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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덕영 국가보안법 재판

01. 토끼의 눈

by 함문평

2020년 10월 19일(목) 오후 1시 안덕영 민사소송 재판이 있다는 것을 학군단 동기회 밴드에 올리고 많은 방청을 독려했다.


동기 여러분을 서울지방법원 358 법정에 초대합니다. 진급에 눈이 멀어 학군단 안덕영 동문을 간첩으로 몰아 옥고를 치르게 하고 백운택, 윤종필, 정호영, 김병옥은 소령에서 중령으로 진급했습니다.


작가는 그것도 모르고 정보 장교라고 북한동향만 파악하다 전역했습니다.

동기가 간첩 누명 쓰고 법무부 호텔 주로 사상범을 많이 수용하는 청주교도소에서 2년 6개월을 지낸 일을 몰랐습니다.

끝까지 법정투쟁을 벌여 대법원에서 2019년 12월 20일에 국가보안법 이적단체 고무 찬양죄에 대해서 무죄판결을 받았습니다.


무죄가 되었으니 2년 6개월의 수감 때문에 가정 파탄이 난 것을 배상받으려고 민사재판을 진행 중에 있습니다.


학군단 여러분!


시간 되시는 분은 2020년 4월 13일 서초동 서울지방법원 358 법정에서 방청 바랍니다.


학군단 간첩 누명 쓴 안덕영 동기 함문평 올림


동문 총 400여 명 중에 358 법정에 방청온 사람은 안덕영 변호사 이재용 변호사와 변호사 사무실 배장호 사무장이었다.


배장호 사무장은 전영수와 서울 성남중고등 학교 동기생이었다.


반갑다. 전영수?


야, 배장호를 여기서 만나다니?


음, 안덕영이가 학군단 동기라서 동기회 밴드에다 방청 많이 해달라고 공지했는데 온 사람이 나 혼자다.

그런데 너는 원일이야?


응, 인사해 안덕영 국가보안법 위반을 대법원까지 가서 무죄 판결받아낸 이재용 변호사님이다.


아이고 수고 많습니다.

안덕영 군대동기 전영수입니다.


변호사님, 전영수와 저는 서울 성남중고등학교 동기입니다.


고교동기를 법정에서 만나다니 세상 참 넓고도 좁습니다.


변호사님, 국가보안법이 무죄가 되는 경우가 있나요?


있지요?


국가보안법 위반은 무조건 사형 아닌가요?


예. 1970년대와 80년대 초기는 거의 사형이었습니다.


1987년 민주화운동으로 한국 사법부도 많이 변했습니다.


한국의 사법부는 1987년 이전과 이후가 분수령입니다.


탁! 하고 치니까 억! 하고 죽었다는 그해지요?

그거 알아요?


우리 장교 후보생 때 함문평 소령이 훈유관인데, 그분이 들려주셨어요.


뭐라고요?


박종철이 고문치사로 죽은 것을 사체를 부검한 의사가 천주교 신자였는데 신부님께 고해성사를 통해 세상에 처음 알려지게 되었다고요.


예. 중앙대학교 용산병원에서 일어난 일이었지요?


교수부장이 중위 시절이 그 시기였다고 합니다.


17사단에서 소대장을 하고 있는데 1987년 6월 26일 수도방위사령부로 전출 명령이 났다.


박촌 100 연대장에게 전출신고를 했다.


충성!


신고합니다.


중위 함문평은 1987년 6월 26일부로 백 연대에서 수도방위사령부로 전출을 명 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충성!


그래.

함 중위가 솔선수범한 거 잘 알고 있다.

특히 오류리 독립중대에서 수중모터가 고장 났을 때 병사들을 위해 물지게를 진 것을 사단장님께 보그 드리니 바로 사단장님이 표창을 내려주셔서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모르겠다.


감사합니다.


예. 이렇게도 만나는 걸 보면 죄지으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매년 범죄가 늘어갑니다.


그때 재판관들이 들어왔다.


법정 내 방송이 나왔다.


법정에서는 일체의 촬영과 녹음을 할 수 없으니 핸드폰을 꺼주시기 바랍니다.


재판은 이미 제출된 서류와 증거물 사진을 대형 스크린에 비추면서 진행했다.


생각 같아서는 판사들을 권총으로 쏴 죽이고 싶었다.


안덕영이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안덕영이 수감된 기간의 피해산정액이 믿을 수 없다고 다음 재판은 12월 20일에 한다고 하고 재판을 마쳤다.


판사들은 건설일용직을 안 해봐서 저런 소릴하는거야! 전영수가 큰소리로 말했다.


최저 시급 곱하기 평일 주 5일로 환산 2년 6개월의 노임을 쳐서 배상해 주면 될 일을 질질 재판을 오래 끌어 포기하게 만드는 거야라고 덕영이 말했다.


