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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직구 5.18

04. 지만원 주장 북한군 광수는 누구?

by 함문평

지만원이 여러 글에서 1980년 5.18부터 27일 기간에 북한군 굉수가 600여 명이 내려왔다고 주장하는데 그 600명이 모두 사살되었는가?

아니면 모두 월북하였는가?


상식적으로 이해 안 되는 주장을 한 것을 43년이 지난 현재도 확대 재생산하는 인간들이 있다.


전두환이 홍성률에게 특수임무 부여한 것은 날렵하고 외모가 인민군처럼 깡마른 특전사 인원을 사복이나 교련복 또는 군복을 상의나 하의만 입고 다른 부위는 사복을 입어 꼭 복학생으로 보이게 하라.


그런 복장으로 데모에 가담하여 전남대나 조선대에서 데모를 주동하는 학생인지 파악하여 계엄군이 체포하기 용이하게 옷 등에 비표를 찌어주면 그것을 보고 쉽게 주동자를 체포하게 했다.


편의대가 공작활동을 잘해서 데모대 열어서 강경파와 온건파 분열도 있었고 광주시민을 폭도로 규정할 수 있게 아시아자동차 공장에서 만들어놓기만 하고 출고도 안된 장갑차를 몰고 나올 수 있었다.


홍성률이 기획 조정 통제하는 편의대는 아래와 같은 활동을 했다. (허장환 증언에서 인용)


첩보 및 정보수집

주동자 색출 및 체포

시위대의 위치, 무장 상황 파악

광주시민 및 수습대책위원회 동향 파악

사진병을 편의대로 투입해 폭도 또는 폭동화 공작을 위한 시위 장면 선택적 촬영

시위대의 모략 및 교란 예를 들면 전옥주 가두방송할 때 계엄군에 간첩이라고 신고함

선무공작

경상도 군인들이 전라도 사람 씨를 말리려고 왔다는 유언비어 유포

경찰서, 파출소, 광주세무서, 교도소 등 습격 파괴 유인

시민과 시우대 폭도 분리 공작

등을 했다.


일반 군인이라고 다 장갑차를 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동기들도 기갑 병과가 단결이 잘 되는 이유가 보병은 몇 천 명이지만 기갑은 100명 내외다.


그러니 기갑학교 마치고 전국 전차부대로 흩어져 근무하다가 기갑 동기회장이 삼각지 국방회관에 몇 월 며칠 몇 시만 정해주면 보병은 39% 모이는데 기갑은 89.9999% 모인다.


특전사는 전시에 평양 평성에 류경수 전차부대나 815 전차부대 820 전차부대 탱크를 몰아야 하기에 천마호 전차도 몰고 우리 전차 장갑차도 다 훈련을 시킨다.


그러니 시민군인 척하고 아시아 자동차에 가서 장잡차를 쉽게 몰고 나온 것이다.


그걸 북한 김일성이 남파한 간첩이라면 우리는 그때 남조선 혁명이 성공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남반부가 되어야 했다.


이제라도 5.18 광주민주화운동기록을 바로잡기 바란다.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결과보고서의 홍성률을 조사한 보고서를 보면 그는 광주 시내로 잠입 정보수집 및 특수활동을 했다.


그는 광주시 사동의 친척집에 비밀아지트를 설치하고 전남도경 정보과 소속의 경찰과 광주 보안부대 정보과 요원의 지원을 받아 광주시내에서 활동 중인 정보조를 통합지휘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는 광주시내로 잠입 허서 5월 21일부터 지하정보활동을 했다. 광주 보안부대 박 상사와 전남도경정보계 김 경감의 지원받으며 활동했다.


그는 경찰의 정보기능을 통합해 3개 조로 24시간 풀가동체제를 유지했다. 5월 24일 광주시내를 빠져나가 송정리 비행장에서 대기하다 5월 27일 상무충정작전이 끝나고 전남도경을 지휘감독하였다.


6월 8일 서울로 올라와서 6월 10일에 전두환 보안사령관에게 5.18에 대한 종합보고를 했다.

지만원이 북한군 굉수로 지목한 사진이 본인이라고 밝힌 사진이다.


이래도 지만원이는 북한군 굉수가 600명이라고 우길건가?


특전사 요원 중에서 체구가 마르고 사복이나 교련복 상의만 걸치면 탈북한 지 며칠 안 되는 인민군으로 착각할 인물을 골라 편의대로 활약한 것을 지만원은 꼴깍 속아서 당당하게 북한군 광수라고 명명했다.


세월이 43 년 흐른 지금도 보수 꼴통 유투버들은 광수라고 애무새처럼 말한다.


광수는 1998년 꽁치 어망에 걸린 북한군 잠수함 승무원 중 한 명이 광수다.


그 이전의 광수는 강원도 횡성군 강림면 강림중학교 뒷산에 가면 김광수의 묘가 있다.


김광수는 함경도 사람인데 1.4 후퇴에 홀로 남하하여 악착같이 일을 하고 모은 돈으로 소 100 마리 재산을 남기고 고인이 되었다.


그의 재산으로 마을에 중학교를 세우고 기부채납 형식을 취해 강림중학교가 공립학교지만 설립자가 있는 특이한 학교가 되었다. 이야기를 삼천포로 빠진 것은 지만원 주장이 삼천포라는 것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광수에 대해 알았으면 더 이상 광주 편의대를 광수라고 칭하지 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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