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변호사의 예리한 논조와 끈질김 덕분에 안덕영 국가보안법 이적단체표현물 소지 및 고무 찬양은 무죄 판결이 났다.
그가 간첩 누명을 써서 놀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내와 이혼하고 초등학교 4학년 딸이 친구들에게 간첩 딸이라고 소가락질 받아 서울서 원주 학성초등학교로 전학을 갔고 안덕영 본인이 무심천대학교에서 해직된 것 등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민사소송으로 다시 증거를 모아 소송을 해야 배상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일은 한심하게 돌아갔다.
안덕영이 국가보안법이 대법원 무죄 판결이 났으면 안덕영을 간첩으로 조작하여 국가정보원장 표창을 받고 진급한 백운택, 정호영, 윤종필, 김병옥, 박성규, 안용호 등에 대해서는 표창을 삭탈하고 진급 명령도 소급해서 삭탈하고 전역 후 연금을 받는 것도 삭탈해야 경우에 맞겠지만 그들의 계급과 연금은 변함이 없었다.
일제에 부역한 사람들이 떵떵거리고 살고 독립군들은 극빈자 신세던 해방후처럼 간첩을 만들어 승진한 자들은 은퇴해서 연금을 많게는 300만 원 적게는 250만 원을 받으면서 희희낙락 살았다.
하기야 육군사관학교에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세우는 정부가 정권이 바뀌었다고 흉상을 철거하는 나라니 뭔들 원칙이 지켜지는 것이 있을까마는 안덕영은 윈통한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
정율성 음악회도 몇 번이나 열렸는데 이제 와서 정율성 공원을 조성 중단한다는 것 하며 백선엽이 6.25 한국전쟁 영웅이라는 허접한 소리나 하고 말이지 나라가 나라냐? 소리가 절로 난다.
한국전쟁사에 깊은 연구를 하신 박경석 장군에게 백선엽을 물어보라.
또한 6.25에 참전한 대령 이상 장군들에게 물어보라 백선엽이 5성 장군 명예원수 추대될 인물인가를?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해방 후에 반민특위라 는 것이 있었다.
정식 명칭이 반민족행위자처벌에 관한 특별법인데 이승만이 집권하면서 친일 부역자나 그 후손들을 중용하면서 집권했기 때문에 반민특위 가 정상 가동되면 정권유지가 안될 지경이었다.
반민특위는 사라졌다.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 가봐라.
거기 묻힌 자 중에 독립유공자라고 묻힌 자 중에 친일 행위자들이 절반은 된다고 고인이 된 친일행위자 연구학자의 말이다.
박정희 시대는 간첩이 정말로 북에서 특수훈련을 받고 남파된 간첩도 있지만 지금의 국가 정보 원 당시 이름으로 안전기획부가 간첩을 만든 그 연장선 위에 진급에 눈이 먼 몇몇 장교와 부시관 경찰청 정보과와 국가정보원이 공동의 이익이 맞아서 안덕영을 간첩으로 만들고 그들이 유공 자 가 되었다.
대법원어서 안덕영 간첩죄가 무죄 판결이면 안덕영을 간첩으로 만들었던 여러 명은 국가조직에서 받은 표창을 박탈해야 정상 아닌가?
조국 딸 조민은 표창 위조로 대학입학이 취소되고 의사면허도 취소한다는데 법이 공평하게 집행되어야지 고무줄 법집행이 된다면 어느 세월에 남북통일이 될까?
수여된 훈장과 표창이 삭탈된 경우가 있었다.
1979년 12.12군사반란과 1980년 광주 5.18 민주화운동시기에 광주진압에 유공이 있다고 백여 명이 훈장과 표창을 받았는데 몇 년 후 여소야대 국회가 이때 훈장과 표창을 박탈하는 법을 만들어 박탈했다.
이처럼 백운택, 정호영, 김병옥, 윤종필에 대한 표창을 박탈해야 한다고 안덕영은 뉴스 매체 인터뷰할 때마다 외쳤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