안덕영의 눈이 어린 시절 강원도 횡성군 안흥면 각림촌에서 올무를 만들어 뒷산에 매설하고 열흘이 지난 후에 순찰을 돌면 올무에 걸려있는 토끼의 눈처럼 슬퍼 보였다.

이재용 변호사, 배장호 사무장, 안덕영, 나 전영수 4명이 서초동 은행나무집으로 갔다.


배상 판결에 이긴 것도 아니고 진 것도 아닌 연기라 축구로 말하면 전후반을 비기고 연장전을 준비하는 꼴이었다.


은행나무집 공승현 사장이 전영수를 알아봤다.

아니 정보사령부 전영수 대위 아니십니까?


예, 사장님 처음 뵐 때가 팔팔한 대위였는데 세월이 참 많이 흘렀네요?


한 20년은 된 거 같군요?


사장님 음식점 새로 오픈하고 몇 년 못가 간판이 바뀌는데 두부전골 하나로 20년을 하신 비결이 있나요?


비결이 뭐 있겠어요.

종업원들 다른데 도망 못 가도록 매년 묵가 승승보다 1% 연봉 올려주고 주방장 이영노 형은 좋아하는 술 매일 일 마치면 마약 먹이듯 먹인 거죠?


그 대머리 주방장 아직 계셔요?


예.


아이고, 그럼 제가 인사드려야지요.


충성!


왕년의 전투서열장교 전영수 주방장 형님께 인사 올립니다.


원칙적으로 거수경례는 제복을 입고 모자를 썼을 때만 하는 것이지만 장유유서 우

교 문화에 젖은 사람들은 거수경례를 하면 좋아한다.


특히 군대를 돈으로 했든 백으로 했든 면제 미필자들에게 거수경례 해주면 엄청 좋아한다.


전영수가 자리로 돌이 왔다.


아니, 영수 넌 언제 저 주방장과 친해졌어?


음, 정보사 전입 오자마자 선임들이 정보사는 말이야 육사, 3사, ROTC 소용없다.


전입 선임순으로 사령관이 추천번호 써주는 대로 진급이라서 전입 3년 이하자는 진급 꿈도 꾸지 말라는 시절에 전투서열장교를 하면서 전입 간 그해 소령으로 진급했다.


꼭 진급을 의해서 일한 것은 아닌데 상황보고 때 정보참모 바로 뒤에 2급 군사비밀 북한군 전투서열 육군 편, 해군 편, 공군 편을 들고 사령관이 질문한 것에 정보참모 구본형 대령이 대답을 바로 못하면 노랑 포스트잇에 메모해서 참모에게 전달했다.


솔직히 전 대위는 북한군은 육해공이 군단별로 집단군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전투서열을 만든다면 군단별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한민국이 육군, 해군. 공군으로 분리한다고 북한군 전투서열 비밀 책자를 육해공으로 따로 만드니 비유하자면 이진법으로 기록한 것을 10진법으로 변환해서 답을 하는 꼴이라고 생각하였다.


생각일 뿐 전입 간 지 며칠 안 되는 놈이 그런 말을 하면 건방지다고 괘씸죄에 걸리면 진급이 안될까 봐 겁나서 꾹 참고 근무했다.


그런 그에게 정보사령관 박현풍 소장이 특별 지시를 내렸다.


북한군 무기를 육해공 구분 없이 작은 구경에서 큰 구경 순으로 만들라고 했다.


사령관 지시사항이라 꼭 그해 안에 만들어 실물로 보여드려야 했다.


전 대위에게 구본형 대령이 지시했다.


전 대위는 사령부 전투서열 장교를 하면서는 도저히 만들 시간이 없으니 한직으로 파견을 보내주면 거기서 한직을 수행하면서 만들겠다고 했다. 참모는 한직으로 팬을 인사참모에게 요청했다.


같은 전투서열장교지만 정보사령부 정보처의 전투서열장교보다는 남태령 수도방위사령부 정보부대의 전투서열장교는 한직이었다.


정보참모 구본형 대령과 인사참모 이태우 대령이 협조하여 새로 전입 오는 육사 장교 대위를 사령부 전투서열장교를 하고 보직은 수도방위사령부 전투서열장교가 사령부로 파견근무 형식을 취해다.


이유는 육사 대위는 보직에 파견이 길어도 소령 진급에 문제없다고 그런 편법을 썼다.


북한군무기식별 비디오로 제작한 것을 그해 12월 첫 상황보고 후에 지휘통제실에서 시청했다. 대박 사건이었다.


바로 육군본부 정보참모부에 전파하고 전군에 배포하도록 예산반영을 해주었다.


병사들에게 교범에 나온 시진으로 북한군 무기 교육하던 것을 한 편의 영화로 소구경에서 대구경 무기까지 교육을 할 수 있었다.


이것으로 전영수 대위는 정보장교 전국적인 스타가 되었고 진급 심사 들어간 대령급 장교들이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정보사령부 전입 3년 차 이전은 진급에 진자도 꺼내지 말라는 불문율이 깨지는 신호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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