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수는 정보장교로 21년 3개월 지낸 이야기를 했고 안덕영은 중위로 문무대 구대장으로 전역해서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를 했는데 중요한 이야기는 백운택, 윤종필, 정호영, 김병욱 4명의 동기가 그를 간첩 즉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 복역을 하게 만들고 자신들은 국가정보원장 표창을 받고 중령으로 진급한 이야기를 했다.
안덕영은 중위로 전역해서 처음은 기아자동차 디자인실에서 일하다 제일기획으로 이직해서 3년 일하고 2014년도에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 일본서 디자인공부를 좀 더 하고 싶었다.
홀어머니가 버는 돈이 넉넉하지 못해 장학금을 신청했다. 민족장학금은 처음 장학기금을 조성한 것은 조총련이었다.
조총련 모국방문이 시작되고 일본에서 민단과 조총련이 화해무드가 형성되었을 때 민단에서 30억 앤 기금을 보태고 남한이나 북한이나 차별 없이 공부하러 온 조선인 유학성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정관을 변경한 지 40년이 지났다.
정호영, 윤종필, 백운택, 김병옥 등 4명이 역할을 분담해서 안덕영을 간첩으로 몰았다.
정호영은 전영수와 육군대학을 같은 시기에 반만 다르게 수료했다.
육군대학 학생장교 시절에 정호영이 기무부대 지금의 안보지원사령부에서 잔뼈가 굵었고 육군대학을 마치고 다시 기무부대로 원복 할 자원이라고 하니 교관들도 정호영에게 밉게 보이면 안 될 거 같으니 시험문제 초안을 흘려주었다.
미리 답을 외워서 문제를 읽지도 않고 답을 쓰고 시험장 밖에서 스터디 멤버들끼리 외운 답을 서로 맞혀보니 육사 중에 똑똑한 몇 명이 육군본부 인사운영감실에 투서를 했다.
육군본부에서 5부 합동검열이 나오고 육군대학이 진해에서 계룡대로 이사 온 이후 최고의 수치스러운 날이 되었다.
시험문제 유출에 관련된 교관은 임기 전에 1군 강원도 최전방 화천으로 방출되었다.
정호영과 같이 공부한 육사 스터디 그룹과 반대 성향의 똑똑한 장교들이 정호영을 포함하여 육사 출신 5명을 절대로 소령에서 중령으로 진급해서는 안 될 인물로 연대 서명 투서를 올렸다.
그렇게 진급하면 안 된다 소리를 들은 정호영이 백운택, 윤종필, 김병욱을 포섭하여 안덕영을 간첩으로 만들고 국가정보원장 표창을 받고 중령으로 진급했다.
안덕영도 간첩 누명을 쓸만한 일을 했다. 그가 민족장학금을 받을 당시 민족장학금 관리 재단의 사무국장이 현송선이었다.
현송선은 북한의 빨치산 가문인 현철해의 후손으로 평창 동계올림픽 시기에 북한의 예술단을 인솔하고 내려온 현송윌과 현송선은 사촌 언니였다.
현 사무국장이 한국 현역장교를 소개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무심천대학교 응용미술과 학생 졸업여행에 백운택 소령을 동행했다.
백운택은 대한민국 특전생부 소속 소령이라고 소개했고 현송선은 민족장학재단 운영과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