했다.
받침돌이 60톤이고 세 위진 돌이 75톤 자연석에 12미터나 되는 돌에 박정희 대통령에게 붓글씨로 내 생명 조국을 위해 휘호를 받아 돌에 새겼다.
측면에 작은 글씨로 새긴 것이 위 사진의 글이다.
-사관생도는 겨레의 꽃이며 자라나는 나라의 간성이다. 무릇 군인의 충의는 국운을 좌우하는 근원이니 세찬 의기로써 정도를 밝히고 뜨거운 충절로써 조국을 수호해야 한다.
끊임없는 수련과 정진은 오로지 이 본분을 다하기 위함이니 사관생도는 덕성과 지성을 함양하고 의지와 체력을 연마해야 한다. 그리하여 호국의 전위로서 민족중흥의 역군으로서 오직 조국의 영광을 위해 몸과 마음을 흔쾌히 바칠 따름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육군사관학교 창설 30주년 기념일을 맞이하여 희호를 써 준 것이었다.
전두환이 정권을 잡은 뒤에는 이 비석에 새겨진 정승화 이름을 지웠다.
역사는 박복되는지 요즘 육군사관학교 홍범도 장군 흉상을 철거한다고 역사공부 좀 덜한 용산에 한 인가과 보훈부 장관 박민식이 광인행세를 하고 있다.
무식하면 입을 다물거나 무식한 것이 백선엽에 대하여 홍범도에 대하여 참 말이 많다.
육사에 흉상 5인 세운 것은 대충 선정한 것이 아니다. 돌아가신 이재전 장군이 우리나라 6.25 이후 장군 중에 가장 한자에 박식하고 다음이 박경석 장군이다.
박 장군과 삼각지 전쟁기념관 건물에 자리 잡은 전사편찬위원회 우원들이 선정한 것이 육사에 흉상 5인을 선정했다.
대통령 임기가 몇십 년 되는 것도 아니고 박민식 장관 임기가 김정은 임기만큼 길면 모르겠는데 길어야 2년 이내 임기자가 그걸 철거하면 정권 바뀌면 다시 세우랴.
우리 나리가 남북대화를 하면 백전백패 이유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남 사업 일꾼들은 한번 보직을 20대에 받으면 직급과 부서 이동만 있지 하는 일은 그 업무를 10년 20년 30년 한다.
아무리 머리가 좋기도 20년 그 일을 한 늘공과 어쩌다 정권과 코드가 맞아 협상자로 나가면 누가 주도권을 잡을까? 답은 뻔하다.
이제 우리도 최소한 외교관 군인 통일부의 대북 협상분야는 정권이 파란 잠바든 빨강 잠바든 색깔에 연연하지 말고 일관성 있는 정책을 폈으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